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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83회 – 겸손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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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비행기가 산속에 추락해서 고립된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눈 쌓인 그 높은 산속에서 구조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렸지만
며칠이 지나도 추위와 배고픔만을 견뎌야 했습니다.
어렵게 조그만 라디오를 하나 발견해 세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봤지만
조난자들을 발견하지 못해 수색을 종료한다는 절망적인 소식만을 들어야했습니다.
사람들은 한명씩 죽어나가고
먹을 것이 없어 인육을 먹으며 버텨야했고
산사태와 눈보라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그 과정들이 처절하게 이어졌습니다.
그 장면들을 보던 제 마음이 자꾸 투덜거리더군요.
“아무리 발버둥 치며 소리 질러 봐도 찬바람만 불어왔던 그 심정을 내가 알지.”
“세상을 향해 뭔가를 내줄 것이 있으면 세상은 나를 바라봐줬지만 내줄 것이 없을 때는 철저하게 외면해버렸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팍팍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이곳이지만 내게 또다시 절망적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곳도 저 눈 쌓인 깊은 산속과 다를 바가 없을 거야.”
자꾸 투덜거리는 마음의 소리를 듣다보니 영화 보는 재미가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포근해지는 영상 하나를 봤습니다.
시골에서 소소한 즐거움에 행복해하며 이웃들과 나누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면서도 제 마음이 또 투덜거리더군요.
“저건 연출이야 연출. 도시인들의 위안을 위해 시골사람들을 배우처럼 활용해 먹는 거라고.”
“아주 오래된 관계들과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으면 저렇게 살아갈 수 있겠지만 가부장주의와 텃새가 강한 시골에서 그 행복한 삶에 끼어들 틈은 없어.”
이래도 투덜거리고 저래도 투덜거리는 제 마음을 가만히 바라봤더니
깊은 골방에 혼자 틀어박혀 조그만 창문을 향해 혼잣말만 해대고 있더군요.
그 녀석의 골방에 가득 찬 외로움의 냉기가 오롯이 느껴져서
가만히 다가가 살며시 손을 잡았습니다.
“내가 힘들 때 네가 옆에서 다그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고 그래 줬었는데, 네가 힘들 때 나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네, 미안하다.”
2
나름대로의 소신과 철학을 갖고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는 분의 인터뷰를 봤습니다.
그분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며 느낀 점들에 대한 얘기를 가만히 듣다가
한 대목에서 정신이 번쩍했습니다.
매년 1월이 되면 한 달 동안 가게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원들에게 월급도 지급하면서 한 달을 쉬는 이유에는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평생 그곳에서 일할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를 위해 시야를 넓히고 준비를 하는 시간을 줘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장인 자신도 일 년 내내 가게 운영에만 얽매여있으면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한 달 동안 쉬면서 머릿속을 비워내고 사색과 명상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낸다고 하더군요.
일 년 중 가장 한가한 12월과 1월을 보내는 것이 저는 힘들기만 했습니다.
가만히 방안에 틀어박혀 두 달을 보내는 것이 생각처럼 만만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기간을 그저 견디는 기간으로 생각하며 덜 힘들게 지나기만을 바랬었는데
누군가는 그 기간을 비워내고 다시 채워내는 시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겁니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며 무료함에 끙끙거리는 것과
휴식과 사색을 통해 비움과 채움의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너무도 큰 차이였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저에게 주어진 시간에 맥없이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함께 흘러갈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3
갑자기 내가 죽는다면...
제 가족들이 황망해하며 조촐한 장례식을 치를 겁니다.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겠죠.
저와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이 없으니 제 죽음을 알릴 사람도 없을 테고
가까이 사는 친척분들이 조금 올 테고
동생네 지인들이 찾아와서 그마나 쓸쓸함을 달래주겠죠.
장례식을 치르고도 가족들은 조금 힘들어하겠지만 저로 인해 해결해야할 문제는 없으니 곧 괜찮아지겠죠.
단지 하나, 사랑이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워낙 순한 녀석이라서 동생들이 잘 돌봐준다면 곧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겁니다.
그런 모습을 상상해보니
가는 마당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제 삶도 잠시 돌아봤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도 열심히 하며 큰 탈 없이 잘 자라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던 20~30대에는 격렬한 투쟁의 한복판에서 앞만 보며 치열하게 싸워나갔던 모습이 뿌듯했습니다.
40대에 들어서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 오랜 방황을 했지만 그 발버둥마저도 치열했었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더군요.
그런 큰 파도를 넘어오며 세상에서 조금 떨어진 채 맞이한 50대에 편안함이 찾아왔지만 그 편안함에 안주해버린 것 같아서 삶의 마지막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생각을 멈추고 눈을 다시 떠 현실로 돌아왔더니
조용한 방안은 따뜻했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사랑이는 잠을 자고 있고
창밖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더군요.
제 주변의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더 많이 더 많이 노력해야겠습니다.
(김오키의 ‘안녕’ feat. 이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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