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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40회 – 오래된 자료를 정리하다가

 

 

 

1

 

읽는 라디오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방송을 진행하는 저는 성민입니다.

 

블로그에 있는 오래된 글들을 정리하느라 다시 읽어보고 있는데요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전에 쓴 글들을 읽다보면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른 이를 보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게 예전의 저와 대화를 하다보면

지금의 저를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돼서 좋기도 하지만

제가 잊고 살았거나 놓쳐버린 것들이 보이면 살짝 부끄럽거나 불편하기도 합니다.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그때의 저는

투쟁의 당위에 헌신적으로 복무했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했고

세상의 불의를 가차 없이 쏘아붙였습니다.

그 열정과 자유로움이 더없이 부러우면서도

힘 있게 지탱하는 투쟁이론이 무거워보여서 안쓰러웠고

그렇게 소중했던 관계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현실도 씁쓸했습니다.

 

주절주절 늘어놓는 그때의 얘기들을 가만히 듣다보면

다시 그 때로 돌아가 있는 듯이 기억과 감정들이 되살아오는데

제게 도움을 줬던 고마운 이들에 대한 얘기에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겁니다.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게 재정적 도움을 주었던 이에 대한 얘기나

오랫동안 연락 없이 지내다가 그립다고 안부를 물어오는 이에 대한 얘기에서는

그 고마움이 절절하게 녹아있는데 그게 누군지 기억이 없습니다.

그에 반해서 제게 상처를 줬던 이들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도 생생하게 떠오르고요.

 

그 대목에서 또 다시 부끄러워졌습니다.

내가 기억해야 될 사람들은

내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힘들 때 내 손을 잡아줬던 사람들인데

기억해야 될 사람들은 잊고

잊어버려야 될 사람들만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기는 마찬가지죠.

고마움은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상처는 너무 오래 간직하고 있는 거.

이런 모습을 바꿔나가는 게 제 삶의 목표가 됐네요.

 

 

2

 

블로그의 오래전 글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어느 날 뜬금없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제가 예전에 울산에서 노동운동 할 때 썼던 글이었는데

감정을 잔득 실어서 비판하는 내용의 댓들을 달아놓았더군요.

 

찾는 이 거의 없는 곳에 누군가의 흔적이 남겨진 것이 반가웠다가

뜬금없는 비난에 짜증이 확 밀려왔는데

한숨 돌리고 생각해보니

과거의 유물을 보고 핏대를 올리는 모습이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갑자기 왜 제 블로그에 이런 댓글이 달렸을까 의아해서

인터넷검색을 해봤더니

제 글과 관련된 사업장에 노동조합 임원선거가 진행중이었습니다.

특정조직을 언급하면서 강하게 투쟁을 호소했던 당시의 제 글이

그분이 보기에는 특정조직을 옹호하기 위해 옮겨진 것으로 판단한 모양입니다.

 

다시 그 분의 댓글을 읽어봤습니다.

강하고 투박한 비판의 글이었지만

저를 비판하려는 의도보다는 특정조직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강했고

그 비판 속에는 투쟁의 원칙이 훼손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녹아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상황을 추측하여 댓글을 다시 읽었더니

그 분이 참 안쓰럽더군요.

나름대로 원칙을 지키면서 현장에서 투쟁하려 애써보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모습이 안쓰러웠고

허접한 곳까지 와서 화풀이 하듯이 글을 남겨놓는 그 팍팍한 마음이 안쓰러웠고

현실의 관계들도 만만치 않게 팍팍할 것이라는 추측 때문에 더 안쓰러웠습니다.

 

음...

과거의 제가 아직도 유령처럼 떠도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뿐이네요.

 

 

3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 박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얼마 전에 ‘박열’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는데요

그 영화의 앞부분에 나오는 실제 박열의 시입니다.

짓밟혀도 굴하지 않는 당당한 힘이 느껴져서 너무 좋았습니다.

이 시를 읽다보니 또 다른 시가 떠올랐습니다.

 

 

솔연(率然)

김남주

 

 

대가리를 치면 꼬리로 일어서고

꼬리를 치면 대가리로 일어서고

가운데를 한가운데를 치면

대가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일어서고

 

뭐 이따위 것이 있어

그래 나는 이따위 것이다

 

만만해야 죽는 시늉을 하고 살아야

밥술이라도 뜨고 사는 세상에서

 

나는 그래 이따위 것이다

 

 

김남주의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입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지키거나 힘들 때마다

수없이 읽으면서 저를 다독였던 시입니다.

 

이제는 세상이 무섭다는 걸 알아버려서

저렇게 독하게 덤벼들 자신이 없어졌는데

이 시들을 읽다보니

그런 제 자신이 한심해보입니다.

 

젊은 날의 성민이가

몽둥이를 사정없이 휘두르면서

독설을 퍼붓습니다.

“이런 개새끼만도 못한 중늙은이야! 어디서 엄살 부리려고 그래!”

 

 

4

 

다음 주 방송은 읽는 라디오 10주년 특집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10주년 특집방송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그동안 읽는 라디오를 접하면서 느꼈던 점들이 계시다면 사연으로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10주년 특집을 같이 즐겼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늘 방송을 마치면서 들려드릴 노래는

힘 있는 투쟁가 한 곡 골라봤습니다.

좋은친구들의 ‘바리케이트’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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