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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 '안녕 평양'

schua님의 [독립다큐멘터리에 흠뻑 빠져 보아요-인디다큐페스티발에 영화 보러 갑시다] 에 관련된 글.

내겐 다큐멘터리는 보약인거 같다.

이래 저래 복잡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가득한 주말을 보내고 다큐멘터리를 보러 다니다 보니 그만 기분이 너무 좋아져 살맛이 났다. 정말...살맛.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살맛이 내게 있어서.

같은 상황에 있는 나의 남편(참 어색한 단어당)은 한동안 분에 못이겨 일도 손에 안잡힌다고 힘들어 했으니.

 

여하튼 그렇게 다큐멘터리에 빠져서

열심히 보긴했지만 사실 화요일부터 보기 시작했으니 그리 많은 편수의 다큐를 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마더 데런의 모험', '나의 선택, 가족', '잊혀진 여전사', '안녕 평양'이 전부이니 말이다. 아쉬운 일이다. 보고 싶은 영화가 더 있었는데...아쉽고 또 아쉽다. 한독협에 프리뷰용 테이프라도 있으면 한번 빌릴 수 있는지 물어봐서 볼 수 있는 것을 찾아 봐야 할 것 같다.

 

아쉽게 봤지만 한 작품 마다 얻은 것은 참 다양하다.

다큐를 처음 시작할 때는 정신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점점 이런 마음이 스물스물 들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다고 마음 먹은 이후로는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데 정말 묘한 두려움이 나를 감쌌던 기억이 있다. 난 어쩔줄 몰라하면서 고민하다 무작정 다큐멘터리를 보기로 맘 먹었다. 이런 저런 다큐멘터리를 하루에 세네편씩 봤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를 보고 온 날은 무엇으로 꽉 찬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하나도 부러울 것이 없었고 가슴속에는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보다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기억이 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심히 의기소침했는데

이렇게 다큐를 보고 나니 역시 이전의 기분이 든다. 모든 다큐멘터리는 내겐 정말 보약이다. 너무 아쉬운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게 하고 너무 좋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나도 저렇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면서 잘해봐야지하는 생각이 든다.



'안녕, 평양'이란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이 좋았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다큐를 보면서 이렇게 만들었구나. 구성은 어떻구나. 조명은. 저건 어떻게 했을까 등등을 생각하게 하는데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정말 영화에 흡뻑 빠져든 나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통일에 대한 영화인가 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은 그저 배경일 뿐이다.

다큐를 통해서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가 가 내가 가지고 있는 다큐의 가치이다. 

아무리 좋은 다큐라 하더라도 다큐를 만드는 사람이 주인공을 혹은 그 안의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단 생각이 들면 이상하게 불편하고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이 다큐는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보여주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그리고 예의바르게 말이다.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사람들은 가끔 연출이 없는 줄 안다.

하지만 극영화와는 다르지만 다큐멘터리는 그것만의 연출이 있다. 어떤 이야기를 넣을까 뺄까? 어디쯤 그 이야기를 넣을까? 얼마만큼 보여줄까? 그리고 그걸 어떻게 보여줄까? 등이 연출이다.

 

난 가끔 성급한 감독을 만날때가 있다. 그러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내내 호흡이 가파르고 불편하고 짜증이 난다. 나 역시 성격이 급해서 내가 만든 다큐 중에서도 어떤 부분은 창피하리만치 성급한 모습을 볼때가 있다. 그럴때는 심장이 떨린다. ㅡ.ㅡ

 

'안녕 평양'을 보면서 배려를 받는단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가 아닌 배려, 단지 연출이 아닌 배려,

다른때 같았으면 그냥 연출을 잘했네 했을텐데 이 영화를 보면서는 내가 배려 받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영화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해줘서 고맙고 배려 받아서 고맙다.

 

다큐를 만들다 보면 다급해질때가 있다. 이야기상 혹은 주제상 어쨋든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는데 못 들었을 때 특히 그런데 그러면 자꾸 그 질문을 하게 된다. 정말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너무 다급한 나머지 그 질문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잘 가늠이 안될때가 있다. 집에 와서 촬영한 것을 다시 보면서 나의 천박한 질문을 듣게 되면 얼굴이 화끈거려 그 질문을 한 게 내가 아니었으면 아니길 바래 본다.

 

근데 이 다큐에서도 보는 내내 드는 질문이 있었다.

나 같으면 아버지에게 몇번을 물었을 그 질문을 감독은 그저 담아두기만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점점 그 질문이 아버지에겐 어떤 의미인지 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 질문은 더 절실히 목구멍으로 터져나오려 했다.

그리고 포기할 즈음...그녀는 살며시 던진다.

그리고 아버지는 솔직하게 하지만 아픔을 그리고 세월을 담아 이야기해준다.

정말 고맙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배려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이런 다큐를 만들고 싶다.

보는 이도 배려 하면서 나눌 수 있는, 내가 느낀 것을 나눌 수 있는,

그래서 다 같이 고마워하고 아파하고 사는 것에 힘을 얻을 수 있는..

꼭 그렇게 하고 싶다.

 

이렇게 힘을 얻었으니 그래 봐야지.

이래서 다큐멘터리는 내게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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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평양

 

감독 양영희의 아버지는 조총련 고위간부였고 아버지는 세 아들 모두를 북송선에 태워 보낼 만큼 열렬한 친북주의자이다. 어릴 적부터 감독은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어느새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자유주의자가 되어 있다. 이제 노약해진 아버지는 딸에게 용돈을 타 써야하고 자전거 타고 동네한바퀴 도는 일이 유일한 취미일 뿐이다. 그렇지만 딸이 미국이나 일본남자와 사귀는 건 절대 용납 못한다. 국적까지 한국으로 옮긴 딸 역시 여전히 갖가지 선물들을 챙겨 오빠네 가족이 사는 평양을 방문한다.
‘안녕 평양’은 감독 자신의 얄궂은 가족이야기와 함께 우리의 암울한 현대사를 오버랩시키며 관객들에게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보여준다. 슬픈 이산가족의 이야기지만 영화는 의외로 따뜻하다. 이 영화의 따뜻함은 조건없는 가족애 혹은 단순한 휴머니즘이 아니라 원망스런 대상에 최근접하며 화해를 만들어나가는 카메라의 힘과 역사에 대한 감독의 긍정적 시선에서 나오는 것 같다. 물론 딸의 카메라 앞에서 내복바람으로 흐트러진 모습들을 보여주는 아버지 그리고 억척스러우면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을 것 같은 어머니 역시 감독의 그런 시선과 상응하고 있다. 담담한듯 하지만 유심히 보면 스크린엔 가족과 조국에 뜨거운 사랑, 분노와 안타까움들이 뒤엉킨채 표현되고 있다. 또 절제된 나레이션속엔 영화 외적 변수들을 고려한 감독의 세심한 배려가 있다.  
양영희 감독이 사는 오사카의 허름한 집은 한반도 그 자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흩어져 사는 감독의 가족들은 반도의 남과 북에 갈리워 살고 있는 우리자신의 모습에 다름아니다,
그 전체적 인상은 복잡하지만 대단히 희망적이다.
[김동원/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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