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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세척하기 위하여

일다에 쓴 원고입니다.

일다에 나간 기사는 http://www.ildaro.com/Scripts/news/index.php?menu=ART&sub=View&art_menu=1&art_sub=1&idx=2005081500013&op_idx=&BBS_idx=

로 가면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비자로 들어오는 이주여성이 결국에는 다 같은 처지에 있고

자본주의 남성중심사회에서 이주여성은 여성이 갖는 모든 모순을 극렬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연대하자!

정도로 썼는데 뭐...역시나 시간 없이 급하게 써서 넘 아쉽고 아쉬운 글이 되었고

기사로 나가면서 변하게 됐지요. 그래도 일다 기자님이 이래 저래 기사에 맞게 코멘트를 주셔서 그나마 사람들이 읽기에 거북하지 않은 글이 된 듯도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아쉬운 것은 제목!!!

제가 처음 쓴 제목은 '뇌를 세척하기 위하여' 거거든요.

아쉽다. 이 제목.



 

뇌를 세척하기 위하여, 그리고 연대하기 위해서

주현숙(다큐멘터리 감독)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이주여성 관련 다큐멘터리를 시작할 즈음이었다. 작업을 시작할 때는 대부분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관련 주제나 소재로 머리가 꽉 차 있게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머리 속은 온통 이주여성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슨 말을 꺼내도 이주여성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이주여성과 관련한 사건들은 하나 같이 충격적인 일들이라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도 않았다. 당시 최대 고민은 ‘ 이주여성의 어려운 상황을 널리 알리면서도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란 느낌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것인가’(‘이주여성의 특수한 조건을 여성 전반의 조건으로 환원하여 보여줄 것인가?’)였다. 


세뇌를 당하다


그렇게 고민에 푹 빠져있을 때였는데, 우연히 상식적으로 진보적인(?) 사람들과 함께한 자리를 하게 되었다. 난 역시나 자연스럽게 전날 만난 이주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60대 남자와 만난지 이틀만 결혼해서 한국에 온 이주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남편이 많이 때린 이야기, 남편의 거짓말로 임신중절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난 그 사건을 들을 때도 심장이 떨렸지만 말하는 순간에도 심장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난 약간은 흥분한 상태였고 그러한 일들이 너무 많은데 어쩌면 좋을지 답답한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사람이 이러는 거 아닌가, “한국에 국제결혼 해 들어오면 맞는다는 거는 다 알고 들어오는 거 아니에요?” 이라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 맞을 줄 알고 결혼을 한다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얘진 머릿속에 이러저러한 영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에서 한번쯤은 봤음직한 영상들, 어눌한 말로 남편에게 혹은 남편의 식구들에게 맞은 이야기를 하는 이주여성의 모습이 머릿속에 하나둘 떠올랐다. 너무 빨리 영상들이 떠올라 숨이 가빴다. 하지만 각 영상들 속에 이주여성은 하나 같이 똑같은 모습이었고 반복된 모습이 날 울렁거리게 했다. 그 친구에게 난 아주 조그맣게 “맞을 줄 알고 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 했지만 너무 작은 소리여서 들리지 않았을 거다. 


우린 가끔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어떤 이야기를 계속 반복 하여 들으면 그것이 처음에 줬던 충격은 어느새 날아가고 무뎌지는 경험, 가끔은 그 무뎌지는 것이 도를 넘어서 처음에는 이상했던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경험. 그런 것을 세뇌라고 해야 하나? 대중매체에서 볼 수 있는 이주여성은 너무나 단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러저러한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의 모습, 대중매체의 단편적이고 반복적인 이주여성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가 결국 이주여성은 ‘맞는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게 만들었고 이제 이주여성은 ‘당연히 맞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두나 알고 있는 ‘진실’을 당사자인 이주여성만 모르고 한국에 왔을 리 없다는 생각에 까지 이른다. 무서운 일이다. 이 세상에 당연히 맞아도 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당연히 맞을 것을 알면서 오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우린 그렇게 세뇌를 당한 것이다.


이제 슬슬 뇌를 세척해야 될 때가 왔다.


이주여성의 본국에서 국제결혼에 대한 환상은 거대하다. 사회적으로 국제결혼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이 한국에 와서 맞아도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본국의 식구들에게 전할 수 없다. 심지어는 남편의 폭력에 맞서 이혼을 해도 본국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살 수도 없다. 주변의 눈이 무서운 것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에 가면 맞는 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조금만이라도 이주여성의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조건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조건이 아니라 다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조건들을 알아가는 것. 그래야만 다른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인간을 이해하기 위하여


한국에 현재 결혼하는 10쌍 중 한 쌍이 국제결혼을 한다. 작년만 해도 25만 명이 결혼을 했는데 그 중 2만 5천이 국제결혼이었다. 국제결혼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여성이주노동자 또한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는 ‘이주의 여성화’라고 해서 세계적인 추세이다. 국제결혼을 통해 가정으로 들어오든, 관광비자나 고용허가제, 산업연수생으로 2차 산업으로 들어오든, 성산업으로 들어오든, 이주여성을 가장 옥죄고 있는 것은 체류 문제이다. 체류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모든 문제가 왜곡되고 모순은 증폭된다.


국제결혼으로 들어온 이주여성은 체류와 관련해서 가장 힘든 것은 한국국적을 얻기 까지 2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98년 국적법 개정 이후로는 결혼을 해도 2년 동안 한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해야만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다. 2년 동안, 6개월에서 1년씩 체류를 연장해주는 데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남편이 부인이 맘에 안 들면 더 이상 체류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그 2년 동안은 남편이 부당한 대우를 해도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한다. 이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혼을 하게 되면 남편에게 이혼의 귀책사유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한국에 더 이상 체류 할 수 없다.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한국인 여성이 그렇게 하려고 해도 어려운 판국에 체류신분이 불투명한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자가 남편의 귀책사유를 밝히기란 쉽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한국에 있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냐고 할 테지만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혼을 하고 본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자신에게나 가족에게나 너무나 큰 상처가 된다. 본국에서 조금이라도 살림의 주름을 펴줄 것이라고 기대됐던 딸이, 누나가, 언니가 빈손으로 이혼녀가 되서 돌아온다면 가족들은 외면하거나 주변에 그러한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다. 그런 현실에 이혼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본국으로 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런 역경을 이겨내고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다짐을 한다 쳐도 아이가 있으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아이를 데려갈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주여성들은 방황하다 다시 남편이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2차 산업이나 성산업에 종사하는 이주여성노동자들도 체류문제로 고통 받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이주여성은 한국에 90년대 초반에 온 분인데, 한국에 온지 얼마 안돼서 다니던 공장 사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다 불법체류 신분에 경찰서에 갈 수도 없고 사장이 소문내면 나라로 돌려보내겠단 말에 두려워서 아무 대응도 못하고 다음날 조용히 짐을 싸서 공장을 옮겼다고 했다. 그때는 한국에 들어올 때 브로커에게 준 5 백만 원만 생각했다고 했다. 미등록 체류 문제로 고통 받기는 여성이나 남성, 모두 마찬가지지만  이주여성은 성폭력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받고 있다. 이제는 그러한 고통을 호소할 곳도 많이 생겼지만 하지만 이러한 정보들은 남성이주노동자를 중심으로 공유되기 때문에 그녀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남성이주노동자에 의지해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체류문제와는 다르지만 그녀들은 또 다른 문제로 괴로움을 겪는다. 다름 아닌 가족과의 관계 때문이다. 가족들과 떨어져 길게는 12년 짧게는 몇 년을 지내다 보니 가족 사이에서 그녀들은 그저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 정도로만 취급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가끔씩 그녀들은 내게 하소연한다.  “거기(본국) 사람들은 내가 여기서 쓰고 남는 돈을 보내는 줄 알아.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일 해서 그 돈을 버는 지 그걸 몰라. 그래서 답답해. 나랑 전화통화만 하면 돈 달라 그래. 누가 결혼해. 누가 아파. 누구 학교 가야해.”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난 갑갑하다. 그녀들이 그 관계에서 소외당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막막해 온다. 난 가끔 한 마디 거들기도 한다. “언니, 이제 돈 보내지 마요. 그냥 언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요.” 하지만 그녀들은 절대로 그렇게 못 할 것이다. 그래서 나도 답답해진다. 


우연이었을까? 내가 만난 이주여성들은 대부분 맏이이거나 아니면 어찌 되었든 집안의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학교를 가야하는 동생이 줄줄이 있어서 뒤를 돌봐줘야 하는 그녀들은 “왜 그렇게 맞고 살았어요?” 라는 속없는 질문에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살아 보려고 했지. 내가 언닌데 동생들 뒷바라지도 해야 하고, 언니가 되서 이혼하고 그러면 동생들 결혼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말이다. 적어도 우리 엄마, 이모 정도의 나이의 여자들이라면 저런 이야기를 했을 법도 하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그녀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로 왔다. 하지만 가난이라는 것이 벗어지는 것이었던가? 벗어지는 게 아니라 더 깊고 넓게 번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나이는 들고 한국 땅에서는 계속 미등록이고 결국 그녀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빈손으로 돌아가서 여전히 가난할 그녀들, 혹은 어떻게든 버텨서 한국국적을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그녀들의 삶을 생각하면 이제 빈곤은 여성의 한 특징이란 생각까지 든다.


변방이 아닌 중심에 서서


난 이주여성을 만나면 만날수록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모든 역할의 극렬함을 본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결혼은 매매일 뿐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혹은 다양한 이러저러한 이름으로 포장되어서 그렇지 결혼은 매매일 뿐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국제결혼의 시스템은 그렇다고 쉽게 이야기 할 수 있게 한다. 이혼한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키울 사람이 없어서, 밭일을 할 사람이 없어서, 노모를 모실 사람이 없어서, 그 노골적인 국제결혼을 하게 된 남편들의 이유들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순수하다. 가족을 위해서 작업장의 성폭력도 참아냈을 이주여성노동자들을 볼 때면 그 가족들 얼굴이 떠올라 치가 떨린다. 하지만 정말 이러한 일이 이주여성들만의 일인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남성중심 사회를 사는 모든 여성의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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