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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의심하라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자 누구인가... 따위를 읇조리며 포스트모던의 분위기를 풍기려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인류 생태학" 수업을 들으면서 생각했던 것 몇 자 끄적...

 

올해 초, 한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비용-편익 분석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사실 그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비용-편익 분석은 그야말로 투입과 산출의 비교를 통해 여러 가지 대안들 중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찾는 "과학적" 도구였다. 위해도 평가도 마찬가지다. 방법론이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현존하는 위해(hazard)에 대해 수용가능한 기준점을 찾는 역시 "과학적" 도구였다.

근데 이렇듯 무미건조한 "사실"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우리의 건강이 관련되어 있는 한, 과연 비용은 무엇이고 편익은 무엇인가? 노동자 한 사람 죽어서 보상하는데 5천만원 들고, 안전 설비를 설치 유지하는데 1억원이 든다면 우리는 기꺼이 안전 설비를 포기해야 하는가? 실제로 대처와 레이건 시대에 이루어진 많은 규제완화 조치들이 "비용/편익 분석"이라는 evidence-based policy 채택하고 있었다. (사실, 비용/편익 분석은 자본론만큼이나 인간 노동의 "상품"가치를 잘 보여준다. 훌륭도 하지)

 

불확실성과 복잡성의 위험사회에 위해도 평가는 어찌 보면 가장 인기 있는 연구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전자파가 어떻고 라돈이 어떻고, 유전자 조작 식품이 어떻고.... 그래서 여차저차 계산해보니 최대 허용량은 어떻게 되겠더라, 혹은 이거는 인간한테 위해하지 않은 거 같더라 등등... 근데, 위해도 평가는 수많은 가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매우 다른 결과를 보일 수 있다. 환경역학자들은 동물실험 결과와 기존의 문헌 리뷰를 통해 충분히! 합리적인 가정을 설정한다고 스스로들  믿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다보니 연구 결과가 하나 나올라치면 연구 방법론, 가정의 타당성에 관한 논쟁이 주류를 이루고 정작 본질은 논의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를테면 GMO(유전자 변형식품)에 대한 위해도를 평가할 생각은 하면서도 굳이 GMO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해보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신발 가게에 가서 구두를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점원이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빨간 거 살래요, 파란 거 살래요 하는 식이다. 이러면 대개 정신이 팔려서 살까 말까를 고민하는게 아니라 빨간색과 파란 색중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게 된다)

 

이런 방법론들은 대안적 전략(alternative strategy)에 대한 가능성을 가려버린 채 객관식 문항처럼 좁은 틀 안에서 주어진 것들 중 무엇이 제일 좋을까만 고민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과학이 사회적으로 재구성된다는 상식에도 불구하고 줄곧 까먹고, 또 가끔씩 새로운 일인양 다시 깨닫고는 한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학부 때, 전공의 때 배운 예방의학은 너무 "맥락"이 없었다. 사회적 고려 없이 진공 상태에 놓여있는 창백한 과학을 배운 듯 싶다. 뭐 누굴 탓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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