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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스워 보이냐? (37회)

 

내가 우스워 보이냐? (37회)

 

 

 

1

 

과거 부산형제복지원 생활을 했던 한종선씨가 쓴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읽고 며칠 동안 꽉 막힌 듯한 마음으로 지내야 했습니다.

 

어머니 없이 구두닦이 아버지와 누나들과 함께 살아가던 한종선은 1984년 어느 날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고 누나와 함께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실려갑니다.

그때 한종선의 나이는 9살이었고, 누나의 나이는 12살이었습니다.

집에 가겠다고 울며 보채는 두 아이에게는 무자비한 폭력이 퍼부어졌습니다.

9살 아이가 삼청교육대보다 더 군기가 쎈 그곳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의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 가슴이 너무 먹먹해서 그 지옥의 얘기는 옮기지 않겠습니다.

 

그곳에서 딱 한 번 누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누나가 정신병동으로 옮겨졌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누나를 볼 수 있을까 해서 몰래 정신병동을 훔쳐봤는데, 여자들이 발가벗겨진 채 침대에 묵여 있고, 가끔 어떤 남자가 와서 여자 위에 올라타서는 이상한 짓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한종선은 그저 아빠가 빨리 와서 자신들을 구해주기만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복지원에 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자기들을 구해주러 온 것이 아니라 술 취해서 거리에서 자다가 그곳으로 붙잡혀 온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아빠를 단 한 번 만날 수 있었고, 누나의 얘기를 전해들은 아빠도 얼마 후에 정신병동으로 옮겨졌다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1987년 형제복지원의 끔찍한 실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한충선은 그곳을 나올 수 있었지만, 단혀 있는 지옥에서 열려 있는 지옥으로 나왔을 뿐입니다.

고아원과 교도소를 돌아다녀야 했던 그에게 세상은 사기와 냉대와 노동재해로 끝나지 않는 지옥의 경험을 계속 안겨줬을 뿐입니다.

나중에 어렵게 아버지와 누나를 만나게 되지만 그들은 정신병원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형제복지원의 원장이었던 박인근은 횡령혐의만 적용돼서 2년 6개월을 복역하고 나와서 아직도 사회복지사업가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데...

 

어렸을 때의 끔찍한 기억을 다시 살려내면서 아주 힘들게 쓴 그의 글을 읽으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나의 지옥이 그의 지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며 위안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직도 지옥에서 살아가는 그를 위해 위로를 전할 수도 없고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태에서 그냥 꽉 막힌 가슴을 부여잡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그 책을 보시면 저처럼 힘들겠지만, 한 번 꼭 읽어보시길 바립니다.

한종선씨가 했던 말을 여러분에게 전해드립니다.

 

 

내가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되고, 책으로까지 나오게 된 것은 ‘썩은 동아줄’ 전규찬 교수님 때문이다. 교수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아무도 읽지 않고, 듣지도 않는 이야기를 나 혼자 하고 다니며 지치고 절망하고 분노했을 것이다. 그래도 계속 했을까? 했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가 나의 이이야기를 들어 주고, 나를 쳐다봐 주는 것이 너무 좋다. 안심이 된다.

허름한 아저씨 모습이었던 전규찬 교수님은 나를 ‘브라더’라고 부르며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만약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언제 이 사람조차 연이 끊어질까 두렵다. 교수님 입장에서 모든 게 잘되었으니 이제 내가 없어도 되겠지 하며 서서히 멀어져 가고, 그러고 나면 결국 나는 또 한자가 되겠지. 나는 그게 두렵고 무섭다.

국회 앞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다. 가끔은 길 저쪽에서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말을 한다. 들어 달라고 한다. 나에게는 전규찬 교수님이 있는데 그들에게는 누가 있는 걸까?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어도 좋다. 다른 사람들에게 또 다른 전규찬 교수가 되어 주면 좋겠다. 또 다른 한종선에게는 또 다른 전규찬이 필요하다.

 

 

2

 

원래 이번 방송은 조금 길게 진행할 생각이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매일 그날의 생각과 느낌을 조금씩 써서 방송 원고를 만들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한종선씨의 글을 읽고는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일주일 내내 무겁게 그의 글이 내 가슴 속에 자리잡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방송은 예상과 달리 아주 짧은 방송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의 글을 읽기 전에 써 놓은 글이 너무 딴 나라 얘기 같아서 지워버릴까 하다가 방송이 지나치게 성의 없이 보일 것 같아서 어울리지는 않지만 이어서 붙여놓기로 했습니다.

김민기의 ‘친구’를 듣고 나서 미리 써 준비해놓았던 얘기를 들려드리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어디 있겠소

 

눈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

 

 

3

 

얼마 동안 날씨가 많이 풀린데다가 겨울비까지 내려서 조금 지저분해져 있던 거리가 말끔하게 청소 돼 있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눈이 내리더니 온 세상을 하얗게 색칠해 버렸습니다.

온갖 낙서로 지저분해진 도화지를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고 나서 하얀 물감을 칠해 놓은 기분이었지요.

 

그 모습을 보면서 집 안에 있을 수가 없어서 옷을 차려 입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발목까지 잠길 정도로 눈이 쌓여 있는데, 뽀도독거리는 그 감촉과 소리와 색깔이 너무 좋았습니다. 다행히 날씨도 그렇게 춥지도 않아서 걷기에 딱 좋았고요.

 

그렇게 상쾌한 기분을 안고 지하철을 타서 알라딘 중고매장으로 향했습니다.

조금 작은 매장에는 다양한 책들이 아주 싼 값에 나와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종이접기 책 두 권을 8천원에 샀습니다. 그렇게 싼 가격에 책을 샀는데도 포인트까지 적립되니 기분이 더 좋아지더군요.

 

다른 대형 서점에 책들을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더니 동생이 저를 위해서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놓고 나갔더라고요. 동생이 마련해준 반찬으로 가볍게 저녁을 먹고 나서 종이접기 책을 펼쳤습니다. 조카들이 즐거워할 모습을 생각하면서 종이접기를 하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군요.

 

 

꼬마야, 꽃신 신고 강가에나 나가 보렴

오늘밤엔 민들레 달빛 춤출 텐데

너는 들리니? 바람에 묻어오는 고향 빛 노랫소리

그건 아마도 불빛처럼 이쁜 마음일거야

 

꼬마야, 너는 아니 보라 빛의 무지개를

너의 마음 달려와서 그 빛에 입 맞추렴

비가 온 날엔 달빛도 퇴색되어 마음도 울적한데

그건 아마도 산길처럼 굽은 발길 일거야

 

꼬마야, 꽃신 신고 강가에나 나가 보렴

오늘밤엔 민들레 달빛 춤출 텐데

너는 들리니? 바람에 묻어오는 고향 빛 노랫소리

그건 아마도 불빛처럼 이쁜 마음일거야

 

 

잠시 종이접기를 멈추고 지금 이 기분을 글로 적고 있습니다.

놓치고 싶지 않은 기분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즐거웠던 하루를 떠올리다보니 이 하루가 힘들었을 사람들이 살며시 떠오릅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밀려드는 물건들 때문에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을 택배기사들은 이 눈이 지긋지긋하겠지요.

창밖으로 쌓여 있는 눈을 대나보아야 하는 장애인들에게는 집안에만 갇혀 있어야 하는 장애물로 느껴지겠지요.

아~ 내가 배부르고 나서야 이들이 눈에 들어오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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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성민이 mk102938@hanmail.net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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