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소소한 일상

0.

 

강릉에서 강의가 하나 있어 후딱 다녀왔다.

강의는 달랑 두 시간, 왕복 고속버스 일곱 시간.... ㅡ.ㅡ

 

홀로 낯선 지방 기차역이나 터미널을 나설 때마다 느끼는 그 신산함과 정체모를 기이한 흥분감은 나름 중독성이 있는 듯 싶다. 이미 대전에는 사라져버린 눈들이 여전히 온 산을 덮고 있었고, 날씨는 엄청 쌀쌀한 데다 하늘은 그지 없이 푸르렀다.

 

자주 없는 버스 편 땜시, 강의 후 한 시간을 기다리게 생겼는데

P 샘이 Terarosa 라는 커피집을 추천해주셨다.

 

오호......

맛나기도 하여라!!!  진짜 깜딱 놀랐음!

바리스타들이랑 이런저런 수달 떨며 한 시간 보내고, 커피도 한 봉지 사고... 마당 풍경을 보니 단풍철에 오면 더 좋겠더라...

그나저나 참 이상한 것이...

특별히 낯을 가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싹싹한 성격도 아닌데, 

혼자 여행만 가면 평소와 달리 친절해지는 이 심리적 기전은 뭐야?

 



0.

숭례문이 불타던 날. 자려고 누웠다가 뉴스나 한 번 확인할까 해서 TV 틀었는데,

한 5분간 상황파악이 안 되더라.

그리고도 한 시간 이상을 계속 YTN 생방송을 봤는데, 이건 뭐 전대미문의 화재  라이브쇼... ㅜ.ㅜ  수백만 명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그냥 속절없이 타들어가고만 있는 상황이 참 납득하기 어려웠음. 

그쪽 업계 종사자인 J에게 밤 열두시 '야, 남대문이 불타고 있다.' 문자를 보냈더니 집에 TV가 없는 이양반 '뭔소리?' 하며 단말마의 답문.

어이 없어 다시 전화해주니, 말귀를 못 알아듣고 횡설수설한다... "뭐? 지금 불타고 있다고? 숭례문이? 진짜로? "

이 양반, 9/11 세계무역센터 무너졌을 때 마침 인도네시아 친척분 집에 머무르고 있다가 뉴스 화면 보고  '이 동네 사람들 드라마 스케일 한 번 크네'하고 호방하게 웃었던 전력을 가진 분이기도 하다.  

현실의 재난들이 하도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라, 이제 웬만한 픽션들로는 사람들을 놀래키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닥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도 아니건만, 불타는 기왓장이 우수수 떨어져내릴 때 진짜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거 같기는 하더라...

 

0.

지난 설날... 초딩 3학년인 효경이랑 이런저런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누던 중에 대형마트에 있는 놀이방 이야기가 나왔다.

 

개구리: 야, 거기는 유딩들이나 가는데 아니냐? 초딩들 수준에는 좀 안 맞지!

토끼: 그렇긴 해. 거기는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 아이들이나 가지.

개구리: 엉???

토끼: 왜? 나는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

개구리: ㅜ.ㅜ

 

초딩도 아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나는 왜 아직 모르고 있을까....

 

그나저나, 초딩들의 클리셰 사용은 대단하여... 한번은 6학년인 송담이가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내가 번역서 초교를 미친 듯이 교정하고 있으니까..

 

송담: 언니, 그거 하면 돈 많이 벌어?

나: 아니, 거의 돈 못 받어...

송담: 근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해? 입에 풀칠이라도 해보려고?

나: 응.... (ㅜ.ㅜ) 

 

도대체 저런 표현들은 어디서 배우는 거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