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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몬트 산중에서...

어제 오늘,

버몬트에 살고 계신 집주인 할매할배 댁에 다녀왔다.

지난 가을에 한 번 갔었는데, 봄이 또 절경이라 하길래...

한 번 더 놀러 오라고 인사말 건네실 때 냉큼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여기는 그래도 보스턴보다 북쪽이라 이제서야 봄 기운이 나기 시작했는데..

과연 신록이 대단하더군.... 그리고 천지에 널려 있는 이름모를  들꽃, 산꽃들...

 


 

심지어 날씨마저 좋아서, 정말 구름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한국과는 분위기 완전 다른 한산한 고속도로.... 가는 길부터 호연지기가 무럭무럭!!!

 

(화면에 보이는 희미한 검은 점은 미확인 비행물체가 아니라... JY의 차창에 묻어있는 먼지... 와이퍼로 슥삭 했더니 땟국물이 좌르륵 .... ㅡ.ㅡ)



애팔래치안 산맥 분지의 한 자락에 집이 포옥 파묻혀 있는데,

입구에서 보면 이렇다.

 

 


 

그리고 거실에서 내려다보면?

 

 


저 팔자 좋아보이는 개는 "진도"

할배 표현으로는 개가 개답지 않게 egotistical (자기중심적)이란다.

사람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엉겨붙지 않고, 물끄러미 저렇게 산 밑 바라보기를 즐긴다.

 

처음에 입구에 들어설 때는, 사납게 짖어대더니만 "진도야.. 나 기억 안 나?" 하니까 금방 꼬리를 흔들며 나름 반가운 모습을 ... 어찌나 대견하던지... ㅎㅎㅎ

근데, 은근히 놀란 건, 밤에  지하 손님방 (원래는 아들딸 방) 에서 JY와 담소를 나누다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니, 거실에 있던 진도가 내려온 거다. 침대 옆에 스윽 하고 나타나 꼬리 몇 번 흔들더니 우리 방 앞에 누워 버리는.... 문득, 애틋한 (? 사람한테도 별로 안 느끼는 정서를...) 맘이 들어서 한참이나 보듬어줬다. 좋은 말로 훈계도 했다. 니가 시간이 없냐, 뛰어놀 공간이 없냐, 밀린 일이 많냐... 운동 좀 해.. 이 살 좀 봐...  (산 속에 사는 개 치고는 너무 뚱뚱하다. 운동 안 하고 맨날 먼산이나 바라보고 있으니... ㅡ.ㅡ)

근데, 문득, 개 귀에 경읽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 앞 연못...

할배가 tadpole 많다고 그래서, 그게 뭔가? 했더니만 올챙이였다. ㅡ.ㅡ (영어 동식물 이름 정말 쥐약이다.  사실 한국말로도 꽃이름 나무 이름 절대 모르는데.. 하물며 영어로야.... 할배가 매란국죽 영어로 갈쳐주는데 도대체 국화 발음이 어려워서 원... )

올챙이 크기가 손가락 한 마디 크기부터 주먹만한 크기까지 정말 다양하기 그지 없었는데... 이렇게 올챙이를 직접 본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싶었다.

저녁에 읍내에 나가 외식을 했는데.. 들어오니 개구리 울음 소리가 벌써부터 장난 아니더라. 내가, "oh, frogs are singing" 했더니만, 할배가 "singing? NO! they are crying".. 하면서 아주 시끄러워 죽겠단다 ㅎㅎㅎ

 

어제 밤에 반달이 예쁘게 떴는데, 반달이 그리도 밝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었다.

불을 다 끄고 누웠는데도 침대 위에 창문으로 쏟아지는 불빛이 남아 있어, 가로등인가 하고 내다보았더니.... 그저 반달이었다. 

아까 오후에 구경갔던 할아버지 이웃 집, 그 옥탑이 떠올랐다.

저렇게 환한 달빛 아래 술 한잔을 들고 있노라면, 이태백이 아니더라도 입에서 저절로 시가 읊어지겠구나...

 

 

 


 

바로 이 집.. 할배 옆집인데, 그렇다고 건물이 가까운 건 아니고 말하자면 옆 언덕... 학부 때부터 친구였단다. 건축가인데..지붕에 해괴하게 생긴 구조물이 바로, 술 마시려고 지어 놓은 옥탑이란다. 바로 내가 꿈 꾸던 곳이다.. 여기서 내려다 본 광경은?

 

 


할 말을 잊었다. (사진의 주인공은 내가 사는 집 주인 할배)

 

 


그 집에서, 할배네 집 까지 가는 길....

 

저 아름다운 땅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원주민 학살의 역사,

그리고 저 평화로움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피로 물들이고 있는 제국주의의 역사..

그런거 다 모르는 채로,

그저 자연 - 있는 그대로만을 보면서, 이런 데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뱀발

 

할배는

여기 하버드 한국학 연구소의 소장을 하다 정년퇴임하신 인류학 교수.

한국전쟁 때 외교관으로 한국에 머물렀고, 이후 1965년도에 인류학 박사과정 중에 충남 서산에서 지역사회 현장 연구를 진행하느라 또 한국에서 머무른 적이 있다.

 

할배의 무용담과 에피소드를 듣고 있노라면,

신기하고 재밌다는 생각과 더불어 어려웠던 우리네 부모 세대의 모습에 대한 연민...

(의사도 병원도 구경하기 힘들던 서해 섬마을에서 할배가 폐렴에 걸린 동네 아기의 목숨을 구한 사건 때문에, 마을에 송덕비(ㅜ.ㅜ)가 세워졌고 그 행사에 군수가 직접 행차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리고 책으로나 보던 한국 지배계층의 그 모습...

도대체 70년대에 태어난 나도 일년에 쇠고기는 생일날과 제삿날 밖에 못 먹었는데,

60년대에 벚꽃 만발한 서울의 가정집 정원에서 각국 외교관 불러다놓고 쇠고기 바베큐 파티들을 했다니, 이몽룡이 변사또의 생일잔치에서 일갈하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나. 하긴, 625 당시 부산에 피난 정부가 세워져 있던 시절에도, 할배는 "진짜" 기생이 나오는 요릿집에서 식사대접을 받고는 했단다.

미국 외교관, 그리고 하버드 박사... 그를 대하는 한국 지배계층의 모습과 태도.. 사실 안 봐도 비디오 아닌가..... 직접 이야기로 듣고 나니 더욱 기가 찰 뿐이지...

 

요새 한국의 젊은 세대가 미국에 대한 감정이 별로 안 좋지 않냐는 이야기를 하다가, 평택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는데.... 사실, 할배한테는 별루 할 말이 없었다. 

미국의 침략적 제국주의적야 뭐 거기서 비판하고 말 것도 없고... 

오히려, 땅 내놓으란다고 덥썩 내어주고, 거기에 더해서, 주인양반 심기 상하지 않도록 더욱 야멸차게 나서서 땅을 챙겨대는 마름의 모습이 더욱 가관이니... 뭐 미국인 할배한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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