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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속의 역사, 역사속의 노래 3

3. <포장마차>에서 세상씹기 (130호)

 

하루종일 고된 노동을 마치고 나선 퇴근길, 다리도 후들거리고 온 몸이 파김치처럼 늘어졌지만 그래도 동료들과 함께 소주 한 잔 걸치러 들어선 포장마차. 그곳에서 공장에서 있었던 여러가?일들을 이야기하며, 울분을 터뜨리기도 하고, 서로 어깨를 다독거리기도 한다.

 

풍자 가요는 대체로 우리의 세력이 상승되는 시기, 주체의 의지가 충천할 때 만들어지는 노래 형태이다. <포장마차>는 80년대 말 '노동가 자판기'라는 별명을 가진 작곡가 김호철이 만든 뽕짝풍의 노래이다. 80년대 구로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총파업 투쟁이 일어나자 잔신의 장기인 음악을 통해 노동자들의 노래를 만듥, 그 자리에서 노래패를 연습시켜 다른 사업장이나 집회에서 문선활동을 하면서 보급을 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89년 구로지역 노래패 연합에 강습을 나가기 시작하면서 처음 만난 노동가요 작곡가 김호철은 그동안 들었던 김호철의 노래들이 주는 느낌이 전혀 연결이 안되는 아주 인상좋고, 웃음이 해맑은 그런 아저씨였다. 강습이 끝나면 가리봉 5거리에서 곱창, 닭똥집 등과 소주를 마시며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또 내일의 투쟁에 대해 이야기했다. "닭똥집이 벌벌벌, 닭다리 덜덜덜, 잔업철야 지친 몸, 소주로 달래네. 세상은 삐까번쩍 거꾸로 돈다네. 제자리 찾아 간다네... 깡소주에 문어발, 생맥주 노가리, 오공비리 대머리, 속이구 노가리..."

 

노동자 노래단 3집 [노동자 행진곡]의 수록곡이면서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조직, 전국 노동조합 협의회를 건설하기 위한 공연인 "노래판굿 꽃다지"가 전국 순회 공연을 할 때 극 중 농성장 장면에 '미아리 아줌마'라는 호칭의 가수 김애영이 지원방문을 와서 파업장에서 흥겹게 부르는 노래였다. 엄숙하고, 비장한 투쟁이었지만 노동자들의 승리적 낙관과 넉넉한 정서가 잘 드러나 있는 노래로 그 시기의 수많은 전술가요들 속에서 빛나는 일상가요이자 풍자가요이기도 하다.

 

87,88년 전국을 휩쓴 민주노조 사수투쟁은 노동자들이 비로소 자신들의 목소리를 관철시킨 소중한 경험이었다. 과거에는 공순이, 공돌이라는 호칭으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퇴근 후에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공장에 다니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던 노동자들이 작업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 만큼 노동자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지식인적이고 고급음악적인 노래관행들도 바뀌게 된다. 이른바 하층문화적 정서, 노동자 계급적 정서를 노래가 체득하게 된 것이다.

 

전술적 투쟁가요의 시기였던 80년대 말, <민주노조 사수가>, <파업가>, <단결투쟁가>, <전노협 진군가>, <무노동 무임금을 자본가에게>, <구속동지 구출가>등은 제목에서부터 풍기듯이 그 시기 노동운동의 전술적인 과제를 노래에 담아 함께 부르면서 이슈를 외치고, 투쟁 의지를 다지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즉, 공동체적 정서와 투쟁의 정서를 공유하는 중요한 무기는 그동안 자신의 문화를 갖지 못했던 노동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일상의 정서를 담은 <포장마차> 등을 시작으로 투쟁의 시기뿐만 아니라 일상적 공간에서 함께 부를 수 있는 일상가요에 대한 요구가 대두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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