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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나눈 대화(1)
새로운 대중운동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다
96년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울산에 내려갔다. 그리고 그해 겨울 거대한 총파업투쟁을 경험했다. 태화강 고수부지를 가득 매운 거대한 노동자대오는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다른 지역과 달리 울산은 노동자의 분신 속에서도 철저히 통제된 투쟁으로 일관했다. 거대한 총파업 대오와 노동관료들의 통제라는 현실을 보았다.
98년 현대자동차 현장조직운동 속에서 나의 본격적인 노동운동은 시작됐다. 정리해고에 맞선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의 완강한 투쟁, 현장과 지역이 어우러지는 거대한 투쟁공동체, 현장조직의 정치적 분화 속에 이뤄지는 활발한 현장 활동 등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대중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투쟁은 커다란 감동을 주었지만, 이를 받아 안지 못한 지도부의 배신은 가슴 미어지는 아픔을 주기도 했다.
현장조직대표자회의를 중심으로 한 현장조직들의 전국적 연대활동은 노동조합 중심의 운동을 넘어설 수 있는 활력과 가능성을 보여줬다.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이라는 개량주의운동을 넘어설 수 있는 ‘현장중심의 계급운동’을 만들기 위해 현장과 지역과 전국에서 매우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그 결과 많은 사업장에서 노동조합 집행부을 장악했지만 대부분 ‘노동조합의 안정적 운영’이라는 덫에 걸려 좌초됐다.
계속된 정치적 분화를 경험했던 현대자동차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는 2001년 노동조합 집행부를 장악했다. 그리고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저지투쟁을 비롯해 지역과 전국에서 무수한 노동자투쟁들에 결합했다. 다양한 개량주의 분파주의 세력들과 투쟁하며 ‘현장중심의 계급적 노동운동’을 주장했던 민투위 집행부는 2001년 7월 3일 총파업 철회와 함께 대공장 정규직 조합주의운동 속에 안주해버렸다.
다양한 현장조직 활동과 지역연대투쟁에 적극 결합하면서 민투위는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3년 ‘노동강도 강화 저지와 현장투쟁 승리를 위한 전국노동자연대’에 참여하며 전국적으로 급속히 번져나가고 있던 근골격계투쟁에 참여하게 됐다. 현장조직이 전국적 연대체에 결합해서 독자적인 현장대중투쟁을 벌인 것이다. 뼈아픈 조합주의운동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계급적 현장운동의 새로운 시도였고, 현장조직대표자회의 운동과 다른 형태의 전국적 연대운동이었다. 힘겨운 투쟁 속에 비정규직을 포함한 28명의 집단요양 승인을 받아냈지만 그 투쟁은 거기에서 멈춰버렸다. 그리고 민투위는 투쟁의 성과로 다시 노동조합 집행부에 당선됐지만, 대공장 정규직 조합주의운동은 비정규직에 대한 배신으로 반복됐다.
대공장 현장조직운동의 가능성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생각 속에 8년간의 대공장 활동을 정리했다. 그리고 지역으로 나왔고, 지역에서 여러 중소사업장,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에 결합했다. 현대자동차 현장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왔던 8년 동안 보이지 않았던 다양한 우주의 중심들이 보였다. 그리고 새로운 힘과 가능성들을 확인했다. 기존의 익숙했던 관성을 벋어 던지고 밑바닥에서 대중과 호흡하면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새로운 힘이 조직된 정규직 노조운동과 결합했을 때, 울산과학대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이 정몽준이라는 거대한 권력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만들어내는 것을 봤다.
새로운 대중운동의 가능성과 힘을 확인하니 더 많은 가능성과 힘을 확인하고 싶은 갈증이 생겼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치열하게 투쟁해왔던 얘기들을 듣고 정리하고 그 경험과 고민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현장과 지역과 부문에서 정말 치열한 삶과 투쟁들이 이어져왔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새로운 가능성과 힘들이 무수히 뿜어져 나오고 사그러들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현장평의회운동, 지역꼬뮨운동, 대안운동들은 우리의 경험 속에 풍부하게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의 에바다학교에서는 보수 기득권세력들의 거대한 지역카르텔에 맞서 장애인, 교사, 학생, 노동자, 인권활동가 등이 7년의 공동투쟁을 벌여 완전한 시설민주화를 이뤄냈다. 강원도 춘천의 풀무원공장에서는 투쟁 속에 노동조합을 만들어 현장을 장악하고 그 노동조합이 무너져 힘겨운 고통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노동자와 함께 삶과 투쟁을 노래하는 노동가수는 부산지역에서의 대안적 문화운동을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경기도 안성의 두원정공에서는 끊임없는 구조조정 공세 속에서도 노동자가 생산을 통제하는 현장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장애인운동은 진보적 가치를 품고 스스로 주체가 되면서 전국적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오산노동문화센터에서는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교류하고 연대하면서 연대투쟁의 기풍을 새롭게 만들고, 지역 밑바닥 민중이 주체가 되는 공동체운동을 실험하고 있었다. 대전의 호텔리베라는 노조의 철저한 민주성과 지역의 헌신적 연대투쟁이 결합해 구조조정에 맞선 127일 파업투쟁과 위장폐업에 맞선 619일 투쟁을 승리로 만들었다. 전북 부안의 계화도에서는 지역주민과 활동가들이 결합해 새만금 사업저지를 위한 8년의 힘겹고 고통스러운 투쟁을 이어오고 있었다. 대구와 전주에서는 대중의 삶을 총체적으로 파괴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맞선 지역차원의 저항전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제주와 경남 양산에서는 극도로 척박한 조건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 희망을 만들기 위해 10년의 세월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다양한 영역에서 힘겨움을 이겨내며 열정과 상상력을 갖고 활동하는 이들이 많았다.
지난 6개월 동안 얘기를 듣고 정리하면서 확인했던 우리의 소중한 자산들과 현실적 가능성들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을 만나서 더 풍부한 예기들을 들으려 한다. 그 속에서 새로운 운동의 대안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고, 가슴 벅찬 희망을 그려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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