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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 | 노조 | 이야기 - 2006/03/09 14:04

요즈음 내 근처의 2가지가 정리되었다.

한가지는 참세상공동체에 연재되던 김하경선생님의 '천일야화'(http://go.jinbo.net/1001)가 3월 3일부로 1001일을 맞이하여 끝이 난 것,
다른 한가지는 회원으로 몸담고 있던 한국보육교사회가 해산한 것.

 

과정에서 별다르게 개입한 바 없지만 나름대로 의미있는 정리들인데,
스스로 정리에 대한 맞이가 무척 담담한 게 신기할 정도이다.
나 자신이 뭔가 정리하면서 새로이 시작을 맞이하는 기운을 뿜어내는 상태가 아니라서 그런가?

 

하긴 '천일야화'의 경우에는 김하경선생님 뵐 기회도 있을 것 같고, 책 출판도 하실 것 같고 하여 맺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짙어서 그런가보다.
물론 김하경선생님께서 먼저 알고 전화 주신 건 어찌나 미안하던지...
어떻든 2003년 7월 10일에 처음 시작하여 3년을 이어온 연재의 끝이라니, 별로 한 것도 없는 데 괜히 뿌듯하고 기분 좋다.


한국보육교사회는 ...



86년 지역사회아동교사회에서 시작하여,
87년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가 되었으며,
97년 한국보육교사회로 거듭난 단체로,
2006년에 해산총회를 가졌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보육 분야에서 20년을 굳건히 버틴 단체의 정리 작업은 1년이 약간 넘는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2005년 총회때 보육노조 건설이후 단체의 전망에 대해 논의할 전망논의팀을 만든 후 1년여를 논의하였고,
2006년 1월 15일에 해산총회하고,
2월 24일에 10년 활동을 정리한 자료집 한판 내면서 맺음자리 갖고,
3월 6일엔 있는 자료, 없는 재산을 몽땅 정리하고 남은 자산은 전국보육노동조합에 후원하였다.

 

자료를 파기하면서 역대 사무국장들, 욕 많이 먹었다. 귀 엄청 간지러웠을 것이여.
제때제때 버리지 못하고 쌓아놓은 원흉들, 이런 때 불러내 원죄를 물었어야 하는데...^^
(단체 사무국장님들, 명심하소서~!)

 

주민등록번호, 계좌번호가 있는 종이들은 모두 찢었다.
그놈의 카드명세서, 진짜 지랄맞다.

 

파기작업 과정에서 나름 크게(!) 깨달은 3가지 교훈은,
1. 클리어파일 사용하지 말 것.
 -> 비닐마다 적당량의 문서가 들어있어야 잘 빠지는 데, 근본적으로 안의 내용을 빼는 것 자체가 괴로운 작업이다.
2. 쓸데없이 주민번호 받지 말 것
 -> 이상하게 내부 영수증에도 주민번호 받는 만행을 서슴치 않고~! 단체 하나에서 쏟아져나오는 개인정보의 수준이 이 정도라니, 나라 전반에 퍼진 개인정보들의 양이 감히 상상되지 않을 정도이다.
3. 일하지 말 것
 -> 정말 공감 백배, 쌈박한 방법이다. 단체 활동가 일을 너무 많이 한다. 적당히들 할 것이지...^^

 

이 단체가,
5년 전에 문 닫았어야 했는 지, 지금의 해산이 가장 훌륭한 선택이었는 지, 좀 더 미래를 도모했어야 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건 해산이라는 결정조차
자신들의 의지가 살아있을 때, 조직 논리에 빠져 더이상 회원들의 매듭의 권한이 상실되기 전에 내려졌다는 점에서 약간은 명석했다고 판단할 뿐이다.

 

보육운동판에서의 몇 안되는 운동 구심체로써의 역할을 생각해보면 운동판 자체의 역량 손실은 명백하다.
반면 조직을 정리함으로써 묶여있는 개별 인자들의 소진을 막고, 확장적 고민을 도모하고, 밑바닥부터 다시 쌓아올리는 진보의 기운을 만들어내리라는 희망이 해산의 안타까움을 충분히 대신할 만 했다고 본다.

 

그보다 내가 좀 더 걸리는 안타까움은 조직이 찾은 해산의 의미보다는 기실 부차적인 것일 지 모르겠다.

최근 민의련 해산의 경우에도 활동가 재생산의 문제가 일부 언급되었던 것 같은데,
한국보육교사회 역시 조직이 할 몫에 대한 완수와 자축을 가장 큰 의미로 두고 있는 한편 활동가 재생산 문제를 짚는 회원들이 있다.

 

활동가가 재생산되지 못한다는 것은
아예 진입자체가 없다는 상황도 있겠지만,
누군가 잠시 진입했어도 그들을 붙잡지 못했다는 상황도 상당 유효한 이야기이다.
이렇게 후배로 들어와 조직 해산에 이르기까지 계속 후배로 남고, 누군가 새로이 진입했을 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이면에는
바로 조직 안에서 조직이 소진시키는 활동가의 모습이 있(지 않나 싶)다.

이런 기운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의식 중에 알아챌 수 있는 기운이다.

 

인생의 후배들에게 사회운동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일깨우거나 관심을 가질만한 사회가 되도록 구조 변혁에 힘쓰는 것도 운동의 할 일이려니와,
운동이라는 이름의 지점에 들어온 스스로에게 소진의 과정이 아닌 힘 받고 희망 받고 행복 받는 과정을 마련하는 것 역시 모두를 위한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주 기본적인 노동조건 향상부터 고민해보는 건 어떨지 싶은데...ㅋㅋ

 

 

* 참고

 

한국보육교사회 해산공고

since 1986.2~2006.2

 

한국보육교사회는 1986년2월 지역사회아동교사회로 창립하여, 1987년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로 명칭 변경하였고, 1997년 7월 한국보육교사회로 전환하여 육아의 사회화를 이루기 위해 활동하였습니다.
한국보육교사회는 영유아보육법 제정운동, 법제도 개선운동 등을 통해, 이땅의 “엄마에게 일할 권리를, 아이들에게 보호 교육받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을 넘지 못 한다”는 생각으로, 보육교사 재교육과 보육교사 처우개선을 위한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2004년 보육교사 당사자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전국보육노동조합의 결성을 주도하였고, 이를 통해 2005년 전국보육노동조합이 결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보육교사회는 지난 1월15일 제10차 총회에서 한국의 보육운동 속에서 우리 회가 올바른 보육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였음을 자축하며, 조직의 해산을 결의하였습니다.

그동안 
한국보육교사회의 활동에 많은 지지와 후원을 보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한국보육교사회 회원일동 드림
200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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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9 14:04 2006/03/0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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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6/03/09 01:04

지난 2월 23일에 읽혀졌다는 부산 김진숙 지도위원의

부산지하철 매표소 비정규 해고노동자 고용승계 쟁취 결의대회 연설문을 읽었다.

 

'평등해야 강해진다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비정규직과 정규직에게 보내는 말이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벌써 2주나 전에 씨네21에서 읽은 [별의임무 - 그저 빛나기] 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주요내용이라면 이런건데..

조폭 내부의 엄청난 빈부 격차 - 즉 형님은 외제차에, 뻑쩍지근 저택에, 수많은 이들의 경호를 받는 반면, 아우들은 합숙에, 패스트푸드 끼니에,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 상황이 유지되는 이유를 스티븐 레빗의 괴짜경제학 논리를 빌어 설명하고 있다.

형님은 바로 아우들의 이상향이고, 그것이 바로 현실의 상황을 견디게 하는 인센티브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 내용인데,

그래서 신인배우에게 주어질 수 있는 인센티브라는 것이 바로 화려하게 빛나는 스타배우의 모습이라는 건데, '스타의 가장 큰 임무는, 비록 대중의 욕을 바가지로 먹는 한이 있어도 저 하늘의 별처럼 환히 빛나며 화려한 삶을 살아주는 것'이라 할 수 있댄다.

최고의 스타가 국민주택과 지하철 이용하는 날이 온다면 '영화계의 종말일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다소 과격한 표현까지 써가면서...



처음 든 생각은 씨네21 읽다가 뒤통수 맞았다싶어

이제 매체에 대한 더이상의 편견은 버려야 겠다는 점이었다.

예술은 사라지고 엔터테인먼트만 남았다더니 체감 백배의 순간.

 

다음 떠오른 생각은 '돈이란 게, 자본주의란 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당췌 인생이 빛나고 싶어도 돈을 통해서만이 빛날 수 있는 세상,

도대체 빛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미를 소거시키는 세상,

사람들과 신인배우들이 영화와 영화배우를 통해 얻는 꿈에 대해서 완전 왜곡시키는 세상.

 

어찌나 당당히 '스타는 돈으로 빛나야 한다'고 외치는 지 강호의 도는 애저녁에 땅바닥이라지만, 이젠 심지어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것을 믿고 실천하는 세상이 되어간다.

마치 감정노동을 많이 하면서 자신의 진짜 감정을 구분할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자아를 훼손시키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자본의 불평등 전략은 인간의 본성인양 점점 세련된 가면을 쓰고 다가오고,

그 안에서 부지불식간에 진행되는 것은

-아주 다양한 의미로- 평등할수록 얻을 수 있는 것, 강해질 수 있는 것에 대한 외면과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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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9 01:04 2006/03/09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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