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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5/30
    노동자 정윤광
    풀소리
  2. 2005/05/23
    비에 대한 다른 표현(4)
    풀소리
  3. 2005/05/21
    관계맺기(5)
    풀소리

노동자 정윤광

노동자 정윤광.

 

'해방역에 닿을 때까지'란 기치아래 남한 노동운동의 기관차역할을 하였던 노동조합. 모든 민감한 사안을 맞이할 때마다 운동진영 뿐 아니라 언론과 공안이 주시하였던 곳. 그곳이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이다. 정윤광 위원장은 그런 기풍을 만들어나간 대표적인 인물이고 서울지하철의 2대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다가오는 6월이면 정윤광 위원장이 정년퇴임을 한다고 한다. 세월은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세월을 믿는 것을 '노동자의 낙관성'을 표현하는 징표라고 하였는데, 낙관과 관계없이 세월이 흐르고 있다. 어찌되었든 정 위원장이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고, 후배들은 문집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 위원장과 얽힌 에피소드를 함께 싣기로 하였고, 나에게도 원고 청탁이 왔다.



'해방역에 닿을 때까지'란 기치아래 남한 노동운동의 기관차역할을 하였던 노동조합. 모든 민감한 사안을 맞이할 때마다 운동진영 뿐 아니라 언론과 공안이 주시하였던 곳. 그곳이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이다. 정윤광 위원장은 그런 기풍을 만들어나간 서울지하철의 2대 위원장이다.
여기까지는 다 아는 얘기이고, 이미 전설이 되어 있다.

 

나와 정윤광 위원장과의 인연은 색다른 곳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97년 초쯤이었던 듯하다. 결혼을 앞둔 난 누굴 주례로 모실까 잠깐 고민했다. 물론 물망에 떠오른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적어도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운동에 뼈를 묻겠다고 결심하였던 난, 비슷한 결심을 하고 실천을 하고 있는 선배를 주례로 모시고 싶었다. 그때 생각난 분이 정윤광 위원장이었다. 아니 정윤광 위원장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학출 1세대 노동운동 선배들은 정 위원장을 빼고는 모두 정치판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말이다.

 

나는 자랑스럽게 주례를 부탁드렸고, 주변에 알렸다. 아뿔사. 그런데 나의 선택이 결정적 패착(?)이 될 줄이야.

 

난 결혼을 늦게 했다. 남들은 이르면 아이들 중학교 보낼 38살에 결혼을 하였으니 말이다. 3대 독자에 홀어머니인데다 재산도 없었고, 그리고 남들에게 전망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에 스스로 결혼 결심이 어려웠다. 그 과정에서 몇몇 좋은 여성 동지들에게 상처만 주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결혼을 결심하였다. 결혼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준비할 게 너무나 많았다. 큰누나가 도와주기는 하였지만 거리도 있었고, 큰 아이들 키우는 처지라 한계가 있었다. 난 결혼식 1주일을 앞두고 (결혼준비) 잘하기를 포기했다. 그까이꺼 뭐 될 대로 되라지.

 

결혼식날 차량을 책임지겠다던 친척 동생놈은 전날 밤중에서야 부도를 냈다. 결혼식은 그렇게 혼란스럽게 맞이했다. 후배를 몰고 와 결혼 진행과 뒤풀이 안내 등을 책임지겠다던 친한 후배놈은 결혼시작 시간이 다 되어야 나타났는데, 전날 얼마나 퍼마셨는지 손가락만 대도 쓰러질 것 같았다. 젠장, 될 대로 되라지.

 

이윽고 결혼식. 3대 독자인데다 늦게 결혼하니 우리 최가네 사람들은 대부분 온 것 같다. 시골에 계시는 분들은 스스로 버스를 대절하여 왔다. 무진장 왔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주례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다른 주례사와 전혀 달랐다. 적어도 하객들에게는 말이다. 노동운동 얘기가 나오고, 노동자 민중의 정치가 나오고, 백 선생님이 인용되었다. 어쨌든 난 길어야 5분이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초조한(?) 내 시간감으로도 10분이 지나고 15분이 지났다. 이 일을 어쩐담.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질 급한 최가들 목소리다. 웅성거림은 더욱 커졌고 마침내 누군가 '에이, 우리 밥이나 먹읍시다.'고 큰소리로 외친다. 큰일이다. 오히려 보수의 고장 경상도 하동과 진주에서 올라오신 처갓집 식구들이 걱정이었는데, 문제는 최가들 진영(?)에서 터졌다.

 

모르긴 해도 정윤광 위원장은 이때부터 당황하신 듯 하다. 간단히 매듭지으면 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들을 설득하려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최가들의 반란(?)은 노골적인 것으로 돌변했고, 뒷통수에 눈이 없어도 그들이 빠져나가는 게 보이는 듯 했다. 흘끔 옆을 보니 아내는 조는 것 같다. 나중에 들으니 지쳐 쓰러지는 연기를 해서 주례를 중단시켜볼까 궁리 중이었다고 한다.

 

어느덧 반란과 진압의 팽팽한 줄다리기로 변한 주례(사)는 장장 40분간이나 지속되었다. 물론 정 위원장의 진압작전은 성공적이었지만 출혈은 만만찮은 것이었다. 성질 급한 반란군인 최가들은 진압에 맞서기보다 후퇴를 선택했고, 남아 있는 양민들은 양쪽 공방에 지쳤고, 더욱이 허기에 시달려야 했다.

드디어 주례 끝. 뒤돌아보니 최가들 절반은 사라진 것 같다. 그래도 이놈이 뭐가 이쁘다고 끝까지 기다린 할아버지 할머니 급들만 계신 것 같다. 이어진 후배의 국악공연이 없었다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정말 미안했을 것이다. 국악공연 덕에 지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입가에 그나마 미소가 보이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폐백이 끝나고 식당에 가보니 친척들이 거의 없다. 나중에 들으니 친척 아저씨들이 한마디씩 하였단다. '으이그, 경순이가 빨갱이만 아니었으면...' 하고 말이다. 성질 급한 최가들이 얼마나 황당해했을까 눈에 선하다.

 

물론 정 위원장 자신도 주례가 길어진 대가(?)를 받기도 했다. 아직도 술이 덜 깬 후배놈은 도우미가 아니라 아예 손님이 되어 있었고, 급히 선배들이 나서서 예약된 뒤풀이 장소에 주례를 모시고 갔다. 폐백을 마치고 나오니 동료 선후배는 물론 정 위원장까지 식장 앞마당에 있다. 뒤풀이 장소에서는 예약이 안 되었으니 나가라고 하였단다. 이런이런 오갈 데 없는 주례와 선후배 동료들은 폐백을 드리는 동안 거리에서 헤맨 것이었다. 식이 늦게 끝났으니 폐백장소에 와 나에게 확인도 못하고 말이다.
급히 뒤풀이 장소에 가 예약을 확인하고 하객들 자리를 잡아주고 오니 시골에서 버스를 대절해 올라온 친척들은 가고 없다. 차비는 고사하고 먹을거리조차 싸주지 못하고,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아이고 미안해라.
뒤풀이는 정상적으로 이뤄졌지만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친가, 처가 엉키고 설키고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정 위원장에게는 주례 사례조차 못했다.

 

어찌 되었든 그 담부터 정 위원장에게 주례를 맡기려는 후배들을 보면 말리기부터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피해자는 나만이 아닌 듯 했다. 물론 세월 탓인지 요즈음은 많이 짧아지긴 했지만 말이다.

 

근데, 정년을 맞으신 정윤광 위원장을 이런 식으로 회고를 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좋은 얘기를 써도 무척 많을 텐데 말이다. 그나저나 정 위원장이 정년을 맞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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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대한 다른 표현

비에 대한 다른 표현

 

병곤 : 성연아. 비가 오니까 좋지?
성연 : 예.
병곤 : 호수에 비가 내리니까 어떻게 보여?
성연 : 빛이 막 반짝거리며 커지는 것 같아요.

 

낚시터로 쓰이기도 하는 곤지암 저수지에서 후배 병곤이의 물음과 우리 아이의 답변이다.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문득 호수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동심원을 그리며 퍼지는 물살을 보았다. 정말 빛이 반짝거리며 커져가는 것 같다. 어릴 때 보았던 초가을 밤하늘 가득한 별빛만큼이나 커지고 없어지는 동심원은 반짝거리며 넓은 호수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래. 맞아.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못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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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맺기

* 산오리님의 [성 평등 교육..] 에 관련된 글입니다.

 

관계맺기

 

설마 내가 이 정도로?
교육이라는 건 이래서 좋은 것 같다.
평소에 어스프레 느꼈던 것이 보다 분명하게 느낄 수 있으니까.

 

고양시위원회에서 성평등교육을 받았다.
간부들 대상으로 한 교육이었는데, 나에게도 문자가 왔다.
나도 간부인가?

 

강사는 여성학 전문가이며 같은 당원인 강시현 당원이다.
처음 시작하는 글이 "여러 개의 눈을 갖자"는 것이었다.
맞다. 같은 사물이라도 여러 각도에서 보는 게 필요하다.
다른 이의 시각을 느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걸 배려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학적 성(gender)에 대해 얘기했다.
생물학적 성이란 대개 고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차이는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그 차이를 하나는 열등한 것, 하나는 우월한 것으로 나누면서 사회학적 성이 구별된다. 열등과 우월을 나누는 데는 권력이 작동한다. 물론 그 권력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여성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맑스 표현을 빌리자면 '허위의식'이라고 한단다. 그러고 보니 들어본 듯도 하다. 지배이데올로기는 피지배 계급이 동의할 때 작동되는 것이라고...

 

교육을 받으면서 새삼 느끼는 점도 많다. 물론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얘기지만.
무엇보다도 남자들이 관계맺기에 서툴다는 지적은 충격이다. 남자를 둘러싸고 있는 교육 환경 탓이라고 한다. 어릴때부터 집에서 강조되는 성 역할, 자라서 1등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싸움에서라도 져서는 안 되고,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남자다워야 한다는 강요. 군대의 계급문화. 이런 것 속에 길들여진 남자들은 서로 처음 만났을 때 민증을 까고 서열을 정해야 편해하고, '술'이라는 매개체가 없으면 서로 터놓고 얘기도 못하고, 등등.

 

그렇다. 정말 관계맺기를 못한다. 정말 인생의 고빗길이라고 느낄 때 상의할 친구가 누군가 볼 때, '없/다'. 수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고, 사람 관계 좋다고 여겨지는 나도 정작 마음속 깊은 고민을 함께 할 친구가 없다.

 

남자들은 외롭다고 한다. 삼성 다니는 30대 후반 후배는 이제 술먹고 꼬장을 피워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고 한탄한다. 외롭다. 그게 이 사회에서 길들여진 남성문화, 그 문화 속에서 형성된 관계맺기 결핍의 결과란다.

 

관계맺기 관계맺기 관계맺기 ...
 


 고양시위원회 성평등 교육 풍경/ 교육이 끝나고 신심에서 우러나온 각자의 간증(?)이 있었다. 특히 남성 당원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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