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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5/07
    마리스타수도원과 절두산성지
    풀소리
  2. 2006/05/04
    대추리...
    풀소리
  3. 2006/04/29
    인생의 봄날이 언제였어요?
    풀소리

마리스타수도원과 절두산성지

▶  당산역 7번 출구 앞에 있는 이정표

 

강변북로 당산철교 옆에 우뚝 솟은 봉우리. 이곳이 1866년 병인대박해 때 수천의 천주교자들이 처형당한 절두산성지이다.

난 천주교신자도 아니고, 감성적인 호감도 별로 없다. 물론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절두산성지는 내게도 성지로 다가온다. 수천명이 기꺼이 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게 한 것이 ‘신념’ 하나였다는 게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천주교를 믿느냐?’는 물음에 ‘아니오.’라고 답하면 그대로 방면되었을 터인데 말이다.

저승사자 같은 형리의 물음에 ‘예.’ 또는 ‘묵언’으로 ‘신앙’을 시인한 목들은 망나니의 칼날에 떨어져 저 높은 벼랑 밑으로 쌓여갔겠지. 차마 볼 수 없을 참혹함이 시간이 지나 역사가 되어보니 떨어진 목들은 수천의 꽃이 되었고, 씨앗이 되었구나. 장엄한 세례와 정화, 막을 수 없는 대세로...


수련회 참가차 마리스타수도원 가는 길에 절두산 성지를 우선 들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으니 저녁 식사시간에나 가봐야지...


▶  마리스타수도원 입구. 엄혹한 시절 민주화의 작은 해방구이기도 했다.

 

마리스타수도원을 와 본 게 20년이 되었다. 86년이었던가. 민주교육추진전국교사협의회 사무실에 볼일이 있어 들렸었지. 아래층에는 ‘운수노보’라는 간판이 있었지. ‘운수노보’. 84년 분신한 택시의 박종만 열사를 추모하며 노조민주화를 추진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모였었지. 그게 뿌리가 되어, 민주택시, 민주버스 등이 만들어졌으니 나의 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시절 모였던 이들은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이상하게 변한 임삼진, 배규식 등이 가끔 언론에 출몰하기는 하지만...


▶  옛날 운수노보(1층)와 전교협(2층) 사무실이 있던 건물

 

저녁을 먹고 절두산성지로 나서니 이미 해는 기울고 있다. 박물관은커녕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가봐야지!



▶  석양이 물드는 절두산성지박물관

 


▶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

▶  절두산 절벽. 실제 높이는 보이지 않는 곳이 더 높으니 상당하다.

 


▶ 천주교도들에게  교수형을 집행하던 형구

 

▶  병인박해 때 압송되던 주교와 신부들이 쉬었다는 바위가 옮겨져와 있다. 주변으로는 부귀의 상징이라는 모란이 흐드러지게 펴 대조된다.

 

 

▶  모란과 영산홍은 아름답기만 하다.

 

 

▶  예전엔 이곳에 절이 있었던 듯...

▶  외국인 선교사 묘역으로 저녁해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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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달군님의 [대추리를 지키기위해 블로거가 할 수 있는 일들] 에 관련된 글.

아침부터 대추리 상황을 알리는 문자가 계속 이어진다. 상황은 너무나 급박하다.

 

애써 가꿔놓은 농토 위에 국민을 보호한다는 군인들이 둥근 철조망 울타리를 치고 있고,

군인, 경찰, 용역깡패들이 새까맣게 몰려오고,

피를 흘리고 연행되는 동지들, 폭행당하는 동지들...

5.18이 연상된다...

 

달려갈까 말까를 아침부터 수없이 망설인다.

오늘따라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일들이 한쪽에서 나를 잡아 당기지만,

그래도 달려가야 하지 않을까...

 

사실 난 집회에 상당히 소극적인 편이다.

노조 간부라 면피정도로 참석하는 편이랄까.

모든 사안에 모든 간부가 집회나 투쟁에 참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건 마치 공 하나에만 떼로 몰려다니는 동네아이들 골목축구처럼 발전은커녕 언젠가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모으려는 미국의 의도를 생각할 때,

자신의 농토를 지키려고 눈을 부릅뜬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생각할 때,

열일을 다 제쳐놓고 달려가고, 깨지는 동지들을 볼 때...

 

모쪼록 저들의 의도가 실패하길!

모쪼록 동지들의 의지가 승리하길!

그리고 무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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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봄날이 언제였어요?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메일 확인하고 전화 좀 달라고.

메일을 열어보니 선거 공보물에 들어갈 편지글이었다.

 

---- 아내의 글 ----

 

여러분에게 진보의 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올해는 쌍춘년이라 꽃샘추위도 두 번이라고 누군가 우스개 소리로 말하던데 정말 유난히 날씨가 변덕스럽네요.

봄은 ‘보다’에서 왔다고 합니다.

문명이 싹트기 전 겨울은 인간에게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을까요? 봄이 왔다는 걸 내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지도 못했을 그 마음이 이해됩니다.

지방자치가 진보의 첫 발임을 우리 이 봄에 보고싶지 않으세요?

------------

 

남감했다. 어떻게 수정할까?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다시 쓰자는 것이었다.

공보물에 공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쓰다 보니 길어졌다.

 

그나저나 이렇게 공개하면 아내가 화내려나?

 

--- 다시 쓴 글 ---

 

인생의 봄날이 언제였어요?


꽃샘추위가 몰아치고, 숨막히는 황사구름이 덮쳐 와서

아이들 기침이 끊이지 않네요.

그래도 어때요? 오는 봄날이 좋지 않나요?

저만 그런가요?


전 겨울이 무섭고 막막했던 기억이 있어요.

제가 책임질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요.

그래서인지 전 봄날이 너무 좋아요.

햇살이 밝아지며 따뜻해지고,

꽃들이 피어나고, 푸르른 나뭇잎이 돋아나고,

갑자기 늘어난 새들의 지저김처럼 아이들도

활달히 뛰어다니며 재잘거리네요.

애들은 확실히 봄날이지요?


봄날이 언제였어요?

묻는 게 아니었나요?

전 나이가 들어도 항상 봄날이었으면 좋겠어요.

집 마련할 걱정, 아이들 교육시키고 취직시킬 걱정,

몹쓸 병들어 자식들 고생시킬 걱정...

이런 걱정을 하지 않으면 우리들도 늘 봄날일 텐데요.


어때요? 그런 봄날이 올까요?

꼭 와야지요.

이재정과 함께 우리들의 봄날을 만들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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