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가는 길1

from 2005/07/22 14:53
그 남자를 내가 처음 본 곳은 시테 공항이었다.
그 남자가 나를 언제 어디서 처음 보았는지는 모른다.
우리는 단 한마디도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삶에 가장 의미심장할 수도 있는 시간을 함께 했다.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꿈처럼 어떤 색깔과 느낌만이 선명할 뿐
실제로 그런 시간이 존재했었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공항에서 그를 보았을 때
나는 목구멍과 콧구멍으로
콧물처럼 혐오가 쏠려나오는 것을 겨우 삼켰다.
찝찝한 느낌.
그는 내가 본 동양인들 가운데 가장 뚱뚱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중국인일 거라 생각했다.
막연하게, 한국에서는 그렇게 뚱뚱한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중국인이라면 그럴 법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공항의 철제 의자 2개를 차지하고 앉아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그가 햄버거 조각을 흘리기라도 하면
대책없이, 하얀 와이셔츠가 더러워질텐데...
보통 사람들처럼 몸을 피하거나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이다

그는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늘고 둥근 은색안경테 안으로 두개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작은 빨간 점이 대각선 방향으로 질서정연하게 수놓인 감색 넥타이와
감색 양복,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려 보이는 투실투실한 팔과
그 아주 뚱뚱한 사람들 특유의 손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지만.

옷이 예뻤다.
와이셔츠는 눈이 부시게 깨끗한 연한 푸른 색이었다.
아니 하얀색이었다...아니 푸른색일지도 모르고 하얀색일지도 모른다.
검은 반곱슬의 머리카락이 단정하게 무스나 스프레이로 머리위에 고정되어있었다.

강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뿐,
나는 멀리 떨어진 스시 바에서 남은 스시에 다시 집중했다.
그녀는 나를 위해 점심을 준비해 주는 타입은 아니다.
아마 자신의 위한 점심조차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배가 고파지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것 저것들로
괴로워하면서 배를 채우고는 무언가에 또 골몰하겠지.
스시를 먹고 가는 것이 좋았다.
스시를 먹은 후에 간단하게 장을 봐서
그녀에게 먹을 만한 저녁을 차려주는 것이다.
그녀가 있는 곳에는 변변한 가게하나 없다고 들었다.

스시접시를 깨끗하게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여행가방을 끌고 게이트를 향해 그 남자의 옆을 지나치자 마자,
그 남자가 자신의 작은 서류가방과 양복 웃옷을 들고 일어나면서
공항의 철제 의자가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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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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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2 14:53 2005/07/22 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