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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35회 – 가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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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서른다섯 번째 문을 열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들풀입니다.

 

 

요즘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냥 마음이 싱숭생숭 해집니다.

sns에 넘쳐나는 가을풍경을 보면서

어디로든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해봅니다.

오늘 방송은 그런 한탄 속에서 건져 올린 사연들로 채워봤습니다.

가을을 즐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분들과 함께 대리만족이라도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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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무인 과일 좌판대를 보았다. 얼마 전에는 무인이 아니었는데, 가게 아저씨에게서 극조생귤을 사며 이야기나눈 적이 있다. 아저씨는 파는 귤이 서귀포귤이라면서, 앞으로 가게(야외이다보니 아마도 좌판대 반경 5m 쯤 아닐까)에 사람이 없으면 그냥 돈을 박스 안에 두고 가라신다. 괜찮으세요? 물으니 믿는다고 하셨다ㅎㅎ

 

 

집에 오는 길에 그 아저씨가 꾸린 좌판대 두 곳을 동시에 보았다. 둘 사이 거리는 아마도 1km 쯤 되지 않을까. 박스에 넣을 현금이 없을 때 계좌이체하라고 적어둔 계좌번호가 같으니 그 아저씨가 동시에 운영하는 가게들이 맞겠다. 문득 아저씨의 존재가 궁금했다. 어디 계실까. 양쪽 모두에 사람이 없었으니 다른 가게가 또 있을 수도 있고, 혹 투잡을 뛰실 수도 있고, 영화나 책을 보시고 있을 것도 같다. 아침에 그날 팔 과일을 트럭에 한번에 실어다가 각 장소에 꾸려 놓고는 저녁에 들러 정리만 하면 되니 그거 벌이도, 여유 시간도 괜찮을 듯하다.

 

 

믿음이 이룬 일타쌍피(일타다피?) 전략 아닐까.

부디 그 믿음이 깨지지 않기를 바란다.

(참고로 난 사진만 찍었다)

 

 

 

 

굴청님의 페이스북에서 빌려온 사연과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걱정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무인점포들에 대한 절도사건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요즘인데

길거리에 달랑 이렇게 좌판만 깔아놓았으니...

 

 

사람을 믿는다며 벌여놓은 이 좌판이 잘 운영되고 있을까요?

이곳을 지나게 되면 그 마음이 너무 좋아서 5천원짜리 한 봉지를 사들고 왔을지 모르겠습니다.

굴청님의 바램처럼 ‘부디 그 믿음이 깨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2

 

 

이번에는 성민씨가 보내온 사연과 사진들입니다.

제주도의 가을풍경을 잔득 보내주셨는데요

이건 완전 자랑질이더군요.

그 자랑질이 부러우면서도 좋아서

여러분과 함께 제주의 가을을 느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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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화창한 가을날

따사로운 가을볕이 아까워서

이불과 베개를 마당에 널었습니다.

이불과 베개에 뽀송뽀송한 기운이 전해질 걸 생각하니

기분이 한 발 앞서 뽀송뽀송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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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밭들에는 스프링클러가 바쁘게 돌아갑니다.

적당한 기온과 따사로운 햇살에 충분한 물까지 머금은 작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그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제 일인양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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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바다와 하늘이 자기 색을 또렷하게 내고 있습니다.

그 경계가 분명하게 나눠지고 있는데도

서로 잘 어울리는 풍경은

요맘때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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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올려다봤더니

파란 하늘 위에 비행운이 선명하게 나있었습니다.

제 마음도 시원하게 달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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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와 같이 즐거운 산책을 마치고

비닐하우스에 들어왔습니다.

바쁜 일이 다 끝난 하우스 안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책을 읽어봅니다.

올해가 지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는 여유입니다.

 

 

 

3

 

 

성민씨네 비닐하우스 안에서 책을 읽는다면

아름답고 따뜻한 책도 좋겠지만

힘들고 치열한 책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화사한 가을햇살을 느끼며 감귤향기가 풍기는 곳에서

삼풍생존자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함께 어울려 놀던 친구 가운데 하나가 시험을 볼 때마다 커닝한다는 소문이 반에 돌았다. 이 이야기에 배신감을 느낀 우리는, 우리 감정을 노골적으로 알리기 위해 그때부터 대놓고 그를 따돌렸다. 지금 생각하면 학교 다닐 때 겪던 그깟 따돌림 같은 게 뭐라고 그렇게 연연했을까 싶지만, 학생에게는 학교가 세상의 전부이기에 왕따가 된다는 것은 어른들의 짐작보다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그 친구가 우리한테 할 말이 있으니 수업 끝나고 잠깐 남아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떠난 교실에서 그 친구는 정말 우리 말고 더는 누가 없는지 앞뒷문을 열어 꼼꼼히 확인하고는 다시 자리로 와, 침착한 태도로 책가방을 열고 필통을 꺼내 문제의 커닝 페이퍼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 사실 여태 시험 볼 때마다 커닝했어. 시험을 잘 보고 싶었는데 점수가 잘 안 나왔고, 점수를 잘 못 받으면 집에 가서 아빠한테 맞아.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 나도 잘못한 거 알아. 앞으로 안 그럴게. 그러니까 이제 나랑 같이 놀자.”

친구는 자리에서 돌아앉더니 입고 있던 티셔츠를 걷어 올려 우리한테 매 맞은 등을 보여주었다. 그 등에는 누가 세탁소 옷걸이같이 얇은 걸로 세차게 때린 울긋불긋한 상처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요즘 같으면 아동학대로 경찰에 신고할 수준의 가정폭력이지만, 그때만 해도 대한민국 사회에는 가정에서 훈육을 목적으로 하는 아이들 체벌을 어느 정도 용납하던 분위기였기에 우리는 이 일에 대해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다. 어찌되었든 친구의 용감했던 고백을 계기로 우리는 전보다 더 친하게 지냈다. 공부할 때나 놀 때나 항상 그 친구와 함께 했다. 또 분명히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 친구와 짝이 되는 아이들은 암묵적으로 시험지의 틀린 답도 몰래 고쳐 동그라미를 쳐주었다.

......

이 친구의 사건은 또 다른 의미로 내 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 역시 그처럼 언제나 솔직하고 용감하게 살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후에 내가 만난 사람들은 당시 우리 반 아이들 같지 않았다. 아니, 대부분은 그때 우리 반 친구들과 정반대로 행동했다. 오히려 내 비밀을 알게 된 사람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내게서 멀어져갔으며,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내 상처를 이용했다.

 

 

 

 

산만언니가 쓴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의 한 구절을 들어봤습니다.

어릴 적 친구와의 기억을 얘기하는 대목에서는

참으로 아름다워서 눈물이 찔끔거리기도 했는데

뒤에 이어진 짧은 반전에서는 가슴이 서늘해지더군요.

 

 

제 기억 속에 친구의 아픔을 달래주면 함께 했던 기억이 있었는지 돌아봤지만

그런 기억은 없었습니다.

반대로 어른이 되고나서 동료의 아픔을 외면하거나 이용했던 기억이 있는지 돌아봤더니

얼굴이 화끈거리더군요.

제 삶을 돌아보면 특별한 것 없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산만언니의 말을 곱씹어보면

저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이용하며 살아왔었던 겁니다.

 

 

무지 무지 무지 무지 무지

창피한 어느 가을날의 상념이었습니다.

 

 

 

 

(Mei-lan, Ali Pervez Mehdi, and James Gibson의 ‘Eternal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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