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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23/08/01

[김수행 선생 8주기] 영원한 코뮤니스트 김수행을 기리는 열 가지 기억

영원한 코뮤니스트 김수행을 기리는 열 가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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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은 나의 친구이면서 맑스주의자 동지이자 코뮤니스트 동지다. 우리 모두가 같이 이루어야 할 역사적 과제와 실천을 남겨두고 먼저 간 동지를 기억하며, 소중한 그와의 만남을 남기고 싶다. 그와 얽힌 10가지 기억을 정리한다.
 
하나. 첫 만남.
김수행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한신대에서 해직당한 후 기고하던 학술계간지 「현상과 인식」(1977년 창간) 필자들과의 만나는 자리였다. 우리 둘은 40대 초반이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엇물림을 줄곧 시도한 「현상과 인식」에는 우리나라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필자로 참여했는데, 그가 실은 글은 ‘현대 학문의 새 경향’(1983년 여름호), ‘상업자본과 상업이윤’(1986년 봄호),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동향들’(1983년 봄호) 등이다. 연구 논문과 토론 그리고 뒷풀이에서의 이야기로 30년을 넘는 동지 관계를 시작했다.
 
둘. 사회과학 대학원 설립
2004년부터 ‘사회과학 대학원’ 설립을 위한 모임을 가졌다. 몇 차례 토론과 외국 사례 발표회를 거쳐 2015년 10월 김수행과 나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사회과학 대학원’ 설립을 제안한다. 우리는 설립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역사 진보의 과정, 즉, 계급 없는 사회, 모든 억압과 착취가 사라진 인간 해방의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인류의 미래는 역사 주체로서의 노동계급과 민중과 유기적 지식인의 변증법적 결합·통일을 통해 이루어진다.” “자본주의의 근본적 위기를 더욱 가혹한 억압·착취를 통하여 모면하려는 21세기 자본주의 체제의 시대에 노동과정을 포함한 인간의 총체적 삶의 과정이 비인간적으로 파괴되고 변혁 주체로서의 노동계급과 민중이 철저하게 분권화될 뿐 아니라 지식이 시장에서 상품화되고 교육이 지배 이데올로기화되고 있음을 인식한다.”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유기적 지식인을 양성할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부르주아 체제에 포섭되지 않는 대안학교의 건설이 시급하다고 우리는 보았다. 이렇게 시작한 사회과학 대학원의 실험은 2008년 봄학기부터 세 학기 정도 시험운영을 하고 그 후 김수행이 대표로 전념했다. 나는 2008년 2월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을 만들면서 역할분담을 했다.
 
10년이 지나 다시 한 번 새롭게 맑스주의 학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이때 그가 먼저 떠났다. 안타까울 뿐이다.
 
셋. 사회실천연구소 설립
2006년 11월 「사회실천연구소」 설립 제안이 있기 전 종합 사회주의(맑스주의) 연구소를 향한 주제를 놓고 김수행과 나, 그리고 최규진이 토론했다. 이 토론이 사회과학 대학원 설립과 맞물려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 제안에 김수행은 흔쾌히 함께 만들어 가자고 했고, 그 날 우리는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셨다. 김수행은 나처럼 자주 많은 양의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애주가다. 술맛 나는 자리에서는 대주가가 된다. 특별히 막걸리를 좋아했다. 정년 퇴임 후 주로 집에서 글을 쓰고 밖으로 나오지 않아 연구소에 가끔 들렀지만, 맑스주의 종합연구소와 맑스주의 학교를 향한 그의 꿈과 열정은 젊은 회원 연구자들보다 훨씬 컸다. 연구소 설립 취지에 “사회실천 연구소는 사회주의 운동 종합연구소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밑바닥을 다지면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노동계급 해방을 위한 사상을 곧추세우는 일에 나서려고 합니다”라고 했다. 우리가 말한 대로 김수행과 함께 했던 일들을 이루어 갈 것이다.
 
넷. 정년퇴임
한신대에서 해직된 후 시간강사로 지내다 서울대 교수가 된 것은 김수행 개인에게는 행운이었다. 개인의 행운을 넘어 그것은 서울대를 포함한 여러 대학 학생들의 교과과정 개혁 투쟁의 성과였다. 1984년은 전두환 체제 밑에서 억압받아 숨죽여왔던 학생운동이 한꺼번에 분출한 해였다. 학생회장을 스스로 뽑고 군사훈련을 반대하고 학원 자율화를 주장하는 대자보가 곳곳에 나붙고 집회가 열렸다. 「자본론」을 가르치는 맑스 경제학자를 채용하고 그들이 담당할 교과목을 개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수행은 서울대에서 24년을 원로 맑스주의 경제학자로 자리를 굳게 지켰다. 재직기간이 25년이 채 안 된다고 그는 명예교수가 되지 못했다. 더구나 자신을 이을 후임 교수를 선택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2008년 정년 퇴임을 기념하는 자리에 나는 친구이자 동지 대표로 축사를 했다. 나는 2004년에 이미 명예퇴직을 했기 때문에 선배라고 농담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앞에 이야기한 맑스주의 학교와 맑스 연구소를 만드는 데 앞장섰던 김수행이 정년 퇴임을 하더라도 지금부터 다시 맑스주의 운동이 시작되는데 발 벗고 나설 것이고, 그 대열에 우리 모두 같이 서자고 했다. 맑스주의자 김수행에게 정년은 없다. 그 후 성공회대에서 그를 석좌교수로 초빙한 것은 그가 다시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징표였다. 아, 그런데 몇 걸음 떼어놓다가 가다니!
 
다섯.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 재판 투쟁
2008년 8월 26일 나를 포함한 일곱 명의 동지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긴급체포되어 서울 종로구 옥인동 공안분실에 잡혀있을 때 김수행은 「참세상」에 가장 먼저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이명박 정권을 규탄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그 글에서 “이명박 정권은 오세철 교수와 동료들의 구속을 빨리 풀고 ‘새로운 한국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데 동참하기 바란다. 이 벌집, 저 벌집을 자꾸 쑤시다가는 벌들의 반격을 받아 자기의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몰락하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재판과정에서는 변호인 측 증인으로 참석해 판사와 검사에게 맑스주의와 사상·학문의 자유, 그리고 자본주의의 모순과 그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해 호통치며 일갈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과 집회에 참석해 힘차게 발언하던 김수행의 모습은 많은 사회주의자에게 큰 힘이 됐다. 그는 서슴지 않고 “나 같은 맑스주의자도 잡아가야지”라며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친, 행동하는 맑스주의자였다.
 
여섯. 단호하고 간결한 성품
김수행은 말수가 적지만, 한마디 하면 그 뜻이 확실하다. 여기서 처음 밝히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사회과학 대학원의 대표를 맡고 내가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에 참여했을 때다. 조직 운동을 할 때는 늘 사무실 공간이 필요하다. 그때그때 돈을 모은다. 교수직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동지들보다 여유가 있어 십일조를 냈다. ‘사노련’ 사무실을 얻어야 하는데 목돈이 없었다.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사무실 보증금에 돈을 보탠 적이 있는데, 그 일부를 차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김수행을 만났다. 얼마를 빼갈 테니 그 부분을 메꿔달라고 했다. “그래 알았어.” 단 한 마디였다. 여러 말이 필요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이른바 ‘진보적’인 사람들이 보이는 약삭빠름과 여기저기를 살피는 못된 버릇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나이가 들수록 단순명쾌하고 낙관적이 되는 맑스주의자의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준 사람이 김수행이다.
 
일곱. 절제하는 술
술 문제에 관하여 김수행은 그야말로 모범생이다. 애주가이며 가끔 대주가이지만, 모임 뒤풀이는 밤 10시를 넘기지 않는다. 집이 멀어서가 아니라 다음날 일을 위해 절제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2012년 11월 내 고희 출판기념회에서 김수행은 여러 사람 앞에서 나의 술 문제를 비판했다. 내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건강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일을 못 한다는 지적이었다. 나의 가장 큰 약점을 호되게 나무라는 진정한 동지요 벗이었다. 그와 함께 한 잔 하면서 나도 밤 10시를 넘기지 않겠다고 약속하려고 했는데, 술 동무가 우리 곁에 없다. 이 자리를 빌려 그에게 약속한다. 술에 빠지지 않고 즐기는 진정한 술꾼이 되겠노라고.
 
여덟.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생각
김수행은 2012년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한울)라는 책을 쉽게 풀어 출간했다. 그는 지금까지 러시아혁명 이후 존재했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 성격 규정을 한 적이 없다. 맑스주의자들 사이의 토론과 논쟁에서도 그들 국가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앞으로 올 세계 혁명에 대한 실천적 쟁점을 정면으로 다루거나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름방학 동안 ‘사회실천연구소’가 개설한 ‘자본’ 강의가 끝난 후 수강생들과 함께 종강 뒤풀이를 하는 시간에 함께 하면서, ‘현실 사회주의’와 미래사회에 대한 입장을 같이 하게 됐다. 그의 책의 한 단락을 옮겨보자.
 
“노동자가 해방되고 자본가도 해방되어 인간이 해방되는 ‘새로운 사회’가 코뮤니즘(공산주의)이고 사회주의라고 가르쳤습니다. 사실상 소련이나 동유럽 나라들은 노동해방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당과 정부의 관료들이 점점 더 인민 대중을 옥죄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나라들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였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코뮤니스트 선언」과 「자본론」을 조금만 읽었더라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소련식 자본주의’가 내부의 위기 때문에 ‘일반적 자본주의’로 성장·전화한 것이 바로 1990년의 소련 사회의 붕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그의 책, 4쪽). 얼마나 명쾌한가?
 
아홉. 코뮤니스트 김수행과 못다 한 과제
김수행은 자기 입장을 정리하면서 스스로 자신이 코뮤니스트임을 여러 동지 앞에서 밝혔다. 젊었을 때의 관념으로서의 사상이 아니라 70 평생 맑스주의 연구자와 코뮤니스트로서의 실천을 통한 귀결점이었다.
 
우리는 그 후 그가 이론적으로 정립하려는 ‘새로운 사회’의 구체적 모습을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 모습을 책에 담아 그 내용과 세계 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 속에서 검증되고 비판된 실천적 강령을 비교 토론하는 논쟁을 하자고 약속했다. 우리가 맑스주의자이며 코뮤니스트임을 대중과 함께 확인하고 실천하자고 다짐했다.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아쉬운 점이다. 김수행 동지, 우리가 못다 한 과제를 다른 코뮤니스트와 함께 풀어갈 것을 약속하네.
 
열. 그의 마지막 강의 - 재능교육투쟁 농성장 거리 강연
김수행과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현장도 대학 강단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과 거리라고. 2011년부터 김수행과 나는 시청 앞 환구단 재능교육투쟁 농성장에서 거리 강연을 했다. 그해 11월 15일 김수행이 한 말이다.
 
“모든 공장이나 생산수단이나 기계나 토지나 모든 것은 모든 사람이 소유해서 모든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이런 사회를 만들자고 자꾸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재능 투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회를 만들면 여러분이 재능교육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만듭시다.”
 
잠시 중단했던 거리 강연을 금 년 6월부터 혜화동 농성장에서 다시 시작했다. 1회는 내가, 2회는 김수행이 맡았다. 2015년 6월 26일 오후 6시, “세계 공황, 어디로 갈 것인가”였다. “좋은 자본주의는 있을 수 없다. 오직 자본주의를 폐절하고 넘어서는 ‘자유로운 개인이 연합’하는 코뮤니즘 만이 우리의 대안입니다”라고 김수행은 생애 마지막 강의를 했다. 이런 말이 있다. 배우는 무대에서 쓰러지고 선생을 실천의 현장에서 쓰러지는 거라고. 김수행은 재능교육투쟁 농성장의 거리에서 단호하고 힘찬 노동자의 세상을 외친 것이다. 
 
(「경향신문」, 오세철, 2015년 8월 15일) 
 
 
김수행 선생과 “실천”으로 다시 만나기
 
【질문】 같은 시대를 보낸 김수행 선생과 오세철 선생 두 분은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처음 만나셨습니다. 코뮤니즘이라는 목표에서 같은 곳을 향하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오셨는데 어떤 계기로 사회실천연구소까지 함께 하시게 되었습니까?
 
【오세철】 2004년 명예퇴직 후 실천 운동에 전념했어요. 맑스주의 연구자들과 「사회이론연구소 : 빛나는 전망」을 만들었고, 혁명적사회주의 운동 활동가들과 「사회주의정치연합」을 만들었고, 「맑스주의 대학원」을 설립하여 젊은 맑스주의 연구자와 활동가들을 양성하자는 운동도 시작했죠. 그동안 한국에서 맑스주의는 분과학문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사회과학의 분과학문에 갇혀있었고, 역사학을 포함한 보다 넓은 지평과 만나지 못하고 있었기에 맑스주의 종합연구소를 만들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회과학과 역사학(최규진), 그리고 인문학이 결합한 연구소, 연구자(맑스주의 경제학자로서의 김수행)와 실천가(사회주의자로서의 오세철)가 결합한 연구소를 만들기 위해 오세철, 김수행, 최규진이 깊은 토론을 거쳐 「사회실천연구소」의 설립을 결정합니다. 
 
에피소드로 2006년 11월 사회실천연구소 설립 제안이 있기 전, 종합 사회주의연구소를 향한 주제를 놓고 김수행과 나 그리고 최규진이 토론을 나누었습니다. 나와 최규진은 연구소 설립문제를 여러 해 고민해 온 사이인데, 사회과학대학원 설립과 맞물려서 김수행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의 전제였습니다. 김수행은 흔쾌히 동의했고, 그 날 우리는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셨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술 이야기가 나왔는데, 김수행은 나처럼 자주 많은 양의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애주가이고 술 맛 나는 자리에서는 대주가가 되었습니다. 이날 사당역에서의 사건으로 김수행의 제자들은 반대했지만, 함께 하게 되었죠.
 
【질문】 사회실천연구소 활동과 사회주의노동자연합에 대한 국가보압법 탄압사건이 있었을 때, 김수행 선생의 역할이 있었다는 데요?
 
【오세철】 하나, 김수행은 「사노련」 국가보안법 재판 때 변호인 측 증인으로 참석해 판사와 검사에게 호통치며 일갈했습니다. 그리고 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과 집회에 꼭 참석하여 힘차게 발언했던 김수행의 실천은 많은 사회주의자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는 서슴지 않고 “나 같은 사람도 잡아가야지” 했습니다.
 
둘, 사회실천연구소에서의 모습입니다. 연구소의 『자본론』 강의 후 자주 가는 ‘을지로 골뱅이’에서 있었던 뒤풀이 에피소드인데요. 강의에 참석한 수강자들과 남궁원, 김수행, 나 이렇게 뒤풀이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김수행은 나에게 처음으로 “나 공산주의자야” 라고 고백했어요. 그러니까 2014년경, 당시 72세의 김수행이 맑스주의자, 공산주의자(코뮤니스트)로 커밍아웃 한 것이죠.
 
【질문】 김수행 선생이 쓰신 책과 논문을 대부분 보셨을 텐데, 지금 우리가 다시 되새겨야 할 것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오세철】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 김수행, 신정완 편, 2007년, 서울대 출판부.입니다. 이 책은 정년 퇴임 기념 논문집으로 김수행과 제자들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제1부 사회주의 이론’에서 제1장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김수행이 집필했고, 나머지 장과 2~4부는 제자들이 썼어요. ‘제2부 사회주의의 역사와 현실’, ‘제3부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이론과 실제’, ‘제4부 새로운 사회를 위한 초석들’. 이 책을 보면 당시의 김수행과 그 제자들이 새로운 사회, 즉 코뮤니스트 사회에 대한 구체적 상과 그를 위한 투쟁의 역사를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김수행의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라는 책에서 1) 상품, 화폐, 임노동, (시장)의 소멸을 말한 것, 계획경제가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한 견해에 동의합니다. 2) 그러나 계급과 국가의 소멸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부분적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3) 새로운 생산자의 연합을 국가로 등치 시킨 견해에는 반대합니다. 이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개념과 혼동한 것 같습니다.
 
【질문】 김수행 선생은 평소에 실천하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마지막까지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해 거침없이 호소하셨습니다. 이후에도 함께 하셨다면?
 
【오세철】 그가 조금 더 살았다면, 당시의 촛불 투쟁에 분명히 함께 하고, 토론하고 그 의미와 한계를 코뮤니스트 관점에서 이야기했을 겁니다. 성평등 운동에서도 우리 세대를 넘어선 코뮤니스트 운동으로서의 의미를 논의하고, 우리 세대의 가부장적, 남성 우월적 문제가 우리 자신의 문제임을 진지하게 터놓고 토론했을 겁니다.
 
 (「실천 복간호」, 오세철 동지 인터뷰 / 이형로 작성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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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선생 8주기]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노동자의 필요와 욕구를 위한 새로운 사회로 가야 합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노동자의 필요와 욕구를 위한 새로운 사회로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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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008년 자본주의 공황 이후 유럽에서도 코뮤니스트 선언의 판매량이 급증하는 등 맑스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합니다한국 사회에서도 맑스주의 관련 서적들이 연이어 출판되고 있습니다선생님께서는 맑스주의를 어떻게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까?

 

김수행】 내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들어간 게 1961년입니다경제학이 너무 재미가 없어요무슨 소리인지현실적인 감각이 전혀 없더라고요방법이 없느냐 해서생각을 해보니까일본 책을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1학년 때책 읽기 위해서 일본 말을 서너 달 배웠어요그때 상과대학에 경성제국대학 시절의 책이 많이 남아있어서 일본 책으로 이론에서경제사에서경제사상사에서맑스와 맑스의 위치를 공부했어요.

 

질문】 선배들 권유가 아니라선생님은 독학하셨네요그러면서 신영복 선생님하고 남산에서 고초도 당하셨죠?

 

김수행】 우리 때는 권유 그런 거 없었어요독학을 했어요대학원에 들어가서석사논문으로 금융자본에 관한 일 연구를 썼는데힐퍼딩과 독점자본금융자본산업자본은행자본이 어떤 식으로 융합되느냐 하는 공부를 했어요주로 일본 책 읽으면서석사 논문을 쓰고 나서 경제학과 조교가 됐어요신영복 선생님과 만나는 것은상과대 경제학과에 동아리가 있었는데경우(經友)회가 있었어요내가 들어갔는데, 6기더라고요신 선생은 2년 선배니까 4기지요. 1년에 선후배 관계로 한 두 번씩 보는데신 선생하고 통일혁명당 사건에 걸린 것은내가 종암동에 살았는데우리 집 가까운데 신 선생이 살았어요그때 신 선생은 육군사관학교 교관을 하고 있었어요내가 석사 논문을 쓰고 나서 하도 힘들어서재밌는 책이 없느냐고 했더니신 선생이 갖고 온 책이 레닌이 쓴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 발전꽃 파는 처녀로 기억해요근데 보니까 한글로 돼 있더라고요.

 

질문】 그러면북한판본이네요.

 

김수행】 맞아요북한에서 나온 책입니다그때는 그런 책이 남한에서 나올 수가 없었어요그걸 보고서, “이거 어디서 난 거에요” 물었지요그랬더니 신 선생이 육군사관학교에 많이 있다고 하더라고요읽고 나서 돌려줬어요근데 68년에 통일혁명당 사건이 터졌는데신문에 신 선생이 잡혀가고 청맥회가 거론됐어요나는 68년 한여름에 잡혀 들어갔어요상과대 경우회 사람들이 잡혀가고나한테도 올 것 같더라고요부산에 도망가 있었는데내가 조교라서 학교에 전화했더니학교 선생님들이 정보부 사람들이 교무실에 매일 와서 앉아 있다고” 하는 겁니다그래서 학교에 갔어요바로 잡아가더라고요근데 사건이 종결될 때가 된 거지요나 같은 사람은 크게 가치가 없는 겁니다신 선생하고 걸린 게 별로 없어서나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어요조사받으면서신 선생과 별로 관계가 없다고 그랬어요그러다가 많이 맞았어요정보부에서 사건을 빨리 끝내야 할 필요가 있었던지신 선생이 진술한 내용을 내게 던져주더라고요근데 보니까책 빌린 내용밖에 없잖아요그 사람들이 이걸 읽어보고 인정해” 그러잖아요그래서 인정했어요그 당시 내가 조교를 하고 있었는데정보부 수사관들이 조교하고 조교수를 구분을 못 해서 신 선생이 나한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거예요나갈 때쯤 되니까정보부 수사관이 당신은 기소 유예될 것 같다라고 귀띔을 해주더라고요기소유예 받은 거지요그러고 나서 학교 조교 사표를 냈고은행에 들어가서 영국에 갔어요런던대학교 버크벡(Birkbeck) 대학인데거기에 영국 좌파들이 다 와 있었어요내 지도교수는 로렌스 해리스(Laurence Harris)라는 사람이고심사위원은 벤 파인(Ben Fine)이었습니다.

 

질문】 선생님은 영국에서 공황 연구를 하셨습니다선생님께서 쓰신 책 세계 대공황」 부제가 자본주의 종말과 새로운 사회의 사이라고 적혀있습니다선생님은 이번 자본주의 세계 대공황이 쉽게 말해서 자본주의가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지금 자본주의 사회는 붕괴하고 있나요흔히 말할 때자본주의는 경쟁 자본주의국가 주도 케인즈주의신자유주의 이런 식으로 발전해 왔는데현재 신자유주의가 파국을 맞고 있습니다선생님은 2007년 미국 금융위기 시점부터 보시는 겁니까?

 

김수행】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거는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금융 주도적인 경제체제로 됐기 때문에고용이 늘지 않아요금융이 주도하다 보니까선진국 산업 자본들은 중국에 투자하고 노동자를 착취해서 생산하여 자기 나라나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이런 경제형태가 된 거예요.

 

질문】 선생님중국이 세계 공장화됐다는 걸 말씀하시는 거죠.

 

김수행】 그렇죠신자유주의는 실제로 1979년 5월 영국의 대처가 수상이 되고, 1980년 11월 미국의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어 추진한 정책입니다그전에는 1950~1970년대가 자본주의 복지국가 시기예요이론적으로 케인즈주의가 영향을 줬지만복지국가 시대에는 실제로 노동조합하고 서민의 힘이 굉장히 강했고복지수준생활 수준도 높았지요대처와 레이건이 노동자계급의 힘을 꺾기 시작한 게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입니다. 1974년부터 경제가 내리막으로 가기 시작했는데이 친구들이 노동법을 개악하고레이건이 미국 항공관제사 노조 파업을 탄압하고 해고를 했어요그러면서 긴축 정책을 펴는 겁니다이게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인데그러니까 산업자본이 파괴되면서실업자도 많이 생기고경기가 불황에 빠졌는데그렇게 되니까 금융밖에 국제경제력이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그래서 금융자본을 지원하여 전 세계적으로 주식시장자본시장을 자유화하면서 경제를 살리려고 했단 말이에요그런 사이에 산업자본은 갈 데가 없으니까중국에 투자하기 시작하는 겁니다세계적으로 중국이 세계 공장이 되고금융은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형성되면서세계 경제가 구성됐어요금융이 붕괴했다는 이야기는경제가 다 망가졌다고 보면 돼요경제를 일으킬 방법이 없는 겁니다그러니까 옛날과는 다르죠산업자본의 우위 하에서 금융이 산업자본을 도왔는데금융자본이 주도했기 때문에산업자본이 기반을 확충하지 못했어요경제가 전혀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그대로 증명이 되고 있잖아요. 2007, 2008년 전 세계적으로 공황이 전개되는 것을 보니까미국은 자동차 산업 살린다고 수천억 달러를 넣은 것뿐이에요실업을 해소하는 방법이 없는 거죠금융자본은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가지고금리가 제로잖아요온갖 투기를 하는 거예요손해 본 것을 보충하려고투기를 자꾸 한다는 얘기는 중산층에서 부를 뺏어갈 수밖에 없어요중산층이 몰락하는 겁니다. 1%대 99% 사회로 가는 거죠.

 

질문 바로 이어서 재정위기도 말씀해 주세요.

 

김수행】 2010년쯤 그리스 재정위기가 터지는데공황이 오기 전에 그리스 은행들이 국제금융자본(외국계 은행이고 주로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은행들)한테서 돈을 차입해서 온갖 투기(부동산주택담보 대출)를 해서 돈을 잃어버렸어요만기가 되니까 채권은행한테 돈을 갚아야 하는데그리스 은행이 정부에 돈 좀 꿔달라고 구제 금융을 신청한다고요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려줬어요근데 그리스 정부는 국채를 발행했으니까만기에 국채를 갚아야 하는데 경제는 망해 가고 돈은 없어 갚을 수가 없게 된 거지요그러니까 국제채권은행단이 트로이카(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 IMF)그리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놓고 돈을 안 갚는다고 비판하면서 트로이카가 자기들의 채권을 추심해달라고 강요한 겁니다그래서 트로이카는 하는 수 없이 먼저 자기의 자금(근데 이 자금은 각 회원국이 국민으로부터 거두어들인 혈세세금이야)으로 국채를 대신 갚아주고그리스 정부에 예산에서 흑자를 내서 자기가 대신 갚아준 구제금융을 상환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는 판입니다. “공무원 수를 줄여라”, “공무원 봉급을 줄여라”, “공무원 연금을 줄이고 퇴직 연령을 높여라”, “최저임금 수준을 더 낮추어라”, “국영기업들을 매각하라”, “공공요금을 인상하라” 등등국민이 죽어 나가는 겁니다불경기인데국제 금융자본을 위한 긴축 내핍 정책을 쓰니까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하고만약에 산업자본을 살리라고 트로이카가 돈을 주었다면고용소득이라도 늘잖아요이런 상태가 세계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니까자본주의는 망했다는 겁니다.

 

질문 선생님은 현 자본주의가 역사적 경향으로 볼 때 붕괴 경향으로 간다고 보시는 거죠그러면 자본주의가 번영기에서 팍 꺾이고 있는데봉건제보다 진보적 생산양식인 자본주의는 이제 힘들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수행 실제로 맑스는 1825년부터 10년 주기로 자본주의의 경기 변동을 본 겁니다. 1847년의 코뮤니스트 선언에 보면자본주의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시장을 만들어 내고 생산력을 거대한 규모로 발전시켰는데자본주의의 모순들이 격렬하게 폭발하는 공황이 자본주의에 치명적 타격을 준다고 보는 겁니다공황에서는 노동자나 기계가 남아돌지만이윤의 전망이 없기 때문에 자본가가 생산을 개시하지 않으며이리하여 노동자나 서민의 생활이 엉망이 되는 것이죠자본가계급이 생산수단을 독차지하면서 이것을 주민 전체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기 혼자의 이윤 획득에 사용하기 때문에인민 전체가 실업과 빈곤과 자살로 내몰리게 되는 것입니다이것이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이잖아요노동자들은 생산의 3대 요소(자본노동토지)는 남아도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못 사는가를 고민하면서자본가계급이 생산수단을 독차지하고 있는 생산관계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요생산수단을 노동하는 사람들이 차지하여 모든 사람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용하게 되면자본주의는 사라지면서 더욱 나은 새로운 사회가 오는 것이에요.

 

질문 금본위제에서 달러 본위제로 갔는데미국이 발권 국가로서 달러를 계속 찍어내고군사력에서 세계 헤게모니를 유지해서미국이 붕괴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김수행 그런 면도 있겠죠근데 1973년 10월 오펙이 기름값을 4배나 올렸는데그때가 베트남 전쟁 때입니다미국이 달러를 너무 많이 찍어내서세계시장에서 원자재 가격온갖 물가 폭등이 일어났기 때문에 오펙이 기름값을 올릴 수 있었어요. 3차 양적 완화 정책을 쓴다고 하는데실제로 달러값이 상당히’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어요다른 나라에서 세계화폐로서 달러를 안 가지려고 할 거라고요안정적인 세계화폐가 없으면 국제간의 무역이나 자본거래가 크게 축소할 수밖에 없고세계 경제는 1930년의 세계 대공황처럼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요.

 

질문 유로화위안화가 세계화폐로 등장할 가능성은 없나요?

 

김수행 지금까지 미국 달러만큼다른 나라들이 그런 힘을 갖지 못해요유럽이 경제통합은 했는데정치적으로 하나의 힘이 안 되잖아요미국처럼 연방국가가 된 것이 아니라고요유로존이 애를 먹는 이유가각국의 재정이나 금융을 하나의 집단으로 유럽연합이나 유럽 중앙은행이 관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유로존이 하나의 세력으로 뭉쳐야 유로화가 세계화폐로 가능한데지금 그럴 능력이 하나도 없잖아요중국은 자기 나라 안의 정치적 불안 때문에위안화가 세계화폐가 될 수가 없어요아까 질문에서 얘기했듯이 미국이 군사력으로 세계 헤게모니를 유지한다고 했는데그렇게 되려면 군사비 지출이 대폭 증가해야 할 것입니다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이란 등지에서 온갖 일을 벌이고 있잖아요금융자본은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의 증가를 싫어해서 군사력으로 세계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것까지 반대할 거라고요.

 

질문】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 경제의 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보기를 들면 케인즈주의를 부활시킨다든지?

 

김수행 케인즈주의 방법은 안 되고부르주아들이 뭘 하냐면돈을 찍어내어서 증권시장을 강화하고 있어요이게 양적 완화 정책의 핵심입니다돈이 산업자본으로 가서노동자의 실업을 해소하는 그런 정책이 안 나온다고요은행들이 기업한테 대출을 안 해줘요돈 떼일까 봐스스로 금이나 곡물 등에 대한 투기를 자꾸 하기 때문에돈이 인민을 살리는 방법으로 안 간다는 겁니다금융공황을 겪으면서 금융자본가들과 증권투기꾼들이 큰 손실을 보았는데그들은 언제 주식가격과 증권가격이 다시 폭등할까 그런 생각만 하고 있어요양적 완화 정책으로 돈 푼다고 하는데산업자본가는 큰 이익을 얻을 수가 없어요.

 

질문 이번 세계 대공황을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출발했다고 보시는데. 1929년 세계 대공황과 지금 세계 대공황의 차이는 어떻게 되나요?

 

김수행 1929년 공황이 일어났는데대공황을 극복하는 방식이 미국에서는 루즈벨트가 뉴딜을 했지요실업자와 빈민들이 데모하거나 굶어 죽으니까사회보장제도로 못사는 사람들에게 돈을 푼 겁니다그리고 댐도로주택을 정부가 건설해서 일자리를 만들어 준 겁니다독일에서는 나치가 등장하여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자원을 획득하고 생활권을 확대해야 독일이 번영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게르만 민족주의가 나오는 겁니다. 1930년대 공황은 전쟁을 계기로 회복되는 거지요케인즈주의가 뭐한 게 아니에요히틀러가 전쟁을 위해서 군수산업을 일으키니까딴 나라도 할 수 없이 군수산업을 일으키는 겁니다전쟁이니까 정부가 개입해서 군수산업을 확대하면서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가 회복된 겁니다.

 

질문 선생님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무솔리니히틀러파시즘이 나온 것처럼지금도 노동계급이 투쟁을 제대로 못 하면 민족주의나 파시즘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김수행 지금 자본가계급이 노동자나 서민을 살릴 수 없으니까이민자나 회교도를 박해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다른 곳으로 전환하는 중입니다이런 외국인 혐오주의를 강화하면서 노동계급의 반발을 억제하려는 것이지각국에서 나치 계통의 정당이 조금씩 세력을 얻는 것도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 투쟁의 한 가지 전략입니다이것은 결코 노동자나 경제를 살리는 정책이 아닙니다.

 

질문 그런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가 일본과 독도 분쟁하고 있는 거죠.

 

김수행 맞아요그리스스페인아일랜드 등 온갖 나라들이 경제에 골치를 앓고 있잖아요내가 생각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공장을 접수하는 수밖에 없어요이윤추구가 아니라같이 일해서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질문 자연스럽게 대안 사회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새로운 사회를 말하려면, 1917년 러시아혁명 경험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선생님은 최근에 쓴 책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6장에서 소련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였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선생님은 결국 소련 사회가 레닌의 정치혁명 시기나 스탈린의 공업화 시기에도 결국 자본-임금노동 관계가 지배적이었다고 보시나요?

 

김수행 그래요자꾸 생각하면 할수록 소련의 볼셰비키혁명 자체도 소련 경제를 어떻게 개발할 거냐 하는 문제에 집중된 것 같아요혁명 과정에서 적군이 백군을 진압한 뒤 신경제정책을 실시하거나 국가자본주의를 이야기하거나 농업 집단화나 중화학 공업화의 추진 등에서 새로운 사회의 특징인 노동자의 해방은 전혀 논의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생산력을 증강시킬 수 있는가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 돼요내가 자본주의였다고 생각하는 것은맑스가 얘기할 때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서는 노동자가 해방되는 겁니다임금노동자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맑스대로 이야기하면 상품화폐임노동 관계가 소멸해야 해요근데 소련에서는 자꾸 경제개발 문제만 생각하는 겁니다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를 계획경제로 보느냐아니면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사회로 보느냐는 가장 핵심적 쟁점이거든요그런데 특히 스탈린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기본 문제라는 것이 생산의 무정부성이다무계획성이다계획적으로 운영하면자본주의적 공황도 없고 낭비도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그러니까 노동자가 주인이라는 개념이 빠지는 겁니다국유화의 의미가맑스에 따르면 생산수단을 자본가로부터 노동자에게로 소유를 이전하는 것이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표지인데소련에서는 국가가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해서 노동자를 착취하여 자본을 축적해서 군수산업 등 각종 산업을 건설하는 이런 식으로 갔다고요임금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이 인간의 탈을 쓴 게 자본가라고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소련에서는 국가당과 정부의 관료나 노멘클라투라가 자본가계급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질문 소련의 국영기업과 달리 보기를 들면 콜호스소프호스는 소련의 집단 농장으로 모든 생산수단을 사회화하고 협동조합 형식에 의해서 농민이 집단 경영을 하고각자의 노동에 따라 수익을 분배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콜호스소프호스도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라고 볼 수 있나요?

 

김수행 집단농장도 모두 정부가 통제했어요자발적으로 했다고 볼 수 없지요생산량 할당하고 임금도 위에서 다 결정하고맑스에 따르면각 공장을 공동으로 소유한 노동자들이 공장을 운영하고다른 공장들과 연계해서 전국적 계획을 세워야 해요그게 인민을 중심으로 한 계획경제지요이렇게 하여 직접 생산자들이 자꾸 협력하게 되고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연합)을 형성하는 겁니다.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이 새로운 사회에서는 국가라는 겁니다그런데 소련에서처럼 정부나 당의 관료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이래라저래라하면서 계획을 세우면 노동자들이 일할 맛이 나겠어요소련 사회가 네프(NEP. 신경제정책)로 넘어갈 때레닌이 그러잖아요경제를 움직여야 하는데머리가 빨갛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 없다고잘 모르는 사람이 공장 운영을 어떻게 해요네프 도입은 자본주의의 시작입니다.

 

질문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지난 19809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소련 사회를 자본주의라고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맑스의 경제학 비판을 제대로 복원하려면스탈린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봅니다스탈린주의 경제학은 사회주의 생산 양식론이나자본주의 전반적 위기론정치적으로는 진영 테제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스탈린주의 경제학 비판을 하려면 맑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거죠선생님은 과거 소련 사회 경험에서 본 것처럼국유화가 문제라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한국 사회 일부 운동진영에서도 국유화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김수행 경쟁 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 그리고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성장하다가 새로운 사회(사회주의 사회로 부르든공산주의 사회로 부르든)로 간다는 겁니다이것은 엥겔스 도식입니다새로운 사회가 계획경제라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 겁니다여기에 노동자가 어디에 있어요없지요엥겔스 도식을 스탈린이 받아들여서 계획경제의 실현을 사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지표로 제시했어요진영 테제는 이론도 없고아무것도 아닙니다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이나 강제수용소는 맑스가 자본론에서 이야기한 자본주의의 시초 축적입니다옛날 소련 경제를 전형으로 하는 중앙지령형 통제경제에서는 국가가 세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국가가 동원한 노동하는 개인들은사실상 국가에 노동력을 파는 임금노동자노예에 지나지 않아요.

 

맑스가 생각한 노동자 해방해방된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창의적으로 협동하는 그런 개념이 없어진 겁니다평의회나 이런 게 없어진 겁니다이런 게 문제점이라고 생각해요혁명적 이행기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공권력을 장악한 노동자들의 연합이 공장을 접수하여 임금노동 제도를 폐기하고 자본가계급을 노동하는 개인들로 전환시켜서 계급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결국해방된 노동자가 주체가 돼야 하고 중심이 되어 자본주의 잔재를 부수어야 하는데새로운 계급인 당이나 정부의 관료가 하니까 안 돼요정부 관료가 금년 목표는 이거야” 노동자들한테 따라와” 이렇게 하니까 말로만 계획경제입니다지금 새롭게 나오는 소련 문서를 보면국영기업들이 이윤율을 올릴수록 경영자와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인센티브(incentive), 보너스를 받게 되었다고요전체적인 계획경제도 안되고거짓말 보고만 되는 겁니다자본주의의 임금노동자와 무엇이 달라요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은 이런 특수한 소련 자본주의를 시장에 다 맡겨 경쟁적 자본주의로 전환시켜야 비리가 없는 능률적 사회가 된다는 겁니다지배계급인 당과 정부의 관료가 국유재산을 모두 헐값으로 사들여 경쟁적 자본주의의 자본가계급으로 둔갑했는데소련의 역사 80여 년이 이런 식으로 쭉 연결된 겁니다.

 

질문 선생님 견해에 따르면지금의 중국북한도 자본주의로 볼 수 있겠네요국가 주도적 자본주의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수행 자본주의에서는 경제적 권력이 자본가계급에 있기 때문에 국가 주도가 잘 안 돼요박정희 체제를 국가 주도라고 했지만실제로는 재벌한테 모든 걸 맡긴 겁니다새로 탄생한 국영기업이 별로 없잖아요정부가 재벌한테 금융 혜택세제 혜택 줬어요외국 차관의 도입에 정부가 지급 보증을 했어요재벌이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중소기업을 수탈하는 것을 박정희가 총칼로 보호한 겁니다흔히 박정희 체제에서는 정치권력이 경제력을 제압했다고 보면서 국가 주도를 이야기하지만이것은 겉으로 나타난 것을 가리킬 뿐입니다독재적 정치권력은 권력 유지에 돈이 필요해서 증권파동을 일으킬 정도였기 때문에재벌에 크게 의존했고미국 정부가 국영기업이 아니라 민간기업 중심으로 경제를 개발하라고 지침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독재 권력은 재벌 중심으로 경제개발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어요따라서 국가 주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는 낡은 사회를 타파해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고 시도하는 혁명적 전환기일 뿐입니다실제로 해방된 노동자들이 공권력을 장악하여 공장을 접수하면서 사회를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가야 합니다.

 

질문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이행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선생님은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에서 이행기 문제를 말씀하십니다이행기 강령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궁금한 게 있습니다이행기 강령에 시장도 사라지고 화폐도 없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요일반 노동자들이 볼 때 쉽게 다가서지 않을 것 같아요그리고 일반적인 좌파들트로츠키 이행기 강령보다도 더 센 이행기 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이 부분을 설명 좀 해주세요.

 

김수행 자본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자본론에서 상품부터 시작하잖아요생산물이 상품으로 전환하면서 상품교환이 이루어지고상품교환에서 화폐가 생기며화폐를 가지고 더 많은 화폐를 얻기 위해서결국 임금노동자를 착취하잖아요상품화폐자본은 결국 임금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으로 귀결하게 돼 있어요이 기본 요소들을 없애지 않으면자본주의는 계속 살아남게 돼 있어요.

 

새로운 사회인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에서는 노동하는 개인들이 모든 노동조건들에 대해 공동으로 자기의 것으로 상대하기 때문에혁명적 이행기에 생산수단이든 소비수단이든 사회적 생산물을 사회의 일부 사람들이 배타적으로 처분 사용하는 것을 완전히 없애야 합니다이래야만 생산물이 상품형태를 취하거나가치에 따라 교환되거나 하는 것이 없어지고따라서 일반적 등가물인 화폐와 시장이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이행기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공동의 생산수단으로 노동하고 모든 개인적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의식적으로 지출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이행기의 초기에는 아직 자본주의가 지배적이니까 화폐가 있을 수 있겠지만, (공장평의회에서지역평의회로전국평의회로 가면서노동자들의 연합이 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계획적으로 이용하여 주민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생산한 것을 각 가정에 택배로 배달하면 될 것이므로 생산물이 시장에서 팔릴 필요도 없고노동자들이 화폐를 갖고 물건을 살 필요도 없어요화폐가 계속 사용된다면화폐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상품을 매점매석하여 물가를 폭등시켜 혁명을 좌절시킬 수 있기 때문에쿠바혁명에서도 체 게바라가 몇 번에 걸쳐 화폐개혁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질문 최근 한국 사회에서 복지 담론이 화두입니다한국 사회도 경제 성장 후퇴가 발생하고 있는데복지 담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수행 한국에서는 복지국가가 성립하기도 전에복지국가를 타도하는 신자유주의가 1997년 말에 폭발한 금융외환위기에 대한 IMF 처방으로 광범하게 도입됐잖아요서방에서 복지국가를 해체하기 위해 채택된 신자유주의가 한국에서는 복지제도도 없는 상태에서 도입되었기 때문에보통 사람들즉 민중은 살기가 더욱 어렵게 된 겁니다대량 해고의 실시정규직의 비정규직화공기업의 민영화교육의 시장화부자 감세공공요금의 인상대외거래 자유화와 개방화긴축 내핍정책 등이 대표적입니다한국 사회는 깡패 자본주의 사회라고요실업문제자살 문제빈곤 문제를 전부 개인의 문제로 돌리잖아요사회 문제로 봐야 한다고요그래야 복지가 문제로 될 수 있어요빈곤실업불안자살 등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고 사회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야 복지정책이 제대로 나올 수 있어요그런데 한국 사회의 지도자들은 전혀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고통에 시달리는 민중도 이런 인식이 부족해요.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사상이나 생각 면에서는 완전히 낮은 수준입니다이런 상태니까복지에 대한 요구가 어느 날 갑자기 무상급식이나 반값 등록금이라는 형태로 분출해서 나오는 겁니다이것을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욕하든 말든무상급식을 쟁취했기 때문에 민중은 이제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계속 더 많은 복지를 요구할 수 있는 겁니다복지에 대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부자에 대한 공격부자를 위한 정당과 정부에 대한 반대가 강화될 것이고부자들은 옛날 그 좋던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할 것이지만이제는 세상이 디지털 세상이 되어 그런 폭력과 부정부패가 지배할 수가 없어요.

 

1%의 부자가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99%의 서민은 빈곤에 시달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없애버리고매년 생산된 부를 나누어 가지면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는 새로운 사회가 될 겁니다정치 민주화가 정치면에서의 ‘1인 1라면 경제 민주화는 당연히 경제면에서의 ‘1인 1일 것이므로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간단히 말해 공장과 회사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이 공장과 회사를 운영하는 겁니다.

 

질문】 선생님의 앞으로 연구 계획은?

 

김수행 이제 맑스 경제학의 원론을 뛰어넘어 좀 더 구체적인 한국 경제를 연구하고 싶습니다.

 

 

<편집자 주이 글은 2012년 여름남궁원 동지가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김수행 선생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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