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구례군 사포마을의 다랑이논 위쪽 저수지 공터에 자리를 잡고 3일 동안의 캠프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을에서 환대해주신 덕분에 마을회관의 일부 시설을 공용으로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각자의 이유를 안고 캠프에 참가한 이들과 여는 회의를 가진 뒤, 스무 명 가량의 참가자들은 마을 분들의 도움으로 무단벌목지를 향해 이동했습니다.
올해 사포마을 뒷산에서는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을 포함한 21만㎡에 걸쳐 벌목이 이루어졌습니다. 마을에서 약 0.5km 거리에 있는 곳에서부터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에서 불과 170m 떨어진 지점까지, 50~80년령에 이르는 모든 수종의 나무가 마구 베어졌습니다. 적어도 2만 5천 그루의 나무가 베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구례군에서 허가한 벌목량을 1만 그루 이상 초과한 것입니다. 현장에서 작업자들은 소나무재선충을 우려한 수종변경 사업이라 설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19년 이래로 주기적인 재선충 방제 간벌 작업을 보아왔던 마을 주민들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숙련된 작업자들이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나 의심목을 선별하여 간벌하고 약제처리한 뒤 방수 비닐로 포장해둔 모습이 익숙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무단벌목은 소나무 뿐만 아니라 수종을 구분하지 않고 편백나무, 아까시나무, 개서어나무 등을 전부 베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구례군 측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수확벌채로 허가를 내주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재선충 확산 방지를 위해 모든 목재는 잘게 파쇄하여 반출할 수 밖에 없으므로 수익성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허가된 벌목 목적에 부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허가 지역을 벗어나 벌목이 이루어졌고, 벌목 기간 역시 허가 날짜를 지나 한 달 넘게 이어졌습니다.
벌목 이후 수 개월에 걸친 파쇄 작업을 거치며 숲은 더욱 심각하게 파괴되었습니다. 벌목지 중 총 네 군데에서 파쇄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파쇄기 설치와 작업 공간 확보를 위해 산지 경사면을 넓게 평탄화하며 정상부 능선이 잘려나가고, 계곡의 물길은 막혔습니다. 일대 산지의 기반 암석은 사암으로 외부 요인에 의해 쉽게 변화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능선이 잘려나간 절개면에서는 이미 빠른 속도로 침식이 진행되는 중이었습니다. 오랫동안 형성되어온 바위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던 물은 길을 잃고 벌겋게 드러난 경사지 토양 위로 빠르게 흘러내리며 깊은 골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전 문제가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앵초 군락지 등 계곡을 따라 형성되었던 식생도 영향을 받고 있는 듯 했습니다. 10여개의 크고 작은 계곡을 타고 내려와 마을 주민들의 식수와 농업용수, 생활용수를 공급해주던 물순환 체계 자체가 위기에 놓였습니다. 전체 수량이 줄어들고 활용도가 낮아지는 반면, 혼탁도와 수질은 모두 악화되었습니다.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구례군은 시행사에게 급경사지 평탄화, 능선 절개 등 위반사항에 대해 원상복구를 요청한다고 말했습니다. 시행사는 한창 집중호우가 이어지던 7~8월에 걸쳐 절개면에 잔디 씨앗을 뿌리고 이미 심각하게 침식된 도랑을 따라 배수 파이프 설치와 사면에 비닐을 덮는 작업을 일부 진행했지만 원상을 회복하려는 노력으로 보기 어려운 정도의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구례군은 복구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시행사에 파쇄목 반출 허가를 내주었습니다. 파쇄목 운송을 위해 설치되는 도로의 폭은 규정상 3m를 넘어서는 안되지만 우리가 확인한 도로의 폭은 6~7m, 넓은 부분은 10m이상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역시 생태적 고려는 물론이고 안전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사면을 절토, 성토하는 작업을 거쳐 조성되었습니다.
구례군과 시행사가 맺은 업무협약에 의하면 이후에는 현재 벌목이 이루어진 면적의 약 6배 가량의 산지에 걸쳐 추가 벌목을 진행한 후, 27홀 규모의 골프장을 지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굳이 골프장 사업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며 무리하게 서둘러 대규모 벌목을 강행한 것은 이후 사업 허가 및 진행을 위해 환경영향평가 등의 절차를 수월하게 넘어가기 위한 사전 작업일 것이라는 의혹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왜냐면 상대적으로 벌목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20여년 전 같은 사업자에 의해 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골프장 사업의 시행사 측은 2000년대 초반에도 지리산 골프장 사업을 추진한 바 있습니다. 불법 벌목과 토지 강제수용을 강행하며 조건부로 사업 허가를 취득했으나 허가 기간이 끝나도록 사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개인의 땅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공동소유하고 있는 땅 역시 강제수용 되었습니다. 수용의 근거가 된 사업이 무산된 이후 반환을 위한 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사업자 측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도 당시 빼앗아간 땅을 자신의 소유라 주장하며 사업을 강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최근의 무단벌목에 대한 저항 뿐만 아니라 땅을 돌려받기 위한 법정 싸움 역시 이어가고 있습니다.
벌목지 한 켠에서 캠프 참가자가 준비해온 워크숍이 진행되었습니다. 마음을 담아 발췌한 108개의 문장을 낭독하는 음성 녹음을 틀어두고 둘러앉아 약 20분 동안 명상이 이루어졌습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서로와 자기자신, 그리고 장소에 집중하며 명상을 이어간 뒤 짧게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벌목지를 벗어나 마을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며 준비해온 현수막을 나무에 설치했습니다. 현수막을 만든 것은 몇몇 사람들이지만 캠프 참가자들과 주민들의 마음을 함께 담아 걸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수막이 훼손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누가 언제 왜 현수막을 찢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된 숲이 황무지로 변해버린 무단벌목지에 서있었을 때와 같은 참담한 심정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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