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07'에 해당되는 글 4건

  1. 거울조각 2007/05/07
  2. On Your Mark (4) 2007/05/07
  3. (2) 2007/05/07
  4. 체코드림 2007/05/07

거울조각

from 2007/05/07 03:46

그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찬찬히 맡아본다.

사실, 내 콧속으로 강하게 와닿는 고소한 캬라멜 향은 그녀의 냄새가 아니다.

 

그녀의 진짜 냄새는 뭘까?

 

거울조각이 핏줄 속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유리가 깨어지면 겁이 났다.

아주 작은, 너무 작아서 땀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은 조각이 몸안으로 들어가서는

핏줄을 타고 다니다가 심장에 박혀 죽어버리는 것.

 

그런 일이 정말 있을 수 있는걸까?

 

아침에 거울을 깨뜨렸다.

거울은 큰 조각들로 부숴져서 플라스틱 프레임안에 담겨있었지만,

나는 아주 작은 조각들이 혹시라도 바닥으로 튀었을까 걱정이 되어

키친타월을 여러겹모아 물에 적신 다음 바닥을 열심히 닦았다.

커다란 컴파스처럼, 허리를 꺾고 거울 주변에 최대한 손과 발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랬는데도,

어딘가의 핏줄이 근질근질하다. 관자놀이 주변이 따끔거리는 것도 같다.

 

새벽 5시, 그녀는 조금 괴로운 듯 자고 있다.

오늘 잠든 그녀는 그닥 평화롭게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꿈속에서 다음날 해야할 일을 이래저래 시뮬레이션해보고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그녀의 냄새를 크게 들이마셔 본다.

하루에 두번 씻는 그녀에게서는, 사실 옅은 샴푸 냄새와 로션냄새 뿐 체취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종이인형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종이인형같다.

 

숱이 적은 머리칼이 부스스하게 펼쳐져있다.

그녀의 머리칼은 너무 가늘다.

너무 많이 일하고 너무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야.

 

내일은 S 전자 사람들을 만난다고 했었다.

 

팔꿈치께가 간지럽다. 왼손인가? 작은 유리조각들이 몸 여기저기의 땀구멍으로 튀어들어온다.

 

S전자 사람들과 만나면 그녀는 반짝 반짝 빛이 날 것이다.

그녀는 그런 일에 천재적 재능을 지니고 있다.

 

천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 X맨에 대한 두려움.

 

나는 그녀가 사람들을 만나는데 있어 천재적 재능을 가지 고 있다는 것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매번, 사실은 결코 원치않는, 사람만나는 일을 하러 가기 직전까지

심각하게 표현하는 각종 히스테리컬한 반응들을 모두 받아주고

다녀와서는 으쓱해져서 재잘재잘 늘어놓는 어린애같은 자랑도 모두 들어주면서

나는 너무나 뿌듯해지곤 한다.

 

혹시,

그녀가 유리조각을 밟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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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7 03:46 2007/05/07 03:46

from 우울 2007/05/07 03:15

블로그가 재미없어졌다

어찌된 일이지?

 

누워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밤이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창 너머로, 두개의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조금은 다급하게 깜박이고 있다.

구조요청은 아니다.

뭘까?

 

On your mark 를 듣고 있다.

 

나보다 훨씬 훨씬 먼저,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결정하고 그 무게를 견디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 나쁜 짓이다.

미안할 짓을 하면 안돼요.

 

나는 죽을 때까지 어떻게 살지 고민하다가 죽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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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7 03:15 2007/05/07 03:15

체코드림

from 영화에 대해 2007/05/07 01:22

대화란 가능한가?

 

내가 '개'라고 말할때, 너는 정말 나와 같은 '개'를 듣고있니?

내가 'FTA'라고 말할 때, 너는 나와 같은 'FTA'를 듣고 있니?

 

누군가에게 내가 경험한 무언가를 전달하려할 때 우리는 '미디어'를 사용한다.

'매체' 혹은 '매개체'라고 번역되는 그것.

순수한글이던 한자한글이던 한글로 말해보려 하지만 '미디어'가 좀 더 넓은 의미로 쓰일 수 있는 것 같아.

사실, 이게 재미있는 부분이다.

내가 '미디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좀 더 잘 나를 이해할 것이라는 믿음.

 

대체 더 잘 이해한다는 것, 서로 대화가 더 잘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미디어'를 거치면, 원본은 손상되게 마련이다.

원본은 '미디어'의 생산자에 의해 일부 강조되고 일부 삭제되는 등 편집이 되는데,

'미디어'의 소비자는 이 내용을 제 멋대로 왜곡해서 받아들인다.

 

이 사실을 모두 알면서도, 우리는 '미디어'의 순수성이라던가 '진실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죽음'에 매우 집착하는 '바르트' 따위는 사실 현실 속에서 너무 심한 사치다.

대체 '미디어'에 진실성이 없다면 우리는 너무나 고독하지 않은가.

 

'체코드림'은 '미디어'의 '진실성'에 대한, 

고독할뻔 했지만 고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다.

 

분명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말이다.

대화라는 것이 가능할 것만 같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수많은 '거짓' 미디어들에 대해서는 아주 쉽게 이해하는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 하나의 '진실'한 미디어에 대해서는 정말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다.

 

'진실한' 미디어는 그 자체로 완결적이기 때문에,

다른 미디어로 그것을 옮기려하면 '원본'이 손상되어

그 고유의 것을 느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을 마주할만큼 강하지 않다.

아마도 그것이 인간사회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런 평가라니, 너무 오만한거 아니니?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나는 과연 '진실한' 미디어를 만들어 내고 있는걸까? 

 

개토는 어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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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7 01:22 2007/05/07 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