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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스워 보이냐? (31회)

 

내가 우스워 보이냐? (31회)

 

 

 

1

 

2012년 마지막 날입니다.

아~ 또 한 해가 끝나는군요.

애써 무덤덤하게 이 한 해를 보내버리고 싶지만

이런저런 상념들이 자꾸 찾아듭니다.

이렇게 꾸역꾸역 스며드는 상념들을 무시하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더 많은 상념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오늘은 이놈과 한 번 놀아보기로 했습니다.

 

전혀 반갑지 않고

새로울 것도 없는 놈이지만

피하지 않고

지긋지긋한 얘기를 또 나눠보려고 합니다.

 

오늘 첫 곡은 몇 년 전에 죽은 코미디언 이주일이 부른 ‘못생겨서 죄송합니다’입니다.

 

 

얼굴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얼굴이 잘났으면 앞줄에 섰을텐데

풍채라도 좋았으면 어깨라도 폈을텐데

그래도 남자라고 울지도 못하고

가슴에 쌓인 한을 풀기 위해서

이제 조용히 조용히

뭔가 보여주고 싶습니다

뭔가 보여주고 싶습니다

 

얼굴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아무리 뜯어봐도 이렇습니다

지나온 세월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남자라고 울지도 못하고

가슴에 쌓인 한을 풀기 위해서

이제 조용히 조용히

뭔가 보여주고 싶습니다

뭔가 보여주고 싶습니다

 

 

2

 

2008년 지금보다 1mm정도 활기 있는 삶을 살던 때

그래봐야 주위에서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면서 허걱거리기는 마찬가지였던 때

서울 광화문에서 거대한 촛불이 타올랐습니다.

 

그 거대한 힘에 압도당하고

그 주체할 수 없는 발랄함을 만끽하면서

몇날며칠을 그곳에서 밤을 새면서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구로공단 한쪽 구석 기륭전자 앞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게 됐고

나의 촛불은 광화문에서 기륭전자로 옮겨갔습니다.

 

숨 막히는 한여름의 더위보다

더 숨 막히는 현실의 무거움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매일 같이 그곳에서 가느다란 촛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렇게 100일이 넘게 촛불을 들었지만

광화문의 촛불은 꺼져버렸고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복직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즐거움과 힘겨움을 같이 했던 내 마음 속에서는

작지만 소중한 피켓이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그 피켓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내가 우스워 보이냐?”

 

현실에 짓눌리지 말고 뭔가 다시 시작해보자고 내 자신을 다독이던 즈음

촛불집회 관련으로 소환장이 날라 왔고

당당하게 조사에 임했더니

이어서 구속영장이 신청됐습니다.

 

띵하게 한 대 얻어맞고 나서 정신을 차렸더니

그동안 애써 모른 채하려고 했던 외로움이 몰려와서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이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건넸다가

조심스럽게 돌려받았습니다.

 

뒤로 얻어맞고

앞으로는 거절당해

완전히 의기소침해 있던 연말에

가장 편하고 정겨웠던 동지와 같이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다시 용기를 내자고 자력갱생의 의지를 불태우는 그 자리에서

그 동지는 묘한 웃음을 제가 보이면서

몇 달 전 제가 저질렀던 성추행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가슴에 정확히 꽂힌 칼을 뽑지도 못한 채

2008년이 그렇게 끝났습니다.

세상이 저를 향해 씩 웃어 보이면서 한마디 하더군요.

“세상이 우스워보이냐?”

 

 

3

 

회복하기 힘든 중상을 입은 패잔병을 받아줄 곳은 고향집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고향에 내려와서 하는 일 없이 집에만 박혀서 지냈습니다.

 

농사를 짓고 있는 부모님을 도와드린다고 밭에 나가보지만

이런저런 사소한 트러블만 생겨서 옆으로 비켜나 있어야 했습니다.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가 계속 쓰려만 오는데

몇몇 분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오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주저하고만 있었더니

점점 나를 찾는 사람들이 없어져갔습니다.

 

작아져만 가는 나를 보듬어 안기 위해 소설도 써보고

세상을 향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책들도 나눠줘 보고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구속자들에게 마음도 전해봤지만

나에게 더 이상 나눌 게 없어지자 세상은 눈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오래간만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괴팍하게 변해가는 내 모습에 불편해했고

은근히 이런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성질을 한 번씩 부릴 때마다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도 떨어져 나가버렸고

급기야 어린 조카를 후려갈기고 부모님에게 고함을 질러버리는 망나니가 돼 갔습니다.

 

작년연말에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썼던 글이 있습니다.

 

 

내가 몸부림치면 칠수록

세상은 점점 촘촘하게 나를 죄어 온다.

 

2011년이 끝나가고 있다.

그렇게 나이는 한 살 더 많아졌고

몸무게는 10kg쯤 빠졌고

영혼은 0.1g쯤 증발해버렸다.

 

잘 가라, 2011년

 

 

4

 

점점 망가지면서 괴물이 되어가는 내 자신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무작정 ‘읽는 라디오’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내 손 좀 잡아주세요”라고 수없이 외쳐봤습니다.

하지만 한 번 눈을 돌려버린 세상은 눈과 귀를 가린 채 등을 보이고만 있었습니다.

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아직도 세상이 우스워보이냐?”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휴~

무서운 세상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나처럼 삶의 구렁텅이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이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힘내라고 마음을 전했더니

짧은 순간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해왔지만

그 구렁텅이를 벗어난 그는 더 이상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허탈한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더니

그가 송전탑 위에 올라가 다시 발버둥치고 있더군요.

이 구렁텅이를 벗어난 그곳은

매서운 바람만 거세게 몰아치는 허허벌판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아~

무서운 세상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쓰러지면 죽는다고 다시 내 자신을 다독이고 있으려니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봤더니

주위에는 무수한 구렁텅이들이 있었고

수많은 이들이 “내 손 좀 잡아주세요”라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그 절망의 끝에 다가오는 더 큰 절망에 공포를 느끼면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헉!

무서운 세상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드라마의 제왕’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됐습니다.

그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은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파렴치한 짓도 냉혹하게 하는 이였고

여자 주인공은 순수한 이상과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이였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이용해 먹고 버리려 하자

여자가 남자에게 “너 같은 놈은 죽어서 반드시 지옥에 갈거야”라고 쏘아 붙입니다.

그러자 남자는 어떤 표정 변화도 없이 댓구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여기가 지옥이야!”

 

 

5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겨울바람 때문에 꽁! 꽁! 꽁!

 

손이 꽁꽁꽁 꽁!

발이 꽁꽁꽁 꽁!

겨울바람 때문에

 

어디서 이 바람은 시작됐는지

산 너머인지

바다 건넌지

너무너무 얄미워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겨울바람 때문에 꽁! 꽁! 꽁!

 

손이 꽁꽁꽁 꽁!

발이 꽁꽁꽁 꽁!

겨울바람 때문에 꽁! 꽁! 꽁!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겨울바람 때문에 꽁! 꽁! 꽁!

 

손이 꽁꽁꽁 꽁!

발이 꽁꽁꽁 꽁!

겨울바람 때문에

 

어디서 이 바람은 시작됐는지

산 너머인지

바다 건넌지

너무 너무 얄미워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겨울바람 때문에 꽁! 꽁! 꽁!

 

손이 꽁꽁꽁 꽁!

발이 꽁꽁꽁 꽁!

겨울바람 때문에

 

 

2012년 한 해가 끝나는 오늘도 추위는 장난이 아닙니다.

이 추위가 앞으로 당분간 이어진다고 하니

2013년 연초에도 추위 대비는 단단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2월 추위가 이 정도인데

1월 추위는 얼마나 매서울까요?

 

해가 갈수록

여름은 더 더워지고

겨울은 더 추워지고 있지만

미처 적응하지 못한 12월 초의 추위보다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된 1월 추위가 견딜만 하지 않을까요?

 

추위가 아무리 매서워도

이제는 견딜만 하지만

이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강한 황사와 함께 가뭄이 닥칠 거고

짧은 봄이 지나면 다시 숨 막히는 무더위가 몰려오겠지요.

 

세상의 무서움을 알려줬던 이명박 정권 5년이 끝나고

더 강력한 박근혜 정권 5년의 시작을 준비하는

2012년 마지막 날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면서)

잘 가라,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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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성민이 mk102938@hanmail.net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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