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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대화하면서 변화하는 방법

 

 

교육은 참 많은 이들이 다양한 얘기를 하는 주제중의 하나다. 기존 제도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들도 매우 다양하게 시도돼 왔다. 사회적으로 가장 첨예한 쟁점 중의 하나가 교육문제인 현실에서 우리는 스스로 어떤 교육을 진행하고 있을까?

 

80년대 중반 교사생활을 시작한 최덕현은 초반 독서모임을 하며 비판적 문제의식을 키워갔다. 그 이후 89년 전교조가 만들어지면서 해고가 이어지고, 그와 함께 시작된 학습모임은 그의 삶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내가 생각해보면, 결정적으로 내 삶의 형태가 바뀐 것이 해고되고 나서라고 생각하는데... 그때 강원에 있는 동지 여럿이 학습모임을 했었거든요. 전교조 결성 이전부터 그 모임은 있었어요. 그게 쭉 이어지면서 그 모임에 참여했던 동지들이 다 해고됐죠. 그때는 원주에 있었을 땐데, 원주에 있는 동지들만 한 게 아니라 춘천에 있었던 동지들도 있었고... 그러니까 숙박을 하면서 했어요. 산에 들어가서 며칠씩 하기도 하고... 그때는 여전히 탄압이 있었을 때니까 숨어서 하고, 외부에서 강사도 오고 그랬는데 (비합법) 정치운동 하는 동지들이었으니까 드러내놓고 할 수 없었으니까...

그때 그 학습했었던 거 하고, 전교조 결성 돼서 해고됐었던 거 하고, 원주에서 언더 정치조직 활동하는 동지들하고 관계를 가지면서 결정적으로 내 삶의 형태가 바뀌고, 관심도 좀 더 그쪽으로 집중이 되고...”

- 전교조 부천지부 최덕현

 

교육역량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쌓이기 이전에는 주로 외부 단체를 통해 교육 사업이 많이 진행됐다. 90년대 중반 영등포산업선교회를 통해 노동자교육 사업을 열성적으로 진행했던 장창원은 10년이 지나 그 교육의 성과를 확인하기도 한다.

 

“그때 중점으로 잡았던 것은 노동교육을 중점으로 해서 처음 노동운동을 접하는 사람들이나 간부들을 대상으로 해서 전문적인 노동자대학이라는 형태로 했어요. 노동자 정치참여, 노동자 경영참가, 노동자의 역사, 노동자의 철학, 노동조합 조직, 선전, 교섭실무, 교육방법 등. 활동가 간부교육이라도 하더라도 노동조합이 막 생기면서 간부 중에 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을 교육하는 거죠. 대기업 노동조합에서도 그때 교육받은 사람들이 지금 지도부에 많이 가 있어요. 그런 교육은 지금도 필요한 거예요. 자기가 조합간부가 됐지만 내용 없이 된 경우도 많거든요. 이런 분들 교육시키면 금방 큰다고요.

1년 1~2기 해가지고, 5년 동안 10기정도 했는데……. 지금 다방면에 지도자가 되어있어요.

마지막에는 IMF되면서 특별과정으로 실업노동자조직 해가지고 비정규직 교육도 많이 했거든요. 그때 비정규직 교육과정 받았던 학생들이 전국에 내려가서 10년 정도 활동했더라고요.”

- 노동목사 장창원

 

지역의 교육단체를 통해 이뤄지는 교육 사업은 노동조합 간부들의 교류의 장이자 훈련의 장이었다. 대전지역에서는 90년대 후반까지도 이런 흐름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 당시 지역에 분위기는 ‘대한이연 없으면 교육이 안 된다’였어요. 교육이나 연대투쟁 이런 데는 굉장히 많이 끌고 다녔죠. 그런 데를 많이 다녔기 때문에 학습이나 이런 거는 자연스럽게 됐어요. 정치학습을 따로 시킨다거나 이런 건 없었지만, 연대투쟁이나 밖의 교육이나 이런 거는 간부들 대의원들 거의 다 가서 듣고 했기 때문에 많이 배웠어요. 그렇게 한 20명 정도 움직였어요.”

- 대한이연 양선배

 

2000년대 들어서면서 민주노총-산별노조 시대가 열렸지만 내부 교육 사업들은 점점 형식화되면서 축소됐다. 호텔리베라노조는 98년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끝임 없는 투쟁을 벌이면서 투쟁 속의 민주주의 교육을 몸으로 해냈지만, 간부들에 대한 교육의 부족했음을 지적한다.

 

“우리가 긴 투쟁을 하면서 교육을 받은 거는 총연맹이나 지역본부를 통해서 짤막한 것이 거의 전부고... 집단적으로 학습을 통해서 의식을 다지고 사상으로 무장하고 이런 것들을 못했어요.

제가 하려고 하는 것이 그런 쪽이에요. 활동가 역할을 하자고 같이 고민하는 동지들이 투쟁했던 핵심 중에 좀 있어요. 활동가는 최소한 단위노조에 건강성이나 지속적인 이념이나 사상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고, 그거에 동의하는 동지들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어요.”

- 호텔리베라 박홍규

 

90년대 중반부터 노동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문예활동을 해왔던 우창수에게 노동자문예교육이 없는 그곳은 버거웠다.

 

“애시 당초 노동자 문예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이 문젠데... 파업현장에서 봐서 ‘멋있다!’ 이러 게 아니고... 일상적 노동자 문예교육이 안 돼 있어서 그래요. 일상적 노동자 문예교육이 기량도 문제가 있지만, 자본주의 문화를 바로 보게 만들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문화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지속될 수 있어야 가능한 건데...

첫째는 그렇게 부여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의 하중이 너무 많아요. 현장이든 뭐든 간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지쳐요.

다음에 일상적 노동자문예학교 같은 게 없어요. 노동조합 간부라 하더라도 노동자문예교육 받아야한다니까요. 이게 상설적인 게 필요해요.

다음에 내가 노래를 부르는데, 내가 재미있고 내가 절실해야 되는데, 운동에서 떠밀려서 하는 거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거죠. ‘내가 하다가 엿 같아서 내가 한 것 갖고 내가 노래한다’ 이렇게 돼야 되는데...

예를 들어 홈에버를 보면 계기는 돼요. 투쟁이 되니까 보여 지는 것만 하잖아요. 이 사람들이 30년~40년 자본주의 문화방식에서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거든요. 그런 지속적인 교육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그래서 어떤 면에서도 보면 센터나 문화학교나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해져요.”

- 노동가수 우창수

 

영상매체를 통해 노동자들과 호흡해왔던 노동자뉴스제작단은 교육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90년대 후반부터 교육물에 많은 역량을 투여하게 된다.

 

“최근에 드는 생각은 ‘지금처럼 있어서는 우리는 맨땅에 헤딩하던지 자꾸 뒷북 친다’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노동운동은 점점 우경화하고 있고...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단단하지 못하면 앞으로 5년~10년을 내다보기 힘들다고 봐요. 옛날에는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라고 그랬는데, 요즘은 파업이 쉽지가 않아요. 그리고 파업을 하더라도 힘들기만 하지 학교가 되질 않는다고요.

그렇게 봤을 때, 일상적으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갖춰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봐요. 언제 무슨 일이 터졌을 때 싸울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무언가를 줘야 하는 거잖아요. 그거는 교육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교육을 일상적으로 정기적으로 해줘야 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런 무기들을 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영상이고... 교육방법 중에 하나가 영화를 보고. 강사가 얘기를 하고, 노동자들이 실천을 하는 게 가장 남는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 식의 교육방식을 노뉴단에서 많이 셋팅을 해요. 그것을 할 수 있기 위해서 영상이 굉장히 중요해졌다고 봐요.

기획해서 교육용 다큐멘타리를 제대로 만들 수 있고, 교육방법들을 ‘다큐멘타리에서 드라마로, 드라마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여러 가지로 옮겨 다니면서 노동자들의 의식을 높이기 위한 방법들을 테스트 해보는 거죠. 그런 무기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현재 노동운동에 있어서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해요.”

- 노동자뉴스제작단 이지영

 

가장 좋은 교육은 투쟁 속에 이뤄지는 교육이라고 한다. 2001년 효성노조의 파업투쟁에 결합했던 유미희는 그곳에서 이뤄지는 민주주의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걱정했었던 거는 ‘모든 투쟁이 승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들이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것이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했어요. 투쟁하는 과정에서 타자와 함께 한다는 느낌, 그리고 모든 소통에 있어서 아주 열려져 있는 상태, 그리고 당당하게 공장 안의 질서를 유지했을 때의 주체감, 이런 게 나는 인간다운 삶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것에 대한 느낌을 잊지 않기를 바라면서 글쓰기라든지 기록하기를 한 거죠. 나중에라도 잊지 말라고... 민주주의 훈련을 한다고 분임토론을 막 하면서 창발성이 돋아나기 시작하죠. 활동가들도 그전에 대중 활동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거를 굉장히 열심히 하고... 나의 몫은 이런 대중 프로그램을 계속 기획하고, 대중과 호흡하고, 사회를 보고 하는 건데...”

- 문화활동가 유미희

 

10년에 이르는 새만금 반대투쟁은 바다에서 무지랭이로 살아왔던 고은식을 생태활동가로 바꿔냈다.

 

“처음에는 이걸 생존권으로 싸웠어요. 싸우면서 내 속에 들어오는 것들이 바다나 이런 것들에 대한 고마움이나 귀함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돼 있어요. 그렇게 생각이 바뀐 분들이 많이 있어요. 우리가 10년 동안 한 것이 아무 의미가 없고 이런 것보다는, 우리가 힘이 없어서 현실적으로 살기 어려우니까 택할 수 있는 게 그런 것들... 새만금 반대로 싸웠던 것에 대해서 나쁘다거나 이런 얘기는 절대 안 해요.

......

‘나만의 삶’ ‘내 생존권’ 이런 것들이 반대싸움하면서 여러 사람들 만나고 사람들 마음을 모아내고 이런 일들을 하다보니까 귀함을 알아가는 거 같아요. 실제로 전에는 몰랐던 아픔들이나 이런 것들도 보여 지는 것 같고... 우리가 삶을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거도 보여 지는 것 같고...

- 부안 계화도 주민 고은식

 

노동조합이라는 이름만 유지한 채 몇 년을 버텨오기만 하고 있는 노동조합들이 많다. 그곳에서 교육 사업은 꿈도 꾸기 어렵다. 그래서 윤순재는 사람들과 자주 얘기하면서 대화를 통한 교육을 시도한다.

 

“현재 있는 전화국에서 할 수 있는 거는 내편인 동료들의 생각을 올려주는 거... 예를 들어서 이런 거죠. 전화국에 뭔가 문제가 있다 그러면... ‘형, 이 문제는 업체에서 사람을 안 뽑기 때문에 생긴 문제 아니냐? 이거를 회사에서 조치를 하지 않는 거는 잘못된 거 아니냐?’...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데 있어서의 정확한 핵심이 뭐냐를 얘기하는 거죠. 회사는 지표 떨어지고 그러면 자꾸 뭐라고 하는데... 그전 같았으면 ‘그런가 보죠’ 그랬는데 ‘회사가 그런 거는 인원을 뽑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냐? 지네가 잘못한 거를 우리한테 자꾸 떠넘긴다’ 그렇게 얘기를 하죠. 모여서 얘기를 하면서 철학적으로 얘기를 많이 해주죠. ‘형, 10만원 번다고 행복하겠어요? 동료들 간에 인간적인 것이 있고 그래야 행복하지...’ 이런 식으로...”

- 서울통신산업비정규직노조 윤순재

 

교육이라는 것이 어떤 사상이나 지식의 일방적 주입이 아니라면 교육을 받는 이들을 고려해야 한다. 장애인운동을 하는 이들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장애인에 맞는 교육방식에 대한 고민은 또 다르다.

 

“장애인분들이 강의식 교육이나 문서를 바라보고 세미나 하는 형식은 잘 안 되기 때문에 우선 투쟁과정에서 공유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는 게 1차입니다. ‘그들의 결정권이나 이런 걸 존중해서 최대한 공유한다’ ‘투쟁 과정에서 교육하자’는 게 기본이었고...

그것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어쨌든 강좌사업을 진행했어요. 2008년 1월에 장애해방학교라는 것을 했고... 괜찮게 조직됐고요. 각 단위마다 열약하지만 세미나 구조가 갖춰져 있고요.

그리고 회의가 주요한 세미나 공간인거 같아요. 회의 때 요구안 얘기하다보면 관련된 얘기 안 할 수 없고, 그래서 회의시간에 웬만한 거는 교육되는 것도 있었고요.”

- 대구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금호

 

대학에서 직접 교육노동을 하고 있는 비정규교수노조 김영곤은 서로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교육이라고 얘기한다.

 

“요즘 대학생들이 경험 자체가 자기, 가족, 친한 친구 명 몇, 그리고 이성 친구 말고는 좁아요. 그리고 현실은 CEO로 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런 부분이 학생들한테 비어있는 거예요. 학생들하고 주로 토론식으로 하니까 학생들의 정서나 이런 게 상당부분 나한테 되돌아오죠.

강의 첫날 ‘노동자가 노동을 해서 나온 것이 죽은 노동이고, 죽은 노동이 집적해서 자본이 됐다. 또 자본을 통해서 공장을 지었다. 그래서 노동자가 공장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면 어때?’라고 하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마지막 수업에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다시 물어봤어요. 논리적으로는 납득이 안 가는데 정서적으로는 납득이 간대요. 그렇게 발전하는 거죠.

여기서는 노사 어느 한 쪽을 편들자는 것이 아니거든요. 노동자가 진짜 주인이 돼야 된다는 거니까. 요즘 젊은 애들은 창업을 바라잖아요. 그런데 창업하면 망하니까 집단적인 것을 모색해보자는 생각을 해요. 굉장히 똑똑해요.

한 학생은 소설을 쓰고 싶은데 돈 문제나 이런 거 때문에 부모의 뜻을 따라 경영학과에서 회계사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이 수업을 들으면서 ‘결국은 자기 취미나 특기나 이런 것을 직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는 것을 배우고서 ‘출판사를 해보겠다’고 그래요. 그래서 학교 안에 고전읽기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전에는 목적의식적인 것은 있어도 이런 자연스런 게 게 부족했거든요. 이런 애들이 사회에 나가면 뭔가 만들겠죠. 새로운 전형을 만드는 거죠.

- 비정규교수노조 김영곤

 

교육이 비어버린 그 자리에 기능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실무자들만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유기는 그런 점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다른 단체들도 이야기 들어 보면, 상근자들이 하루 종일 앉아서 책상에서 일을 해요. 그러다가 시간나면 인터넷서핑하고... 서핑을 하게 되면 자기 코드에 맞는 거만 찾아다니는 거죠. 그러니까 세상 돌아가는 걸 몰라요.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교육이에요.

그래서 1주일에 한 번 아침 8시에 강좌를 했어요. 우리가 초청하는 사람은 우리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 심지어 시민단체를 비난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듣자. 그러다가 그 얘기를 다른 단체 사람들한테 했더니 같이하자고 그래요. 그래서 5개 단체가 1주일에 한 번씩 아침 8시에 모여서 ‘아침마당’이라고 해서 해요. 거기는 들어온 지 3개월 된 간사부터 시작해서 20년 된 대표까지 20명 정도 모여서 해요. 분위기는 좋아요. 돌아가면서 다 얘기하고... 얘기하다보니까 관심 있는 주제들이 모여지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생각한 거는... 서울에 재가연대라고 불교단체가 있는데, 거기서 동안거(겨울 동안 승려들이 한곳에 모여서 도업을 수행하는 것) 개념으로 두 달 정도 단체 문 걸어 잠그고 오로지 교육만 하는 거예요. 우리도 그걸 해야 된다고 해서 총회를 2월에 하던 걸 1월로 조정했어요. 따지고 보니까 12월부터 1월까지 두 달은 총회 준비하느라고 다 가는 거예요. 그 진행을 앞당기고 1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는 한 달 동안 집중적인 교육을 하자. 가치교육부터 시작해서 전문적인 기능교육까지... 그것도 다른 단체도 같이 하겠다고 그러고...

대기업에서도 교육 사업을 엄청 진행하는데, 사회를 바꾸겠다고 하는 시민단체가 교육을 등한시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주도권을 기업한테 주겠다는 거예요. 이걸 돌파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철저한 교육시스템을 도입해야 된다는 거예요.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성찰하고, 스스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해야 해요.”

- 제주참여환경연대 고유기

 

서로간의 대화인 교육은 교육하는 사람의 능력과 교육내용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교육을 듣는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 하는 것도 교육의 또 다른 주체로서 중요한다. 구조조정에 맞서 모범적인 대응을 벌여왔던 두원정공 사례는 여기저기에서 단골 교육사례로 초청되곤 한다. 그렇게 무수한 교육을 다녔던 이기만은 많은 실망을 갖고 돌아오곤 했다.

 

“우리나라의 구조조정이 어떤 일관성을 가지고 진행됐어요. 전국의 거의 대부분이 사업장들이 한 방향과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됐다는 것을 확인했죠. 또 노조의 대응방식도 거의 비슷하게 하다가 다 망한 거죠. 어떤 일관된 법칙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런 일관된 법칙 속에서 구조조정 당해왔던 것을 깨는 것이 구조조정에 대응하는 방법이다라는 것을 확신했죠.

교육가면서 두원정공 사례를 얘기하면 현장 간부들이 ‘그건 두원정공 특수한 사례 아니냐. 아무 사업장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독점적인 사업장이었기 때문에 그런 투쟁이 가능하지 않았냐’ ‘구조조정 사업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냐’는 등 비꼬거나 평가절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구조조정을 쭉 당해오면서 간부들이 너무 패배적으로 바뀌어 있어요. 지금의 상황만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생각에 매몰돼 있어요. 공세적으로 지금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꿈도 못 꿔요. 우리 상황들이 너무 수세적이에요.”

- 두원정공 이기만

 

교육이라는 것은 서로를 참된 인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곳에 ‘인간성’이라는 주제는 사라져 버리면서 기능주의적 실무교육이나 지식교육만이 판을 치고 있다.

 

“교육을 통해서 인성을 돌려줘야 돼요. 먼저 인간이 돼야 해요. 내가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이 되면 절대로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인성을 버리고 돈의 노예가 되가지고 돈만 벌라고 생각하니까 동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거지... 그러면 안 되죠. 아무리 어려워도 함께 살아가는 정신을 가져야지... 그런 것이 노조지...

투쟁도 중요하지만, 인성을 길러주는 인간회복교육이 가장 필요한 거예요. 더구나 노조운동은 어려운 사람들이 모이잖아요. 일자리 때문에 모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인간성이 망가질 수 있어요. ‘내가 저 사람을 밟아야 올라간다’는 식의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잡아먹는 거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거든요. 왜냐하면, 똑같은 인간이잖아요. 자기도 식구들 먹여 살리겠다고 정규직 하는 거고, 나도 식구들 먹여 살리겠다고 비정규직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해야지. ‘나는 다르고, 너는 뭐다’ 이렇게 생각하면 절대 안 되요.”

- 서울대병원 간병인분회 정금자

 

누가 누구를 가르친단 말인가?

이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고 들려줬던 그 얘기가 가장 소중한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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