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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손에 노동자의 피로 물든 메이데이!

수도권에서는 수만의 노동자들이 모여 1987,91년이후 10여년만에 서울시청광장을 다시 장악한 세계111주년 노동절 !, 그러나 차이와 공장의 벽을 뛰어넘어 전체 노동자가 단결하고 투쟁해야 할 이 노동절에, 광주 하남공단에서는 같은 노동자에 의한 폭력에 노동자가 피를 흘리는 비극적 사태가 벌어졌다.
5월 1일 이른 아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공장을 점거하고 있던 8명의 캐리어사내하청 조합원이 250여 구사대에 의해 폭력적으로 끌려나왔다. 이들 구사대에는 회사관리자, 조·반장, 하청관리직 뿐만이 아니라 원청조합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현장에 있었던 하청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은 쇠파이프로 무장한 구사대의 살인적인 폭력으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참히 짓밟힌채 폭력경찰에게 인계되어 병원으로 실려갔다. 박병규 금속연맹 광주전남본부장이 감금된 채 쇠파이프로 구타를 당하여 오른쪽 상하반신이 마비되었고, 송세종 조합원은 머리를 크게 다쳐 뇌수술을 받아야 한다. 하청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던 원청의 김대희 동지 또한 혼수상태에 빠져있다. 아니, 김대중의 아성인 광주에서도 경찰의 비호아래, 이런 폭력사태가 벌어진 것은 어인 일이며, 도대체 구사대 안에 원청조합원이 포함되어있다는 말은 또 무슨 날벼락인가?


비인간적인 하청노동 착취에 맞선 노동조합 건설

(주)캐리어는 에어컨을 만드는 미국계 초국적자본이다. 에어컨이 한철 상품이기 때문에 성수기 때는 700여명에 이르는 하청노동자들이 일을 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캐리어 자본은 정규직 신규채용을 기피한 채, 하청 파견고용을 계속적으로 늘려왔고, 여름 성수기가 끝난 후에도 350여 하청 노동자들이 상시적으로 생산라인에서 일을 한다. 캐리어 자본은 정규직을 새롭게 충원하지 않고 끊임없이 하청고용을 늘리는 방식으로 노무비용을 줄여왔던 것이다. 이들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은 다른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46만원의 기본급에 특근·야근·철야를 쉬지 않고 뛰어도 100만원이 채 안 되는, 최저임금에도 미달하는 월급으로 가정을 꾸려왔다. 또한 4대보험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고, 산재를 당하면 오히려 해고되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현대판 인간매매상인 하청업체들은, 원청에서 한 사람당 107만원을 받아 30만원 이상씩 차액을 챙기는 중간착취를 해왔다.
이런 비인간적이고 기계보다 못한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박차고 드디어, 지난 2월 19일 캐리어 사내하청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위원장 이경석)을 결성하였다. 그 동안 억눌려있던 하청노동자들의 폭발적인 노조가입으로 결성 사흘만에 조합원이 450여명에 이르렀다. 이에 캐리어 사측은 이경석 위원장을 비롯한 7명의 간부들에게 2월 22일 해고통지를 보냈다. 사측이 하청노조를 원천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론 노조원의 해고는 지방노동청에 의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 사측에서는 "5월에 복직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하청노조는 실질적 권한을 가진 (주)캐리어가 직접 나서서 단체협상에 임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자본가 놈들이 항상 그렇듯이 "5월 복직" 입장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술수요, 연막탄에 불과했다.
사측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은 채, 대화할 이유가 없으니 용역업체와 해결하라며 여섯  차례씩이나 단체협상을 거부해왔다. 노조는 하청업체인 청우실업, (주)대명, 한보산업개발, 명신실업, 캐리어냉열, 광지실업 등 6개 용역업체와 교섭을 벌이고 지난 4월 3일에는 지방노동청에 조정신청을 했으나 결국 결렬돼, 90%의 쟁의행위 찬성으로 4월 16일 제조업 하청노동조합으로서는 최초로 파업에 돌입했다. 하청노동자라도 작업지시 등, 실제적인 노동통제권을 가진 것이 원청기업인데도 원청기업의 그림자일 뿐인 하청기업과 임단협을 하라는 말은 애시당초 가능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원청인 캐리어와 각 하청업체는 원청인 캐리어 노사의 임단협이 4월 19일 마무리되자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하청과 같은 시기에 부분파업을 하고있었던 원청과의 임단협을 조속히 마무리함으로써, 하청노조를 고립·탄압하기위한 사측의 악랄한 계산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하청 조합원들에게 경고장이 날아오고, 4월 25일 하청노조 조합원에 대해서만 부분직장폐쇄를 단행해 조합원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어이없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수 백명의 관리직을 대기시키고 다음날인 26일 아침에는 경찰병력을 요청하여 7개 중대의 전투경찰이 투입되었다. 공장 안에서 천막농성중인 사내하청노조 집행간부와 조합원 20여 명을 공장 밖으로 몰아내고, 경찰병력을 동원해 공장 출입을 막고 노조를 박살내려 했던 것이다.
이에 위협을 느낀 사내하청노조 이경석위원장과 긴급하게 출근한 조합원 60여 명이 25일 오후 10시 30분부터 F1 조립라인 점거하고 "사태해결을 위해 원청 (주)캐리어가 직접 교섭에 나설 것"을 요구하면서 공장점거에 돌입하였다. 공장점거는 하청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폭력으로 노조를 파괴하려는 책동에 맞서 노조를 지키려는 최소한의 방어이자 마지막 수단이었던 것이다.


어제의 민주노조가 오늘은 구사대로?

4월 26일 캐리어 정규직 노조는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비정규직 노조의 진입을 막기로 결정하였다. 처음 하청노조가 설립될 때는 함께하던 원청노동조합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하청노조의 투쟁이 "원청조합원들의 정서에 맞지 안는다"며 슬슬 발을 빼더니, 지난 3월 28일 '민주노총 비정규직 철폐 전국순례단'이 캐리어에 와서 공장을 막던 전투경찰을 무장해제시키고 공장 안으로 진입한 것을 계기로 함께해오던 투쟁을 틀어버렸다. 급기야 26일에는 원청 정규직 노조가 앞장서서  "비정규직 몰아내고 일터를 지키자"고 "회사를 살리자"고 조합원을 선동했던 것이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자본가의 기계를 지키려고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을 짓밟는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캐리어 노동조합이 어떤 노동조합이었는가? 전노협 시절, 독재정권과 자본의 폭압에 맞서 광노협의 선봉에 섰던 조합이 아니었는가? 지역에서 모범적으로 투쟁하고, 주 40시간도 가장 먼저 쟁취했던 그 민주노조가 아니란 말인가? 그래서 하청노조 결성식도 원청노조 간부들의 지지와 연대투쟁 속에서 진행하였고, 원청 캐리어노동조합 이현석 위원장은 '사내하청 노동조합 탄압시 가만 있지 않겠다 조합원들은 적극 동참해달라'고까지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리의 실 가닥 같은 믿음은 비참하게 빗나갔다. 26일부터 원청노조는 사측과 함께 하청노동자를 몰아내기 위한 탄압을 개시하였고, 노동절 아침에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 테러가 자행되는 지경까지 오게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알고 있다.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것은 정권과 자본의 속성이고, 이번 사태 또한 캐리어 자본에 의해 철저히 계획된 분열책동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답게 살고자하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원청 조합원이나, 사측과 놀아나 그것을 선동하고 나선 원청노동조합 위원장이라는 작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자본가 놈들의 탄압보다 더 가슴아픈 것은 "노동자의 분열"이다. 조합간부라는 인간들이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 탄압에 앞장서놓고도,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조차 분간 못하고 있는 현실. 두 눈 감고도 인정하고싶진 않지만 우리 민주노조 운동의 현주소인 것이다.


벽을 넘어설 수 있고, 또 넘어야만 한다

단결이라는 단어가 무색하다. 투쟁할 때면 밥먹듯이 '단결'이라 외치지만, '단결만이 노동자가 살 길이다'라 노래 부르지만, 그때 단결하는 노동자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배제되어 있었다. 그렇다. '노동자는 노동자다'. 노동자는 어차피 같이 '기름밥, 눈칫밥 먹는' 노동자다. 그러나,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여성과 남성으로, 장애인으로, 한국노동자와 이주노동자로 분할하여 노·노갈등을 조장하면서 착취를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자는 "똑같은" 노동자가 아니었다. 99년 한라중공업 파업당시 원청노동조합은 하청노동조합의 투쟁을 배제하였다. 작년 12월 한통노조파업시에도 한통노동조합은 한통계약직노조를 배제하였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광주 하남공단에서 있어서는 안될, 못볼 것을 보았다.
노동자들간의 차이를 차별로 만들어 가는 것이 자본가들의 전략이라면, 노동자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단결해가는 것"이 노동자가 노동자답게 서는 유일한 전략이다. 여성의 적이 남성이 아니고, 동남아 이주노동자의 적이 한국의 노동자가 아니듯 비정규직의 적은 정규직이 아니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과 연대하지 않고서, 승리한 비정규직 투쟁이 있었던가? 노동자가 단결하지 않고 승리한 역사가 있었던가?
지난 며칠동안 광주 하남공단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광주지역 민주노조 운동사에 뼈아픈 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수 많은 지역의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분노와 눈물로 지세운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눈물을 흘릴 여유조차 없다. 밤이면, 캐리어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공장 앞 차디찬 보도 위에서 비닐 한 장 쳐놓고, 밤이면 쇠파이프로 무장한 구사대와 용역깡패가 또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도 투쟁하고 있다. 하청조합원들의 분노와 투쟁의지가 불타고 있다.
또한 원청의 다른 조합원들이 구사대로 돌변하여 하청노동자들을 내리칠 때, "이건 정말 아니다"라며 유서까지 쓰고 공장에 들어가 하청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다 병원에 의식불명상태로 누워있는 김대희 동지와 같은 원청 조합원들도 있다. 우선적으로는 공장 밖으로 밀려난 하청조합원들이 강고하게 대열을 형성하는 것이 관건이지만, 뜻있는 원청조합원들도 5월 1일 사건을 계기로 구사대로 돌변한 원청노동조합과 일부 조합원들을 고립시키고, 설득해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롯데호텔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우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단결해서 어떻게 전체 노동자가 승리를 안아올 수 있는지를 배웠다. 수년 동안 정규직이 하던 일을 비정규직으로 계속 대체해왔고, 이와 함께 전체 롯데호텔 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이 악화되었다. 이에 정규직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해서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쟁취해내고, 향후 비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겠다는 호텔측의 약속을 받아냈다.
캐리어에서도 지난 수년동안 정규직 신규채용을 거의 하지않고 하청 비정규직 노동으로 인력을 대체해왔다. 이와 함께 회사살리기니 뭐니해서 공장청소를 시키는 것을 비롯한 신자유주의적 현장통제가 강화되어왔고 원청노동조합은 이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하청노동자들이 공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한, 정규직이 비정규직과 단결없이 이러한 자본의 현장통제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란 쉽지않다. 또한 오늘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들이내민 배제의 칼날은 반드시 정규직 노동자 자신들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시 한번 투쟁의 칼날을 벼리며, 80년 광주 그 때처럼 노동자가 하나되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고용불안, 임금불안을 획책하는 김대중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투쟁전선에 일떠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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