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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칼럼]
내가 경향을 비난하지 않은 까닭
![](http://img.khan.co.kr/news/2010/03/09/20100310.01100134000004.01S.jpg)
그 사나이는 1985년 제주도에 정착하여 200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직 제주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했다. 가난을 각오하고 결혼 같은 것은 처음부터 포기했던 이 예술가에게 유일한 걱정거리는 쌀이 아니라 필름과 인화지였다. 이것들을 살 돈마저 떨어지면 그는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해 번 돈으로 필름을 샀다. 그리고 다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해서 제주의 신비를 2만장의 필름 속에 남기고 루게릭 병으로 오십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불쌍해 보이는가? 제주에 가 그가 남긴 사진을 보라. 그 앞에서 우리가 눈시울을 붉힐 때, 그는 숭고한 빛 속에서 웃고 있다.
부끄러움은 영혼의 소금과 같아
철학자는 지혜를 위해 살고,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위해 죽는다. 기자는? 진실을 위해 싸운다. 밥벌이 때문이라면 그 좋은 머리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은 얼마든지 널려 있다. 광고 끊어지고 월급 못 받을까 두려워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신문이라면, 경향신문과 조선일보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런 신문이라면 감싸고 돌 까닭이 아무것도 없다. 40년 전에 박정희를 비판하지 못한 신문이 신문 아니었듯이 지금 이건희를 비판 못하는 신문도 신문이 아니다. 그런 신문사는 망해서 아쉬울 일 없다.
내가 경향신문을 비난하지 않은 건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다. 그 칼럼을 보내고 나는 편집국 기자 세 사람과 직위 순으로 올라가며 통화를 했다. 나중에 용기 있게 고백했듯이 그분들은 광고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솔직하게 전하면서 표현을 조금만 완화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거절했더니 다음엔 단 하루만이라도 기다려 달라고 거의 애원하듯 간청했다. 나는 매몰차게 거절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참 뒤 문자가 왔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말에 담긴 부끄러움 때문에 나는 그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난할 필요가 없었다.
부끄러움은 영혼의 소금과 같다. 수치를 아는 영혼은 결코 썩지 않는다. 그리고 반드시 그 부끄러움으로 찌든 영혼의 거적대기를 팽개치고 일어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내 글이 인터넷 매체에 올라온 뒤 경향신문 평기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래서 맹자가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의(義)의 싹이라고. 그런 신문사를 광고 끊어져 망하게 내버려둔다면, 이제 그건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이다.
‘씨알의 소리’가 가르쳐준 진실
올해는 함석헌이 <씨알의 소리>를 창간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돈에 매여 진실 앞에서 침묵할까 염려해 처음부터 일절 광고를 받지 않고 오직 독자들의 구독료만으로 월간지를 발행했다. 그렇게 찍어낸 것이 많을 때는 1만부가 넘었는데, 그런 정성이 모여 유신독재를 끝냈던 것이다. 군사독재가 자본독재로 바뀌었을 뿐,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할 일은 비슷하다. 삼성 휴대폰과 노트북은 바꾸고, 삼성카드는 자르고 가맹점 해지하고, 삼성에 든 보험은 해약하고, 삼성을 비판하는 경향신문은 정기 구독하면 된다. 부수 늘수록 적자라는 간첩들의 유언비어에 속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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