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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30회 – 마지막 추석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오늘은 성민이가 진행합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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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맞아 가족들이 모여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명절음식에 선물로 들어온 술을 겸한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지내시던 아버지도 오래간만에 집을 나서 딸네 집에 왔습니다.

밥을 제대로 드시지 못하지만 이날만큼은 준비한 죽과 반찬을 말끔히 비우셨습니다.

 

 

암세포가 전이되면서 항암치료를 중단한 아버지는

그 이후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기력이 점점 약해지고 정신도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런 아버지를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인데 마음은 덤덤합니다.

할 수 있는 게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서 저는 살짝 물러나 있어도 괜찮습니다.

이런 제 태도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모두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걸 알기에

그저 평소처럼 지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추석을 맞아서 가족들이 모인 자리

아버지에게는 마지막 추석일지도 모릅니다.

넉 달 후에는 설날이 찾아오겠지만

그때도 아버지가 같이 자리를 하고 있으리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쩌면 마지막 명절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추석을 가족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것 뿐 입니다.

즐겁게 밥을 먹고 거나하게 취하도록 술도 마셨습니다.

즐겁고 편안했습니다.

 

 

 

2

 

 

암 투병 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평소에 아주 건강하신 편은 아니더라도 별 탈 없이 지내오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말기 암 판정을 받게 됐습니다.

병이라는 게 갑자기 훅하고 치고 들어와서는 강펀치를 날리더군요.

그리고 이런저런 검사와 치료가 시작됐고

애초 걱정과 달리 잘 버티는 모습에 안도하기는 했지만

크고 작은 부침 속에 점점 나빠져 가는 모습을 지켜봐야했습니다.

이제 그 끝을 향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말기 암 판정을 받고 2년이 지났으면 오래 버텼다”며 위안을 삼습니다.

 

 

질병은 갑작스럽게 닥쳐오기도 하고

그 치료과정은 지난할 수도 있으며

서서히 생이 마무리되는 과정은 무기력을 동반한다는 걸

지난 2년 동안 지켜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살아가면서 큰 변고가 없으면

20~30년 후 저도 비슷한 과정을 밟게 될 겁니다.

그리 보면 남은 생이 길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한 해에 한 번 정도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담은 선물을 한다고 하면

스무 번 정도 밖에 못합니다.

간혹 주위를 돌아보며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 해도

열 번 남짓이 고작이겠죠.

귀여운 조카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것도

어른이 되기 전까지 4~5년 정도 밖에 안 남았습니다.

사랑이와의 행복한 나날도

앞으로 5년을 넘길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음...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사랑하고 살아가기에

여유가 그리 많지는 않네요.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3

 

 

모처럼 맑은 날씨가 연일 이어지는 요즘

파종한지 얼마 되지 않은 모종들이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유난스러운 가을장마에 파종시기가 늦었는데

뒤늦게 찾아온 가을태풍에 늦게 심은 모종들도 사달이 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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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쪽 모종들은 그나마 잘 자라고 있지만

가장자리 쪽 모종들은 깡그리 죽고 말았네요.

주변에 이런 밭들이 부지기수이지만

이제 와서 다시 모종을 심어봐야 헛일이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근심 속에 심어진 겨울작물들은

상처를 안고서라도 무럭무럭 커가기 위해

가을햇살을 원없이 들이마시고 있습니다.

 

 

 

 

(범능스님의 ‘바람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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