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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의 꿈

 
<대우의 꿈>

-------- 최동현(부천 도당초등학교 글짓기강사)


내가 지금 초등학교 특기적성 강사로 다니고 있는 부천의 도당동은 그리 넉넉한 동네가 아니다. 서울에서 좀 밀려난(?) 부천중에서도 외진 변두리인 이 동네에는 대부분 젊은 맞벌이 부부들이 산다. 맞벌이라도, 번듯한 대기업 회사 직원이나 전문직 프리랜서, 뭐 이런 거창한 거 말고, 근처 어디 조그마한 공장이나 날품팔이 아르바이트가 고작인, 한마디로, 좀 형편이 안되는 동네인 것이다.

그 '좀 형편이 안되는 동네'에 산다는 것을 시위라도 하듯, 아이들은 꼬질꼬질하게 때탄 소매와 헝클어진 머리칼을 휘날리며 운동장과 복도를 뛰어 다닌다. 그나마 아직 돈없는 설움(?)이라고는, 장난감 사달라고 징징대다가 엄마에게 혼쭐나서 서러운, 뭐 그 정도의 푸념 밖에 모르는 이 천진스런 아이들이 가끔은 엉겨 붙어 싸우고, 그러다가 또 그 작은 몸뚱이로 어깨동무를 하고 교문을 빠져나가는, 우리 학교는 아주 작은 세상이다.

소인국에 온 걸리버 마냥, 내 무릎에도 못 미치는 앙징스런 책상과 의자들. 그 사이를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맞춤법도 제대로 안되는 아이들에게 나는 글짓기를 가르치고 있다. 질이 안 좋은 연필과 지우개를 한손에 하나씩 꼭 쥐고, 지우고 또 지워서 검게 얼룩지고 너덜너덜해진 종이 위에 아이들은 저마다의 하루 이야기와 꿈을, 그 작은 인생 이야기를 키워 나간다.

첫 수업시간.
으레 그러하듯, 나는 아이들에게 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날의 수업 내용도 자기 소개에 대한 글 쓰기여서, 적당한 시범도 곁들일 겸, 나는 아이들의 호기심어린 눈망울에 저으기 당황해 하면서도 내 얼마 안되는 프로필로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잘 끌어가고 있었는데, 좀 뒷자리에 앉아 있던, 눈가에 장난기를 가득 담고 있는 한 꼬마녀석이 갑자기 손을 들더니 질문했다.

"선생님, 나이가 얼마예요?"

문법에도 맞지 않는 이 뜻밖의 질문을 받고, 나는 조금은 당혹스러워 하다가

"서른 한 살, 돼지띠, 노총각이다. 그건 왜?"

하며 꿀리지 않고(?) 받아 넘겼다. 여기까진 좋았는데....그 녀석 한다는 말이,

"우와∼! 우리 아빠 나이랑 똑같네."

하기사, 생각해 보니, 좀 일찍 결혼한 친구 녀석들한테는 그 꼬마녀석만한 아이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서른 한 살이면 아직은 청춘이라고 억지를 부려 온 나로서는 자기 아빠와 나이가 똑같다는 녀석의 한마디가 순식간에 나를 폭삭 늙어버리게 만든 느낌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흠,흠..선생님은 아직 (노)총각(!)이란다..."

나는 '총각'이란 말에 힘을 주어, 은근히, 아직 젊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해 보고는 다시 용기를 얻어 수업에 들어 갔다.

첫수업 내용은, '자기 별명으로 자신을 개성적으로 소개하기'였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나이쯤의 아이들 별명은 보통 그 이름 때문에 생긴 것들이 흔하다. 좀 나이를 먹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보통 그 사람의 특징이나, 습관, 공유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이유가 되어 별명이 생겨나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아직 그런 관찰력, 아니, 어떤 사물과 사건을 별명이라는 '단어'로 연관시켜 내는 능력이 미숙한 탓인지, 주로 이름을 가지고 별명을 만들어낸다.

'김동희'하면, '김똥', '유미라'하면 '미이라', 뭐, 이 정도로 말이다.

개중에는 자신의 별명을 유난히 싫어하는 녀석도 있어서, 노골적으로 자신의 별명을 밝히길 꺼려하면서 수업에 협조(?)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글을 다 쓰고 나서는 자신의 글을 발표하는 순서가 있는데, 이럴 때 아이들이 미적미적 대는 걸 용인해 주다 보면, 수업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선생님, 저는 발표 안 하면 안되나요?"

"안돼! 발표 안 하면 사탕 안 줄꺼야!"

이렇게 단호해져야 한다. 사탕 하나로 단호해 질 수 있을 정도로 녀석들은 순진하다. 선생님이 주는 사탕 하나에 녀석들은 목숨(?)을 건다. '교실에 있는 쓰레기 열 개 줏어오면 사탕 하나준다.'는 말도 안되는 조건에도 아이들은 한바탕 소동을 피운다. 심지어, 없는 쓰레기를 만들어 내서 가져오기도 하고, 자기는 쓰레기 열 개 못 채워서 사탕 못 받는다고 울상인 녀석도 있다. 하여간, '사탕' 작전으로 싫다는 아이들을 살살 달래가면서 자신이 쓴 글을 발표시켰다.

처음에는 다영이 순서다. 교무실로 선생님을 찾아와서는, 수줍어서 배배 비꼰 몸으로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고 있다가 정작 제가 왜 찾아왔는지도 잊어버렸던 2학년 다영이. 다영이는 별명이 '다꽝'이라고, 그렇지만 자기도 다꽝이 좋다고, 또 발그레해진 얼굴로 짧게 발표하고는 인사도 없이 후다닥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아 버렸다. 늘 수업시간에 딴전을 피우는 말썽꾸러기 정태는 별명이 '동태'란다. 하지만, '동태'라고 부르는 녀석이 있으면 끝까지 따라가서 한 대 때려주고 온단다. 말썽꾸러기 답다.

이렇게 저렇게 아이들 별명에 관한 작문을 발표시키고 있는데, 아까 내 나이를 질문한 녀석의 차례가 되었다. 아빠 나이랑 내 나이가 같다고 하던 녀석. 쑥쓰럽게 걸어나오는 녀석을 바라보다가, 그래, 녀석의 말처럼, 잘하면 나에도 저만한 아이가 있었을 거라고, 문득 서른 한 살의 봄날을 교탁에 기대어 노곤하게 앉아 있던 나에게 결혼생각을 간절하게 하였다.

녀석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제 이름은 '최대우'입니다. 이름이 최대우라서 아이들이 '대우자동차'라고 놀려요. 요즘은 대우자동차가 망해서 같은 반 아이들이 '망한 대우자동차', '망한 대우'라고 놀려요. 전 그게 싫습니다. 엄마한테 왜 이름을 대우라고 지었는지 오늘은 집에 가서 따져보아야겠어요......"

녀석의 발표가 끝나자, 대우 아직 안 망했다는 둥, 요즘 테레비젼에 자주 나온다는 둥, 또 아이들이 한바탕 소란이다. 교탁을 두드려 아이들을 진정시켜 놓고, 발표를 모두 끝마치게 하니 수업종이 울렸다. 작문 내용을 수정해 주기 위해 녀석들이 엉성한 글자로 써놓은 작문노트를 걷어서 교무실로 들고 왔다.

책상 위에 아이들의 작문노트 한꾸러미를 펼쳐놓고 수정작업에 들어갔다. 내 아들(?) 또래, '망한 대우자동차'의 노트를 펼치고, 대우의 별명이야기와 장래 희망 등 자기 소개의 내용들을 다시 한번 읽어 보며, 또 이런저런 내용을 수정해 주다가, 나는 한달점 쯤엔가, 이모댁을 찾아서 부평에 들렸다가, 우연찮게 목격하게 되었던 장면들을 떠올렸다.

그때, '망한 대우자동차' 근처에서는 노동자 분들이 집회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우리 글짓기반 '대우' 또래쯤 되는 아이 하나가 엄마 손을 잡고 함께 집회에 나와 있었던 모습이 유난히 눈에 들어 왔다.

아마도, 해직당한 대우노동자 가족분들 같던데, 잠시 후에 화염병이 날고, 짱돌이 날고, 경찰곤봉과 쇠파이프, 피흘리고 부축 받으며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람들, 고함과 비명 소리......아이는, 악을 쓰며 구호를 외쳐대는 엄마 손에 이끌려서 겁먹은 눈망울로 그렇게 그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으면 되었을 것을, 나는 그 아이가 눈에 밟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앞 뒤 사건의 정황이야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 이 어지러운 시대를 살고 있는 아이의 당혹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했다.

'망한 대우자동차'. 우리반 대우는 물론 그때 당혹스러워 하던 아이의 얼굴은 커녕, 대우자동차가 왜 망해서 자기를 부끄럽게 만드는지 모른다. 엄마한테 왜 자기 이름을 대우라고 지어서 이 모욕(?)을 당하게 하느냐고, 집에 가면 따져 보겠다고 하는 철부지 초등학생일 뿐이다.

하지만, 어려운 시절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고 있었던 부평역 앞의 그 아이와, 시절의 이유로 인해 이름을 놀림받는 대우, 두 아이 모두는 '망한 대우자동차'라는 이 아픈 이야기를 저마다 다르지만 함께 간직하고 자라날 것이다. 두 아이가 커서 나만큼 덩치가 큰 어른이 되었을 즈음이면, 어찌되었든, 시절의 이유로 가슴아픈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순진한 생각이 든다.

도당동. 이 가난한 맞벌이 부부들이 사는 동네에도 봄은 온다. 그 봄을 닮은 아이들은 언제나 그렇듯, 또 싸우고, 화해하고, 어깨동무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반 대우의 꿈은 소방관이란다. 아픈 사람들 날라주고 불 나서 위험한 사람들 구해주는 용감한 소방관 아저씨가 되고 싶단다.

우리 '대우'의 꿈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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