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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67회 –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지만

 

 

 

1

 

오늘도 읽는 라디오 문을 열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들풀입니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삶이 아닌

작더라도 자신만의 행복과 만족을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요즘 젊은이들을 인터뷰하는 유튜브 채널이 있습니다.

‘요즘 것들의 사생활’이라는 채널입니다.

인터뷰 내용들도 재미있고

영상의 퀄리티도 괜찮고

진행자들의 진정성도 느껴져서

애청하는 채널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KBS에서 새롭게 시작한 프로그램이 이 채널을 베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요즘 것들이 수상해’라는 프로그램인데요

제목도 비슷하고

로고디자인도 비슷하고

출연자들도 비슷하고

심지어 프로그램 기획의도에 사용된 워딩까지 비슷합니다.

 

이에 방송국측에 항의를 했더니 “제작과정에서 요즘사의 콘텐츠를 참고한 적도, 레퍼런스로 활용한 적이 없고 모든 것이 오해”라고 담당PD의 답변이 왔다고 합니다.

방송국 PD님이면 많이 배우신 분인데다가 프로그램의 무단도용에 대해서 무지무지 심각하게 대응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목과 로고디자인과 출연자가 비슷할 수는 있다고 치더라고 어떻게 기획의도에 사용된 단어와 표현까지 비슷할 수 있을까요?

KBS뉴스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무단으로 이용했던 것을 고발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정착 자신들의 행동은 그런 대기업을 닮아가고 있으니, 나 참.

 

젊은 부부가 다니던 회사까지 정리하면서 열정을 쏟아가며 만들어놓고 있는 인터넷 채널을

거대공룡이 날름 먹어버리려고 하는 모습을 보며

작은 목소리라도 내고 싶어서 이분들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시키는 대로 그럭저럭 살아가지 않을뿐더러

소중한 것을 허무하게 뺏겨버리고도 혼자서 울고만 있지도 않을 겁니다.

 

 

 

 

2

 

전시장 한쪽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마음속에 응어리져있지만 하지 못한 말을 남겨 달라’는 메모가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전화기를 들어 마음속 응어리를 꺼내놓으면

전시장에 놓여있는 전화기를 통해 지나가던 누군가가 그 얘기를 듣게 됩니다.

그렇게 진행 된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라는 전시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울렸다고 합니다.

전시회는 끝났지만 지금도 1522-2290으로 전화를 하면 마음속 응어리를 얘기할 수도 있다네요.

여러분도 가만히 그분들의 얘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다음 생에는 안 태어나고 싶어요.

억지로 살거든요 지금도.

 

 

오십 평생 살면서 힘든 일이 많았지만 남은 날이 더 힘들지 모르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제 그만 착하고 싶고, 그만 잘되고 싶고, 엔딩이 좋아야 한다는 강박감을 놓아버리고 싶습니다. 나에게만 강요된 상황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나빴으니까. 내가 착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놓아버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너무 착해야 되고, 너무 행복해야 되고, 그러다 자기 인생이 떠나가는 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나빴으니까. 그거 이제 받아줄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더 쉬워졌어요.

 

 

6년 전 겨울에, 새벽에 야근하고 퇴근하다가 고양이를 저도 모르게 로드킬 한 적이 있어요, 그게 그 자리를 지날 때마다 항상 마음이 너무 아파서, 기도하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그 아이의 눈빛을 떠올리고, 늘 사죄하는 마음으로 지나고 있어요. 항상 생각한다고, 항상 기억한다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나 자신을 속이며 살고 싶지 않다.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엄마 돌아가신 얘기도 하고, 그러다가 철든 척하고, 그냥 솔직해지고 싶고, 거짓말을 그만했으면 좋겠다. 근데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어서 그게 참 어렵다.

 

 

야 이 개자식아. 나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전 여친 못 잊겠다는 쌉소리가 웬 말이야. 순정남인 척하지 마. 넌 그냥 쓰레기, 까진 아니고 개자식이야. 어디서 순정남인 척 지랄이야. 염병 떨고 있네. 지랄 마, 개자식아.

 

 

그럴 거면 뭣하러 나랑 결혼했니, 혼자 살지.

내 행복의 여부를 왜 계속 너한테 걸었을까. 그러지 말걸.

 

 

지친다. 엄마 위로해주는 거 그만하고 싶어. 엄마 나 좀 위로해줘. 나 힘든 거 좀 알아줘. 나 없으면 못 산다는 말, 나 때문에 산다는 말, 제발 하지 마.

 

 

혼자 밥 먹느라 수고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수고했어.

 

 

사람들 눈에 나는 항상 즐겁고 행복하고 바쁘며 인싸의 삶을 살지만, 실제 내 모습은 혼자 있기 싫고 우울해서 그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는 나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누구나 힘들다는 걸 알기에 차마 말할 수 없다.

 

 

내가 잘못한 건 알겠어. 못한 게 있겠지 인턴인데. 못할 수도 있지. 근데 내가 뭐 회삿돈을 날렸어? 뭐 몇 억 날렸어? 아니잖아. 그냥 팀 진행이 늦어졌을 뿐이잖아.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내가 회삿돈을 날로 먹는 거 같아서 그래? 이제 계약까지 보름 남았는데 그때까지만 잘해주면 되는 거잖아. 너무 많이 바라지 마세요. 설명을 진작에 해주든가. 알아서 할 일을 찾으라고? 못 찾아서 미안하네요.

 

 

살면서 애를 너무 많이 썼는데 애쓰지 말자.

 

 

사실은 살아가는 방법을 아직 잘 모르겠어.

 

 

형! 나야. 결혼식 안 온다고 나보고 축의금 대신 내달라고 했는데, 이름도 써줬는데, 돈 안 주더라. 나중에 연락도 안 하더라. 그 후로 우리 인연 끊겼잖아. 그래서 나 이제 형 안 보기로 했어. 형, 어떻게 5만원 때문에 사람을 버릴 수 있어? 나중에 보면 맛있는 거 하나 사주고, 10만원 주고, 우리 다시 친해지다.

 

 

저는 40대 주부입니다. 재혼 가정과 결혼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이 힘들더라고요. 저는 초혼이었고, 남편은 재혼이었는데 말로는 친엄마처럼 키운다곤 했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건 아니더라고요. 남편은 남편대로 자상하지가 않고요. 그럴 때마다 이 결혼을 포기할까 하다가 갑자기 늦둥이가 생기는 바람에 현재까지 지내곤 있지만, 지금도 이 결혼을 유지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정리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이런 얘기는 친구들한테도 말 못 했는데 그래도 얘기하고 나니 좀 편안해요.

 

 

낙천적으로 즐겁고 보는 사람들이 기분 좋아지는 그런 귀엽고 상냥하고 쾌활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거울 보면 그거 밋밋하고 조금은 지쳐 있는 나이든 중년 아줌마의 얼굴만 보이네. 그래도 많이 좋아진 거지. 울지 않고 너무 억울해하지도 않고.

 

 

 

매번 그냥 한번 해보는 거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매번 너무 간절하다.

 

 

나 사실 자살 시도 되게 많이 했어. 근데 정말 죽고 싶어도 뭔가 힘이 되어주는 사람 한 명쯤은 있더라. 그 사람이 너무 고마워서 살고 있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언제부터 참게 된 걸까.

 

 

사람은 살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 못 할 그런 고민이 하나씩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있는데 항상 그게 마음의 짐이 되었고, 사람들이 그거에 대해 물어봤을 때 거짓말을 했어요. 왜냐하면 너무 상처받은 경험도 있고, 어느 순간부터 그 사실을 숨기게 되더라고요. 어디다 이야기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전화기 들고 말을 하니까 좀 마음이 편해요. 인간은 누구나 말하지 못할 사정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해요.

 

 

엄마 나 사실 타투했어. 오른쪽 허벅다리에 엄청 크게, 엄마 몰래. 엄마 그리고 나 요즘 담배 펴. 미안해 이렇게 살아서.

 

 

나는 열일곱 살인데 탈모가 왔다. M자와 원형 둘 다 온 거 같다. 나 열일곱 살이다. 인생 망한 거 같다. 심각하다.

 

 

수현아, 네가 지금 친구 없는 모습을 보고 나는 너무 통쾌해. 앞으로 계속 그렇게 불행하게 살아줘.

 

 

아무래도 그날 변기... 내가 맞는 거 같아.

 

 

제가 정말 싫어하는 친구가 있어요. 근데 그 친구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당당해요. 근데 얼마 전에 알았어요. 저도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침묵 후 통화 종료)

 

 

자꾸 고3이라고 하면 불쌍해, 안타까워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고3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불쌍히 여겼던 적이 없다. 그런데 타인은 나를 어떻게든 위로해줘야 한다는 눈으로 본다. 저 아직 멀쩡하거든요. 위로 필요 없고요, 내 이름은 고3이 아니라, 이유민이거든요.

 

 

외롭지만 살아보겠습니다.

 

 

남편, 우리가 지금, 애가 우네. 응 맞아, 나 지금 준서랑 있어. 나도 남편이랑 너무 관계가 힘든데, 우리 남편은 아무 일 없듯이 그냥 그렇게 지내고 있네. 어떤 말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될지도 모르겠고, 애기가 계속 우네. 늘 이런 식으로 준서가 먼저여서 우리 이야기를 못 하네.

 

 

죄송해요, 역시 말 못 할 것 같아요.

 

 

 

 

 

(이 전시의 기획자인 설은아씨가 엮은 책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에서 옮겨온 통화내용들입니다.)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드워드 호퍼의 ‘Automat’이라는 그림입니다.

늦은 밤 한적한 카페에서 혼자 차를 마시는 여인

식당도 여인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한 차림새입니다.

하지만 그림에서 흘러나오는 정취는 짙은 외로움이네요.

 

저 연인도 앞서 얘기했던 전시를 찾았다면 수화기를 들고 뭔가 한 마디를 남겼을 것 같습니다.

그가 남긴 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제가 남기고 싶은 말과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읽는 라디오도 10년째 부재중 통화로 진행되고 있네요.

세상을 향해 무수히 말을 걸어보지만 대답은 거의 들리지 않는...

그래서 더 솔직할 수 있고, 그래서 더 편안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외로움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은 이유입니다.

 

 

 

(전인권의 ‘사랑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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