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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인터넷의 자유

위기에 처한 인터넷의 자유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불과 석달 만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인터넷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보도가 계속되었다. 자살 사이트 이후에는 폭탄, 병역기피, 화염병 사이트의 문제가 불거졌다. 이제는 인터넷의 '불건전'하고 '반사회적'인 경향 자체가 문제시되고 있다. 또 어떤 충격적인 사이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정부와 경찰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문제가 되는 사이트들을 신속하게 폐쇄하고 운영자를 체포한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은 다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천봉쇄하겠다며 10만8천건에 달하는 '불건전 사이트' 차단과 인터넷내용등급제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바로 지난해인 2000년에는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통신질서확립법(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과 인터넷내용등급제에 반대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드높았었다. '극단적인' 사례들이 연일 등장하면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옹호가 급속도로 제 목소리를 잃어갔다. 이제 표현의 자유는 사회 문제 해결에 무책임하고 심지어 반사회적인 가치로마저 치부되고 있다. 감히 누가 촉탁살인을 조장했다는 사이트를 변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위기이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수 없는 상황, 그 자체가 우리의 위기를 증거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많은 문제의 원인이 인터넷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살 혹은 촉탁살인 사이트 논란이다. 자살 사이트 사건이 처음으로 보도된 이후, 자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언론과 경찰은 습관처럼 원인을 자살 사이트에서 찾기 시작했다. 또 10대가 살해를 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그 소년이 인터넷 혹은 게임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결국 인터넷이나 컴퓨터 때문에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청소년은 살해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이 인터넷을 이용한다. 여기서 인터넷은 과거 다른 미디어가 그래왔듯 기본적으로 정보 습득처의 구실을 한다. 따라서 자살이 인터넷 때문이라는 말은 텔레비전이나 도서관 때문이라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접근은 결국 문제의 실제 원인을 밝히는데 무능하다. 반면 자살 사이트 사건 발생 이전의 언론보도를 검색해 보면, 경제난과 실업으로 인한 자살 증가가 이미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논의되고 있었다. 특히 청소년의 자살이 입시 부담과 왕따, 학교 폭력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각성의 목소리도 높았었다!
. 하지만 자살 사이트 사건 이후 이런 모든 토론은 주변화되었다. 특히 서둔 것은 정부, 경찰, 검찰이었다. 12월 15일에 일어난 동반자살 사건과 자살 사이트의 연관성에 대한 언론의 대서특필이 있은 직후, 18일 검찰은 2~3개 자살 사이트를 폐쇄하고 운영자를 형사처벌하겠다고 발표하였고 21일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자살 사이트를 폐쇄했다. 그리고 3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드디어' 10만8천건의 불건전 사이트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완성하고 이를 각 업체와 기관에 제공했다고 밝혔으며 이를 토대로 올 7월부터 인터넷내용등급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자살 사건이 발생하고, 인터넷이 자살의 원인으로 판정되고, 검·경찰이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차단이 정당화되는 각 과정 사이에는 상당한 비약이 존재한다. 일단 '정보'와 '행위'가 쉽게 동일시되었다. 자살 사이트와 실제 자살 방조는 다르다. 징병제에 대한 논의와 실제 징병 거부는 다른 문제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자살을 했다지만 우리는 괴테가 자살을 선동하거나 방조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안락사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정보는 행위와 다르다. 쓰는 것이나 읽는 것, 토론을 하는 것조차 불법으로 간주된다면 우리는 '허용되는 것' 이외에는 표현하거나 상상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표현의 자유의 핵심 문제이다. 또 사람에게 가정이나 사회보다 자살 사이트가 갑작스럽지만 더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진단은, 근거가 불분명하다. 그들은 과연 자살 사이트 때문에 자살한 것인가? 청소년은 인터넷 때문에 자살하고 살해했는가?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다른 분석은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실제 원인을 밝히는데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결!
국 한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인터넷은 불온하고, 검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자살사이트가 폐쇄된 것은 사이트 개설이 '불법'한 행위이거나 '청소년유해'한 행위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온'하기 때문에 폐쇄되었다.(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불온통신의 단속') 그런데 '정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보기에 불온한 정보에 대해서는 삭제하거나 게재자의 이용권을 박탈한다'는 이 냉전적 법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받아 3년째 위헌 소송에 계류되어 있다. 영화, 음반, 서적에 대한 규제는 불온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던 과거로부터 오랜 투쟁을 거쳐 불법매체와 청소년유해매체로 분화해 온 것이 최근의 추세이다. 물론 국가보안법과 같은 법이 규정하는 '불법'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청소년유해'는 자의성 - 실제로 청소년에게 유해하느냐가 아니라 판단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부, 관료들의 윤리관과 동일시되는 자의적 기준과 선정 - 에 따른 불공정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불법과 유해조차 구분되어 적용되지 않는다. 가장 첨단의 매체라는 인터넷이 '불법'도 '유해'도 아닌, 가장 시대에 뒤떨어진 '불온'의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인터넷 성인방송국이 만일 '형법상 음란에 대한 죄'에 저촉될 정도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면 이는 불법이 아니다. 여기서 청소년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청소년보호법상의 처벌도 불가능하다. 지금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는, 정부가 취하는 대부분의 조치가 불법성이나 유해성이 아닌 불온성에 의해, 그야말로 '조폭적'으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28명을 구속하고 798명을 불구속 입건했던 지난 3월 인터넷성인방송국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은, 알려진바와는 다르게, 청소년보호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이들은 '불온'하기 때문에 처벌되었다. 결국 우리 사회는 지금 위헌적 법을 정당화하고 검열에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작년에 온 국민의 반대에 직면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던 인터넷내용등급제를 다시 시도한다. 사업자들은 이러한 경향에 재빠르게 응수하여 국가보안법 철폐 동호회와 같은 '불온'한 사이트들을 폐쇄하고 운영권을 박탈한다.
인터넷의 부작용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우려가 두터운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우려가 정부와 사업자가 인터넷을 검열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곧바로 비약되곤 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인터넷의 유해성 이상으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소중한 권리이다. 우리는 지금 이 사회가 어떤 표현을 허용하고 어떤 표현을 제한할지에 대해 논쟁하고 있다. 무엇이 불온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청소년보호의 문제가 아니며 등급제나 차단 목록에서 기술적으로 처리될 사항이 아니다. 인터넷만의 문제도 아니다. 문제는 표현의 자유 그 자체이다.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표현의 자유 뿐만이 아니다. 냅스터와 소리바다 논란은 나눔과 공유의 권리가 송두리째 지적재산권으로 수렴되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개인정보는 사업자의 경영자산으로 취급되고 거래되며 프라이버시권은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만 용납된다. 권력은 범죄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갈수록 감시를 강화하여, 무죄임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누구나 유죄로 간주되고 감시된다. 막 시작된 인터넷 정치에서 우리의 자유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인터넷은 이미 개척자 시대의 그것이 아니다. 철저한 상업화 전략 속에 자본과 권력은 자유와 권리를 계속 침식하고 식민화해 간다.
그들이 차단하고 있는 것은 청소년유해매체가 아니다. 우리의 자유와 우리의 권리가 차단되고 있다. 자살, 살인, 음란, 폭력… 불쾌한 화제들이지만 침묵하지 말자. 다시한번 강력한 호소가 필요하다. 네티즌과 시민사회단체들 모두, 스스로의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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