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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6/21
    시네마 천국(1)
    풀소리
  2. 2005/06/20
    진주 삼성교통 공영버스 운행하라!
    풀소리
  3. 2005/06/12
    농월정(弄月亭)과 군자정(君子亭)을 가다
    풀소리

시네마 천국

시네마 천국

 

가위를 들고 조금이라도 필름을 더 잘라내려 눈동자를 번득이는 신부의 검열도 없었다.
물론 안타까워 가슴 졸이던 영화기사 알프레도도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이들은 모여 앉아 영화에 몰입하고 환호했다.

 

      영화에 빠져든 아이들

 

 



동네에서 영화보기.
특히 더운 여름날 저녁, 동네공원에 모여 영화보기.
참으로 멋진 기획이다.

 

      준비한 홍보 현수막/ 그런데 안타깝게도 걸지 못했다. 이유는 ~ ?

 

지난 토요일(6월 18일)
우리 동네(고양시 원당) 소공원에서 영화 「슈렉 2」 상영이 있었다.
민주노동당 고양시위원회 원당분회에서 기획한 좋은 동네 만들기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영화가 상영된 조그마한 공원에는 아이들로 바글댔다.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였고, 엄마들과 드물게 아빠들도 보였다.
첫 번째 상영이고, 단 하루 홍보전단을 붙인 것에 비하면 대 성공이었다.

 

       대부분 이미 봤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좋아한다.

 

물론 몇몇 돌발사태도 있었다.
현수막집 사장님이 전달하는 걸 잊고 퇴근하여, 현수막을 걸지도 못했고,
뒷줄에 삼삼오오 몰려 선 엄마들 중 '선거가 가까이 왔나보지'라며 고까운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고,
11시에 시작하는 브라질과의 청소년 축구도 보여달라고 떼쓰는 아빠들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즐거운 「한여름 밤」이었다.

 



영화홍보 찌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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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삼성교통 공영버스 운행하라!

  제목    삼성교통 공대위, 15일 진주지역 결의대회
   

(펌)ohmynews 강무성기자

 


"우리 가족, 이웃의 고통임을 알아 달라"

[현장]삼성교통 공대위, 15일 진주지역 결의대회 열어
 
▲ 삼성교통 노조와 민주버스노조, 공대위, 노동자 가족들이 함께한 집회
ⓒ2005 강무성
15일, '삼성교통(주) 사업주 사업면허취소와 처벌·파업사태 해결을 위한 진주지역 결의대회'가 시민사회단체, 학생, 전국 민주버스노조, 삼성교통 노동자 가족 등 6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 진주시 앞 집회장면
ⓒ2005 강무성
'삼성교통 파업사태 해결과 시내버스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는 14일 시청브리핑 룸에서 ▲삼성교통 사업주의 사업면허취소 ▲삼성교통 현 경영진 퇴진 ▲사업주 사법처리 ▲진주시, 노조, 시민사회단체 공동기구를 통한 경영 정상화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주지역 노동자 문예패 새노리의 앞놀이로 시작된 결의대회는 오후 4시부터 개회선언, 민중의례, 대회사, 연대연설, 경과보고, 투쟁연설 순으로 진행됐다.

이상갑 민주노총진주지역협의회 의장은 대회사에서 "노동자가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병원비가 없어 병원 문턱도 넘지 못한 채 죽는 일이 발생하는 곳이 진주"라며 "진주시는 이번 사태를 방관만하지 말고 뻔뻔스런 사업주에 대한 즉각적인 사법처리와 조속한 사태해결을 위해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연식 민주버스노조 경남본부장은 연대사를 통해 "오는 20일 삼성교통의 어음이 부도처리가 되면 진주시, 시민, 노조 모두가 또 다른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전하며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진주시의 대안제시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어 그는 "시내버스는 사업주의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시민의 발이기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며 "청주시와 장흥군의 경우, 투쟁의 성과로 완전공영제 실시를 통해 시민의 기본 이동권 보장에 한발 나아가고 있다"고 전하며 완전공영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집회에 두 아이를 데리고 참가한 삼성교통노조 조합원의 아내 조경옥씨는 "체불임금이 계속돼 현재 노조원과 그 가족 80%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고, 생활고로 인한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단순한 노사문제나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 우리의 가족, 이웃의 고통임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아이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삼성교통 노동자 가족들
ⓒ2005 강무성

▲ 삼성교통 파업 사태 해결을 위한 거리행진
ⓒ2005 강무성

▲ 삼성교통 파업 사태 해결을 위한 거리행진 2
ⓒ2005 강무성

▲ 아버지와 함게 거리행진에 참석한 아이
ⓒ2005 강무성
공대위를 비롯한 600여명은 시청에서 거리행진을 시작해 진주역 앞을 지나 진주교를 건너며 시민들에게 이번 파업사태에 대해 알리고 시내 차없는 거리에서 정리집회를 가졌다.

정리집회는 박노정 공대위 대표의 인사말, 진주지역 공동대책위의 경과보고, 박영선 진주 YWCA 사무총장의 시민에게 드리는 글 낭독, 삼성교통 가족의 호소연설 순으로 이어졌다.

▲ 차없는 거리에서 진행된 정리 집회
ⓒ2005 강무성
박영선 진주 YWCA 사무총장은 "이번 사태의 일차적 책임자는 부실경영을 일삼은 삼성교통 악덕 사업주와 현 경영진이며, 체불임금과 퇴직금 미적립금을 제외하고도 10여억원의 부채가 있고, 이를 갚을 수 있는 회사자산마저 남아있지 않는 실정으로, 이 사태를 정상화시키려는 의지도 없이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방치하고 있다"며 "단순한 파업만이 아닌 삼성교통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정리 집회는 삼성교통 노조원 전양수씨의 딸 솔잎(18세)양의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빠에게'라는 글 낭독을 끝으로 마쳤다.

앞서 (주)삼성교통노조는 지난달 20일 회사측에 체불임금청산과 퇴직금 채권확보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운행 중단에 들어간 뒤 장기간 파업을 해오고 있는 상태다.

▲ 진주시민들에게 드리는 글을 나눠주고 있는 장면
ⓒ2005 강무성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빠께

▲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고 있는 전솔잎(18세)양
ⓒ강무성
요즘 정말 많이 힘드시죠? 날씨도 점점 더워져가고 지치신 아빠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제 마음속에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1년 전, 집안사정으로 아빠의 월급이 반밖에 나오지 않았을 때, 전 그때가 제일 힘든 줄 알았어요. 그러나 반밖에 나오지 않는 월급마저 한 달씩 날짜가 미뤄질 때마다 점점 불안해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은 참 행복했던 것 같아요. 희망이 보였으니까요.

그 희망을 상상하며 우리 기뻐했고, 그 빚을 다 갚고 난 후 우리 가족은 사고 싶은 물건들… 한 달에 조금이나마 저축할 생각을 하며 정말 설레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았잖아요. 그런지도 얼마 안돼서 1개월, 2개월, 3개월째 월급이 체불되었을 때 우리 가족의 생계에 위협이 시작되었고 저에게도 더할 나위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인문계고등학교를 다니는 저로선, 비싼 책값, 비싼 등록금, 사사로운 모의고사비, 두 달 세달 밀려 한꺼번에 나오는 급식비 등등 빨리 내지 않는다고 여러 선생님께 따가운 눈초리를 받기도 했습니다. 항상 독촉장을 받는 저는 친구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습니다.

혹시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기하도 하면 어쩌나… 뒤에서 험담하진 않을까. 아침에 눈을 뜨고 난 후 첫 번째로 생각한 것은 학교에 가기 싫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혹시 또 독촉장을 주진 않을까 불안에 떨며 학교엘 갔는데 정말 하루하루가 싫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주지 않는 회사를 원망하고 또 원망할 수밖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전 내색할 수 없었어요. 제가 이만큼 힘든데 아빠는 오죽 하시겠어요. 파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아빠는 적극적으로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리며 시간과 돈과 몸과 마음 모든 것을 투자하셨어요. 전 아빠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삼성교통 파업을 부정적으로만 보시는 분들이 있을 때마다 전 아빠를 자랑하며 정확한 내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죠. 오늘 차 없는 거리에서 시위하는데 참석해 줄 수 없겠냐고… 전 그때 친구와 함께 있었어요. 부끄럽다며 거절했었어요.

그 뒤로 가시방석에 않아 있는 것처럼 마음이 정말 불편했어요. 그래서 잠깐이라도 참석할까 해서 갔는데,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숨어서 지켜봐야만 했어요. 제 자신에게 부끄럽고, 마음이 너무 너무 아팠고 눈물이 나서 도저히 그 모습으로 나설 수 없었어요.

집회하고 행진하고 삭발식을 한다는 소리는 누누이 들어왔지만 제 눈으로는 처음 봤습니다. 아빠가 그렇게 고생하시는 줄 모르고 전 철없이 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아빠가 무척 새까맣고 작아보였습니다. 아빠가 이 세상에서 제일 크고 듬직하고 강인하게만 보였는데… 이제 아빠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먼저 흐릅니다. 무서울 게 없는 우리 아빠가 삼성교통의 악덕 사업주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하고 계시니까요.

아빠… 사랑하는 우리아빠… 조금만 더 힘내세요. 조금만 더 참고 이겨내세요. 조금만 있으면 우리도 남들처럼 웃으며 지낼 날이 오겠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들을 이렇게나 많이 헤쳐 왔는데 우리도 이젠 행복해야죠. 돈 때문에 원망하고 우는 날들을 이젠 끝내기로 해요.

그리고 진주 시장님 아저씨, 우리 삼성교통 가족이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고나 계시는지요. 시장님께서 적극 나서신다면 삼성교통 문제가 빨리 해결될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파업에 돌입한지 한 달이나 됐는데 이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하루 빨리 시장님이 나서서 삼성교통 문제를 해결하시어 진주에서 정말 존경받는 시장님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전솔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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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월정(弄月亭)과 군자정(君子亭)을 가다

농월정(弄月亭)과 군자정(君子亭)을 가다.



유홍준의 유명한 「나의문화유산답사기2」는 농월정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농월정 앞 넓은 반석과 계류 
유홍준은 농월정을 남한 제일의 탁족터로 꼽으면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무려 6쪽에 이르는 서설(序說)을 푸는데, 맹자로부터 신윤복까지 주로 탁족(濯足)에 관한 선현들의 문적 등 자취를 장황하게 흩는 것이었다. 역시 설레발이 쎈 유홍준이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인 최순우 같은 선비풍 사람이 답사기를 썼다면 초승달 뜬 밤하늘 풍경이 상상 속에서라도 삽입되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농월정은 탁족하기도, 선비가 사색하기도 참으로 안성마춤인 자리인 것만은 사실이다. 난 지난 현충일(6월 6일) 이곳에 들렸다.



농월정은 바로 앞에 1,000여 평에 이르는 넓은 반석이 펼쳐져 있고,
불타기 전 농월정/ 광고판에서 찍은 사진 
그 사이사이를 풍부한 계곡물이 작은 폭포와 급류를 연이어 만들면서 물소리는 곧 음악이 되어 은은하게 퍼지는 너무나 멋진 풍경을 품은 정자였다. 정자였다는 건, 지금은 없다는 뜻이다. 2003년 10월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전소되어 지금은 빈 터와 채 치우다 만 잿더미만 쌓여 있다. 그러나 넓은 반석과 계류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사실 정자가 불타기 전 이곳 농월정은 이름처럼 달빛줄기 하얗게 반석 위에 내리고, 계류가 청아하게 울려퍼지는 그런 분위기와 사뭇 거리가 있었다. 1993년 관광지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 매일같이 사람들이 넘쳐났고, 특히 휴일날이면 넓은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가득 찼다고 한다. 90년대 말 이곳에 왔을 때에도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넘쳐났었다. 반석 위에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건 여느 유원지 모습 그대로였고, 줄줄이 늘어선 위락시설에는 특유의 뽕짝이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뒤섞였었다.
농월정에서 바라본 반석과 주위 풍경  
마치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견학와 혼잡스럽기 그지없는 박물관을 간 것처럼, 깊은 사색은 고사하고 유홍준의 글을 되새김질하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번엔 바쁜 걸음에 우연히, 그것도 휴일에 들렸음에도 사람들이 없어 계류의 맑은 소리 속에서 쏟아지는 달빛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그렇담 정자가 불 타 없어진 것에 감사라도 해야 하나?



달을 희롱한다는 뜻의 농월정(弄月亭)은 조선 선조 때 벼슬을 시작해 광해군 시절 인목대비 유폐에 반대하여 귀양살이하다 인조반정 후 다시 등용되어 관찰사와 예조 참판을 지낸 지족당(知足堂) 박명부가 지은 정자다. 광해군에게 핍박받은 그는, 반정세력과 반정을 더없이 정당화해주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반정세력이 그에게 의존하는 한 그의 환로(관직에의 길)는 탄탄대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반정 후 관직생활에 오래 머물지 않고 정계에서 은퇴한 뒤 이곳에 머물면서 자연을 벗삼으며 후학을 길렀다고 한다. 광해군에게 핍박을 받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군왕인 광해군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불충한 신하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터이니 출세와 자격지심 사이에서 어찌 번민이 많지 않았을까.
간결하고 검소한 군자정  



농월정에서 상류로 오르면 동호(東湖)정, 군자(君子)정, 거연(居然)정 등 아름다운 계곡을 옆으로 멋진 정자들이 이어진다. 동호정과 거연정은 수리중이다. 나는 군자정으로 내려갔다. 이름이 되게 촌스럽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군자정은 마루 넓이가 네다섯 평에 그칠 것 같은 아담한 정자다. 아무런 단청도 되어 있지 않고, 나무와 흙(기와도 흙이니)으로만 간결하게 지어졌다. 지금도 사용하는 듯 기름때, 사람때 묻어나는 마루에 오르니 맑은 계곡물은 손을 뻗치면 닿을 것만 같다. 낮은 눈높이가 참으로 편안하다. 세운 뜻이야 어떻든 군자라면 꾸밈이 없어도, 낮은 눈높이를 가지고 있어도 능히 일품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군자정은 이름과 어울리는 정자다.
군자정 마루에서 본 주위 풍경  



정자의 유래를 적은 팻말을 보다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유래나 그딴 건 잊어버리자. 자체로 좋으면 좋은 것이지. 제 아무리 천리마라고 하여도 백락과 같은 이가 있어 알아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고 하였는데, 가문의 영광을 정자로 표현하여 기념하려 했든 어쨌든 자체로 좋으면 좋은대로 느끼면 되는 거지.



혹시 이미 들렸거나, 다음에 이곳에 들리는 분들이 내 글과 비교해 '에이, 그림이 전혀 아닌데' 하고 동의 못 하거나 실망하시는 분들이 있으리라. 하지만 이해하시라. 난 눈에 거슬리는 정자 옆 영업집이니, 길을 내느라 산을 허무는 험한 모습은 관념 속에서라도 지우고 본 것을 표현하였으니 말이다.
매실/ 바쁘게 일하느라 급하게 하나 찍었다. 



함양의 안의에서 서상으로 이어지는 궁벽한 계곡 가는 의외로 넓은 평지를 가지고 있는 안의나 서상보다도 문자향(文字香)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연이어 늘어선 정자뿐만 아니라 정려비각이 여러 개가 있고, 길가 반반한 바위면 의례 글씨들이 각자(刻字)되어 있다. 물론 너무나 촉박한 일정이라 글자 하나하나, 비석 하나하나 살필 여유는 없었지만 말이다.



모처럼 이곳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계천을 따라 지어진 아름다운 정자들을 돌아본 것은 연휴를 이용해 처가에 가 매실을 따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같이 동행한 이필규 형님에게 보답하는 차원이기도 하였다.



처가의 매실농원은 하동에 있는데, 장인 어른이 병환이 나신 후 3년 째 매실 추수를 하러 다녀왔다. 매실 농사를 전문으로 짓는 농꾼으로부터 매실나무는 가지치기를 잘 해줘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작년에 매실추수를 하면서 과감하게 가지를 솎아냈다. 한 그루에 3-4 가지만 두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7-8가지를 남긴 건 잔가지 하나라도 아까워하는 장모님 때문이기도 했다.
안의 광풍루 
그래도 가지를 솎아낸 보람이 있었다. 봄가뭄으로 이곳 매실 작황이 좋지 않다고 하는데도 처가의 매실을 작년보다 크기나 색깔이 월등하였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급하였다. 연휴라 차량이 명절 때만큼이나 많아 서울로 되돌아오는 길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지곡IC에서 내려 농월정 가는 길에 안의가 있다. 인근에 유적도 매우 많은 동네인데 마음 급한 우리는 광풍루에 오르는 것으로 만족했다. 안의는 지금은 면소재지지만 예전에는 고을자리다. 당당한 광풍루는 이곳이 고을자리였음을 뽐내는 것 같다. 

 
광풍루에서 바라본 하천과 보호수림  


농월정과 군자정 가는 길 : 대전-통영 고속도로 대전에서 진주 방향으로장수를 지나 육십령 터널을 지나면 곧바로 서상IC가 나온다. 이곳으로 빠져나와 안의 쪽으로 내려오면 길을 따라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이 이어진다. 안의에서 조금만 더 가면 같은 고속도로 지곡IC가 나오니 진주 쪽으로 가는 길에 한두 시간만 더 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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