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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메모- H사 보고서 중에서.

- 기업의 이윤이 일자리 창출이나 소득 재분배로 이어지지 않고 오로지 자본의 배를 불리는데만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노동자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 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러한 현실은 ‘파이를 키워서 나누자’나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라는 말이 거짓임을 뼈저리게 확인시켜준다. 자본과 노동이 함께 나눌 수 있는 파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노동강도 강화 속에 흘린 노동자의 피땀은 자본만의 파이를 키우는데 쓰였다. 회사는 과로사와 노동재해로 쓰러져간 노동자들의 주검을 딛고 저 혼자만 살아남았다.


- ‘벌수 있을 때 벌자’며 열심히 일을 해 보지만, 그 와중에 과로사로 죽고, 사고사로 죽고, 생계를 비관해 자살을 하는 죽음의 행렬은 오히려 늘어만 간다.
 

- 자본의 탐욕은 끝이 없다. 그 탐욕에 조응하여 ‘열심히’ 일만 하는 것은 나의 생명을 단축하는 일이다. 노동자가 복종하면 할수록, 동의하면 할수록 자본은 점점 더 노동자의 목을 죄어올 뿐이다. 자본의 실패는 노동자들에게 전가되지만, 자본의 성공은 자본만이 누릴 뿐이다.
 

- 자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이윤이 공격받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그리고 인간답게 살기를 요구하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노동강도 강화를 통한 자본의 이윤율 극대화 구조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해외공장, 물량 경쟁, 고용이데올로기, 모듈화, 플랫폼 통합과 자본의 관리와 통제하에서 높아져 가는 노동강도를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완화’ 시키겠다는 요구는 자본의 이윤 생산 구조, 즉 노동 착취 구조에 맞서기 위한 대장정의 출발이다. 그러하기에 현장에서 외치는 ‘건강하게 일할 세상과 일터’는 바로 노동해방과 평등세상의 다른 이름이고, 노동강도 저하 투쟁은 노동해방과 평등세상을 위한 투쟁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죽을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하는, 말 잘 듣는 노동자’를 만들고 관리하는 자본의 통제와 억압을 뚫고, 건강하게 노동하고 생활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착취의 사슬을 잘라내고, 노동자는 이윤율 향상을 위한 기계가 아니라 인간임을 선언하고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의 세계화로 인해 핍박받는 민중들을, 그리고 나와 내 가족과 동료들을 구하는 길이다.
 

- GT-5를 위해 글로벌 경영전략으로 무장한 현대자동차가 그리는 2010년의 미래는 눈이 부실 정도다. 상품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켜 세계 5위 수준의 글로벌 메이커로 도약한다는 2010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미래도 과연 자본의 미래만큼 희망적일까? 플랫폼 통합, 모듈화, 해외생산 확대, ERP, 하이브리드카…. 자본에게 희망인 이 말들은 노동자에겐 고용불안, 전환배치, 노동강도와 현장통제 강화 등 그저 절망의 언어로 들릴 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노동자, 연평균 1,500시간 남짓 일하는 유럽 노동자들에 비해 무려 1,000시간이 더 많은 2,500시간을 주야맞교대에 철야특근 마다않고 죽어라 일을 해야 하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수면장애, 만성피로, 과로사, 근골격계 직업병, 안전사고의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다. 현대자동차의 초 장시간 노동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만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 자동차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까지 함께 악화시키고 있다. 가격경쟁력이 뛰어난 고품질의 차를 앞세워 세계시장을 무서운 속도로 잠식해 들어오는 현대[기아]자동차의 ‘질주’ 앞에서 유럽의 자동차 자본들은 공격의 화살을 자국 노동조합에 돌렸고, 유럽의 거대노조들이 고용유지를 위해 노동시간 연장과 유연화, 임금동결 등에 합의하면서 노동조건이 후퇴해왔다. 현대자동차의 장시간 노동이 전세계 자동차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는 셈이다.
 

- 자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일은 인간답게 노동하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건강하게 생활하고, 여가와 여유를 즐기며 살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2010년 노동자의 미래가 절망이 될지 희망으로 변할지는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 노동조건의 질적인 향상을 둘러싼 투쟁이 필요하다. 노동력의 ‘판매조건’을 넘어서, 생산과정에서의 노동력의 ‘사용조건’ 또는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을 둘러싸고 작업장의 관심을 쟁점화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자본주의적 노동의 극복을 전제로 하고, 현장의 실천투쟁과 연결되었을 때 충분히 인정되고 확장될 것이다.
 

- 초기 노동자 건강권 투쟁은 노동과정에서 발생한 직업병과 재해로 훼손된 건강과 목숨에 대한 보상에 중심을 두었다. 그러나 단순 보상만으로는 결코 현장의 유해요인을 개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 해결을 위해 노동자들은 작업장 내에서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예방차원의 ‘보호’요구를 발전시켜 나갔다. 각종 유해물질과 유해인자 등 구체적인 요인들을 대체, 변경하거나 공학적 대책과 보호구 착용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건강보호’논리에서는 노동자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직접적인 원인들로 구체적인 유해인자나 요인들, 즉 중금속, 유기용제, 소음, 인간공학적 유해요인들을 꼽으며, 이에 대한 산업위생적, 산업보건적, 그리고 인간공학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노동자 건강권 투쟁은 보상과 보호에 머물러 있지 않다. 자본의 구조조정과 유연화 공세가 노동자의 몸과 삶을 망치고 있다는 총체적 인식을 바탕으로 노동재해와 직업병에 대한 대응은 원인 진단에서부터 바뀌어가고 있다.
- 직업병, 노동재해의 근본적인 원인이 ‘자본의 생산성’을 ‘노동자 건강권’보다 우선시 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작업장 내 권력 관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작업장 내 권력 관계는 그대로 둔 채 ‘사후적 보상’과 ‘유해인자 중심의 보호’의 차원에만 매달린다면 노동자 건강권을 온전하고 긍정적으로 지켜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작업장 안에서의 생활 뿐 아니라 작업장 밖의 일상생활을 포괄하는 ‘노동자 삶의 재구성’을 시도해야 한다.
 

-  8시간 일하고, 8시간 쉬고, 8시간 잠자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은 노동자의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의 몸과 삶을 규정하는 직접적인 힘은 자본의 ‘라인-생산체제’이다. ‘라인-생산체제’는 노동과정에서 겪는 노동강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몸과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이것은 경쟁력, 생산성, 품질 등을 모두 포괄한 상징이며, 자본은 이를 사수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라인은 노동자의 몸을 위해서는 세우지 않아도, 생산을 위해서는 세울 수 있다.
 

- ‘노동해방’은 노동의 일상과 조우하고 연루되어 노동자들의 삶 속에 뿌리내려야 한다. 그 지향은 주체인 노동자의 몸과 일상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재구성해야 할 과제이다.
 

- 사회적 건강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특히 일하는 모든 이들과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들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불이익 당하지 않고 소외받지 않는 상태로 재해석해야 한다. 영적 건강은 한마디로 사상과 이념의 자유라 해도 무방하다. 건강이란 사회구성원 모두가 골고루 그리고 일상적으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행복한 상태이며, 평등세상과 노동해방의 또다른 표현으로 자리매김하는 관점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 자본이 거두어들인 만큼 노동자는 잃어왔다. 확대된 이윤의 규모만큼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누적되었으며, 자본의 현장 장악력이 커진 만큼 노동자의 조직력과 현장 통제력은 약화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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