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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유사가족..

이번 연휴는 정말 모범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1. 가족... 뭐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족이란 참으로 불가해한 존재다. 사실, 우리 식구들은 정말 남부럽지 않게 쿨한 관계라 할 수 있다. 부모님의 경우, 나한테 시집가라고 쪼아댄적이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고, 최소한 나의 이성적 자각력이 생겨난 이래 젠더 편향적인 발언을 하신 적도 없을 뿐 아니라,진학이나 취업 등 인생사의 주요 길목에서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신 적이 없다. 또한 며느리에 대해서도 적절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존중할 줄 아시는 편이다. 이를테면, 새언니가 친정에서 설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우리집이 신정에 차례지내는 것은 정말 전국에 자랑할만한 일이다. ㅎㅎ 물론, 가끔씩 자식들한테는 절대 하지 못하는 일들을 며느리에게 요구하는 적이 있기는 하다. 엄마가 새언니한테만 성당에 같이 가자고 쪼아대거나, 같이 앉아서 밥먹다가 아빠가 새언니를 콕 집어 국을 더 달라고 하는 것 등이다. 하지만 이 경우, 빛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나의 반격에 대개 꼬리를 내리시곤 한다. 오빠도 마찬가지다. 여동생에게 가부장적 권력, 혹은 온정주의적 보호자를 자임하는 오빠들은 텔레비전에나 나오는 줄 알고 평생을 살아왔다. 나보고 기가 세다는 평가에 대해 절대 동의하지 않으나, 최소한 오빠와의 관계에서 나의 포스가 우위에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ㅡ.ㅡ) 하지만, 이런 쿨한 관계 속에서도 다같이 모여앉으면, 무언가 미묘한 갈등? 긴장? 이런게 느껴진다. 그건 주로 엄마와 아빠의 냉랭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정폭력 같은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아빠가 유독 엄마를 너무 하녀처럼 대해왔고 (하녀가 아니라 엄마로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이제 그 세월이 겹겹으로 쌓이고 나니 엄마가 아빠를 대놓고 구박하는 거다. 물론 아빠가 구박받을만한 눈치 없는 일을 많이 하기는 한다. 예전에는 그런 것 때문에 오빠랑 나랑 화도 많이 냈었고, 엄마는 아빠를 두둔하곤 했는데, 이제 그런게 싹 사라져버린거다. 뭐 엄마도 할만큼 했으니까... 그래서, 가족들이나 손님들까지 모인 자리에서 눈치없이 구는 아빠와 그걸 대놓고 맘에 안 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게 영 거시기하다. 예전에는 엄마만 일방적으로 불쌍했는데, 아빠가 새삼 불쌍하기도 하고... 하지만 나도 아빠의 응석(?)을 받아줄 맘은 없다... ㅡ.ㅡ 오히려 전에 없이 오빠가 잘 받아주는 편... 엄마 생신이라고 오빠네, 연정이네랑 같이 비싼 식당 가서 밥 먹었는데, 그 살얼음판 긴장에 밥이 콧구멍으로 넘어갔는지 목구멍으로 넘어갔는지... 해결책은 아빠가 철이 드는 것인데, 그게 영 요원해보이니 큰일이다.


2. 토끼와 다람쥐 며칠 전에 조카 토끼가 나한테 문자를 보냈었다. 설날에 같이 놀 수 있게 나보구 미리 잠 좀 많이 자두라는 거다. ㅎㅎㅎ 내가 맨날 퍼질러 자니까 미리 수를 쓴 거다. 어제 오늘, 이 에너지 넘치는 두 초딩들에게 너무 시달려서 죽는 줄 알았다. 최소한 잠이라도 따로 자면 좋았을텐데, 꼭 고모와 잔다고 해서 나는 밤새 이들의 구타에 시달려야만 했다 ㅜ.ㅜ 받아쓰기 잼병에다 아직 시계볼줄도 모르는 3학년 진급생 다람쥐가, 나한테 귓속말로 물어본다. "고모는 왜 결혼 안해?" "왜 물어보는데? 고모가 결혼하면 좋겠어?" "아니, 그냥 궁금해서.." "고모가 결혼하면 바빠서(???) 너랑 못 놀지도 몰라. 그래도 좋아?" "아니야... 아니야... 결혼하지 마!!!" ㅎㅎㅎ 웃겨 죽는 줄 알았다. 3. 유사가족 지난 금욜에는 유사가족 의보사 사람들과 신년회(?)를 했다. 짧은 시간, 또 엄청나게 술들을 퍼마셨다. 예비군복만 입으면 사람이 개로 변한다는 것처럼, 이들은 함께 모이기만 하면 화학적 상승작용으로 다들 20대 초반으로 돌아가 미친 듯이 술을 마신다 ㅡ.ㅡ 동생도 없고, 그닥 친척 형제도 많지 않은 나에게 이들은 유사가족!!! 그 자리에 없었던 나후가 오랫동안 학교를 다닌 것에 대해, 그리고 최근의 실습시험에서 '진상'을 보인 것에 대해 본교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한 걱정을 늘어놓았는데, 후배 S가 갑자기 나더라 '누나가 걔를 너무 싸고 돌아서 그래요' 이야기하는 거다. 다들 웃느라 뒤집어졌다. 내 평생 누구를 '싸고 돈다'는 이야기 첨 들어본다 ㅎㅎㅎ (정작 당사자 나후는 나를 지칭하여 '누나가 저를 자꾸 이용해먹어요'라고 발언해서 나의 분노를 상승시켰다) 하지만 발언의 당사자 S야말로, 내가 생명의 은인이다. 술먹고 방방뛰다가 속초 해안경비대에게 사격위협받으면서 쫓기던 걸 구해준게 누군데 ㅎㅎㅎ 쫌 있다가는, 우리 엄마한테 (그 옛날처럼) 새배 오겠단다. 자기 애들 데리고... "어머니, 제가 그 때 밤 열두시에 새배왔던 후배예요. 우리 애들 새뱃돈 좀 주세요!" 오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노총각 히스테리로 비혼의 여자 후배들에게 비호감 일순위였던 H 형은, 결혼해서 아이 둘 생기더니 완전 사람이 변했다. 심지어 선거 때 전화하면, '니가 지금 이런 선거운동하는 거보다 시집가는게 나라에 더 큰 도움'이라며 갈궈대던 양반이 풀죽은 목소리로, '**야, 결혼할 필요 없다. 그냥 연애나 하고 재밌게 살아" 하는 거다. 아이구, 쓴맛을 보셨군요... 꼬소해라 ㅎㅎㅎ 군대 갈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게 만들었던 (엄마들의 마음을 이해했음 ㅡ.ㅡ) 후배 D 는 고혈압 약을 세 가지나 복용하는데다, 자기 환자 중에 불륜이 얼마나 많은지 (산부인과 의사임) 어이가 없다고 하소연이다. 엠티가서 서로 괴롭힌 이야기, 황당 무용담에, 술먹고 죽을 뻔한 이야기... 정말 끝도 없는 추억거리와 은원관계를 파헤치느라 이들과의 시간은 항상 짧게 느껴진다. 열두시를 넘겨, 집에 가자며 억지로 끌고 나오는디, 그 와중에 내 장갑을 가지고 도망치며 나잡아봐요 하는 인간이 있지 않나, 집에 가서 먹으라고 계산대 옆 사탕을 내 가방에 한 뭉치 넣는 인간이 있질 않나... 이건 뭐 귀엽다고도 할 수없고, 주책이라 할 수도 없고 ..... 만나면 항상 반갑고,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운 그들... 모여서 술만 좀 덜 먹으면 참 좋겠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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