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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38회 – 편안한 가을날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면 살아가자, 서른 여덟 번째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방송을 진행하는 저는 성민입니다.

 

점차 날씨는 추워지고 밤은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체에 이런저런 변화들이 생기고 있어서 살짝 예민해지는 요즘입니다.

 

난방을 하다 보니 실내가 많이 건조해졌고

그래서 코가 자주 막힙니다.

밤에 잘 때 젖은 수건과 행주를 널어두는데

그것으로 역부족이라

숯도 사다놓고 분무기로 방안에 물을 뿌려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달 가까이 하다 보니

몸이 적응이 된 건지

습도가 높아진 건지

이제는 좀 견딜만합니다.

 

코 막힘은 어느 정도 해소됐는데 수면장애가 문제입니다.

제가 일찍 잠자리에 드는 편이라서 밤 9시가 되면 잠을 자는데요

편안하게 잠을 잘 자다가 새벽 1~2시에 깨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 시간에 잠이 깨면 참 난감합니다.

뭔가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는데

정신만 멀뚱멀뚱하니 해서 그냥 누워있어야 합니다.

잠이 안온다고 tv나 컴퓨터를 켜게 되면 더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에 삼갑니다.

책을 보려고 펴들어도 잘 읽히지 않고 명상을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 두 시간 정도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찌뿌둥해져서 하루가 힘들어지게 됩니다.

 

처음에 잠자리에 들 때는 잠이 잘 오기 때문에 심리적인 것은 아니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활동량이 줄어들고 기온이 떨어지니까 몸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밤에 잠이 깨어도 잠을 자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을 열어서 오디오채널을 찾아 잔잔한 방송을 틀어놓습니다.

낮에는 진득하니 않아서 들을 수 없는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그 시간이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방송을 듣다가 가벼운 명상을 하면 잠이 스스로 다가옵니다.

 

새벽에 잠이 깨었다가 다시 잠들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집니다.

평소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명상과 요가를 하는데

새벽에 깼던 날은 새벽 6시가 돼서 눈이 뜨입니다.

그 시간에도 밖은 캄캄하기 때문에 느긋하게 일어나서

명상과 요가를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러다보면 하루의 출발이 한 시간씩 늦어지지만

아침에 급할 것이 없으니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덕분에 편안한 얘기를 들으며 한 시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곳은 제가 사는 곳 근처입니다.

마을 외곽 골목인 이곳에는 열 채 정도의 집들이 모여 있는데

최근 1~2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이곳에 사시던 분 중에 세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동네에서 오며가며 얼굴을 보이시던 분들이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더니 나중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분들이 살던 집중에 한곳은 아들이 들어와서 살고 있고 한곳은 아직 비어있더군요.

돌아가신 분 중에 두 분은 저랑 먼 친척뻘이어서 인사하며 지냈었고, 한 분은 사소한 악연이 있어서 좀 불편했었는데 왕망하게 떠나시고 나니 서운했습니다.

 

두 채의 집은 리모델링을 했거다 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돌집을 깔끔하게 새단장을 하더니

이전에 살던 분은 안보이고 새로운 분이 와서 살고 계십니다.

그렇게 떠나신 분 중에 한 분은 인사를 시원하게 해주시던 분이었고, 한 분은 주위에 약간의 불편함을 주는 분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으니 역시 아쉽더군요.

 

저랑 사랑이랑 산책하는 길에 마주치면 가볍게 목인사를 나누던 분도 얼마 전에 이사를 가셨고, 사랑이를 보면 귀여워해주셨던 분도 최근에 보이지 않는 걸 보지 이사 간 것 같습니다.

 

사람이 들고나는 게 뜸한 시골마을에서 많은 분들이 떠나시고 또 새로운 분들이 들어왔습니다.

마을사람들이랑 별다른 교류 없이 지내는 처지라서 그분들이 떠나신 사연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가볍게라도 인사를 하던 분들이 보이지 않는 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매주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방송을 내보내고 있습니다만

정작 제가 살아가는 이 동네에서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있지 못하니

떨어지는 낙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처럼

제 마음이 쓸쓸하기만 하네요.

 

 

3

 

농사일도 바쁜 것이 없어서 아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요즘입니다.

추위가 살짝살짝 긴장하게 만들고 있지만 아직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서 사랑이와 함께 밖에서 보내는 시간도 즐겁습니다.

고구마와 시금치 수확이 별로였지만 익어가는 감귤들과 잘 자라고 있는 겨울채소들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여유로운 시간 동안 명상과 요가도 하고, 사랑이와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하우스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고, 영화도 보고 하면서 지내노라면 더없이 편안합니다.

2년째 암투병을 하고 있고 암세포의 전이로 모든 치료를 중단한 채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가 있지만 그 조차도 덤덤하고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크고 작은 물결들이 일렁이듯이 약간의 풍파가 있지만 편안한 삶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어서 이게 행복한 삶이라는 걸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산전수전 인생의 크고 작은 격랑을 다 겪고 나서 노년에 욕심 없이 황혼을 즐기며 살아가는 삶의 로망 같은 모습을 제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건데

너무 빨리 이런 로망이 실현된 것은 아닌지 하는 노파심이 문득 들더군요.

이 편안함과 행복함이 쭉 이어졌으면 좋으련만 삶이라는 게 그렇지 않으니...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시가 있습니다.

슬픔과 고통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힘들더라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며 되뇌면서 견뎌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의 뒤 부분에는

삶의 기쁨과 즐거움에 휩싸여있을 때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되뇌라고 얘기합니다.

 

삶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릴 때는 이 시가 별로 와 닿지 않았었는데

너무도 여유롭고 편안함 요즘 이 시가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지금의 행복에 연연하지 말라는 얘기겠죠?

자꾸 안으로 들어오려는 마음의 눈을 밖으로 돌려야겠습니다.

 

 

 

 

 

(단편선과 선원들의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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