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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근 교수의 특강

지난 주에 한국학 연구소에서 초청 특강이 있었는데, 바빠서 미처 정리를 해두지 못했더랬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목은 "다시 생각하는 남한 노동계급의 역사"

국내에서도 번역 발간되었던 선생님의 책 [한국노동계급의 형성] 에 담긴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한국 노동계급, 노동운동사를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자리.

서두에, 한국학 연구소 소장이 구해근 교수를 소개하면서 박노해의 시 한 편을 읊었다.

 

" 어쩌면 나는 기계인지도 몰라
컨베이어에 밀려오는 부품을
정신없이 납땜하다 보면
수천번이고 로버트처럼 반복동작 하는
나는 기계가 되어 버렸는지도 몰라 ......"

 

(물론 영어로....I might be a machine ~~~)

 

이상하게 마음이 짠하더라... 내가 박노해 시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등하교 길. 대학 캠퍼스를 다 지나야 우리 고등학교 건물에 닿을 수 있었는데, 올라가는 길에 수많은 시, 그것도 교과서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시들이 걸려 있었더랬다. 그 때 느낌은 구슬프면서도, 생경하다는.... 어쨌든 대학에 들어가서 서클 룸에 굴러다니는 박노해의 시집을 처음 보고, 아니, 그 때 그사람이잖아.. 를 외치며 무척이나 반가워했었다...   박노해씨가 체포되던 날, 진짜 울적한 마음으로 선배와 술을 마셨던 기억도 난다... 자, 딱 여기까지만... (하지만, 그의 빛나는 창작과 치열했던 활동들에 대해서는 지금도 경외감을!)

 

뭐 선생님의 이야기는 책에 있었던 내용을 그대로 축약한 것이라,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요점이 머리에 가지런히 정리되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몇 가지 주요 논점을 요약하자면...

1) 일대 전환점으로, 혹은 본격적인 시발점으로 평가 받았던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에, 그 못지 않은 수많은 이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피땀과 불굴의 노력이 있었다.

2) 우리 사회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봉건적 문화)이 노동자 계급의 자기 정체성과 문화 창조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3) 노동운동의 성장이 빨랐던 만큼 그 쇠퇴도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현상. 신자유주의의 팽창은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특히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물론 IMF 라는 초단기 충격이 강한 탓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노동자의 계급의식이 생산 과정 그 자체로부터 형성되었다기보다 한과 분노에서 촉발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 일정 수준의 경제적 성과를 통해 이것이 소실되자 동력이 상실되고, "중산층"이데올로기의 확장은 노동자의 계급의식과 연대에 심각한 장애를 가져오고 있음. 또한 정치 투쟁, 민중 운동과의  결합이 한국 노동 운동의 특징 중 하나 였는데, 시민운동이 분화해나가면서 사회/공공 이슈에 대한 선점이 어렵게 된 것도 한 이유. 

4) 본인은 그저 학자일 뿐이라 감히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경제적 투쟁을 넘어선 사회적 정의를 위한 투쟁, 도덕성에 기반한 투쟁에서 다시금 동력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

 

 




예전에.. 책을 읽으면서, 이론 서적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쓸 수도 있군... 하면서 혼자 감격했었다. 어줍잖게 이것저것 한다고 돌아다니면서 어느 하나 제대로 안 하는 것보다, 이 정도만 할 수 있다면, 공부란 것도 할 만 하다.. 는 생각을 했더랬다.

 

진보, 보수를 망라하여 너나할 것 없이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과연 무엇이 정확한 진단이며 처방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론적 평가나 전망과는 별도로, 가장 밑으로부터 끊임없이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과거에도 그래왔고, 억압과 착취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

 

 

바람이 돌더러

 

모래 위에 심은 꽃은
화창한 봄날에도 피지 않는다
대나무가 웅성대는 것은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갈대가 두 손 쳐들며 아우성치는 것도
바람이 휘몰아치는 까닭이다
돌멩이가 굴러 돌사태를 일으키는 것은
바람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함이다

대나무나 갈대나 돌멩이나
바람이 불기에 소리치는 것이다

우리는 조용히 살고 싶다
돌아오는 건 낙인찍힌 해고와 배고픔
몽둥이에 철창신세뿐인 줄 빤히 알면서
소리치며 나설 자 누가 있겠느냐
그대들은 우리더러
노동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우리 돌처럼 풀처럼 조용히 살고 싶다
다만 모래밭의 메마른 뿌리를
기름진 땅을 향해 뻗어가야겠다
우리도 봄날엔 소박한 꽃과 향기를 피우고 싶다
우리로 하여금 소리치게 하고
돌사태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바람이 드세게 몰아쳐
더이상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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