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아프카니스탄

* 이 글은 자일리톨님의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자일리톨님에게 책을 얻어 열심히 읽고 있다.

정말 열심히 읽고 있다. 다시 한번 감사해야지...감사감사^^해요.

 

워낙에 글 재주가 있는 기자이다 보니 그의 책을 읽는 맛이 쏠쏠하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는 재미는 글 재주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한겨레21이 재미 없어진 이후에도 아시아 관련한 그의 글을 읽기 위해서

한겨레21을 열심히 사 읽은 적이 있었다.

워낙에 한국 언론에서 아시아 관련한 기사를 찾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고.

있긴 있으나 거대 통신사들의 글들을 인용하거나 바탕으로 해서 쓰는 그러한

기사는 생명력도 없고 신뢰도 가지 않는다. 

그런 기사들에 비하면 그의 글들은 살아 있었다. 팔닥 팔닥 살아 있었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아시아가 동시대를 살아 가는 존재로 다가 왔다.

그리고 그 역사와 사회구조가 한치도 한국의 그것과 어긋나지 않은 것에

감탄했다. 정말 감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세계가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단 생각도 들었다.

그저 역사책이나 사회과학 서적에서 읽는 것 하고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아시아를 제 1 세계의 눈으로가 아닌 같은 세계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건 한국의 눈...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근현대사에 전쟁을 경험한 주변부 역사를 경험한 사회에서 산 나로서는

그의 글들이 살아 있었다. 나를 둘러싼 사회를 설명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것 같다.

그를 보면 자신감이 생겼다.

전쟁에 대해서 적어도 세 1 세계 사람들이 접근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사고할 수 있겠구나...나는...

뭐 그런...자신감.

 



 

그 자신감은 전쟁에 대한 다큐를 만들고 싶다는 데까지 옮아갔다.

그러다 911이 터졌다. 

미국은 있는 호들갑 없는 호들갑 다 떨었다. 정말 호들갑이다.

무고한 사람이 그렇게 어이 없이 죽어간 것이 어찌 안슬프겠냐만

미국의 지배세력(정말 이 말 안쓰고 싶었는데 이 말 밖에 딱 맞는 말이 없다)은

그 슬픔을 동원해서 빈라덴을 엄호하는 탈레반을 무너트리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해야 한다고 난리를 피웠으니...그리고 그 호들갑에

전세계가 놀아났으니...그리고 911에서 죽은 사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미

미국이 지구 곳곳에서 일으키고 있는 전쟁에서 죽어갔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뻔뻔해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911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슬픔보다 오히려 그런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슬펐다. 그런 역사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

온 세계가 광기에 휩싸인 듯 돌아가고 마치 거대한 시계가

내 머리 위에서 카운트 다운을 하는 것 같았다.

무서웠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그 광기가 무서웠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무기력.

난 말끝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 난 그리고 갈거야. 난 갈거야' 라고 중얼거렸다.

기껏 내가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땐 그 생각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 시간을 그 미친시간을 기록해야 한단 생각.

그런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 끝없는 무기력에서 나를 잃을 것 같았나 보다.

그러다 전쟁이 터졌다.

말문이 막혔다.

하루 하루 전쟁관련 소식들을 찾아 읽었다.

전쟁을 흥미 위주로 다루는 기사들이 물리긴 했지만 그 안에서라도 

사실들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러다 정문태씨의 기사를 만나는 날이면

반가워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고

결국 미국이 들어 앉았고 탈레반은 물러났다.

이미 마음은 잡을 수 없고 좀 거창하긴 했지만

인류는 절대로 진보하지 않는단 생각으로 팽배해져 있을 무렵.

----------------(오버했다. 근데 그 당시에는 정말 맛이 가 있었다.

내가 술이라도 먹을 줄 알았다면 그때 몸 망가졌을 거다. 쉼 호흡하고..휴우.)

 

친구가 한 포털 사이트의 광고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국제지원단체가 아프가니스탄의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하는 데

거기에 함께 갈 스텝을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시큰둥했다.

전쟁이 나고 나서 그곳에 가서 지원을 하는 게 뭐가 중요한가..

전쟁을 막았어야지!

선뜻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곧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보지도 않고 그저 전전긍긍한 전쟁,

현대사에 전쟁을 겪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전쟁은 어떤 것인지, 정말 그것은 어떤 것인지.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가기로 맘 먹었다.

그런데 그 지원단체에서 가기 전에 유서를 쓰란다.

쓰벌.. 그래도 꼼꼼히 썼다. 내가 어찌 되면 내 카메라는 누구에게 주고

내 편집 컴퓨터는 누구에게 주고 뭐는 누구에게 주고 등등...

같이 가기로 했던 사람들이 내 유서를 보더니 혀를 내두른다.

넘 현실적이라고...

 

집에는 동남아시아에 잠시 갔다 온다고만 했다.

살짝 비자가 나오면 아프가니스탄도 갈 수 있다고 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진짜루 파키스탄 국경지역에서 비자를 신청하고 기달려야 했으니까.

하지만 워낙에 내가 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 식구들은 귀 담아 듣지 않았다.

걱정한 내가 오히려 머쓱해졌다.

유서도 쓰고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했고(?) 카메라도 챙기고 출발.

 

국경이 열렸다고는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을 들어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쉬이 접근할 수 있다던 파키스탄의 국경지역 폐샤와르로 가는 길만도

험난했다.  만 하루를 꼬박 이동해서 겨우 도착한 페샤와르.

비자를 신청을 하고 기달렸다 운이 좋았는지 비자가 나왔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것.

폐샤와르에서 카불까지 가는 국제지원단체만을 위한 비행기가 있는데

(그 비행기는 10명 정도가 겨우 탈 수 있는 작은 비행기다)

원래는 그 비행기를 이용해서 카불까지 들어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걸 못 타게 됐다. 자세한 기억이 안난다.

왜 비행기를 안타고 육로를 택하게 됐는지.

여하튼 육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직도 곧곧에 무장한 사람들이 있다고도 하고 

아직도 미군이 뿌려 놓은 지뢰가 곧곧에 있다고도 하고.

눈에 안뜨이기 위해 현지인 옷을 구해 입고 다 허물어져 가는 차로

출발했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졌네...에공..)

 

밤이 깊어 가니 각설하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오늘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그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 아이의 이야기다.

아이라고 하면 참 어색하다.

그래도 나이가 어리니 아이라고 해야겠지..일반적으로..그렇게 하니...

 

그 아이를 만난 건...

프로그램 중 난 배가 고파 잠시 밖에 나왔다.

그런데 한 아이가 계단에 앉아 감자 튀김 같은 것을 먹고 있었다.

옆에 가서 안되는 아프가니스탄말로 뭐라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배고픈 것을 눈치챘는데

갑자기 그 아이가 나보러 그 감자튀김을 먹으란다.

당황스러웠다.

국제지원단체 직원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오기 전에 했던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음식이든 길거리에서 파는 것은 먹지 말아라.

그 음식이 나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너무 깨끗해져버려서 그걸 먹으면 탈이 난단다.

그래서 다들 물도 사다 먹고 음식도 열심히 만들어 먹는다.

그걸 뭐라고 할 수 없다. 탈이 나는 걸...정말로 탈이 난다.

이미 우리들은 현대문명으로 인해 약골이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난 그 말이 잠시 떠오르긴 했지만

그 말때문에 당황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 아이의 당당함 때문이었다.

"먹어, 먹어"하는 그 아이의 모습.

그 아이의 모습은 여느 카불의 아이의 모습이었다.

혜어진 옷, 신발, 깨제재한 얼굴,

그럼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아이는 너무나 당당했다.

행동이 참 당당했다. 정말 시간을 올곧이 살아낸 어른 같았다.

난 그 아이의 당당함이 너무 낯설었다.

그 당당함이 카불에선 낯설었다.

(전쟁에 황폐해진 땅에서 국제지원단체들의 지원에만 기대야 하는 사람들은

속으론 아니지만 겉으로는 지원단체 사람을 보면 당당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그런 상황을 보는 것도 힘든 일이다.)

아니 어쩌면 세계 어디 가도 그러한 당당함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난 너무 그 아이가 멋있었다.

당황스러운 순간도 잠시 난 그 친구의 당당함에 눌리고 홀려서

그 친구의 감자튀김을 나눠 먹었다.

뒤늦게 날 발견한 한국 스텝이 그런다.

어이구..애들 것을 빼앗아 먹냐.

그래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우리가 익히 알아 왔던 아이가 아니었다.

내가 보호해줘야 하고 안쓰러워해야 할 아이가 아니었다.

그 아이는 어른이었다.

아니 어떤 어른보다도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그 아이는 나 보다 훨씬 강했다.

그 오랜 전쟁을 견뎌 왔고 지금도 그 전쟁 때문에 황폐해진 그 땅에서

살고 있으니...난 그 친구의 그 당당함이 너무 멋져서

그 친구랑 헤어지고 와서도 그 친구 때문에 가슴이 벅찼다.

 

나중에 맘이 통하는 그 학교 선생님에게 그 아이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왈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동생들을 데리고 산다고

그 아이도 카불의 아이였다.

아침에는 일을 하고 시간 날때 마다 학교에 와서 공부한다고.

선생님도 인정했다..참 당당한 아이라고.

 

이래저래 준비해간 프로그램이 끝나고 마지막 날

사람들은 그 동안 정들었던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바빴다.

난 너무나 망서려졌지만 그 선생님과 이야기를 했다.

난 그 친구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당당하게 사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그가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그런 마음을 담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그래서 결국 생각해 낸 것이 너무 창피하긴 하지만 내게 있는 약간의 돈이라고

선생님은 내 맘을 읽어 줬다. 고마웠다.

결국 선생님이랑 내린 결론은

많이 줄 수도 없고 줘서도 안된다고 그 아이의 삶에 존중을 보내는 의미를 담을 수만 있으면

된다고 학자금 처럼...그렇게 난 선생님에게 부탁을 했다.

 

멀리서 그 아이가 보인다.

여전히 당당하다.

나 같으면 기분이 나쁠수도 있을 텐데

혹은 어려운 살림에 돈이니 반갑다고 웃을 수도 있을 텐데

그 아이는 선생님의 설명을 진지하게 들었고 받았다.

멀리서 인사를 하는데 나도 같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돌아서는 데.

창피했다.

돈을 지워준 것이 창피하기도 했지만

정말 창피한 것은

'전쟁을 막지 못해서' 였다.

참 오바다. 하지만 정말 그 아이 앞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권위에 대한 환상이 별로 없는 나는 앞세대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내가 그 아이에게는 앞세대 아닌가

난 그 아이에게 뭘 했나.

전쟁도 못 막고 전쟁 때문에 그 아이를 그렇게 힘들게 해 놓고서

이제와서 그저 당당한 모습에 존경을 표한다고 헛짓을 하니...

창피했다.

창피해서 울었다.

프로그램 내내 감상주의는 아니다라고 지랄하고 다닌 내가 우니

같이 했던 스텝들이 이상하게 여겼지만

난 눈물을 멈출수 없었다.

"shame on me"

계속 되네었다.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다.

전쟁을 막는데 노력해야지 더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그렇게 다짐을 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왔는데

 

난 이제 정문태씨가 기술해 놓은 아프가니스탄을 보면서

겨우 아프가니스탄을 기억하고 이런 글을 쓰고 있다.

참....

 

여전히 창피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