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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그리고 아픔2....(청원군 옛집기행3)

  • 등록일
    2005/02/13 23:15
  • 수정일
    2005/02/13 23:15

다음으로 들른 곳이 낭성면 호정리다

가덕면에서 미원쪽으로 가다가 낭성 혹은 상당산성 방향으로 가다보면

낭성면소재비 바로 못미쳐 이정표가 나오고 한 500미터 들어가면 나오는 마을 호정리다

 

이곳엔 과필헌 고가라는 옛집이 있는데

솔직히 좀 쪽팔리지만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난 이곳이 과필헌이라는 사람의 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옆자리의 형님이 "아니 '과'씨라는 성도 있어 ?"

라고 물을때

"그런가봐여...!!" 했다.

근데 알고 보니 과필헌은 호이고 이름은 신후라는 사람의 집이란다.

에구구 쪽팔려.....?...헤헤헤

 

이 곳 호정리를 오기전에 한 음식점이 있는데

그 곳 근처에도 한국전쟁당시의 민간인 학살지가 있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충북 대책위에 참여하시면서

많은 도움을 주시는 분 중에 경상대 교수이신 신경득 선생님이 계시다.

이분도 아버님이 국민보도연맹가입혐의로 학살되셨는데

아마 이곳일 거라고 생각되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2번인가 청주에서 가까운 곳의 민간인학살지를 답사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곳에서 제수용품을 준비해서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제사를 지낸적이 있는데

신경득 선생님이 이 곳에서 갑자기 울먹이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 선하다.

 

신경득 선생님은

시력이 나빠 이젠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실 정도다

그런 분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님의 한을 풀기위해

아니 한을 풀지 못할망정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라도 알고 싶어

평생을 노력하신 모습을 보면서

당시 함께간 사람들이 숙연해졌던 것인 눈에 선하다.

 

이런 학살지를 지나서 처음으로 나오는 동네가 호정리다.

 

과필헌 고가는 앞의 두 곳보다 그 관리나 보존 상태가 가장 잘된 곳이다.

비록 사랑채가 한번 불이나서 나무 부재들이 시커머케 그름에 그을려 있기 했지만

멀리서 한눈에 보기에도 버젓한 모습이

한옥이 가지는 호젓함과 위용이 자연스럽소 옛스러운 집이다.

지금은 안채나 사랑채엔 사함이 살지않고 건너채에만 사람이 기거하는 듯했다.

 

가장 전형적인 민도리집으로

아마 청원군 지역의 대표적인 민가집이 아닐런지 싶다.

 

 


  <사랑채 모습>

 

집을 짓는대 쓰인 나무 부재들이 큼직큼직한 것이 이집을 지을 당시의 경제적인 부가

상당했으리라 생각이 돤다.

 

아마 근처의 귀래리 신채호 사당과 귀래리 한옥촌(한옥촌이라기에는 왠지 좀 그런 동네다)과

더불어 보면 옛 스러움의 감동을 쉽게 느낄 수 있지 않을 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3시간 정도의 여행이 아닌 소풍을 다녀왔다.

좀 따스한 겨울날 일요일 오후

한적하니 짧은 시간에

휑하니 돌아본 이런 저런 옛집들과

그집 들이 디딛고 서있는 땅에 서린 사람들의 아품과 사연들을 생각하면서

나른하니 좋았던것 같다.

 

함께 했던 좋아하는 형님과 충현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 언제나 오롯이 서있는 그 마을들의 그 아품들이

올올이 가슴속에 남아있는 듯해 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다들 시간 있으시면

주변의 많은 사연들에 관심 있으시길.....^^!

 

 

   < 안채의 날개채 맞배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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