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썼다 또 짤린 글

이 영화는 많은 상징과 은유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곱씹어 보면 볼수록 다양한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의 배경은 2040년 영국사회이지만 누구는 이 영화에서 파시즘에 대한 비판을 읽을 수 있을 것이고, 혹은 대처리즘이나 조지 부시 세계관의 문제점을 파악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이 영화를 통해 한국사회를 들여다 본다.

영화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우리의 현실을 파고든다. 지하벙커를 연상시키는 권력자의 소통불가한 오더와 권력에 의해 장악된 언론이 보여주는 거짓과 왜곡, TV 앞에서 통제당하는 대중, 죽음을 맞이하는 고든과 끌려가는 미네르바, 대중에게 가해지는 공권력이라는 폭력, 쓰고 있는 가면과 손에 들려진 촛불, 그리고 영화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남대문에서 화양산에서 용산에서 일어났던 불길까지 온 몸을 두들겨 맞은 느낌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등장인물인 V(가면을 쓰고 등장해 영화 끝까지 그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와 이비의 분노와 고통, 두려움과 저항에 ‘공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싸이코패스를 이해하는 핵심은 싸이코패스가 타인의 고통과 상처를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싸이코패스는 울고 있는 사람과 웃고 있는 사람의 얼굴표정에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싸이코패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얘기되기도 한다. 인간의 희노애락에 대한 감각이 없기 때문에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을 잔인하게 강간하고 죽이면서도 그게 왜 잘못된 일인지 느끼지 못하고 죄책감을 가지지 못한다. 냉정하고 침착하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떠한 거짓과 위선도 서슴없이 행한다.

영화 얘기 중에 뜬금없는 것 같지만 최근의 싸이코패스 논란은 ‘소통’과 ‘공감’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깨닫게 해준다. 소통은커녕 공감도 하지 않으려는 권력자는 영상으로만 얼굴을 드러내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V가 일으킨 소동을 무마시키라고 윽박지른다. 대중의 공포감을 자극하고 왜곡된 보도를 격려하고 대중을 통제하려 든다.

벙커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권력자 또한 국민들에게 그리 녹녹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우선 그는 매우 드라마틱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밥도 굶어봤고 달동네에서도 살아봤고 사회 밑바닥에서 안해본 일이 없으며 데모도 해봤고 대기업 최고경영자도 역임했고 전 세계 안 가본 나라가 없다. 또한 그는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실패해본 적이 없다. 어떤 시안에 접근하거나 비판을 받을 때 습관처럼 내뱉는 말이 ‘그거 내가 경험해봐서 다안다’라고 한다. 지나친 자신감은 그를 매우 자기 중심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에게는 소통과 공감이 의미없어 보인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가 삶의 버거운 무게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시장 아주머니를 안아주고 자신이 아낀다는 목도리를 걸어주지만, 그가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은 ‘자신’이 경험했던 가난이며 이를 극복한 ‘자신’의 굴하지 않은 강철같은 의지에 대한 추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무리없이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은 아마 자신과 강부자 정도일 것이다. 의지가 약해 아직도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 철거민, 서민, 민중, 비정규직 노동자 등의 삶에 대해 ‘공감’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방송국을 장악하고 공중파를 통해 대중들에게 영국의회를 폭파시키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V는 권력뿐 아니라 부정한 권력이 침묵한 TV 앞 대중에게도 책임을 묻는다. 오늘날 잘못된 현실, 억압의 정부는 당신들이 방관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TV 앞 대중은 거짓말만 늘어놓는 언론에 대해 욕하면서도 TV 앞에서 무력화되며 세뇌당한다. 그러나 V가 썼던 가면을 쓴 아이가 권력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대중은 TV 앞을 벗어나 'V'가 되어 거리로 나간다. 수많은 'V'가 거리를 점유하고, 거대한 도미노를 완성시키는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자유를 획득한다. 그리고 가면을 벗고 자신의 얼굴을 찾게 된다. 권력자가 맞는 것은 당연히 죽음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결말이 오는 것은 당연히 피해야 할 일이다. 우리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며 당연히 평화와 안정을 원한다. 구체적인 홍보방법까지 알려주며 용산참사를 통해 촛불시위가 확산될까 두려워 연쇄살인범 강호순 수사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라고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 덕분에 강호순을 통해 이 정부의 소통불가와 위선을 더욱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신과의사인 정혜신은 <사람 VS 사람>이란 책에서 소통불가의 불도저에게 필요한 것은 ‘백미러’라고 충고한다. 뒤를 돌아보고 속도를 조절하고 국민과 공감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말 가슴 아파해야 할 것은 ‘본인이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바로 그 청계광장에 어린 학생들까지 나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을 든 국민의 마음과 공감하고 소통하지 못했던 시간들이어야 한다. 그 심혈을 기울인 청계광장에 기괴한 마스크를 쓰고 촛불을 든 거대한 검은 망토 무리를 접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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