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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쉰에 찾은 고된 직장

최근 울산지역연대노조에 가입하면서 극심한 노동착취의 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 효정재활병원 간병사인 서혜숙 조합원을 만나 기막힌 노동현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효정재활병원 소속 20여 명의 간병사 중 현재 11명이 노조에 가입해 있는데, 대부분 50대에서 60대의 나이 많은 여성노동자들이다. 그중 가장 나이가 어린 서혜숙 조합원의 나이는 48세였다.

결혼 이후 20여 년 동안 별다른 직장생활 없이 집안일을 해오던 서혜숙 조합원은 2년 전 집안 생계의 어려움으로 늦은 나이에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40대 후반의 여성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여기 저기 수소문을 하다가 봉사 의미도 있고 프로정신을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선택한 것이 간병사였다.

간병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을 다니던 도중 라디오 프로그램인 여성시대에 방송을 타게 된 것이 동기가 돼 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던 사람의 소개로 울주군 두동면에 있는 효정재활병원을 소개받아 취직하게 된 것이 2004년 8월의 일이다.

그러나 효정재활병원에서의 간병사 일은 생각보다 엄청 고된 일이어서 입사 후 4개월만이 2005년 1월 3일부로 자진퇴사를 하게 된다. 퇴사 후 병원측에서 일을 잘하니 좀 더 편한 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퇴사 한 달 만인 2월 1일부로 재입사하여 현재까지 2년을 일하고 있다고 한다.

275병상수를 갖고 있는 효정재활병원은 정신과병동, 중환자실, 재활병동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신지체장애인을 주로 치료하는 정신과병동은 90여 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는데, 8명의 간병사가 2교대로 근무를 하고 있다. 치매환자가 다수인 중환자실은 50여 명의 환자가 있는데 4명의 간병사가 2교대로 일하고 있고, 지체부자유자가 중심인 재활병동은 50여 명의 환자를 4명의 간병사가 2교대로 돌보고 있다고 한다.
병동 당 1명의 수간호사와 4~5명의 간호사가 배치되어 있고, 재활병동과 중환자실의 경우는 병원 옆에 있는 재활원 수용자 중 어느 정도 활동이 가능한 수용자가 1명씩 도우미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혜숙 조합원의 경우는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2인 1조로 24시간 맞교대를 하면서 40여 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특히, 중환자실의 경우, 환자가 사망했을 때는 알코올 소독 등 시신후송을 위한 기본처리를 간병사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이 가장 고역이라고 했다.

서혜숙 조합원은 다른 간병사 중에서도 그나마 병원과 가까운 무거동에 살고 있었다. 간병사들 중에서는 방어진이나 양산, 물금 등에서도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무거동에서 아침 8시쯤에 통근버스를 타고 8시 35분경 병원에 도착한 후 옷을 갈아입고 9시 10분 아침조회를 시작으로 일이 시작된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아침 식사 후인 환자들의 기저귀를 갈고, 양치질을 하고, 병상 청소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2시간이 후딱 지나버리고 11시부터는 죽을 먹는 환자들에게 점심을 제공하고, 이어 밥을 먹는 환자들에게 점심을 제공한다. 식사는 식당에서부터 직접 식사를 날라 와서 일일이 환자들에게 나눠주고, 스스로 식사를 못하는 환자들은 일일이 먹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난 후 12시 30분이 되어서 자신들의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하는 일이 식사 후 환자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식사로 인해 지저분해진 병실을 청소하는 일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오후 4시부터 죽과 밥을 나르면서 환자들에게 저녁식사를 제공한다.

오후 5시 30분에 자신들의 저녁을 먹은 후 오후 7시부터는 다시 간식을 제공하고 난 후, 또 다시 기저귀를 갈고 병실 청소를 한다. 그리고는 화장실을 비롯해서 병실 주변 청소와 각종 정리정돈을 하게 되면 저녁 9시가 넘는다.
저녁 9시 30분이 되어서야 잠시 동료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거나 TV를 보는 것으로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휴식시간에 책을 보는 것도 눈치가 보여서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휴식시간에도 이런 저런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현실이란다.

그렇게 고된 하루 일과를 보내고 밤 11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다시 환자들 기저귀 갈기와 세면, 병실 청소다. 그리고 새벽 6시부터 다시 죽과 밥으로 이어지는 아침식사를 제공하고 나서 아침 8시에야 자신들의 아침을 먹고 교대근무자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얘기를 들으면서 숨이 막혀왔다.
50대~60대 여성노동자들이 그 힘든 일을 어떻게 해내느냐고 물었다.

“그 나이에 어디 가서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겠어요? 그나마 그런 일자리라고 있으면 다행이다 싶어서 참고 일하는 거예요.”

많은 수의 환자들이 반신불수이거나 스스로 식사와 대·소변을 가리기 어렵기 때문에 일일이 들어 올려서 밥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양치와 세면 등을 다 도와주어야 한다. 특히 병실은 온돌방 구조라서 무거운 체구의 환자들을 허리 숙여가면서 일일이 들어 올리고 눕히고 하는 일을 쉼 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당연히 몸이 남아나기 어렵다.

“전부가 허리, 어깨, 손목 등이 아파서 힘들어해요. 병원에서는 아프면 물리치료실을 이용하라고 하지만, 근무 중에서는 일이 바쁜데 물리치료실 가서 물리치료 받는 것이 쉽지 않아요. 퇴근 후에는 그 멀리 있는 병원까지 다시 와서 물리치료를 받는다는 것이 가능하겠어요?”

전형적인 근골격계 직업병이었다.
몸이 아픈 얘기를 하다가 서혜숙 조합원의 눈이 붉어지고 금세 눈가에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그 눈을 바라보면서 얘기를 나눌 수 없었고, 근골격계 환자들의 고통이 어떤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 말없이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그렇게 힘겨운 노동을 하면서 그들이 받는 월급은 기본급 50만 원 선에 각종 수당을 포함해서 실수령액이 1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그런 열악한 임금수준인데도 지난 3월경 재계약을 해야 한다면서 퇴직금 정산방식을 변경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대해 이의제기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휴무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했다.

그런 가운데 5월에 지급된 임금명세를 받고 불만이 떠졌고, 동료 간병사들과 논의를 했지만 대부분 소극적이었다.

“5~6년 전에 간병사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다가 전원 해고된 일이 있었거든요. 오래 일하신 분들은 그 후에 들어오신 분들이어서 우리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나서길 꺼려했어요.”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여기저기 하소연할 곳을 알아보다가 재활용 폐품 수거 일을 하는 남편의 소개로 연대노조를 소개받게 됐다. 하지만 처음에는 사람들을 조직해서 노동조합에 함께 가입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연대노조 간부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용기를 얻었고, 6월부터 아름아름 동료 간병사들과 이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해서 7월초에 11명이 노조가입을 하게 된다.

내부적인 논의들을 마치고 지난 8월 10일 병원측에 교섭요구 공문이 접수되면서 병원에서는 노조가입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가 노조에 가입한 것을 알고 병원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일이 불러서 노동조합에 가입했냐고 묻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서는 폐쇄병동인 정신과병동과 중환자실 출입구의 비밀번호가 바뀌었어요. 일단 출근하면 저희들도 마음대로 병동 바깥출입을 할 수 없어서 갇혀 버린 거죠.”

노조 가입 사실이 알려진 후 조합원들의 걱정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러다가 해고되면 어디 가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저는 ‘해고되려고 노조 가입한 것이 아니라 해고되지 않으려고 가입한 것이다’라고 얘기해요. 앞으로 몇 배는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우리들의 억울한 얘기는 하고 싶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싶어요.”

서혜숙 조합원 자택에서 얘기를 나누는데 칠순이 넘은 노모께서 차와 과일을 대접해 주시면서 하는 얘기를 유심히 듣고 있었다. 얘기를 마치고 나오려니 노모께서 “얘기를 편하게 잘 들어줘서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나이 쉰에 고된 일을 하는 딸을 지켜보고 있는 칠순의 노모 심정을 생각하니 유난히도 더운 여름 날씨가 더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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