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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자

봄입니다. 아직 꽃이 화창하게 피어오르지는 않았지만, 몸에 와 닿는 햇살이 따뜻한 것이 영락없이 봄입니다. 이럴 때 편안한 마음으로 제주의 쪽빛 바다를 보노라면 정말 몸과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봄을 느껴본 것이 몇 해 만이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몇 년 만에 내 마음에도 봄내음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 봄에는 봄을 마음껏 즐겨볼 생각입니다.

내가 요양을 핑계 삼아 고향에 내려와 봄을 즐기고 있는 사이에 울산에서는 수많은 동지들이 봄의 향기를 느낄 여유도 없이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에서는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 열흘이 넘게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고, 현대중공업에서는 50대 하청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야 했습니다.
이제는 단식투쟁 정도로는 식상하고, 분신을 하더라도 그리 충격적이지 않은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죽음이 일상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죽어도 달라지지 않는 세상을 확인하는 게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그런 현실에서 봄을 느끼고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 몇 년간 내 마음의 빼앗긴 들에는 봄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투쟁의 현장에서 한 발 물러서 있는 지금 아주 사치스럽게 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빼앗긴 들에서 봄은 이렇게 사치스럽게 찾아옵니다.

사치스러운 봄이지만-지금도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에게는 많이 미안하지만-어렵게 얻은 이 사치스러움을 만끽해야겠다는 자기합리화를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올 봄을 어떻게 보낼까하는 정말 사치스러운 고민을 합니다.
이 봄에 뭘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충분한 휴식’입니다. 그런데 이미 제주에 내려온 지 한 달이 넘어서면서 저의 휴식은 충분하다 못해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이 ‘여행’입니다. 그런데 딱히 여행을 목적의식적으로 할 것도 없이 그냥 집 밖으로 나가 해안도로를 산책하는 것이 가장 최상의 여행이 되어 버리는 조건입니다. 그냥 어디 나가지 않는 것이 최상의 여행입니다.
그 다음으로 ‘문화생활 즐기기’입니다. TV와 인터넷에 빠져 놀기, 비디오 빌려다 보기나 영화 보러 가기 등 페스트푸드 문화생활은 이미 지난 한 달간 충분히 즐기고 있습니다. 거기에 마을 옆에 있는‘바다가 보이는 작고 아담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오는 문화생활도 덤으로 주어져 있는 상황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문화생활을 향유하려는 의지가 좀처럼 생기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조금 더 해보는 것 이상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아주 최상의 조건에서 더 이상 할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하는 상황입니다. 결국 아주 사치스럽게 봄을 즐기고자 하였지만 그 ‘사치스러움’이 익숙하지 않은지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면서 ‘사치스러움’에 짓눌려 버렸습니다.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면 산책을 나가봅니다.
날씨가 많이 풀려서 따뜻함이 삼색 바다의 시원함과 함께 밀려오는 것이 가슴이 확 풀립니다. 집에서 약 30분가량 산책을 하면 자그마한 포구에 다다르고 포구 끝 방파제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제일 행복한 시간입니다.
바다가 정말 투명하고 깨끗합니다. 여름에는 바다를 보고 있다가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서 수영을 즐기다가 나오기도 합니다. 저 바다 속에서 몸을 맡긴 채 떠있을 때의 포근함과 편안함은 어디에 비할 데가 없습니다. 그 포근함과 편안함은 이렇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그대로 밀려옵니다. 그게 맑고 깨끗한 고향의 바다입니다.

올해 한 살을 더 먹어서 서른여섯이 되었습니다. 정말 끔찍하지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이 사십이 눈앞에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원치 않게 나는 어른이 되고 나이 들어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내 나이 서른이 되었을 때는 “20대의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현실에 뿌리내려야지”하고 다짐했었는데, 내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는 어떤 다짐을 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나이 마흔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마흔이 되었을 때 고향 앞바다처럼 맑고 깨끗함이 느껴지는 얼굴이었으면 합니다.

작년은 투쟁 때문에 행복함을 만끽하고, 가슴이 설레여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힘겨워 눈물 흘리고, 분노하고, 죽음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힘겨운 시간들과 그 힘겨움에 함께 하는 이들, 그 가운데 맛보아야했던 쓰라린 아픔들과 마음의 멍에 ...
투쟁의 즐거움과 고통은 이렇게 거센 파도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게 내 첫사랑의 기억이 되었습니다.
여덟 달 동안 내 첫사랑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즐겁고 기쁜 생각보다는 힘들고 화난 생각들이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투쟁을 시샘하는 하는 사람들,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사람들, 방관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입방아 찧는 사람들, 그것을 팔아먹으려는 사람들 등등. 이렇게 나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내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좋은 생각을 하자면서 투쟁 때문에 같이 고민하고 일들을 만들어갔던 사람들, 다소 두려운 속에서도 끝까지 같이 했던 사람들, 힘겨운 시간들을 같이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으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좋은 생각을 하면서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돈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예요
빽 없어도 살기 힘든 세상이예요
착하게만 살기도 힘든 세상이예요
착하게 살기엔 아픔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세상에 치이면서 세상을 알게 되고,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각이 많아지나 봅니다.
내 나이 서른여섯이 되어 이제 겨우 세상과 삶에 대해서 알 것 같아지니까 내가 많이 상해있었습니다. 몸도 이곳저곳 아픈 곳이 생기고, 얼굴도 나이 들어 보이고, 영혼도 피폐화 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가는 게 정말 싫은데, 이제 나이 사십을 바라보아야 하는 어른이 되어버려서, 그리고 몸과 마음이 상해 있어서 속상하고 그랬습니다.
자본의 거대한 힘이 짓누르는 세상에서, ‘죽음을 향한 질주’가 삶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세상은 착하게 살기엔 아픔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아버린 어른이 되어 있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착하게만 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착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투쟁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생각이 많아지는 어른이 되지 않고 착한 아이처럼 살아가는 것도 역시 힘든 투쟁입니다. 그래서 착하게 살기 위해서는 투쟁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내 자신과 우리를 변화시키는 투쟁이어야 합니다.
투쟁하는 이들과 함께 하면서 겁 많은 내가 조금씩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또 투쟁하는 이들 속에서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또 투쟁 속에서 삶의 열정이 새록새록 쏟아 오릅니다.
그 속에서 다시 좌절하고, 절망하고, 아파하고, 화도 나서 힘들지만, 그런 것들을 이겨내는 것도 다시 투쟁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속에서 입니다.

성철스님의 얘기 중에 ‘삼천 배를 하면서 나를 위해 빌지 말고 남을 위해 빌어라’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노력을 해보지는 솔직히 잘 되지 않습니다. 몸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울산에서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을 위해서 기도하려고 노력하고, 힘겨운 해고자 생활 속에서 투쟁을 하고 있는 동지들을 위해서 기도하려고 노력하고, 수많은 구속 동지들을 위해서 기도하려고 노력하고, 산재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 걱정해주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려고 노력하고, 몸이 아파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동지들을 위해서 기도하려고 노력하고, 내가 좋아하는 동지들을 위해서 기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기분이 좋아집니다.
또 성철스님의 얘기 중에 ‘모든 중생이 부처이다’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바로 옆에서 함께 숨쉬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다 부처라면 ‘부처님에게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바로 ‘우리 모두에게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투쟁하는 이들이 승리하라고 우리 모두에게 간절히 바라고, 해고자들이 복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우리 모두에게 간절히 바라고, 구속된 이들이 석방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우리 모두에게 간절히 바라고, 아픈 사람들이 빨리 건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우리 모두에게 간절히 바란다면 그게 가장 좋은 투쟁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요구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나의 요구가 되고, 그 힘으로 하나 된 투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해서 벌써 한 달이 되어갑니다.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올 봄에는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길러야겠습니다. 그래야 흔들림 없이 착한 마음이 가슴 깊이 생겨나고, 그래서 내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 맑고 깨끗한 얼굴이 될 것입니다.
이 편지를 읽어보게 될 동지들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면서 동지들의 마음속에서 화창한 봄날의 기운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울산에서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이들의 승리를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겠습니다.


2004년 3월 19일
제주에서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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