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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단식

오늘 글을 쓰면 안돼는데.

결국은 쓰고 말았다.

이래 저래 밀렸던 메일들을 처리하고 이제 자야지 하는데..

누군가 덧글에 '비즐리다'하고 남겨 놓았다. 이런...

이건 분명 내 정체를 아는 사람이다.

'비즐리'

이건 네팔 말로 뜻은 '번개, 전기 등'이다.

심지어 담배 이름으로도 있단다.

그게 내 네팔 이름이다.

샤말씨가 지어준 이름이다.

원래는 "프리야"라는 이쁜 이름이 있었다. 뜻은 "사랑스러운^^"

그런데 샤말씨가 이렇게 바꿔놨다. 이름은 로맨틱한데 로맨틱한 행동을 도체 하지 않는다고

구박을 하더니 몇명의 이주동지들과 쑥덕쑥덕하고는 낼름 이름을 바꿔버렸다.

"비즐리", 정신 없이 왔다 갔다 한다고 비즐리란다. 피이...했다. 아무래도 숨은 뜻으로 웃긴 뜻이 하나 더 있을 것이야. 나쁜 뜻이 아니란 말을 믿을 수 없어. 그런 마음으로 지내는데.

한분이 그런다. "비즐리가 오면 정말 '비즐리'가 온 것 처럼 밝아져."

기분이 싸아..좋아진다...이 보다 더 좋은 이름이 있을까.

농성 투쟁 처럼 힘든 시기에 밝아진다니...책임감 이빠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내 한국이름의 한문 뜻도 이것과 비슷하다. 아니 쌤쌤이다.

정말 이름이란 신기한 것이다.

서론이 길다.

 

오늘 일년 동안의 농성을 해단했다.

집회에 가기 전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집회에서 발언 내용 중에 자꾸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둥..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둥...그런 이야기가 들려온다.

참 춥다.

 

아니 추웠다.



작년 이맘때 참 추웠는데 그래도 올 겨울은 안 춥나 보다 했는데

역시나 농성 이야기가 나오니 춥다.

어찌 저찌 집회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크리스티앙 동지가 와서 그런다

오늘 여러 군데에서 많이도 왔다고 그런데 숫자는 참 적다고.

워낙에 역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동지이니 그렇게 말할 만도 한데

오늘따라 그 말이 참 따갑다.

하지만 집회에 온 동지들 면면을 보아하니..

일년 동안 농성 투쟁이란 것을 하면서 알게된 알짜배기들만 모인 것 같다.

그래서 난 적은 대오에 실망하지 않았다.

난 그 보다 작년 11월 15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자꾸 떠올라

징그러웠다. 자꾸 작년 이맘 때가 떠올라 징그러웠다.

그리고는 그날 그렇게 같이 시작했던 사람들을 대오에서 찾아서는

한명 한명 찬찬히 카메라에 담았다.

내일도 맘만 먹으면 본다.

내일 모레도 맘만 먹으면 본다.

하지만 농성투쟁이란 이름으로는 오늘이 마지막이니

그렇게 한명 한명 찬찬히 카메라에 담았다.

연단에서 뭐라 해도 난 대오에 있는 그렇게 일년을 보낸 사람들을 찾아 한명 한명 담았다.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 전화 받고 있는 모습, 담배 피는 모습, 내 카메라를 보고 웃는 모습, 내가 촬영하는 것을 보고는 내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 박수 치는 모습, 옆 사람과 이야기하는 모습, 연단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인상 쓰며 듣고 있는 모습.............

 

<계속된다>를 만들고 나서 여기 저기 다큐가 상영하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독립다큐하는 선배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상영료를 안줘도 갔다. 그러면 안돼는 데 어쩔 수 없었다.

투쟁을 알리려는 맘 하나만으로 만든 다큐이니 현실에 대한 분노를 나누기 위해 만든 다큐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농성장에 자주 못가면 이주동지들이 안온다 뭐라한다.

그래도 난 떳떳했다.

투쟁을 알리는 것도 미디어활동가가 하는 일이라고 그래서 열심히 참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리고 청하지 않아도 농성투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한국에서 이주문제에 대해 미친년 처럼 주저리 주저리 떠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은 든든했다. 내 뒤에는 농성장이 있었으니

그리고 거기에는 동지들이 있으니..

그 동안 지역에 내려간 동지들도 그런 마음이었겠지.

"내가 지역에 내려와 공장에 다녀도 농성투쟁하는 동지들이 있으니.

든든하다" 했겠지.

근데 오늘 해단식을 했다.

 

어찌 저찌 집회가 끝나고 찹찹한 마음인데

명동으로 행진 중에 대오 옆차선 차 앞으로 민수가 누워 버린다.

카메라들은 달려들고 민수는 분에 못 이겨 "더 이상 죽이지 마라" 한다.

저러지 말지...저러지 말지. 지가 저러지 않아도 그 맘 모르지 않은데

저러지 말지...카메라를 들이 대기도 싫고 싫다.

내가 니 맘 아는 데 니도 내 맘 모를리 없고 이러지 말지.

모른척 하려다가 지가 아파하는데 내도 같이 아파하자 하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참 아프다.

 

얻은 것 없다고 지역에 가면 얼마나 괄시 받을까.

 

연단에 올라선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주노동자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고

민주노총이 이주노동자 문제를 중요한 투쟁의 과제로 안았고

그러니 얼마나 얻은 것이 많냐고 한다.

누가 모르나..

 

하지만 자꾸 명동 해단식에서 대오 앞에 선 이주동지들은 고개를 숙이고

다른 동지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훌쩍인다.

나...나야 찍어야 하는 사람이니..울면 안돼지.

목으로 몇번 눈물을 삼키는 데

안울순 없지.

한쪽으로 가서 확 울음을 터트리는데 민수가 확 울고 간다.

니도 내맘이지 내도 니맘이지.

다 같은 마음이지.

 

이 혹독한 한국의 사계절을 명동 길 한복판에서 천막치고

잘 버텼으니 지역에 가서도 잘 버티길.

누가 뭐래도 할 일은 했고

누가 뭐래도 할 일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으니

기죽지 말고 더 강해져서 자꾸 자꾸 만나길.

 

비두도, 샤말도, 케이비도, 헉도, 굽다도 빼았겼지만

그래도 버텼고 지내왔으니 우리 같이 똘 똘 뭉쳐서

잘지내길......

앞으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눈물 흘리지 말고

즐겁게 투쟁하길.

정말 민수 말대로 더 이상 이주노동자가 이 땅에서 이 땅의 현실이 갑갑해서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없길...더 이상 이 땅에서  이주노동자가 아니 모든 노동자가 산재 당하지 않고 정당하게 일한 만큼 받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길..

 

농성단은 해단했지만..

비즐리, 이제 일상의 투쟁을 해나갈 동지들에게 더 큰 힘이 되도록...노력하길..

비즐리...훌륭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어 이주노동자 투쟁 잘 알리고

열심히 열심히 살아서 많은 사람이 이주노동자 투쟁 같이 할 수 있도록 좋은 다큐 만들길..

그러니 이제 더 든든해 하기. 지역에서 열심히 일하고 조직하고 투쟁할 동지들 생각하며

더 든든해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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