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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협정에 관한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자유무역협정에 관한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달러스&센스] 2001/1·2월호 편집부

미국의 기업 언론들은 '세계화'를 둘러싼 논쟁을 세계주의 옹호론자들(cosmopolitan advocates)과 편협한 반대론자들(provincial opponents) 사이의 싸움이라는 틀로 설명하고 있다. 세계화에 찬성하는 진영은 '전지구적 시장'의 옹호자일 뿐만 아니라 통신, 교통, 상업, '지구촌' 등을 통해 묶인 전세계적인 공동체의 옹호자로 찬양받는다. 한편 '반세계화' 시위대는 최루가스와 곤봉 세례와 더불어 보호무역주의, 고립주의, 미국 밖의 국민들에 대한 경시 등을 근거로 비난받는다.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뿐만 아니라 나프타(NAFTA), 유럽연합(EU),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그리고 -아마도 오래지 않아 등장할-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등의 지역 연합체들 또한 일차적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주된 임무로 하고 있다. 세계화 반대론자들 대다수가 이러한 공격적인 자본주의 확장의 새로운 파고에 대한 일차 방어선으로 국가주권에 호소해왔음은 사실이다. 몇몇의 경우, 이러한 반응은 위험스러운 국수주의적 충동을 동반하여 국제기구와 다국적기업에 대한 적대감을 '외국' 노동자에 대한 적대감과 결합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 경제정의' 운동의 대부분은 -'인류를 위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모든 국경과 국적을 넘어선 연대를 공언하면서- 이러한 국수주의적 함정을 슬기롭게 피해왔다. 이미 일부 운동진영은 국가주권 방어라는 문제와 분투하고 있으며 국제기구나 민족국가 어느 쪽에도 존재하지 않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많은 활동가들은 심지어 자신들에게 붙여진 '반세계화'라는 꼬리표조차 거부하면서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화'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라는 그들 고유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상품과 자본은 국경을 가로질러 자유롭게 이동하는 데 반해 사람들은 국경경비대의 매질과 철조망에 맞닥뜨리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는 최악의 두 세계가 결합한 이 현상(status quo)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는 국경을 가로지르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대신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옹호한다. 또한 모든 투자자의 동등한 대우 대신 모든 나라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동등한 인권과 시민권을 요구한다. 다국적기업들의 전세계적 통합 확대 대신 대중운동과 조직들 사이의 국제적 연대의 확대를 제기한다. '밑바닥을 향한 경쟁' 대신 '위를 향하는 조화'를 호소한다. 자본의 지배 대신 민중의 지배를. 불평등의 확대 대신 축소를. 민주주의의 축소 대신 확대를.
이것이야말로 미래를 향한 매력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화'는 전지구적 기구와 지역 연합체들을 통해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WTO와 IMF에 맞선 최근 시위들(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벌어졌다)은 저항이 쓸데없는 일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시위들이 낳은 직접적인 효과는 세계화 의제를 지역 '자유무역' 협정들로 되돌리는 정도일지도 모른다. 결국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저항세력들이 그 힘을 훨씬 더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한편 여기 우리가 맞서는 세력들이 있다. - 알레한드로 레우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

나프타는 1994년 1월 1일 시행되었다. 이 협정은 미국과 캐나다, 메히코 사이의 무역 및 투자 장벽을 대부분 제거하였다. 나프타는 일부 상품 품목들(일부 농산물 등)의 경우 몇 년 동안 무역 규제를 점진적으로 철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대부분의 상품과 서비스가 출범 시점부터 세 나라를 가로질러 자유롭게 사고 팔릴 운명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모든 투자-금융투자만이 아니라 공장, 광산, 농장 등 고정자산에 대한 투자(해외직접투자)도-가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나프타는 노동의 이동에 대한 규제에 관해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미국으로 가기를 희망하는 메히코-와 이 문제에 관한 한 캐나다 역시- 노동자들은 제한적인 이민 할당수에 운좋게 들어가거나 불법으로 입국한다. 그리하여 나프타는 상품 판매와 투자에서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선택권과 직접적인 혜택을 주었지만 노동으로 소득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이와 병행하는 혜택을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나프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세 나라의 기업 소유자와 노동자 모두가 무역 및 투자 장벽의 제거로부터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령 이들은 메히코 기업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미국 기업들이 더 넓은 시장을 보유하고 더 많은 이윤을 얻으며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보기술, 생명공학, 대규모 소매업, 그리고 숙련 노동력이나 조직 및 마케팅 상의 경험으로 우위에 있는 여타 미국 기업들이 주요한 사례로 제시된다. 다른 한편 저임금을 통해 낮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메히코 기업들은 미국 시장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주된 사례는 조립공장이나 마킬라도라일 것이다.
나프타 비판자들은 생활수준과 임금, 노동조합 조직화, 환경법률, 사회입법 등에서 회원국 들 사이에 극심한 차이를 낳은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프타가 기업들을 위해 만들어내는 선택지들을 통해 기업들은 노동자와 지역사회와의 관계에서 커다란 우위에 놓이게 된다. 한 예로 기업들이 국내 생산을 쉽게 폐쇄하고 메히코로 이전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노동조합들은 약화되고 있다. 메히코 정부가 독립노조들을 억압함에 따라 세 나라 노동자 조직들 모두는 기반을 잃어간다(실제로 메히코 공식 노동법은 미국의 경우만큼 훌륭하거나 더 나을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 시행되지는 않는다). 나프타가 미국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술자들에게는 더 많은 일자리와 보다 나은 임금을 의미할런지도 모르지만 자동차 조립, 부품 노동자들은 임금이 정체하거나 하락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나프타가 기업들에게 부여한 국제적 이동의 자유 확대로 인해 기업들은 환경 규제와 관련해서 지역사회보다 더 큰 교섭력을 갖게 되었다. 가장 극명한 사례는 미국 국경과 인접한 메히코 마킬라도라의 심각한 공해 문제이다.
나프타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한 나라의 기업이 사업을 수행하는 '권리'를 간섭당할 경우에 다른 나라의 법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법적 기제를 만든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메히코에서 사업을 벌이는 미국 기업들은 메히코 환경운동이 쟁취한 엄격한 환경 규제들에 도전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한 미국 기업이 제기한 소송의 결과 독성물질 PCB의 교역을 규제하는 공중보건법을 폐지하였다. 캐나다는 또한 이 법으로 인한 '손실'에 대한 보상으로 해당 기업에 천만 달러를 지불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나프타가 기업의 '권리'를 우선시함으로써 각국 정부가 독립적, 민주적 방식으로 자국 경제를 규제하는 능력을 침해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프타가 기업들에게 준 최대의 선물은 금융자본의 이동에 대한 규제를 철폐한 것이다. 메히코의 경우 그 직접적인 결과는 1994년의 극심한 금융 붕괴였다. 1990년대 초반, 특히 나프타가 효력을 발휘한 직후 투자 자금이 메히코로 급속하게 이동하였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상태에서 이들 투자는 투기 '거품'이 터져버리자 똑같이 신속하게 메히코를 포기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생산과 고용에서 극심한 하락을 낳았다. - 아서 맥키완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나프타의 시행 이후 미주대륙은 대륙 전체에 걸친 자유무역지대로 신속하게 이동하는 듯이 보였다. 1994년 클린턴 대통령은 2005년까지 세계 최대의 무역 블록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미주자유무역지대-그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자유무역' 협정을 보유하지 않은 실질적인 국제기구의 이름이다-는 지난 6년여 동안 난관에 봉착해왔다. 이러한 지체는 부분적으로는 미국의 국내 정책 때문이다. 1997년 클린턴은 의회로부터 '신속처리(fast-track)' 협상 권한을 얻지 못했으며 따라서 미국은 몇 년 전 나프타 때와는 달리 미주자유무역지대를 이끄는 것(mover-and-shaker)이 되지 못했다('신속처리' 권한이란 행정부가 무역협정을 협상하고 그 후 의회가 세부항목에 대해 재작성하는 대신 일괄 표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유무역'에 대한 행정부의 열의는 대신 WTO로 집중되었다. WTO 협정이 대중적 항의에 의해 가로막힘에 따라 미주자유무역지대가 부활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미주자유무역지대를 통해서도 아니고 미국이 앞장서지 않고도, 미주 대륙의 '자유무역' 지대는 어쨌든 진행되고 있다. 메히코 정부는 미국 시장으로 가는 '관문'으로서의 자기 나라의 잠재력을 활용하면서 볼리비아,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칠레, 니카라과,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과 자유무역 협정을 맺었으며 벨리즈,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파나마, 페루, 트리니다드 등(그 외에 중국, 일본, 남한, 이스라엘, 유럽연합까지도)과 협상 중이다. 메히코와 무역협정을 체결한 나라들은 나프타 덕분에 북미 모든 나라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메히코는 그 대가로 무역협정을 맺은 나라들로부터 무역 특혜를 받는다.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무역 블록인 남미공동시장(Mercosur, 메르코수르)은 이미 2003년 시행을 목표로 메히코와 무역협정을 협상 중에 있다. 메르코수르(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그리고 준회원국인 볼리비아와 칠레)와 안데스공동체(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베네수엘라) 회원국들을 모두 포괄하는 남미 '자유무역' 지대를 창설하려는 계획 또한 2002년을 목표로 하여 진행 중이다. 이들 나라는 -미주 대륙 전체의 '자유무역' 지대라는 궁극적인 결말에서- 미국과의 관계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미주자유무역지대가 현실화되면 어떤 모습일까? 두 가지는 거의 확실하다. 첫째 민중운동 진영이 강제하지 않을 경우 노동 및 환경 기준은 의제 상에 오르지 않을 것이다. 한 예로, 올해 캐나다 통상장관 피에르 페티그루는 나프타에 있는 노동 및 환경 관련 협정들은 협상에 방해만 될 것이라고 의회에서 발언하였다(캐나다는 1999년까지 미주자유무역지대 협상과정을 주재했으며 여전히 이 협정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몬트리올 가제트]가 2000년 6월 보도한 것처럼, "메르코수르에는... 환경이나 노동 기준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이들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러한 장치를 감춰진 무역 장벽으로 보고 있다. 캐나다 정부 또한 제3세계 국가들의 환경 및 노동 기준 결여로부터 이윤을 벌어들이는 기업들을 만족시키기에 여념이 없으며 따라서 메르코수르 정치 지도자들과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 둘째, 미주 대륙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미국이 전대륙적인 경제 블록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2000년 메르코수르 회담에서 한 브라질 기업인이 간명하게 정리한 것처럼, "미주자유무역지대를 지배하는 자는 미국이다."
파나마,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등 세 남미 국가는 사실상 미국 달러를 공식통화로 사용하고 있으며 에콰도르와 엘살바도르는 2000년에 이를 채택하였다. IMF와 미국 정부 모두 '달러화(dollarization)'라는 도박을 감행한 엘살바도르를 칭찬했다. 로렌스 H. 서머스 미국 재무장관은 달러화가 "엘살바도르의 금융 안정에 이바지하고... 세계경제로의 통합에 도움 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달러화' 옹호론자들은 달러화가 라틴아메리카 각국 경제의 인플레이션을 저지하는 수단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영국, 그리고 다른 모든 나라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1980년대 이래 이 지역 각국 정부의 주요한 목표는 (실업이나 빈곤 감축이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 이는, 아무리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미국과 IMF가 지지하는 이상 '달러화'가 의제에서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달러화'는 이를 받아들이는 나라들의 경제 정책 주권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경제 정책 수립자들의 핵심 도구 가운데 하나는 통화 공급과 금리를 통제하는 것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성장을 자극(하고 실업을 물리치기)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고 통화 공급을 늘린다. 인플레이션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금리를 인상하고 통화 공급을 줄인다. '달러화'된 나라의 정부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인플레이션을 저지하려 할 경우 이제 더 이상 성장을 자극할 수 없을 것이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 미국의 정책 입안가들은 이미 라틴아메리카 각국 경제에 대해 상당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으며(한 예로, 1980년대 초반 연준의 금리 인상은 전세계적인 금리 급등을 가져왔으며 라틴아메리카 외채위기를 폭발시켰다), 역사적으로 라틴아메리카 국민들은 경제 문제에 대한 국민 주권을 향유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역 경제 정책에 대한 공공연한 권한 양도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 것이다. - 알레한드로 레우스

자료: 에스더 슈레이더, "무역협정 추진 과정에서 많은 교훈을 얻고 있는 메히코", [LA타임즈] 1999년 9월 14일자; "장벽을 무너뜨리는 메히코와 우루과이", [가제타 상업 온라인], 2000년 1월 3일자; "미주자유무역지대, 메르코수르에 가속화 압력", [가제타 상업 온라인], 2000년 2월 25일자; 마크 멀리건, "새로운 무역 회담에 임하는 칠레와 유럽연합", [파이낸셜 타임즈](런던), 2000년 4월 11일자; 조프 다이어, "남미 통화에 소동을 일으키는 '유로화의 아버지'", [파이낸셜 타임즈](런던), 2000년 5월 9일자; "메르코수르가 나아갈 길로 간주되는 미주자유무역지대", [가제타 상업 온라인], 2000년 7월 5일자; "칠레, 라틴아메리카 무역 블록 참가 논의", [블룸버그 뉴스], 2000년 8월 22일자; "미주자유무역지대 창설에 앞서 단합을 추구하는 메르코수르", [가제타 상업 온라인], 2000년 8월 24일자; "카르도주 대통령, 2002년까지 남미 자유무역 원해", [가제타 상업 온라인], 2000년 9월 1일자; "메르코수르와 메히코, 무역협정 협상 중", [가제타 상업 온라인], 2000년 9월 6일자.

유럽연합(EU)

유럽연합은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을 이루고 있다. 1951년 여섯 개 회원국의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로 출범한 이래 유럽연합은 지리적(현재 중부유럽과 서유럽의 15개 회원국을 포괄하고 있으며 동유럽으로의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으로나 통합 정도로나 성장해왔다. 현재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11개국이 단일통화(유로)를 공유하고 있으며, 1993년에는 회원국 사이의 상품, 자본, 인적 교류에 대한 국경 통제가 모두 폐지되었다.
유럽연합 내의 무역 개방은 나프타나 WTO에 비해 임금 및 노동 기준에 덜 위협적이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그리스 같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회원국들조차 상당히 부유한 편이며 강력한 노동조합과 적절한 노동 보호장치를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같은 상위 경제대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연합 국가들은 노동계급 운동에 뿌리를 둔 정당('사회당'이든, 사민당이든, 노동당이든)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최근 수년간 점차 멀어졌지만 노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유럽연합은 여전히 무역 자유화를 위한 가장 좋은 조건의 시나리오를 표상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이 주되게 추진하는 것은 다른 무역기구들과 마찬가지로 무역이다. 노동 기준은 유럽연합의 핵심 의제에 한 번도 전면적으로 포함된 적이 없다. 1989년 당시 12개 회원국 가운데 11개국은 '사회헌장'이라 알려진 '노동자의 기본적 사회권에 관한 헌장'에 조인하였다(영국만이 조인을 거부했다). '사회헌장'은 아무런 구속력있는 기제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언론들은 이를 "'도덕적 의무'를 담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라 묘사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헌장이 '상향 조화'를 위한 기반을 제공하기를, 즉 노동 보호장치가 미약한 유럽 각국에게 강력한 규제장치를 가진 다른 회원국 수준에 상응하도록 기준을 올리라는 압력이 되기를 바랬다. '사회헌장'이 채택된 지 11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회의와 공식 연구, 권고사항들은 볼 수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드물다.
무역 개방이 사회 기준 및 노동 기준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사회헌장'이 한 번도 기업들에게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지 않았음으로 인해, 유럽 경제 지도자들은 '사회적 유럽(Social Europe)'을 무시로 일관함으로써 어떠한 추진력도 얻지 못하게 만들었다. 유럽의 반(反)차별 규정들이 영국같은 나라들로 하여금 남녀 동일 퇴직연령을 채택하게 만들고
최빈국들의 생활수준을 올리기 위해 매년 지역 기금이 배치되고 있지만, 유럽연합의 사회적 차원은 반대여론을 매수하기 위한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 결과 기업들은 유럽의 생산과 투자, 고용을 아일랜드나 포르투갈 같은 낮은 기준을 보유한 나라들로 이동시켰다.
유럽연합은 또한 지역 무역블록이 블록 외부 국가들과의 무역 규제를 얼마나 간접적으로 파괴하는가를 보여준다. 많은 유럽인들은 유럽연합이 사회, 노동, 환경 기준을 결여한 나라들과의 경쟁으로부터 격리될 것이라고 희망했을지도 모른다. 유럽연합은 공동 대외관세를 갖고 있지만 회원국 각각은 비관세 무역 장벽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회원국 간 개방성을 요구하는 유럽연합 규약은 유럽연합 각국의 일국적 무역 규제를 회피하는 게 용이하게 만들었다. 1993년까지 회원국들은 보건안전 규범이나 국경통제를 통해 간접 수입을 막을 수 있었지만 유럽연합 전역에서 이러한 규정이 통합되면서 이제 각국 정부는 더 이상 이렇게 할 수 없다. 그 이후 기업들은 가장 느슨한 무역 규제 속에서 비(非)유럽연합 상품을 유럽연합 국가들로 수입하고 이들 상품을 높은 기준을 보유한 나라들로 자유롭게 이동시키고 있다(나프타 또한 메히코를 통한 간접적인 방식으로 중국산 철강에 대한 미국의 장벽을 우회하는 게 가능케 만들고 있다). 사회, 노동, 환경 보호장치가 결여된 나라에 대해 무역 장벽을 유지하고자 한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결국 세계경제에서의 위상이 하락하게 되었다. 이로써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비유럽 연합 나라들에 대한 규제와 무역 감시를 일방적으로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역 개방의 논리는 무역 블록 내 각국 정부가 개별적으로는 노동 및 환경을 보호하고자 바랄 때조차도 이에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 피니어스 박산달

자료: 브라이언 핸슨, "요새 유럽(Fortress Europe)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유럽연합의 대외무역 정책 자유화", [국제기구(IO)], 통권 52호 no. 1(1998년 겨울호), 55-86쪽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체(APEC)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7년 창설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은 5개 초기 회원국(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타일랜드)의 '지역 안보'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1975년 이후 아세안은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패배를 뒤이은 공산주의의 확산에 맞서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1980년대, 특히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이후 아세안의 의제는 공산주의와의 투쟁으로부터 경제협력과 무역 자유화를 통한 '경제성장 가속화'로 전환되었다. 이와 동시에 아세안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브루나이 다루살람, 캄보디아, 라오스, 버마, 그리고 베트남까지도)를 회원 명단에 추가시켰다. 오늘날 아세안은 5억에 가까운 인구(미국의 두 배 가량)와 7,500억 달러의 총 생산고(미국의 10분의 1)를 보유한 지리적으로 밀착된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아세안은 회원국들로 하여금 국제 무역과 자본에 개방하도록 강요해왔다. 싱가포르의 경우 1960년대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타일랜드는 70년대를 기점으로 급속하게 성장했지만, 일본의 해외직접투자는 이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성장률을 1980년대 후반에 거의 두 자릿수 수준으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어 다른 개도국들의 경쟁 증대와 지역적 무역 동반자관계(나프타와 유럽연합 등)가 이들 수출주도 경제의 안정성을 위협하였다. 1992년 아세안은 '자유무역' 협정을 채택하였다. 아세안 자유무역지대(AFTA, 아프타)는 회원국 간의 관세를 인하하고 역내 교역을 증진시켰다. 현재 역내 교역은 이들 나라 수출의 25% 가량을 차지하며 이는 1970년대 초반의 두 배 수준이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1998년 정상회담에서 제조 부문을 필두로 하여 해외 투자에 대한 개방을 확대하기로 합의하였다. 정상회담은 국제 자본 이동에 대한 통제나 과세라는 풀뿌리 운동의 호소를 묵살한 채, 회원국 기업에 대한 100% 외국인 소유와 자본재에 대한 무관세 수입, 최소한 3년 간의 법인세 우대 등을 허용하는 계획을 실시했다.
회원국 국내 정치 문제에 대한 '불간섭'이라는 아세안의 전통은 이 조직이 버마,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의 나라에서의 민주화 운동 탄압에 눈감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아세안은 회원국들이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 노동 협약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회원국들은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아동 노동 및 강제 노동 폐지, 고용 차별 철폐 등의 협정에 조인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이를 비난하기까지 했다. 때때로 회원국들은 노동조합운동을 야만적으로 탄압하였다. 아세안은 또한 1999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무차별적인 삼림화재에 대한 지역 차원의 대응을 하지 못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 환경문제에 개입하지 않았다. 1999년 12월에 열린 WTO 회담에 대한 아세안의 대응 또한 다르지 않았다. 아세안 각국 지도자들은 무역협정의 일부분으로 핵심 노동 기준을 포함시키자는 미국의 제안에 반대하면서 이는 미국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한 시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로돌포 세베리노 아세안 사무총장은 미국과 다른 부유한 나라들이 아세안 의류 수출업체가 제1세계 시장에 접근을 확대시킬 수 있도록 하는 WTO의 새로운 섬유협정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아세안의 이해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중국의 WTO 가입이다. 중국은 이미 일본의 해외직접투자 1순위였던 동남아시아의 자리를 차지했으며, 중국의 장난감, 섬유, 기타 저임금 제조업 생산물 수출업체들은 아세안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중국의 경쟁에 대한 아세안의 대응은 해외직접투자에 대한 규정을 한층 자유화하는 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WTO 회담이 있기 오래 전에 아세안 회원국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가 동남아시아의 경계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점을 인식했다. 1980년대 후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메드 총리는 아세안 국가들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 대한 최대 투자자인 일본, 중국, 한국, 타이완, 홍콩 등을 포괄하는 범아시아 지역 경제블록 창설을 호소하였다. 마하티르의 제안은 서방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미국의 고집으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펙;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한국과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의 아세안 회원국을 포괄한다)가 대신 창설되었다.
아펙은 칠레, 중국, 홍콩, 타이완, 메히코, 파푸아뉴기니, 페루, 러시아, 베트남 등을 12개 창설 회원국에 추가시킴으로써 현재 21개 회원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펙 회원국들은 아세안과는 달리 태평양에 접한 것 외에는 응집력있는 지역을 형성하고 있지 않다. 아펙은 회원국 가입에 관한 공식적인 기준을 갖고 있지 않지만 무역 자유화 정도나 그에 관한 약속이 사실상의 가입 조건이다. 아펙 회원국들 간의 약속은 자발적이고 구속력이 없지만, 아펙은 각국 정부에게 그들의 의제를 따르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무역과 투자 규제를 철폐하라고 압력을 가한다. 아펙은 너무나도 거대기업들의 영향 아래 있어 1996년의 공식 슬로건으로 "아펙은 사업을 뜻한다"라는 문구를 채택하기까지 했다. 아펙은 비록 공식 무역 블록은 아니지만 관세 인하 노력은 WTO의 자유무역 의제를 뛰어넘어 그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아펙은 '선진국'에서는 2010년까지, '개도국'에서는 2020년까지 회원국 간의 자유무역을 호소하고 있다. 아울러, 아펙은 노동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노동시장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 예로,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아펙은 "국내 노동시장에서 유연성을 유지"하라고 회원국들에게 권고했다. 경제위기의 효과로부터 이미 많은 고통을 받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임금 인하와 정리해고 증대를 의미하는 충고였다. 또한 아펙은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한다고 약속하면서도 -특히 개도국들에서-천연자원 고갈이나 삼림 황폐화 등에 대해서는 아무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아펙은 또한 회원국이 식품 및 생산안전 기준을 조화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높은 기준이 최소 공분모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 존 밀러

자료 : 린다 림  "아세안 : 경제협력의 새로운 모델", 워펠·버튼 편, 『신경제질서 속의 동남아시아』; 아세안 웹사이트; 아펙 사무국; 아펙에 반대한다(Say No To AP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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