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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 시기 사진에 나타난 실업자 이미지
사진은 객관적이다. 사진은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아마 이를 그대로 믿는 이는 없을 것이다. 사진은 아주 정치적이다. 우리는 대공황기 국가가 주도한 기록 관리를 통해 이를 알아볼 수 있다.
대공황은 미국 사회의 많은 부문에 정부가 개입하게 된 하나의 계기였다. 정부는 1935년에서 1942년까지 있었던 경제 위기의 해 동안 미국인들의 경험을 문서화하는 사진 기획을 지원했다. 그 가운데 몇 편의 사진을 소개해본다. 수집된 사진은 어떤 이미지를 담고 있을까.
1. ‘잊혀 진 사람(?)’
<사진 1> 하릴없이 떠돌고 있는 실업자들.
<사진 2> 뉴딜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파산한 레스토랑, 임대합니다.” 그 레스토랑을 등지고 서 있는 농부.
<사진 3> 고통스러운 기다림, 사회에서 배제당한 모습.
<사진 4>
<사진 5>
<사진 6>
위의 사진에 나오는 실업자 이미지는 하나같이 파편화된 개인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정돈되지 않은 모습, 당당하지 못한 모습,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무기력감 등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에게 남아도는 것은 시간뿐이다. 이런 구도가 전달하는 것은 ‘개인적’ 절망일 뿐이다. 대공황이라는 구조가 구조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을 희생시켰음에도, 오로지 책임은 개인의 몫이다.
‘개별화된’ 실업자 이미지는 구경꾼의 처지에서 보면 사회의 낙오자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 3>을 보면, 그것이 뚜렷이 드러난다. 광장에 하릴없이 앉아 있는 실업자들, 그들은 분수대에 있는 ‘거북이’보다 못하다. 그럼에도 파산한, 사회적으로 고립된 실업자의 이미지는 사회적 모델에 도전하고 정부 지원의 증대를 요구하는 데 적극적으로 가담한 노동 운동의 일부로서 실업자를 재현한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뉴딜 개혁을 거부하게 만들었던 이미지다. 대공황은 실업에 대한 사회적 태도가 크게 달라졌던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게 됨으로써 실업은 모든 공동체에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실업자에 대한 훨씬 더 커다란 사회적 공감을 생기게 했다. 특히 50 퍼센트가 넘는 실업이 생긴 공동체(광부 공동체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인가 다음의 사진에는 광부들이 전투적인 실업자 노동운동으로 조직되었음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나온다.
2. “전투적 실업자 노동 운동”
<사진 7>
<사진 8>
<사진 9>
<사진 10>
<사진 11>
<사진 12>“뉴딜: 흑인에게도 완전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평등을 위해. 단결하라! 전쟁과 파시즘에 반대하라.”
3. 그리고 다른 사진들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있는 광산도시 스코트 런에는 이주자들의 도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진에 나타난 그곳의 분위기는 마치 라스폰 트리에 감독이 만든 영화 <도그빌>에 나온 것처럼 스산하다. 스코트 런에는 <오두막 공동체 센터>(The Shack Community Center)가 있다. 이 공동체는 처음에 스코트 런에 있는 다양한 이주자 공동체를 “미국화하고” 앞으로 있을 수도 있는 광부들의 급진화를 미리 내다보고 모건타운의 제1장로교회(Morgantown First Presbyterian Church)가 세운 것이다. 그러나 미국사회가 대공황으로 휘청거리자, 이 <오두막 공동체 센터>는 오히려 실직당한 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는 중심이 되었다. <노동자 연맹>이 이 공동체에서 실직당한 광부들을 열심히 조직하고 있다.
「실천」, 2008년 9월호, 사회실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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