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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공안'의 실체

** '민생공안'의 실체 ①, 부활한 공안정국 **
***** '법의 너울' 쓴 국가의 '폭력' *****

'공안광풍'이 공장, 학원, 거리를 휩쓸고 있다. 집권 4년째만 등장해 나라안을 온통 헤집어 놓았던 '광폭한 퍼포먼스'가 다시금 시작된 것이다. 91년에는 이른바 '분신·유서대필 정국', 96년에는 이른바 '한총련 정국'으로 온 나라를 협박하던 '공안세력'이 이번에는 이른바 '화염병 정국'을 조성, 일터에서 쫓겨난 이들을 아예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대우 공권력투입, '민생공안'이 주도
지난 2월 20일, 대검공안부(부장 이범관)는 이른바 '민생공안' 원년 방침에 따라 2월 19일 대우자동차에 공권력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20일 인천 산곡동 성당에 경찰기동대가 진입해 양주용 부제 등 성당 관계자와 70여명의 노동자들을 무차별 구타·연행한 이후, 경찰 8천여 명이 부평을 점령, 부평은 '계엄상태'에 돌입했다.
3월 9일 사상 처음으로 전국 공안검사 120명중 103명이 한자리에 모여 연찬회를 가졌다. 연찬회 주제는 '남북관계 변화와 구조조정 추진 과정에서의 공안업무 방향'. 요컨대, "남북관계변화로 인해 좁아진 공안 시장을 구조조정에서 찾겠다는 것"으로, 이를 집약한 구호가 바로 '민생공안'이다.
'민생공안'의 주된 타격대상은 "지역·집단 이기주의적 불법집단행동"으로, 불법집단행동은 "화염병과 쇠파이프 등 폭력을 동반"하며, 이는 "경제회복을 저해"하므로 "철저히 분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진형구 파업유도사건으로 몰매 맞고 숨죽였던 "공안대책협의회를 적극 활성화하겠다"고 천명했다.
3월 14일 한국자유총연맹과 경제5단체가 나서서 "화염병 사용은 사회불안뿐 아니라 국가신인도 하락, 외국인 투자심리 위축 등을 가져와 경제회복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공안'을 거들고 나섰다.
대검공안부 -> 우익·경제단체 지지에 이어 다음 차례는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3월 23일, 경찰대학 졸업식에서 "화염병과 폭력은 반드시 근절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신종화염병 빌미로 '공안작전' 시작
울고 싶은 공안세력의 뺨을 때려준 것은 이른바 '신종화염병'. 민주노총 홈페이지 열린마당에 신원미상의 이용자가 올린 '폭발성 신종 화염병 제조법'을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가 적발, 추적에 나서고 '공안당국'은 차곡차곡 준비해왔던 '작전'을 현실화시켰다.
우선 경찰이 '신종화염병'을 만들어 카메라 앞에서 '폭발쇼'를 선보이고, 언제나 그렇듯 언론이 왕왕대자 검·경은 온갖 '겁나는' 대책을 다 들고 나왔다. '총포류 등 단속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둥, 화염병 투척 우려가 있는 집회와 시위는 원천 봉쇄하고 아예 허가하지 않겠다는 둥, 고무충격총을 사용하겠다는 둥…. 4월 2일 '화염병기동타격대'를 편성, 폭력시위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KBS 등은 9시 뉴스에 기획으로 서너 꼭지를 연달아 3월 30일 민중대회 장면 중 자극적인 것만을 편집해 '화염병 무섭다'로 도배하고, 신문은 "무기력한 공권력"을 나무랬다. 모든 논조가 신기하리만큼 일치했다. 화염병·폭력시위 -> 공공질서 파괴·국가신인도 하락 -> 외국인 투자기피 -> 경제회복 걸림돌 -> 폭력시위 엄단.
4월 2일 김 대통령이 "화염병으로 인한 경제 악영향"을 다시금 확인하자, 4월 5일 교육부가 각 대학에 공문을 보내 "폭력시위학생에게 학칙을 엄격히 적용"하라고 독려했고, 6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는 한술 더 떠 "화염병 투척자 취업불이익 검토"라는 기상천외한 발상까지 나왔다.
우익단체, 대통령과 행정부, 언론의 지원에 힘을 얻은 대검공안부는 7일부터 보다 공격적으로 화염병 시위자를 검거하기 시작했다. 이에 화답하듯 법원은 8일, 철거반대시위 도중 철거용역반에 화염병을 던진 철거민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공안당국이 그처럼 난리법석을 떨었던 '신종화염병'은 단 한번도 시위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신종화염병'이 나오면 '총포류등단속법' 발동을 공언했던 검찰은 기다리다 지친 듯 아예 일반화염병에 대해서까지 '총포류 등 단속법'으로 처벌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화염병처벌법'도 개정하고-왜냐하면 현행법으로는 그리할 수 없으니까-,
'집회와시위등에관한법률'도 개정해 폭력 우려가 있는 시위는 아예 봉쇄하겠다고 말했다. 마침내 감춰왔던 속내를 드러냈다! 공안당국의 주타격대상은 '폭력'시위가 아니라 시위 그 자체였던 것.
공안세력은 '김대중 식 구조조정'을 뒷받침하고 자신의 밥그릇 보전을 위해 인권이니 나발이니 하는 허울을 싹 벗어 던지고, '법의 이름'으로 '전방위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심보선·이광길]

일지로 본 '민생공안'

2월19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공권력 투입, 해산
2월20일: 대검공안부, '민생공안' 원년선언, 대우차 공권력 투입- '민생공안'// 경찰, 부평 산곡성당까지 난입해 노동자 체포, 예비사제까지 폭행
2월21일: 인천 일대에서는 대우자동차 관련 일체의 집회 모두 '불허'
3월 8일: 수원지방노동사무소에 화염병 투척
3월 9일: 전국 53개 지검·지청 공안검사 103명 연찬회/ 공안대책협의회를 대폭 활성화/ 정치·대공·사회·노동·학원 등 각분야에 대한 사법대응책 연구·제시할 연구팀 조직/ 화염병투척및폭력시위 주동자·배후·제조·운반·사용자 추적검거/ 손해배상 책임 추궁// 경찰, 화염병전담 기동타격대 발대
3월12일: 대검공안부, 팀당 5-10명씩 5개 연구반을 편성해 공안사건에 대처할 법이론적 토대와 사법처리 향배를 충분히 연구·검토하기로
3월14일: 경제5단체, "대외신인도 제고에 치명적", 화염병시위 중단촉구// 자유총연맹, "경제회복에 악영향 끼치는 화염병투척 용납 못한다"// 경찰, 공무집행방해사범에 민사소송 제기/ 화염병투척사범에 대해 방화죄 등 적용 검토
3월23일: 김 대통령 경찰대졸업식 연설, "화염병 투척이 세계에 보도돼 관광이나 투자유치에 큰 타격을 주므로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96년 한총련 '이적단체구성죄' 적용주도 당시 대검공안부장 주선회 씨 헌법재판관 임명
3월29일: 경찰, 기자들 불러모아 '신종화염병 시연회'
4월 1일: 민주당, '신형화염병 사용을 단호히 단속하라"고 요구
4월 2일: 대검, "화염병 시위로 외국투자자의 발길이 동남아로 가고 있다"며, '신종화염병 제조법'이 등장해 화염병 투척이 우려되는 시위, 집회는 일체 허가하지 않고, 화염병 제조·사용·소지자도 전원 추적 검거하기로// 김 대통령, "불법·폭력 시위 강력 대처"// 경찰, "극렬시위 때 고무충격탄, 물대포 사용"
4월 3일: 사회관계장관회의, 화염병 제조·운반·소지·투척자에 관련법 엄격적용/ 화염병관련자 신고보상금을 최고 50만원에서 최고 500만원까지/ 화염병 제조 사용 유류판매 제한 행정지도// 경찰, 화염병사범 전담수사반 가동
4월 4일: 검찰, "신형 화염병에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적용"// 정부 고위당국자, "화염병 투척자 취업제한 검토"
4월 5일: 교육인적자원부 전국 211개 대학 학생처장에 공문, "학생 특별상담활동 강화, 폭력시위 학생에게 학칙 엄격적용" 독려// 청와대, "화염병 투척전력자 취업에 불이익 검토 안 해"
4월 6일: 관계장관회의, 법을 개정해 '평화시위 각서 제출 의무화, 명단공개" 추진, "화염병시위 빈발대학, 행정·재정적 차별", 공직취임 제한도 검토
4월 7일: 서울지법, 화염병 시위 철거민 3명에게 중형선고(1년 6월∼2년)
4월 8일: 대검, 화염병사범 특별수사단 설치-자료분석조, 정보수집조, 특별검거조로 운용, 경찰 화염병수사반을 24시간 전담지휘/ 배후세력에 대한 포괄기획수사/ 마약사범처럼 정보원 등 투입 '윗선'을 추적하고 통신감청·예금계좌 추적·인터넷 IP 추적/ 화염병시위 배후조종자 특별검거/ 화염병사범에게 총포류등단속법·방화죄 적용/ 화염병시위 벌어진 시위주최자도 공동정범 처벌
4월10일: 경찰, "노조사무실 출입 막지말라"는 법원결정도 무시, 집단구타


** '민생공안'의 실체②, 민생 짓밟는 '민생공안' **
***** '필요하면 생존권도 벼랑으로 몬다' *****

4월 10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남문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차라리 죽여라, 죽여!" 한 노동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 절규했다. 그들은 한 번은 일터에서, 또 한 번은 '국민'의 대열에서 추방돼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두 경우 다 명분은 동일했다. 오로지 경제 회생을 위해서.
2월 20일 대검공안부는 '민생공안 원년'을 선포했다. '공안'의 주된 임무는 민생불안을 제거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경제회복의 걸림돌은 과감히 척결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대우 사태의 서막이 올랐다.
대우자동차에 대한 해법은 하나의 도그마에 가깝다. '오직 GM 매각뿐'이라고 국가는 주술처럼 되뇌었다. 그리고 GM 매각을 위해서 인력감축이 필수적이라며 1750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 했다. 부평공장에서 정리해고에 저항하 며 파업중이던 노동자들은 '민생공안'의 조기진압 방침에 따라 경찰에 의해 회사 밖으로 쫓겨났다.
2월 20일 부평역 광장에서는 성난 노동자와 경찰이 충돌했고, 공권력의 무기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득세하자, 당일 오후 산곡성당에 경찰기동대가 전격 투입됐다. 기동대는 그 명성에 걸맞게 산곡성당 제의실까지 노동자를 따라가 기어이 낚아챘다. 부제의 머리를 때리고 예배를 보러온 신자들까지 체포하려다 거센 항의를 받았다.
천주교계가 분노하고, 노동계와 시민 사회단체가 거세게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평역 일대는 서울지방 경찰청, 인천지방경찰청, 경기지방경찰청, 강원지방경찰청, 심지어 충남지방경찰청 소속 전·의경들이 진주했다. 무려 8000 여명.
부평역에서 나오는 모든 지하도 출입 계단의 3분의 2는 경찰병력이 질서정연하게 점령했으며, 부평역에서 대 우자동차 공장에 이르는 모든 도로에는 경찰 차량이 끝도 없이 늘어섰다. 대우자동차 조합원 조끼만 눈에 띄면 불심 검문을 했다. 간혹 불법연행이라고 항의하면 "시키니까 한다"는 말만 기도문처럼 읊었다.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이 끼는 모든 집회는 어느 단체가 주최하든, 무조건 '금지'됐다. 2월 20일 부평역 시위로 보아 다분히 폭력 시위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공장으로 들어가는 모든 문에는 경찰이 경비를 섰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회사 안으로 숨어드는 걸 막기 위해" 삼엄 한 감시가 일상화되었다. 공장 내부에도 경찰 병력이 상주했다. 회사쪽이 시설물 보호요청을 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주류언론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 집회까지 금지 당해 아무데도 하소연할 곳 없던 해고노동자들은 1인 시위까지 시도했다. 그러나 대우노동자에게는 1인 시위조차 '허가'되지 않았다. 3월 5일 정문 앞에서 25m 간격으로 1인 피켓시위 를 하던 조합원 125명이, 3월 8일에는 38명이 연행되었다.
3월 13일까지 671명이 연행되어 20명이 구속 수감되었고, 19명이 수배됐다. 일자리를 잃어 돈이 궁한 상태라 병원 에 가지 못해 안으로 골병이 들기도 했다. 한 노동자는 방패와 곤봉으로 맞아 쓰러졌으나,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다 결국 이틀 뒤에 입원하고 말았다.
3월 7일 부평공장이 다시 열면서 출근 버스를 저지하려던 해고노동자 가족들은 땅 바닥에 질질 끌려 다녀 온 몸이 멍투성이였고, 갓난 아이들은 군화발에 채여 그 날 이후 소스라쳐 잠에서 깨곤 했다.
길고 외로운 싸움에 서광이 비친 것은 인천지법이 "노동조합 사무실에 노조원들이 출입하는 걸 방해해서는 안 된 다"는 결정을 내린 4월 6일이었다.
4월 10일 금속연맹 법률원 박훈 변호사와 5백여 노조원들이 공장 남문 앞에 모여 노조 사무실에 들어가려 했으나 경찰은 법원의 결정도 무시하고 상부지시라며 막무가내로 막아섰다. 노동자들은 항의 표시로 웃옷을 벗고 누웠다.
그 직후 남문 앞은 노동자의 비명소리, 그리고 경찰의 살기 어린 군화발 소리로 뒤덮였다.
"예전에는 경찰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는 한 노동자의 몸서리는 쫓겨난 자를 짓밟으며 자기 존재를 과시하고, 결국 사회적 약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려왔던 '공안'의 변함없는 본질을 웅변한다. 달라진 점이라면 파업하고 시위하 면 과거에는 '빨갱이'로 몰아붙이던 것이 이제는 '경제회복 저해사범'으로 바뀐 것. '대공공안'을 내걸든 '민생공안'을 내걸든 공안세력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자들은 '분쇄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거기에 생존권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경제회복을 위해 일자리를 잃은 자들이 이제는 경제회복을 위해 죽은 듯 지내 야한다. [이광길·심보선]

** '민생공안이 뒷받침하려는 구조조정 관련 일지 **

2월19일: 대통령, "경제가 어려운 것은 구조개혁을 철저히 하지 못한 탓"
2월21일: 대통령 행자부 업무보고에서 "격변의 시기에 집단이기주의 등을 정부가 잘 관리해야 한다", "'강력한 정부' 란 법과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국민의 안전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
2월22일: 창원경찰,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집회에 참여하려던 노동자 가로막음. 이후 노동자들에게 소환조사 시작
3월 1일: 대통령 3·1절 경축사, 상시구조조정 강조
3월 8일: 창원경찰, 대우차 노조 창원지부 간부에 체포영장 발부
3월10일: 방미 대통령, GM 회장 만나 대우자동차 인수 권유 / 시카고 오찬, "정부는 노사문제에는 법에 따라 엄격 하게 대응하고 있다"// 창원경찰, 대우차 정리해고반대 주도한 사람에게 집시법위반 혐의 체포영장 발부
3월15일: 작년 12월 금융총파업 주도한 금융노련 이용득 위원장 검거
3월16일: 한국통신계약직노조 집행부 18명 고소
3월21일: 울산환경정화협회, 노조가 파업했다고 폐업신고
3월28일: 민주노총, 노조자문한 노무사 3자개입 혐의 기소한 검찰 규탄
4월 5일: 한전기공 노조, 성남 본사에 집결해 농성 시작, '조기매각 반대'
4월 6일: 중노위, 한전기공(주)이 '필수공익사업장'이라며 직권중재 결정
4월 7일: 김 대통령 경제장관 간담회, "상시 구조조정 시스템이 필요"
4월10일: 경찰 부평에서 대우노동자에 테러// 각 언론사, 사회보험노조가 '도덕적 해이상태'라고 공격
4월11일: 경총, '레미콘 운전자 근로자성 인정하면 노사관계 왜곡"
4월13일: 종로경찰서, 광화문 앞 1인 시위 노동자 연행


***** '민생공안'의 실체③, 기본권에 대한 도전 *****
** '살기 힘들어도 숨 죽이고 있어라' **

지난 3월 14일 민주노총이 부평역에서 '폭력진압 정리해고 김대중정권 퇴진 결의대회'를 했다. 2월 20일 대검공안부가 '민생공안 원년'을 선언하고, 2월 19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 바로 '민생공안' 작품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벌린 이후 22일만에 집회가 '허가'된 것이다.
대우자동차 공동투쟁본부나 민주노총이 집회를 하겠다고 신고하면 '불법시위 전력이 있어 불법·폭력시위를 할 우려가 있다'거나 '불법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가 참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회를 '금지'하던 것과 비교하면 새삼스런 일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심정이고 참으로 유감스럽다. 뜻하지 않게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면서 "노동운동도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 4월 19일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어 '4월 10일 대우차 사태와 관련, 과잉진압 행위자와 과격폭력 시위자 모두에 대해 응분의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이런 발언은 곧 △공권력이 잘못한 것은 없으며 흥분한 전경이 개인적으로 실수를 저지른 것이고, △전경 개개인을 흥분하게 한 노동자들이 잘못한 것이고, △'불법시위' 전력을 문제삼아 언제든지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집회를 허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4월 16일 종로구는 '집회·시위 도중 훼손된 공공시설물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했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1인 시위'를 막기까지 했다. 레미콘 노동자가 미이라 복장을 하고 시위에 나선 것이 흉칙하다며 경범죄로 강제연행하는가 하면, 25미터 간격을 두고 국회를 둘러싸겠다는 '1인 시위'도 금지통보했다.
공권력의 이런 조치는 '민생공안'에 비춰보면 오히려 당연한 귀결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대검공안부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을 집단이기주의로 규정하고, 이를 '관리하고', '엄단해야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관되게 반영된 것이다.
'민생공안' 주창자들이 말하는 집단이기주의란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세력을 말한다. 게다가 김대중 대통령은 3·1절 경축사와 4월 10일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언명한대로 '상시개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김 대통령의 '개혁'은 곧 '구조조정'을 의미하며 한국에서 구조조정은 '정리해고'를 의미한다. 과거 1차·2차 구조조정을 운위하다가 이제는 상시적으로 정리해고를 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19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 연말 올해 경제성장률이 5.1%로 예측한 것을 수정하고 올해 성장률이 4.3% 정도일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경제가 나빠질 경우 3% 성장도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런 전망은 김대중 정부가 금과옥조로 삼는 상시적 구조조정이 더욱 강화될 것이며 이에 대한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저항도 거세질 것이라는 객관적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민생공안'이란 바로 이런 저항을 '관리'하고 '진압'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민생공안'은 모든 것에 우선하며 심지어 '4월 10일 부평만행'에서 보듯이 법마저도 무시한다.
화염병 사범을 끝까지 추적 검거하겠다는 '민생공안'은 애꿎은 대학생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 3월 8일 수원지방노동사무소에 화염병이 투척되자 수원지역 대학생을 들쑤시고 다녔다. 연합뉴스에 나온 화염병 투척기사를 퍼 나른 아이디를 추적해 윤호상(수원대 환경공학과 3년) 씨의 부모는 물론 휴대폰 전화통화내역까지 알아 내 괴롭히고 영장도 없이 윤 씨의 자취방을 급습하기도 했다. 그리곤 윤 씨의 아이디 나우누리 아이디 '수대행동'을 사용한 한 선배를 고소하도록 회유하기도 했다.
또 검찰은 동광주병원 노조의 자문에 응한 공인노무사 이병훈 씨를 제3자 개입금지 위반혐의로 기소해 노동자를 도우려는 전문가에게 제동을 걸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의 '민생공안'에는 상시적 구조조정 시스템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사회적 약자들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임무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다. 헌법 21조 집회의 자유는 결사의 자유 등 다른 기본권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집단적 의견표명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을 뜻한다. 집회·시위는 사회적 약자들이 공공에 가장 강력하게 효과를 미치는 의사표현 형식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이 더욱 거세질 때 '국민국가'는 이들이 의사를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집단이기주의를 엄벌하고 공권력을 엄정하게 집행하기 위해 공안기관이 총결집해 펼치는 '민생공안'은 국가공권력의 이름으로 기본권을 유린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생공안'이 계속된다면 공권력이 누구의 이익을 옹호하는 지를 더욱 뚜렷이 보여줄 뿐이다.

***** '민생공안'의 실체④, 공안대책협의회 *****
** 공안검사가 공권력을 좌지우지한다 **

지난 2월 19일 김대중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운 것은 구조개혁을 철저히 하지 못한 탓"이라고 강조했다. 다음 날 2월 20일, 대검 공안부는 '민생공안 원년'을 선포하면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 '민생공안' 작품이라고 자랑했다.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것은 집단이기주의이며 공권력을 이를 철저히 짓밟겠다는 것이었다.
3·1절 경축사에서 김 대통령이 상시구조조정, 곧 상시적인 정리해고만이 살길이라고 밝힌데 이어 역사상 처음으로 120명 공안검사 중 103명이 모여 연찬회를 열고 공안대책협의회(공대협)를 활성화하기로 '결의'하고, 이를 위해 정치·대공·사회·노동·학원 등 각 분야에 대한 사법대응책 연구팀을 '조직'했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15일 대검찰청 소회의실에서 대검 공안부장 등 검사 8명, 국정원, 재정경제부, 경찰청, 보건복지부 등 11개 기관 국장급 이상 간부 19명이 모여 '국가기강확립을 위한 공안대책협의회'를 열어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논의'했다. 이들에게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은 '척결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국가기강을 뒤흔드는 악의 화신'이었다. 그리고 공권력에 의한 '4월 10일 부평만행'이 이어졌다.

* 공대협은 누가 뭐래도 열린다 *

99년 6월 7일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으로 공대협의 존재자체가 부정당할 것으로 보였다.
그해 6월 10일 김종필 총리 주재 노동관계장관회의에서 노동관계차관회의를 활성화해 공대협의 노동문제 개입을 사실상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검찰에서 밝힌대로 99년 8월부터 2000년 10월 10일까지 전국 검찰(지)청 54곳에서 열린 공안대책협의회는 모두 182회에 달한다. 또 지난 해 9월 6일 김정길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공대협은 학원과 대공관련 사건은 노동관계 차관회의로 넘기고 공대협 예산도 18억원에서 2001년에는 4억2천6백만원으로 축소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000년 11월 16일, 또다시 공대협을 열어 전국노동자대회 관련, 불법·과격시위는 엄단하고, 불법시위가 우려되는 모든 집회는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 공안검사의 지침하달식 공대협 *

공대협에 참가한 적이 있는 행정부의 고위관료는 한 국회의원 비서관에게 "토론하거나 의사를 개진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공안검사들의 법논리에 기초한 일장 훈시가 있고 곧바로 지침을 하달 받는 식이다"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또 최근에는 참가일시, 장소 통지서가 오는 대신에 공안부에서 전화로 '한 번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나가면 공안대책협의회가 된다고 밝히고, "발언도 기록되지 않으며 일방적으로 초등학생 받아쓰기 하듯 그냥 적거나 충실히 기억해야 한다"고 전한다.
이런 공대협은 공식적으로 기록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공대협 회의록을 검찰이 공개한 적은 전혀 없다. 하다못해 참가자 명단도 밝히길 꺼린다. 그러므로 언제 누가 참가해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참가자들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몸짓은 이런 식으로 '경제저해사범'이 되며 '집단이기주의'의 화신으로 돌변해 '척결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집회·시위를 통해서 의사를 집결시키기라도 할 냥이면 "불법·폭력 시위 우려가 있으므로 집회를 금지하기로 하자"고 결정해 버린다.

* 관계기관대책회의=공안대책협의회 *

99년 3월 12일. 대통령 훈령 77호에 근거를 둔 공안대책협의회가 탄생했다. 공대협 의장은 대검 공안부장이고, 공대협 지역조직도 해당 검찰청(지청)의 공안검사가 의장이다. 대공, 선거, 학원, 정치 문제뿐만 아니라 노동문제 관련 정부조직의 간부들이 대통령 훈령으로 의무적으로 공대협회의에 참가해서 공안검사와 협의하고 사실상 '지휘'를 받아야 한다. 이전과 다르게 공대협은 공식기구이며 각급 정부기관은 대검 공안부장 혹은 각 지방검찰(지)청의 공안검사의 부름에 충실히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대통령 훈령 77호에 의해.
97년 검찰은 국정원·경찰·기무사와 함께 '한총련 좌익사범 합동수사본부'를 구성, 한총련 관련 사건을 주로 다뤘다. 그러다가 이름에서 '한총련'을 떼어내고 노동부·교육부·공보처 등을 추가해 '좌익사범 합동수사본부'(공안합동수사본부라고도 불렀다)를 만들었다.
위 기구가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임의조직이라는 비판이 일자 김대중 정부는 대통령 훈령으로 공안대책협의회를 양성화했다. 공안대책협의회의 전신은 공안합동수사본부(공안합수부)이고, 공안합수부의 전신은 관계기관대책회의다. 관계기관대책회의의 전신은 79년 전두환이 주도했던 계엄합동수사본부라고 할 수 있다.
계엄합수부는 보안사가 주도했고, 관계기관대책회의는 안기부가 주도했지만, 공안합수부와 공대협은 검찰공안부에서 주도하게 됐다.
또 공대협 이전까지는 이들의 먹이감에 오로지 불온한 '빨간 색'을 붙이는 데 주력했지만, 이제는 노숙자도 사회불안 세력이며 정리해고된 노동자들도 이들의 사냥감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 번 버려진 사람들이 꼼짝하지 못하도록 다잡는 것, 그것이 바로 2001년 공대협이 내건 '민생공안'이다.
계엄합수부부터 공대협까지 이들에게는 헌법도, 인권도 안중에 없다. 오로지 필요할 때만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칠뿐이다. 이들 공안엘리트들에겐 일자리를 잃어 거리를 헤매는 노숙자들도 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행사하겠다는 노동자들도 오로지 배척해야 할 대상이다. 때로는 법치주의로 때로는 공권력으로. 이들에게 사회적 약자의 비명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3면에 공대협 활동일지). [심보선]

** 공대협 출범 후 활동일지 **
1999년
3월12일: 대통령 훈령 77호, 상설협의기구로 공안대책협의회(공대협) 설치
3월31일: 공대협(의장 대검 공안부장 진형구) 첫 회의: 노동부·경찰·기무사·서울시·국정원등 12곳 참가 - 4∼5월 노동계 총파업사태 등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 불법 집단행동등 폭력시위자 및 배후주동자들을 추적·엄단. 불법파업 주동자나 배후조종한 노조에 재산 가압류, 가처분등 법적 대응조치 결정
4월 9일∼5월11일: 공대협 모두 7차례 열려, 지하철파업·한총련 대책 논의
6월 7일: 진형구 공안부장, 출입기자에게 '조폐공사 파업유도' 시사발언
6월10일: 진형구 대검공안부장 발언 이후' 총리주재 노동관계장관회의, "공대협과 별도로 국무조정실장이 주재하는 노동관계차관회의 활성화" 결정
8월27일: '조폐공사 파업유도 진상조사 특위'에서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 "대검공안부가 공대협의 설치근거 준비, 법무부가 대통령 훈령을 마련 건의 했다"고 답변
8월31일: 이건개의원, 국회 '조폐공사 파업유도 국정조사 특위'에서 "98년 총 40회의 공안합수부 회의 중 28회가 노사분규 관련"이라고 발표
11월16일: 공대협(의장 대검공안부장 이범관), 99년 6월 이후 사실상 활동을 중단한 공대협 및 지역협의회를 활성화 결정, 폭력시위 가능성이 높은 경우 집회금지 통고

2000년
4월18일: 공안대책서울협, 서울지검 공안2부장 주재, 서울지검 노동전담·사회전담·기획검사, 서울지검 동부지청·남부지청·서부지청의 공안담당 부장검사, 국정원 수사10과장, 노동부 노사조정과장, 복지부 보험정책과장, 농림부 협동조합과장, 서울경찰청 정보1과장·수사과장등 참가, 전국직장의보노조와 전국의료보험노조 총파업 대책 논의
6월20일: 공안대책서울협, 서울지검 공안2부장 주재, 노동전담 검사,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과장, 서울지방노동청 근로감독과장, 문광부 관리시설과장, 서울시 관광과장 등 참가, 롯데호텔노조 파업 대책 논의(이후 6월 29일, 7월 1일 호텔롯데와 사회보험에 경찰력 투입)
7월 5일: 공대협, 대검 공안기획관 주재, 대검 공안3과장·검찰연구관, 국정원 수사10과장, 금감위 기획과장, 재경부 금융정책과장, 노동부 노사조정담당관, 경찰청 정보3과장, 서울지검 공안2부부장 등 참가, 금융노조 파업관련 대책 논의
7월10일: 공안대책서울협, 서울지검 공안2부장 주재, 노동전담 검사, 서울경찰청 수사과장, 서울노동청 근로감독 과장 등 참가, "금융노조 총파업시 파업주도자에 대한 세부수사 계획" 논의
7월27일: 공대협, 보건복지부등 관련기관 참가, 의료계 집단재폐업 대책 논의
9월 6일: 김정길 법무부 장관 국회발언,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을 계기로 공대협은 학원과 대공관계 논의, 노동관련 사건은 노동관계 차관회의로 넘겼다"고 발표, 공대협 예산은 00년 18억원에서 01년 4억2천600만원으로 축소했다고 언명
10월17일: 공안대책서울협, 경찰·교육부·노동부등 참가, ASEM에 외국 비정부기구 관련자 324명 입국금지 결정

2001년
3월 9일: 전국 53개 지검·지청 등 공안검사 103명 연찬회, 국민생활 불안 해소에 주력하는 '공안검찰 원년'으로 삼고, 공안대책협의회를 활성화하기로 결정
3월15일: 공대협, 대검 공안부장 등 검사 8명, 재경부 경제정책국장, 교육인적자원부 고등교육지원국장, 국가정보원 수사국단장, 통일부 통일정책실 정책심의관, 행정자치부 자치행정국장, 보건복지부 보건정책국장,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 공공관리단장, 경찰청 보안국장·수사국장,노동부 노사협력관 등 11개 부처 19명 참석, 봄철 노동계 동향과 전망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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