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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자란다.

아니 더 정확히 변한다. 아니 그냥 자란다가 더 맞는 것 같다. 변한다에는 성장의 의미가 없으니까.

 

*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부족했는데, 10대를 보내면서 경제적으로 부족했지만 그것보다는 부모의 눈빛과 말, 정서적 나눔 뭐 그런 것들이 부족했던 것 같다. 당시 가장 답답했던 것은 요상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싫었던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학교, 집의 무한 반복, 무한 반복되는 모든 것들이 답답했다. 그래서 소설책도 읽고 낭중에는 철학책도 읽었지만 그래도 참 지루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세계여행을 꿈꾸기도 하고 그러다가 너무 먼 일인것 같아 그냥 노선이 가장 긴 버스를 타고 2~3시간을 멍하니 시내구경을 하면서 맘을 달래기도 했다. 아마도 이건 좀 커서 일이고 초등학교때는 집 뒷산으로 마구 돌아다니며 칡도 캐서 먹고 비 맞으며 돌아다니고 그랬던 거 같다. 그땐 좀 외로웠던거 같다. 그때 조금이라도 그런 맘을 나눌 사람이 있었다면 맏이인 난 그럴 맘을 나눌 사람이 부모였을텐데 엄마는 아이 셋을 건사하면서 일을 하느라 항상 바빴다. 아침이면 도시락을 다섯개까지 싸는 엄마를 보면서 그냥 그녀의 일을 조금이라도 덜어줘야지 하는 맘 밖에 안들었다. 그래서 피아노를, 태권도를 배우겠다는 동생들이 이상했다. 나에겐 원초적으로 배제되었던 욕망이었으니까. 그런걸 배우고 싶어하다니. 우리집 같은 경제상황은 가진 집에서 말이지. 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좀 슬프네. 어린것이 말이지. 참.

 

여튼 아이는 변한다. 자란다. 매 순간 자라고 생각하고 자란다. 그 순간을 나눌 수만 있다면...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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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으로 떠나던 날 아침, 상구백이 미루를 놀이집에 데려다 주러 나가는 모습을 핸드폰에 담았다. 베트남에 가서 보고 싶으면 보려고...그러고는 정작 베트남에서는 오기 전날 아침에 한번 꺼내 봤다. 그곳에서는 로밍하지 않은 핸드폰은 별 쓸모가 없었기 때문에 짐 가방 가장 깊숙히 넣어 둔 이유도 있었지만 왠쥐 한번 보면 보고싶은 마음을 주채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보고싶은 마음을 닫아버렸다. 아니 미루에 대한 마음을 닫아 버렸다. 밤마다 상구백이랑 통화하면서도 미루 안부는 물어봤지만 차마 목소리는 들을 수 없어서 바꾸지 말라고 했다. 미루랑 16개월만에 처음 떨어지는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보고싶은 맘이 어떤 모양새를 띠고 있을지 감이 안오고 막 보고싶어지면 그 다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마음을 닫아 버렸다. 물론 여러가지 걱정은 됐지만 의외로 그런 부분은 쉽게 맘이 정리됐었다. 어차피 내가 같이 없으니 무슨 일이 나든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저 상구백이 잘 할거라 믿고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의지라도 되게 전화라도 자주하자 뭐 그런 맘이었다. 여튼....오는 날 아침 사진을 보는데 참 낯설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아이는 더 작고 더 어린데 사진 속의 아이는 크고 성장한 모습이었다. 이상한 맘이 들었지만 뭐...그러고 집에 왔다.

 

현관문을 여니 이내 상구백이 온갖 호들갑을 떨면서 팔짝팔짝 뛴다. 그러면서 "미루야~~~ 엄마 왔어" 하면서 식탁쪽을 바라본다. 다 들어와서 그쪽을 봤더니 식탁위에 왠 거대한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미루는 일주일 만에 본 엄마가 좀 머쓱했는지 그냥 미소띤 얼굴로 밥을 먹는다. 16개월 아기는 기억력이 일주일이라던데 그래서 못 알아보나 뭐 그런 맘은 들었지만 솔직히 미루는 대충 머쓱한 얼굴로 그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같은데 정작 난 참 낯설었다. 일주일만에 아이가 이렇게 크다니...정말 몰라보게 자랐다. 덩치도 많이 큰 것 같고 하는 표정이며 동작이 내가 아는 미루가 아니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으면서 상구백이랑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도 미루는 날 살피면서 밥만 먹는다. 옷을 다 갈아 입고 미루한테 갔더니 그제서야 미루가 두팔을 내민다. 꼭 안고 늘 앉던 자리에 앉았더니 어깨를 들썩이면서 곱게 웃는다. 그러고는 젖을 달라고 옷을 올린다. 한참을 젖을 먹이는데 아기가 참 많이 자랐다. 더 또렷해지고 더 컸다. 다리도 팔도 얼굴도 어깨도 참 많이 자랐다.

 

*

미루는 태어난지 이제 16개월하고 15일 정도 지났다. 그런데도 난 내 머릿속에 미루에 대한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나보다. 어느새 문장으로 뭐라 뭐라 하는 녀석을 보면 이런 순간이 다신 오지 않을텐데 많이 아쉽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난 미루를 여전히 뒤집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던 아기 미루로 여기고 있다. 슬쩍 보면 별 차이 안나는데....그래도 아기는 변한다. 조금씩 조금씩 하루 하루 성장한다. 내가 그리 지겹게 여겼던 반복되는 일상속에서도 아이는 성장한다. 놓치지 말아야지. 아기가 하루 하루 성장하는 것을 봐야지. 그리고 즐겨야지. 안그럼 정말 어느순간 내 등 뒤에서 외로워하는 아이가 있을 것 같다. 자길 좀 봐달라는 아이가 있을 것 같다. 음...건 또 슬픈 일.

 

*

필요할때 오버해서 박수를 치더라도 너무 나서서 아는척은 하지말아야지. 그냥 한 인간이 자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즐거움으로 상구백이랑 키득키득 거려야지. 그럼 족하지 뭐.  아이는 자란다.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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