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from 2004/07/16 10:06
나는 원래 밤에 사는 타입이었어. 그녀는 생각했다. 쑥스럽지만 '밤에 피는 장미'라는 오래된 가요제목을 자신의 별명으로 소리 없이 불러보았다. 꽤 맘에 드는 별명이야. 월요일 밤이었다. 내일도 출근하려면 일찍 자야할텐데, 월요일에는 항상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주말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몸이 그새 적응되어 버린 것이다. 한 주를 제대로 살려면 일찍 자야한다고 그녀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러나 어느 새 지방에 사는 가족이며, 남자친구와의 관계, 회사생활 등에 대해 늘 반복되고 답이 없는 생각들이 이어졌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생각들이 한바퀴를 돌아 다시 자야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녀는 자세를 바꿔 옆으로 돌아누우면서 S의 품으로 파고들어 오른손을 그의 사타구니 사이에 넣었다. 조그맣고 말랑거리던 페니스가 S의 의지와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어찌되었건 꿈틀꿈틀 생명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키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어서 그녀는 손의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페니스를 잡고 한동안 다시 잡념에 빠져들었다. 페니스도 그녀의 무관심을 알아채고 다시 작아져 갔다. 그녀는 지난 10년 간 자신이 사귀어왔던 남자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것들이 잊혀져 있었다. 그들이 더 이상 자신의 삶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때는 너무 많은 상처를 서로 주고받았던 것이다. 그녀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이전 남자친구였던 K와 그녀는 너무 많이 싸웠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자신이 K와 S, 둘만 사랑했던 것도 같았다. 그 이전의 남자들은, 사실 자신의 삶에 대한 광기의 표현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뒤돌아보면 그들은 매우 하찮은 존재들이었다. 그녀는 사랑, 그 자체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받은 자신에 대한 숭배를 사랑했던 것이다. 진짜였던 가짜였던, 그녀는 대학에 들어간 이래로 최소 5번, 최대 10번 정도의 연애를 해왔고, 대부분이 상당히 진지한 관계였다. 그 10년 가운데 누구와 지냈던 것이 가장 행복했을까 - 그녀는 현재의 남자친구와 이전의 남자친구를 비교해보았다. 그리고 다시 10년을 통째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남자들을 차근차근 순서대로 정리하다가, 그 3개월을 기억해냈다. 택해야 한다면, 누구와 함께도 아니었던 그 3개월을 택하겠어.
그 3개월은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남자친구 없이 보낸 유일한 기간이었다. 그녀 주변에는 남자들이 널려있어 한 남자와 끝나면 대기자들 가운데 하나가 다음 남자친구가 되곤 했다. 그녀가 그들을 가볍게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 오히려 너무 무겁게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남자들은 그녀의 남자친구이기를 포기하고 떠나서는 그녀의 남자친구가 되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대부분 그녀를 숭배하거나 미친 듯이 사랑했지만(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자주 고민에 빠졌다. 나는 이 사람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 걸까?
그랬다. 그 3개월이 시작된 지 얼마 안되어 직장동료와 술을 먹었다. 헤어짐이 그녀의 감성을 풍족하게 해주어 술은 끝도 없이 들어갔다. 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그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는데, 그가 그녀의 입에 키스를 했다. 술기운인지 욕정인지에 묻혀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섹스를 하다. 그녀의 인생에 최초의 '그냥 섹스'였다. 아무도 그녀의 섹스를 막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그녀는 그 남자의 페니스가 마음에 들었다. 남자의 육체에 대해서 객관화시켜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것이 처음이었다. 이전에도 남자친구들과 섹스를 했지만, 그것은 사랑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3개월이 가장 자유로운 시기였어. 어찌 생각해보면 그녀는 단 한번도 한 남자를 사랑한 적이 없는 것도 같았다. 그들은 그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늘 어떤 삶을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강요하고 있었다.
우연찮게도, 그 3개월 동안 그녀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상태였고, 그녀는 회사구석에 놓인 간이침대에서 살았었다. IT붐으로 많은 회사에서 직원들이 잠을 자며 일을 하던 때였고 회사 분위기도 자유로워서 그녀가 여자인 것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소지품이라고는 조그만 가방하나가 다였다. 보름에 한번쯤 집에 가서 다음 보름동안 입을 옷을 가지고 왔다. 주변에서 굴러다니는 책이나 잡지를 읽었고, 음악은 인터넷에서 MP3를 다운받아 들었다. 일하고 노는 데 사용하는 PC와 간이침대가 그녀의 것이라고 불리기는 했어도 결국은 회사 물건이었다. 심지어 안경조차 없어서, 모니터에 바싹 붙어 두 시간쯤 일하고 나면 눈물을 줄줄 흘렸는데도 그녀는 그것이 불편한 줄도 잘 몰랐던 것 같다.
희망도 없었지만, 절망도 없었다. 그렇게 평생 살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녀는 다시 S의 페니스를 조물락거리기 시작했다. 페니스는 깊이 잠이 들었는지 반응이 없었다.
나는 약해졌어. 그녀는 시멘트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던 한기를 기억해내고 몸이 오싹해졌다. 다시 그런 상황에 처한대도 두렵지는 않았지만, 귀찮은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 때 그 섹스일까. 술자리와 그 섹스를 생각하자 몸 중심부로부터 미묘한 욕망과 쾌감, 전율 같은 것이 순간 전류처럼 지나갔다. 그녀는 자위를 할까 생각했지만, 생각을 끊고 싶지 않았다. 피로가 몰려왔다. 약간 몸을 기울이자 S의 체온이 따듯하게 전해져왔다. 그녀는 그 남자의 몸을 기억하려고 해 보았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의 페니스는 아직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S가 괴로워하겠지? 그녀는 S를 사랑했다. 벌써 3년째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에 대한 그의 헌신은 적어도 그녀에게는 소중한 것이었다. 언젠가 한번은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S의 겨드랑이 사이에 머리를 묻고는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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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6 10:06 2004/07/16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