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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완치됐지만 , 내장 쪽은 완전한 병원병으로 되어 있어 , 나의 방법으로 치료를 해도 , 원래의 건강체로 되돌아가는데는 3 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다 .
그런데 , 여기까지 읽으신 독자들 속에는 , 이래서야 ... 서양의학에 대한 불신감을 심어주는 것뿐만이 아닌가 라고 , 불안하게 여기는 분도 있을지 모른다 . 서양의학의 장점은 확실히 크고 , 나로서도 이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생각은 아니다 . 그러나 올바르게 말해 , 여기까지 발달한 현상에 있어서도 , 그 장점은 2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고 잘라 말할 수 있다 . 하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따위의 감염증을 항생물질 , 왁찐 따위로 주사 놓는 것 . 또 하나는 전쟁이나 교통사고에 따른 큰 부상이 일어났을 경우 , 구급처치에 의해 인명을 구하는 것 ----- 이 2 분야에 관해서만이다 .
즉 서양의학은 만능이 아니다 .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 이것을 만능으로 믿고 , 병에 걸리면 의사에게 가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 , 건강체로 되돌릴 수 있다고 맹신하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너무 많다 . 또한 이것은 더 심한 문제인데 , 의사 쪽에서도 서양의학 만능론을 믿어 , 자신들의 지식의 한계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너무 적다 . 그 때문에 , 약의 해악이 넘쳐가득하고 , 이것이 현재 다종다양한 병원병을 낳아내놓고 있는 사회적 배경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
약에 기대지 않고 , 자연치유력을 활발하게 한다
건강에 관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 먼저 몸 전체의 균형을 바르게 하여 , 자연치유력을 증진시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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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은 조금 낫았다 하더라도 , 환자의 건강 그 자체가 더욱 악화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
증상 치료법이 불러일으키는 ' 병원병 ' 의 무서움
전형적인 한 예를 들어보련다 .
저의 먼 친척인 중년의 여성인데 , 그녀는 오랫동안 류마티스로 계속 괴로워하고 있었다 . 게다가 , 의사의 치료를 받으면 받을수록 , 그 병의 상태는 악화되어 갔고 , 드디어는 극약인 부신피질 호르몬을 대량 투여하지 않으면 아픔이 낫지 않는 지경에까지 병 상태가 진행됐다 . 게다가 불행하게도 , 그녀는 담석증을 앓아 , 그 수술을 했는데 , 배를 가르는 수술을 한 외과의는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 그렇게 된 것은 , 그녀의 간 , 콩팥 , 비장 , 쓸개 라는 내장이 헤어진 옷감처럼 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
그 외과의사는 , 그녀의 류마티스 치료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 역시 부신피질 호르몬의 장기간 투여가 내장질환의 참 원인이라고 알려주고 , 류마티스의 치료방법을 바꾸도록 , 슬며시 도움말을 주었다고 한다 . 현장의 의사가 병원병 ( 치료의 부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치명적인 병 ) 을 정말로 인정했던 것이다 .
그 때까지는 서양의학을 맹신하여 , 나의 치료법에 무관심했던 그녀도 , 일이 이 지경에 이르러 , 지금까지의 신념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 그 뒤 나의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 류마티스는 6 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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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3 ~ 4 개월째에는 , 위의 아픔이 싹 없어져 버리고 , 트림도 입냄새도 싸악 가라앉았다 .
반년 뒤에는 , 식욕이 씩씩 나오기 시작하여 , 아무리 먹어도 위에 얹히는 적도 없고 , 더하여 위의 아픔도 없고 , 기름진 것도 점점 먹게끔 되고 있다 . 물론 위궤양의 흔적 따위 렌트겐을 찍어도 , 그 그림자도 없다 .
증상치료법에 불과한 현대의학의 한계
위궤양은 물론이고 , 현대 서양의학에서는 , 어깨결림이라던가 두통 , 요통 , 피로하기 쉬운 체질 , 냉증 그리고 생리통 따위의 것은 병의 종류 속에 들어가 있지 않다 . 들어가 있지 않으니까 , 물론 치료법도 없다 . 세계의 훌륭한 의사들이 모여 있는 ' 두통학회 ' 라는 데에서는 , 두통은 근본적으로는 낫지 않는 것 이라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 . 그러나 그러한 결론이 내놓아져도 , 두통으로 괴로운 사람으로서는 아파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
게다가 , 서양의학에 의하면 , 두통이란 머리 속에서 혈관이 이상하게 확장한다든지 , 때로는 피가 나고 있는 상태이다 라고 한다 . 따라서 두통의 아픔만을 쉽고 편하게 약으로 멈추어 놓는 경우 , 그것은 근본적으로 낫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 혈관의 이상확장이나 출혈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 그리되면 , 그 결과 두통을 가진 거의 모든 사람은 , 앞으로 , 뇌 피떡이던가 뇌 큰 부스럼으로 될 가능성이 큰 상태가 되어 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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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카노 브로드웨이 속의 병원에서도 렌트겐을 찍고 , 확실히 위궤양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 웬지 수술을 받는 것이 싫어 거절했어요 "
" 그거 잘됐네요 "
라고 , 나는 말했다 .
그는 그 뒤 , 미츠이 기념병원에 다니며 , 약을 계속 먹었지만 , 상태는 좋아지지 않는 것뿐만 아니고 , 드디어는 간장마저 아파져 버렸다고 한다 .
이것이 , 그의 주요 병력이었다 .
병의 상태도 , 그 자리에서 자유로이 조종하는 것이 가능한 불가사의
" 낫을까요 , 선생 "
그는 심약한듯이 이리 말한다 . 나는 말씀드렸다 .
" 무엇 때문에 , 귀하는 나의 진료소에 왔읍니까 ? 병을 고치기 위해서지요 ..... 걱정말아요 , 내가 말하는 대로 하고 , 일상동작에 신경을 쓰면 , 위의 아픔 따위 바로 가라 앉아요 "
" ..... 그것은 , 위의 아픔만이 가라앉겠지요 . 위궤양 그 자체가 낫을리가 없을테죠 "
" 나의 건강법에서는요 , 아픔을 없애는 것은 , 즉 그 병의 근본원인을 없애는 것입니다 . 알겠어요 ? 여기를 착각하지 말아주세요 . 서양의학은 증상치료법 , 나의 이소가이 건강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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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이 싹 없어졌다 . 무슨 이유인지 , 폐마저 나빠져서 , 37 도 2 분의 미열이 약 1 년동안 계속됐다 . 그 뒤 4 ~ 5 년 동안 , 날마다 , 칼슘 주사를 주욱 맏았다 . 위의 상태는 조금 좋게 된듯 했지만 , 그래도 잠시 있으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
40 살 무렵에는 , 주사의 회수도 약의 양도 , 차츰 늘어나고 , 게다가 위가 이전보다 더 나빠져서 , 거의 하루종일 아프고 , 자동차나 자전거를 타면 그 진동이 찌끈찌끈 울렸다 . 의사에게서의 치료는 ,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
어느 절에서 지름 5 센티나 되는 뜸을 , 두 다리와 등에 합쳐 6 곳이나 뜨고 , 뜸 뜬 뒤에는 스모 고약 이라고 하던가 그러한 약을 , 기름종이에 발라서 붙인다든지도 했다 .
50 살쯤 , 역시 위의 아픔이 가라앉지 않아서 , 미츠이 기념병원의 내과에 가서 , 바리움을 먹고 위의 렌트겐 사진을 찍은 결과 , 위궤양이라 진단받고 " 수술을 하여 위를 잘라내는게 좋다 " 라는 말을 들었다 .
' 수술 ' 은 내장질환의 근본치료가 아니다
위궤양의 수술은 아무 폐해도 없다고 보통 말해지고 있다 . 서양의학의 의사들은 , 다른 사람의 위장이니까 , 참 간단히 위의 수술을 환자에게 권한다 . 그러나 , 말해 두겠는데, 위 따위의 내장은 , 자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정해져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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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 , 위가 나쁘지요 "
나는 그 사람을 보자마자 말했다 . 그는 ,
" 예에 ~ , 그렇습니다 "
라고 말한다 . 입냄새가 썩은듯 느껴졌다 . 들어보니 20 살 무렵부터 벐써 40 년 동안에 걸쳐서 , 위통에 괴로워하고 있다고 한다 . 음식을 조금 더 먹는다든지 , 기름진 것을 입에 넣으면 , 바로 신 위액이 올라와 입 속 가득 퍼진다든지 , 트림이 나오게끔 되었다 .
24 살쯤에는 , 하루에 두 번 세 번이나 위경련이 일어나 , 기름땀을 흘리며 쓰러져서 , 아파 대굴대굴 굴렀다고 한다 .
" 너어 ~ 무 아파서 ..... 몸을 접고 쓰러져 굴러도 , 어찌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
위통은 ,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실테지만 , 죽을 만큼 아픈 것이다 . 갈비뼈 아래 , 명치의 언저리가 하루종일 둔하게 아프다 . 위경련의 아픔은 , 이것은 너무 격렬하여 , 기둥을 꽉 붙잡고 큰 소리로 비명을 질러도 가라앉지 않을 정도이다 . 그러한 아픔을 40 년 동안 함께 하고 있다 라는 것이니까 , 이 사람은 꽤 참을성이 강하고 , 마음이 굳은 사람이 틀림없다 . 그것은 어쨋든 , 대단한 이 사람도 , 역시 , 날마다 계속되는 위의 아픔에는 , 마음이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
20 대의 끝 무렵에는 약국에서 위 약을 사서 먹는다든지 , 침 치료소에 다닌다든지 했다 .
30 살쯤 , 점점 위가 아픈 횟수가 늘어나서 , 아무래도 참을 수 없게 되어 , 내과의원에 갔다 . ` 만성위염 ` 이라는 진단인데 , 약의 복용과 하루 걸러서 두 팔에 주사를 되풀이 맞았다 . 그러나 그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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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딸도 말했다 .
" 벌써 , 간경변에 걸렸을지도 모르지요 "
★ ★ ★
간경변이 , 서양의학에서는 지금도 역시 손도발도 못쓰는 병이라는 것은 ,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실테지요 . 일단 환자가 그것에 걸려버리면 , 서양의학은 힘이 없다 . 단지 증상이 악화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 게다가 , 그러한 병이 그 밖에도 산처럼 많다는 것을 , 독자들은 아실까요 . 서양의학은 결코 만능이 아닌 것이다 .
그것은 ' 아픔 ' 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 서양의학에서는 , 거기에 있는 ' 아픔 ' 을 대증적 , 부분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가능하다 . 예를 들면 , 진통약을 쓰는 방법에 의해 , 또는 , 수술이라는 방법에 의해 ..... 그러나 이것들에는 약의 부작용 , 수술에 의한 부자연스런 처치 , 게다가 몸의 비뚜름으로부터 오는 폐해 라는 것이 늘 따라 붙고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
약도 외과적 수술도 쓰지 않고 , ' 아픔 ' 을 제거하여 , 병을 뿌리로부터 치유시키는 방법 ..... , 그것만 발견되면 , 인간은 끝없는 행복에 가까이 갈 터이다 . 이것이 나의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 그리고 , 나는 그러한 방법 , 이론을 개발했던 것이다 . 지금 나는 단언할 수 있다 . 나의 이론 , 치료법이라면 , 서양의학에서는 불가능이라 여겨지고 있는 간경변의 아픔이라도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고 , 간경변 그 자체를 고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 말기증상의 배에 찬 물을 몇 시간만에 빼낸 예도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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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해 두는데 , 나는 테라야마 씨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 일면식도 없다 , 그러면 , 어떻게 , 그 죽음을 예측했었을까 . 텔레비젼에 출연하고 있었던 그의 모습을 통해서이다 .
말할 것도 없이 , 나는 점쟁이 , 팔괘를 보는 따위의 사람이 아니다 . 이 40 년 동안 ' 이소가이 건강법 ' 이라는 , 스스로 발견하고 , 개발한 , 서양의학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부터의 의료를 연구 , 시술하고 있는 한 사람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
그런 내가 , 어찌 , 테라야마씨의 죽음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
텔레비젼에 내비친 테라야마씨의 얼굴 모습에서 , 나의 이론에 참으로 딱 들어맞는 , 그리고 , 그것은 병상의 절망적인 심각성을 보이는 비뚜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
머리가 극단적으로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 오른 눈이 작고 , 아랫입술이 오른쪽으로 치우치고 , 오른 입술 끝이 위로 치켜 올라가 있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 몸 그 자체가 오른쪽으로 심하게 구부러져 있다 .
" 저 사람은 ..... "
이라고 나는 그날 함께 텔레비젼을 보고 있었던 딸에게 말했다 .
" 극단적은 L 형이네 . 위장이든지 간장이 병에 걸렸음에 틀림없다 ..... 그냥 놔두면 , 이제 , 죽게 되어 버릴꺼야 "
이유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는데 , 그것은 나의 이론에서는 명백한 것이었다 .
" 그렇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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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현대의학을 뛰어넘은 건강법
얼굴을 한번 보고 , 건강상태가 꿰뚤어 보이는 이소가이 건강법의 놀라움
" 아아 , 역시 ....."
그날 , 나는 허무한 마음을 가지고 , 보도된 기사를 훓어보고 있었다 .
1983 년 5 월 4 일 . 아사히 신문의 저녁판의 사회면 기사는 , 극작가이자 시인인 테라야마 슈유지 씨의 죽음을 전하고 있다 . 사인은 간경변에 의한 급성복막염 . 47 세의 젊은이였다 .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
" 역시 , 안좋았구나 "
나는 옆에서 , 나의 연구를 돕고 , 이 원고를 정리하는데도 힘을 빌려준 나의 딸에게 생각 없이 말을 건넸다 .
사실 , 지난해 가을 무렵이었다고 생각하는데 , 큰 소리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이지만 , 나는 이 테라야마 씨의 곧 닥칠 죽음을 예측하고 , 환자분들에게도 이야기 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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