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에코토피아 구성원 네 명은 평화바람과 오키나와 활동가분들의 도움으로 2023년 오키나와 평화행진에 참여했습니다.
평화행진 일정보다 며칠 앞서 도착한 우리들은 평범한 여행객의 입장에서 오키나와를 다녀보았습니다. 본 적 없는 낯선 풀과 나무들, 산호 모래가 곱게 쌓인 해변, 석회암 지대 특유의 지형과 토양,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뱀 주의 표지판, 독특한 건축 양식, 아름다운 풍광 사이를 흥미롭게 지나다녔습니다. 약간 이 장소에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들 때 쯤, 분위기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조금 다른 마음가짐과 자세로 평화행진을 향해 갔습니다.
너무 덥지 않은 초여름의 날 아침, 넓은 광장에서 각자의 평화 메시지를 담은 옷과 깃발, 피켓을 든 사람들과 함께 중부 기지코스를 걷는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요미탄에서 출발하여 토리이 미군기지, 가데나 미군기지를 지나 차탄까지 가는 코스였습니다.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기지의 70%가 오키나와에 있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었고, 한국에서도 미군기지의 모습을 익숙히 보아왔지만, 실제로 걸으면서 보이는 모습은 짐작했던 것과 다른 점도 많았습니다.
시내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기지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철조망 펜스들로 둘러싸여진 모습은 마치 미군이 자신의 땅에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도심 상공에서 굉음을 울리며 수시로 오가는 전투기와 헬기의 소음은 그 자체로도 고통이었고,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미군용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차들은 기지 근처로 갈수록 더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키나와에 오기 전에 읽은 여행안내서에 미군 차량과 교통사고가 나는 경우 미군에 유리하게 적용되는 법률로 곤란을 겪을 수 있으니 가급적 근처에 가지 말고, 운전을 하는 경우는 절대 사고가 나지 않게 주의하라고 적혀있던 것을 본 기억이 났습니다. 긴 언덕길을 내려와 토리이 기지 정문 앞을 지나칠 때에는 일부러 빨간색 신사 기둥을 세워놓은 이 노골적인 기만의 풍경이 기이하다고 느껴졌습니다.
토리이 기지를 지나와 가데나 기지 권역에 가기 전,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휴식 시간 동안 한국에서 온 참가자들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군산에서 팽팽문화제 참가자들과 함께 만든 판화를 소개하고, 새만금에서 불렀던 ‘도요새’ 노래를 부르며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이후 만코 습지센터를 방문하여 설명을 보니 도요새는 오키나와에도 머물더군요.
길고 긴 가데나 기지 옆 펜스를 지나 차탄에 도착하여 다른 참가자 분들이 준비해주신 간식과 음료를 먹고 마시며 평화행진을 마무리했습니다.
다음날 기노완에서 진행된 제46회 5.15평화대회에 참가한 후, 오후에는 사키마 미술관을 방문하였습니다. 오키나와 전쟁의 참상에 관한 그림을 보던 중, 전쟁 당시 산호 해변이 공습으로 파괴되었고, 날카롭게 깨어진 산호 위를 걸어 피난하며 발을 다쳤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얼마 전 산호 해변을 걸었을 때, 자연적으로 풍화된 동글동글한 산호 모래위에서도 꽤 발바닥이 아팠던 기억이 났습니다. 오키나와의 독특한 양식의 무덤이 피난의 장소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도, 아름다운 석회 지형의 움푹 파인 동굴이 학살의 장소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보았습니다. 삶의 깃든 공간이자 나를 품어주던 일상의 장소들이, 나를 공격하고 위협하는 전쟁의 공간으로 돌변하는 순간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평화기념공원과 치비치리가마를 방문하였을 때에는 짐작했던 것 이상으로 장소에 압도당하는 감각을 느꼈습니다. 기록물들을 들여다보며, 전쟁의 폭력성이라는 것은 한 개인이 상상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헤노코 신기지 매립 공사를 막기 위한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도착해서 인사를 드리자 ‘멘소레’라고 외치며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아침마다 덤프 트럭 진출입로에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공사차량을 막아선다고 합니다. 참가자 대부분은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었습니다. 정복을 입은 경찰들에 의해 누군가는 앉아있는 의자 채로, 누군가는 사지를 잡힌 채로 매일 매일 들려나가고 있었습니다. 헤노코 기지 건설을 막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삶도, 서식지 파괴로 보금자리를 잃는 수많은 생명들의 삶도 이처럼 매일 매일 쫓겨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국경 너머 먼 곳을 갔다고 생각했지만, 전쟁과 군사화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매우 비슷했습니다. 또한 이를 막아서며 만들어가는 평화의 길 역시 서로 다양하게 다르면서도 비슷한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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