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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3/12
    레고로 만든 간단한 이데올로기의 세계
    새삼
  2. 2006/03/12
    굿바이 솔로, (수정ㅋ)(2)
    새삼
  3. 2006/03/10
    please save my mom.(2)
    새삼
  4. 2006/03/09
    브로크백 마운틴(5)
    새삼
  5. 2006/03/06
    그냥 훌쩍.(2)
    새삼
  6. 2006/03/04
    어떤 기억.(4)
    새삼
  7. 2006/03/04
    새 신을 신고!(2)
    새삼
  8. 2006/03/02
    눈이 오는 이틀 밤(3)
    새삼

레고로 만든 간단한 이데올로기의 세계

* 민중언론 참세상[정치적 이데올로기] 에 관련된 글.

관료주의가 제일 재밌게 표현된 거 같다.

파시즘은 약간 알쏭달쏭.

누가 설명해줘요. ㅋㅋㅋ

 

(한 마디로 고등학생들이 나보다 훨씬 낫다는 말씀이다..난 고등학교 때 뭐했더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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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솔로, (수정ㅋ)

4회 중에서

 

영숙 :  화장품 뭐써?

수희 : 그냥 아무거나 쓰는데. 대충..

영숙 : 이쁜 것들은 꼭 그렇게 말하더라. 사람 기죽게.

 

영숙 : 미안해, 내가 원래 인생 이렇게 살았다. 금방 올게, 놀고 있어.

미리 : 그러니까 소박을 맞지.

영숙 : (보면)

수희 : (두 사람, 눈치보면서) 저기 그게 언니..

영숙: (미리에게) 최 미리.

미리 : 왜

영숙: 너 진짜 날카롭다. 나두 내가 왜 소박을 맞았나 지금 이 순간까지 궁금했는데 넌 어떻게 내가 소박 맞은 이유를 단번에 아냐. 와 날카롭네. 얘 날카로워.(옷 입으며) 아, 날카로워.

 

 

영숙 : 첫사랑에 목메는 스타일?

수희 : 아뇨.

영숙 : 다행이다. 첫사랑은 처음이란 뜻밖에 없는 건데. 텔레비전 보면 온통 첫사랑에 목 메는 거라 비현실적이라 싫었거든. 두 번 세 번 사랑한 사람은 헤퍼 보이게 하잖아. 성숙해질 뿐인데.

 

-----

보면서 대사 직인다고 생각했는데,, 기억이 안난다.

낼 대본보기 올라오면 까먹지 말고 적어둬야지.

-----

 

까먹지 않고 적어둔 것.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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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save my mom.

(최근에 보고 좋아하게 된 만화책 프라네테스의 한 대사에서 구절을 훔쳐보았다.)

 

엄마가 오늘 떠났다.

제대로 인사도 못했다. 너무 졸려서.

20일이나 배를 타는데 불안하기도 하고

(물론 그 배는 몇 배 더 불안해 하겠지만..ㅋ 우리 엄마는 손 대는 것을 망가뜨리는 능력을 가진 마의 손이자 악의 축으로 종종 불리곤 한다...ㅋㅋ)

한 편으로는 계속 바쁘고 힘들게 살다가 그렇게라도 잠시 휴가를 가는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배에는 원래 여자를 안 태우기 때문에 선장부터 모든 사람들이 초긴장 상태라는데

어이없게도 승선 교육을 받은 오마니와 친구분들의 표정은 너무나 해 맑다.

신문에도 났으니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하고 돌아와야 하는 거 아냐. ㅎㅎㅎ

 

여하튼 지금 바램은,

오마니가 오로지 무사히 돌아오는 것뿐이다.

연락할 길이 없으니 그저 이 곳에서 안전을 기원하는 수 밖에.

 

더불어 함께 떠난 내 디카도 오마니의 마의 손에서 안전하길.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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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

 

그러니까... 역시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

작년 나의 최고의 영화였던 아무도 모른다에 대해서도 아직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좋아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하기에 나의 내공이 부족한 탓인가보다.

 

왜 좋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보는 중에 절반 정도는 울고 있었던 것 같고

영화가 끝나도 울음을 멈추지 못해서 같이 본 친구는 미쳤냐고 물었고

 

그냥 그들이 이십년 넘게 지켜 온 사랑이 이십년 전의 추억이라 슬펐던 것 같다.

그냥 그게 그렇게 마음에 사무치게 아팠다.

 

기회가 되면 다시 보고 싶고,

다시 보고 나면 하고 싶었던 얘기에 대해 잘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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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훌쩍.


 

어수선하고 짧았던 여행.

그치만 재밌었어. ^^




 

철도파업 및 나의 무분별한 시간개념으로 인해 전혀 다른 곳으로 가게 된 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나고 재미나게~

 

(저 위엔 우리보다 우릴 쳐다보는 아이의 표정이 압권!)

팔짝팔짝.

새 신 신고, 올해는 이렇게 잘 뛰어 댕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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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

Daybreak_님의 [대학 입학.] 에 관련된 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만우절에는 짜장면을 반 전체가 시켜서 그 시간 선생님한테 옴팡 뒤집어 씌우는 것이 유행이었다. 해도 안 들어오는 복도에서 생활하는 여고생들에게 일 년에 딱 두 번 있는 해방일, 그건 만우절과 대청소 날이었다.

(우리학교는 대청소 날에 바닥을 물청소를 했는데, 모든 일을 까르르까르르 하는 여고생들로서는 그 날의 목표는 청소가 아니라 체육복 입고 물바닥을 뛰어다니며 선생님들한테 양동이 물을 퍼부어대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러려니 하고 짜장면 값을 내주기도 했고, 더러는 화를 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가 일 년에 단 두 번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심하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날은 상황이 좀 달랐다.



우리가 짜장면을 시킨 시간은 우리 담임이 수업을 하는 시간이었다.

악명높게 깐깐했던 여선생. 우리는 그래도 희망을 갖고 짜장면을 시켰다.

짜장면은 호통과 함께 되돌아 갔고,

우리는 종례시간까지 책상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야 했다.

잘못이라면 잘못이었지만 억울했다.

그리고 종례시간, 일분단 맨 앞자리부터 차례차례 허벅지를 때리기 시작했다.

끔찍했다. 차라리 빨리 맞기라도 했다면 덜 힘들었겠지만 그 소리를 들으며 책상 위에 앉아 무릎을 꿇고 견디는 건 정말 괴로웠다. 일분단을 거의 다 때렸을 때쯤, 그 여자는 매질을 멈추더니 다시 맨 앞으로 가서 그 애에게 말했다.

 

"넌 꿈이 뭐야."

그 아이는 우물쭈물 거렸다. 잘못 대답하면 회초리가 다시 날아온단 사실을 알았다.

그 여자는 대답을 재촉했다. 아이는 조그맣게 말했다. "요리사요."

그 애의 진짜 꿈이 그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한 것만은 분명했다. 그건 그 여자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고, 그 애는 허벅지를 한 대 더 맞았다.

다른 아이들은, 나를 포함해, 모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내 꿈, 저 여자에게 진짜 내 꿈을 말해야 하나,

저 여자가 원하는 답은 무엇인가.

 

그 애는 세 번이나 더 답을 해야 했다.

"건축가요."  "변호사요."  "선생님이요."

그리고 그 애는 세 대를 더 맞았다. 눈물을 뚝뚝 흘리자 그 여자가 말했다.

"그럼 무슨 과를 가야 하냐."

그 아이는 울먹거리며 사범대라고 답했고, 그제서야 그 아이는 자리에 앉혀졌다.

 

모두 답을 찾았다.

그 옆에 앉은 아이는 자기가 더욱 놀라서 함께 울며 자기도 사범대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어느 대학이냐고 물었고,

우물쭈물 하던 아이가 서울에 있는 어느 대학 이름을 대자,

그녀 특유의 비웃음과 함께 "거기 가고 싶은 애가 이러고 있냐?" 라고 말했다.

 

몇 명이 더 지나가자 대답은 수월해졌다.

지금의 내 상황에서 적당히, 아주 조금만 상향 지원하는 대학과 전공을 대면 되는 것이었다.

내 꿈이라는 것은,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어떻게 살고 싶다가 아니라,

어느 대학에 가야 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공부를 잘 못했다.

마땅히 댈 수 있는 학교는 없었고, 특별히 가고 싶어하던 학과도 없었다.

하지만 그 여자에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서울 소재에 가장 낮은 점수대일 것 같은 대학에 유아교육과라고 대답했다.

그 여자는 피식 웃더니 나를 앉혔다.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나는 그 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생각보다 너무나 성적이 잘 나와서

예상했던 곳 보다 좋은 대학을 가게 되었을 때, 난 그 여자를 떠올렸다.

이걸로 복수할 수 있겠다 싶었다.

대학을 간 걸로 복수할 수 있겠다 싶은 선생은 그 여자 말고도 몇 더 있었고,

이런 것 따위로 복수할 수 밖에 없는 내가 좀 구차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굳이 학교를 한 번 찾아갔고,

원서 다시 쓰러 왔나보지? 라는 비아냥 거리는 물음에 더 비아냥거리며 아니오,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 보러왔는데요, 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통쾌하고 더러운 기분이었다.

 

사실 드리머님 글과는 별 상관 없는 얘기 같다.

대학에 전혀 못 갈 것 같던 나는 대학에 가서,

진심으로 행복하고 좋은 순간들이 많았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런데 어쩐지 저 날의 기억의 찝찔함 때문에 대학 입학이 아주 즐겁지만은 않았던,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떠올랐을 뿐이다.

 

드리머님 대학생활 잘 하세요. ^^ (참 뜬금없지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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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새 운동화 샀다.

인터넷으로, 명동에서 본 거 보다 대략 4만원쯤 싸게 샀다.

배송도 하루만에 왔다.

신발이 너무 가벼워서 그야말로 폴짝폴짝 날아다녔다.

 

 

예쁘다. 으히히.

많이 걷고, 잠도 못 자서 피곤하고, 힘들고 힘든 날이었는데

신발 덕분에 긴긴 광화문 계단을 걸어오르면서도 힘든지 몰랐다.

아 좋아. 좋아 좋아

근데 망사가 곧 찢어질 것 같기도 하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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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는 이틀 밤

눈이 내렸다.

열변을 토해내며 웃었던, 포장마차 밖에서도

오래 된 친구와 맥주 한 병 먹자며 들어선 바의 통유리창에서도.

봄이 다 왔는 줄 알았더니,

아직 겨울이 덜 갔다.

 

이사를 포함한 여러가지 일들로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혀에 커다랗게 혓바늘이 돋았다.

입 속의 상처는 어쩌면 그렇게 자꾸 만져보고 싶은지

혀로도 이로도 몇 번씩 쓸어 본다.

 

눈이 와서 그랬는가 아니면 슈퍼마켓에서 만난 로맨틱한 외국인 때문이었는가

겨우 마감을 넘기고 메일을 보내놓고는, 졸린 눈을 껌벅이면서도

잠 자러 가기가 참 아깝다.

내일 하루 또 피곤해도 좋으니 혓바늘 하나쯤 더 돋아도 좋으니

그냥 눈 내리는 소리나 들으며 멍하니 앉아있고 싶다.

 

벌써 날짜는 3월 2일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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