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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벌써 1월하고도 막바지에 접어든다.

아주 버라이어티하게 한 해를 시작했다.

 

원고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고,

강릉에 강의 겸 나들이도 다녀왔고,

오랜만에(?) 선배 찾아가서 맛난 것도 얻어먹고,

폭설에 길상사의 아름답고 고즈넉한 풍광과 북악스카이웨이 눈길 투어 (?)도 했고

또, 연구소 식구들과 [쿠바의 연인] 함께 보고 맛난 저녁도 먹었다.

그 와중에 집에 도둑이 들어 아직까지 PTSD 유사증상 경험... ㅡ.ㅡ

엊그제는 오래된 친구 장대리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나도 마음이 무겁고, 딱히 거드는 일도 없으면서 덩달아 분주했다.   

그리고 오늘은 연구소의 활동가 교육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쳤다.

 

정신줄은 반쯤 놓고 살았지만,

출퇴근 길은 책읽기 말고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용케 자리를 차지하면 잠이라도 자겠건만

1월 내내 강추위에 폭설로 지하철 이용자가 폭주하여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ㅜ.ㅜ

 

인권운동가 오창익의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은 많이 아쉬웠다.

한국사회의 많은 습속들이

얼마나 예외적이고 기괴한 것인지 충분히 표현이 되지 못한 것 같았다.

너무 온건하고 점잖게 쓰여졌다고나 할까...

이 책만 읽어서는 그러한 행태가 얼마나 해괴한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듯!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 인권 운동가 오창익의 거침없는 한국 사회 리포트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 인권 운동가 오창익의 거침없는 한국 사회 리포트
오창익
삼인, 2008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를 오래 전부터 (화장실에서) 찔끔찔끔 읽다가

우선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돌베개, 2007

 

이 제목만큼, 글쓴이가 하고 싶은 말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도 없을 것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정말 무엇일까....

글쓴이의 차분한 글쓰기는

그토록 말도 안되는 상황들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만일 격정과 울분으로 이 글들이 쓰여졌다면

나는 지금과 같은 짓눌림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취약한 존재다.

그 취약함을 증언한 글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프리모 레비의 글은 내가 읽은 그 어느 것과도 같지 않다. 

 

요약하고, 발췌할 수 있는 문장들은 오히려 에필로그에 등장한다.

사실, 본문은 그 도저함 때문에 감히 옮겨올 수가 없다. 

최근 드라마에서 '이태리 장인이 한땀한땀..." 어쩌구 하는 대사가 인기를 끌었다지만

야만과 비통의 아수라에서 기록된 한 단어 한 단어를 감히 옮겨올 자신이 없다.

 

"...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양하게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 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암흑과 같은 시간에도

내 동료들과 나 자신에게서

사물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보겠다는 의지,

그럼으로써 수용소에 널리 퍼져

많은 수인들을 정신적 조난자로 만들었던 굴욕과 부도덕에서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고집스럽게 지켜낸 것이 도움이 되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믿기 어려운 이성의 실종 속에서 고통을 받았던 유대인들이

역시나 믿기 어려운 박해의 가해자가 되어 역사의 무대에 재등장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엄청 짧은 시간 안에...

 

희생자로서의 과거가 만능 면허증이라도 되는 양

막가파로 행세하는 그들의 행태는

정말 인간 이성의 취약함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든다.

이스라엘 국민 한명한명이 모두 시온주의자는 아니겠지만,

독일 국민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 개개인에게 책임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휴머니스트는 이럴 때 참 괴롭다.

초월적 존재가 아닌 인간의 인간다움을 믿고 싶건만

도대체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레지스탕스 활동과 그 엄청난 고난의 시기를 견뎌낸 이가

결국은 스스로 생을 종결지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에게는 (장 아메리와 마찬가지로) 그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후속작인 [휴전] 을 읽으려고 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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