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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27
    오랜만에 모교에 들르다.
    풀소리
  2. 2005/03/25
    옷 입고 NUDE FORUM을 하다.(4)
    풀소리
  3. 2005/03/25
    春來不似春 - 그래도 봄이다.
    풀소리

오랜만에 모교에 들르다.

* 이 글은 옛날에 썼던 [다시 능내에 가다] 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기도 하다. 

추억은 시간이 지나면 비수가 되기도 한다. 추억이 있는 곳은 지금은 없는, 함께 있던 사람이 유령처럼 떠나지 않고 기억의 영상 속에 여전히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곳은 아름답기보다는 가슴저림이 앞서는 곳이기 십상이고, 근처에 가기는커녕 생각조차 이어가기 힘들게 한다. 능내는 내게 그런 곳 중 하나였다. - 다시 능내에 가다 중 -

 

어제 외대에 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로질러 지나갔다.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가 경희대 크라운관에서 열렸다. 나는 회기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가는 코스를 택하는 대신 외대를 지나 행사장으로 가기로 했다.

 

외대는 나의 모교이기도 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렸다.

위의 인용 글처럼 외대는 나에게 좋든 좋지 않든 무수한 추억이 있는 곳이고, 추억이 많은 만큼 다가가기 힘든 곳이었다.

 

       까치집 : 운동장 옆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에는 까치집이 있다.

 

그래도 시간은 약인가 보다. 내 마음도 많이 바랬는지 외대앞역에서 교문까지 있는 온갖 술집과 까페들을 여유롭게 지날 수 있다.

 

교문을 들어서니 뭔가 낯설다. 초라한 시골학교 같던 캠퍼스는 많이 다듬어지고 세련되었지만 빌딩가를 연상시키듯 답답하다.

 

제일 먼저 눈에 분명이 들어오는 건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 있는 까치집이다.

내가 이곳에 다닐 때에는 분명 없던 모습이다. 캠퍼스는 늘 독한 취루가스가 뒤덮였었기에 한곳에 머물러 사는 까치가 살기 힘든 환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돌이켜 보면 그렇다고 꼭 장담할 수는 없다. 언제 나무 위를, 그곳에 혹시 까치가 살고 있었다고 해도 처다볼 여유가 있었을까?

 

어쨌든 내 기억으로는 까치는 없었다.

 

취루가스가 자취를 감추고, 여전히 삶은 고통스럽고 전망은 없지만 돌이켜 보면 까치가 저렇게 집을 짖고, 새끼를 낳고 또 짖고를 반복한 것처럼 세월은 흘렀고, 세상은 많이 변했다.

 

      대학 본관이 들어선 미네르바 동산 자리 : 미네르바 동산은 외대의 유일한 숲(?)이었다.

 

그래. 좋게 변한 건 사실이다. '난 사회주의자다'고 외친다고 잡아갈 놈 하나 없다. 느닷없는 불심건문, 늘 조심하던 미행은 없다. '직선제'는 당연한 것이 되었고, 안기부 놈들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전망'을 찾지 못하는 '현실'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좋았어' 하지만 사실 '그때'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었다. 그래도 '좋았다'라고 느끼는 건 그땐 '희망', '전망', '혁명' 같은 단어들이 낯설거나 우리 삶으로부터 멀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담장을 허문 캠퍼스 : 담장을 허물고, 여기 저기 길을 내었다. 그 만큼 열린 공간, 열린 세상으로 바뀐 것 같지만, 여전히 닫혀져 있는 것 같은 건 나 뿐만의 느낌은 아니리라.

 

외대의 유일한 숲(? , 숲이라고 부르기에는 쑥쓰럽지만...)인 미네르바 동산은 이미 없어졌다. 그 자리에는 좁은 캠퍼스에 어울리지 않는 엄청나게 큰 대학본부 건물이 들어섰다.

 

'미네르바 동산'. 코딱지 만한 숲이지만 외대를 거쳐간 많은 사람들이 수없는 추억이 서린 곳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나래를 편다" 는 고색창연한 인용구는 초라한 캠퍼스의 우리들을 위로해주기에 충분한 것이기도 하였다.그런 동산이 없어졌다.

 

요즘 학교 다니는 후배들은 졸업하고 무엇으로 캠퍼스를 추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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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입고 NUDE FORUM을 하다.

어제 고양시위원회 제2차 정치포럼이 있었다.

 

주제는 공지한대로 <북한 핵보유선언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홍보 찌라시 : 발상은 획기적이었으나 제대로 활용을 못했다.

 

당내 유력 의견그룹인 자민통그룹,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약칭 "전진"), 평등세상을 위한 노동자민중 실천연대(약칭 "평등연대"), 자율과연대 그리고 의견그룹은 아니지만 환경관련 동지들에게 포럼 참가를 요청했다. 외국 출장 등 사정이 있는 환경 관련 동지들 빼고는 모두 다 흔쾌히 포럼에 응했다. 너무나 고맙다.

 

참고로 당 지도부 특히 최고위원들이 자민통그룹라는 판단 아래 이정미 최고위원에게 포럼 참가를 요청했고, 그가 추천한 김진환 연구원을 나는 자민통그룹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본인은 전혀 무관함을 포럼 내내 밝혔다.

<환영인사하는 이홍우 고양시위원회 위원장>

 

어째됐든 당내 유력 의견그룹이 모두 출동한 자리여서 당원들이 많이 올 줄 알았다. 오히려 '많이 오면 어떻게 하나' 하고 고민하였는데, 포럼 시간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우리의 우려가 기우였고, 자만이었음이 여전히 주인을 찾지 못한 빈자리에서 드러났다.

 

지역위원회에서 25명이 참가하였다. 발제자 4명, 평등연대 1명 포함한다면 총 30명이 참가하였다. 준비주체의 한 사람으로 좀 더 많은 당원들이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도대체 얼마가 와야 만족하겠느냐'는 핀잔에 오히려 위로가 되기도 했다.

<포럼 시작 직전의 발제자들> 왼쪽부터 [자율과연대] 오흥엽, [전진] 장석원, [평등연대] 이영수, [당 통일연구원] 김진환

 

이상하게 포럼하는 날은 다른 행사와 겹친다. 빵빵하고 결속력이 높은 평화바람. 이제 막 태동하여 욱일승천하는 지축직장분회. 두 모임이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있었다는 것은 포럼의 불행이기도 했다. (최소한 평화바람 또한 불행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는 호상간 일정이 조정되었으면 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음을 평화바람 당국자들은 인지하여 주었으면 한다. - 외무성 성명)

 

당초 계획했던 시간보다 30분 늦은 오후 7시 30분에야 포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전화로 확인해보니 서울로 출퇴근하는 동지들이 대부분 퇴근 중이었기에 불가피하게 시간을 늦췄다.

<공부 못 하는 학생들은 뒷자리에...> 앗! 내 아내도 열등석에^^;


포럼은 1부 발제(발제와 발제자들 상호 질의응답). 쉬는 시간. 2부 토론(질의, 주장 및 토론)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발제하는 오흥엽과 장석원>

 

발제자들에게 미안했지만 발제를 15분 이내에 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고양시 당원들은 늦게 끝나는 게 습관이 됐고, 산오리도 없는 데다 일부 선수들은 '새벽 해보기 운동'을 하는 관계로 문제가 될 게 없지만 발제자들은 한결같이 집이 멀었기 때문에 시간을 줄이고자 했다.

<분위기만은 화기애애하다.>

 

하지만 사회자의 간곡한 부탁은 첫 번째 발제부터 묵살되었다. 부탁한 시간보다 10분이나 초과한 25분, 다음은 20분, 다음 동지는 앞의 동지들이 이미 20분 이상 썼으니 그 정도 써도 된다고 해도 15분을 지키겠다고 장담했지만 결국 20분, 그 다음 동지는 30분 가까이...

<깨굴은 여전히 팔팔한데, 뒷줄은 영 아니다. 맨 오른쪽 곰탱님은 증후군이 나타나는 듯^^>

 

사실 시간을 짧게 준 진행측의 문제지 발제자들이 무슨 잘못이 있으랴. 발제시간을 최소한 30분 이상 주었어야 맞는 것이지 않겠는가. 발제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볼 수나 있으려나. 아무려나, 난 사과했으니 받고 안 받고는 받는 사람 몫이겠지요^^;)

<발제하는 이영수와 김진환. 김진환 연구원은 91학번이란다. 놀랬다. 공부해서 저렇게 조숙(?)게 보인다면 나같으면 당연히 공부를 포기하겠다^^;;>

 

어쨌든 발제를 마치고 상호 질의하라고 하니 이 점잖은 양반들은 꿀 먹은 벙어리다. 설마 질의할 게 없을까?

 

휴식시간을 12분이나 주었는데도 참가자들은 5분을 반납했다. 그것도 강력하게 반납했다. 사회자는 참 고마웠다.

<뒷 줄의 대표선수 반딧불. 후기까지 올리는 열성을 보였다.>

 

원래 서면질의를 하고자 했는데, 참가자들이 한결같이 구두질의를 하자고 한다. 질의와 답변, 주장과 질의가 교차하면서 토론은 점점 열기를 더해갔다. 당초 포럼 예정 진행시간은 2시간 30분이었는데, 3시간 20분이 경과한 밤 10시 50분에야 끝낼 수 있었다. 시간만 허락하였다면 훨씬 길어졌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산오리는 쾌재를 부를 것이다. '이크, 안 가길 잘 했군!'하고. 산오리와 비슷한 질병을 앓고 있는 곰탱님은 나중에 보니 '사색(死色)'이 되어 있다. 산오리님과 같이 '동일좌석2시간이상울화증도짐증후군'을 앓고 계신 분들은 이런 자리에 가끔 오셔서 수양의 시간으로 삼는 것도 좋겠다. - 뻐꾸기님. 처방 부탁합니다.)

<산재환자 배현철도 열심이다. 다만 사진 찍을 때 빼고^^>

 

끝나자마자 우리는 뒤풀이자리로 직행했다. 역시 뒤풀이 장소까지 물색해두길 잘했지. 암~!

<열변을 토하는 예레미아의 선지자 김한수>

 

뒤풀이에는 총 21 - 22명이 왔다. 전과가 있어 일찍 들어가지 않으면 아내에게 짤릴 위기에 처한 당원들 빼고는 다 왔다. 좌석을 이어 붙여 두 줄로 나란히 앉는 관계로 얘기를 하나로 모아갈 수 없었지만, 삼삼오오 각 테이블을 중심으로 뭔가들 열심히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뭐~니? 요즘 연애에 빠진 노아세는 포럼준비모임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선배로서 충고한다. '잘해준다고 사랑받는 것 절대 아니다.' 참고로 옆에 있는 깨굴은 믿어지지 않지만 아이 엄마다.>

 

12시에 12시 통금인 당원들이 자리를 뜨고, 12시 30분쯤인가 1차 자리를 정리한 것 같다. 난 2차 갈까봐 옆에 와 항시라도 체포태세를 갖춘 아내 덕에 1차로 끝냈다. 화정파들은 2차 가자고 선동이다. 부럽다.

<참고로 이들은 20대 당원모임 멤버다. 이들이 모두 포럼에 참가하면 앞날은 창창하리라! 잘생긴 미끼 수연이가 있으니 조만간 끝나겠지 ㅎㅎㅎ>

 

포럼에 참가해주신 발제자들과 당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다음에도 많은 관심과 참석을 아울러 부탁드리면서...


 



제2부 <토  론>


- 사회를 보면서 정리한 관계로 정확하게 기록하기 힘들었기에 저의 주관이 가미되었을 수 있음을 감안하시길 바라며, 정리의 오류는 전적으로 저의 책임임을 밝힙니다. 또한 일체의 존칭을 생략하였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

 

이병곤 :
문) 김진환(통일부문 연구원)에게 : 발제에서 북한의 입장은 잘 정리된 것 같다. 그러나 정작 북 정권에 대한 입장이 없는 것 같다. 북의 핵무장이 인민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라고 보는가?

 

답) 김진환 : (2002년) 켈리 방북 3개월 전에 7.1조치(인센티브제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적 요소 도입)가 있었다. 이런 7.1조치는 인민들의 저항에 대한 북 정권의 용인이 낳은 조치이다. 90년대부터 북 인민은 정부에 대항하고 있었다. 태업과 탈북이 저항의 한 형태이다.
  (7.1조치 이후) 외국인 자본이 대거 유치되었다. 켈리 방북과 켈리의 억지주장 이후 '조·일 협상'이 중지되었고, 투자 유치 약속이 대부분 파기되었다.
  북은 정권과 인민이 상호교감하고 있다고 본다. 핵무기도 인민과 교감 및 동조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문) 작석원(전진)에게 : 발제를 보면 북에 대해 비판적이다. 북에 대한 비판이 미국에 대해 이익을 주지는 않겠는가?

 

답) 9.11 테러 때 '테러' 자체에 대한 비판이 곧 미국을 지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 있는데, 그건 아니지 않는가. 우리(민주노동당)가 북 정권의 모순에 대하여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앞으로 덤터기를 쓸 수도 있다.

 

박석삼
문) 장석원에게
: 동북아 민중연대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북과 중국에는 민중세력이 없다고 보는데 어떻게 민중연대 테제가 제출되었는가?

 

답) 각론적인 부분에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변화시키기 위해 밑으로부터의 압력이 필요하다. 중국과 북한의 경우 자본주의가 확대되고 있고, 모순이 격화된다면 지금과 다른, 뭔가 변화가 있지 않겠는가. 결국 (연대할)세력이 존재할 것이다.

 

이혜종
문) 오흥엽(자율과연대)에게
: (남북한) 군축을 하자고 하는데, 남과 북이 (군축의) 주체가 되고자 할 때 미국의 압력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답) 북·미 간의 협상구조로 해결 가능성이 별로 없지 않은가. 핵문제는 남과 북의 민중과 민족의 문제이므로 남·북이 주체로서 교착국면을 탈피해나가야 한다고 본다. 남북한 평화군축정책을 펴나가는 것이 미국과의 마찰과 압력을 최소화하면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닌가 한다.
  미국에 당당해야 하겠지만 북의 태도에 대하여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첨언 : 김진환> 북·미간의 대화로서만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은 2000년 북한에서도 이미 판단하였다.(발제문 중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정전협정을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조선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데서 4자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가 있다."에서 북·미 단독 대화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 그러한 정책 변화의 일면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영득
문) 이영수(평등연대)에게
: 노동문제를 통일문제 및 외교문제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는데, 그 해법은?

 

답) 노동자들이 정치투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현장 순회교육을 하면서 보면 북한과 북한 핵무기에 대하여 (조합원들이) 관심이 적다.
  현실적으로 당이 주도하지 않으면 관심을 끌어올리기 힘들 것이다. (현재)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등 경제투쟁에만 매몰되고 있는데, 노동자들만이 한반도의 운명을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는 주체세력이라는 것을 선언적으로라도 하기 위해서도 노동자교육이 필요하다.
  현장분회에서도 그런 노력을 하는 곳들이 있다. 예를 든다면 (민주노동당)기아자동차노조 화성분회나 한국노총 사업장인 구미 LG전자분회(민주노동당)가 대표적이다.

 

문) 김진환에게 : 미대사관 앞 집회 등을 투쟁방안으로 제시하는데, 그러면 바뀌겠는가?

 

답) 변화가능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분명 압박은 될 것이다. 핵문제는 오래 갈 것이라고 본다.

 

최윤진
<주장>
북핵을 민족의 문제로만 바라볼 수 있겠는가? 북의 핵보유선언에 대해 미국이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은 의외였다. 핵문제를 (단지 한반도, 한민족의 문제로만 보지말고) 반제·반전운동으로 연계시켜야 한다고 본다. 진보적인 반전운동 활동은 민주노동당이 제일 잘 하고 있지 않은가.

 

이병곤
문) 지역위원회 차원에서 평화실천단 활동을 하고자 한다. 동지들의 의견을 구한다.

 

답) 김진환 : 다른 지역의 모범들이 있다. 지역에서 안보지장물을 철거하는 운동을 하였으면 좋겠다. 지금도 '무찌르자 공산당'류의 팻말 등이 아직도 많다. '탱크트랩 철거' '무기장난감 바꿔주기 운동' 등은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무기장난감을 화분이나 물고기와 바꿔주면 사람들로 미어질 것이다.

 

류재신
문) 김진환에게
: 통일은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이 목적이라고 본다. 그런데 현재 통일운동이 민족주의적 편향에 있지 않은가 한다. 이 부분이 한계에 와 있는 것 같다. 닫힌 민족주의로는 통일운동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현재 (이른바) '자민통 그룹' 방식의 통일운동이 타당하다고 보는가?

 

답) 한계가 있다고 본다. 통일운동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북의 변화에 (의외로) 둔감하다. 그들은 과거 북의 모습에 집착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에서조차 그분들에게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북이 변하고 있고, 그 변화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통일운동주도세력이 곧 한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식 통일운동이 중요하다. 민주노동당의 강점은 '평화'통일을 목적으로 두고 있는 유일한 정치세력이라는 데 있다.

 

김한수
문) 장석원에게
: 테제 15번("북한 당국은 자신들의 행위가 동북아의 핵무장과 군비경쟁, 특히 일본의 재군사화 경향과 핵무장을 가속시키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에 대해 질의하겠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답)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다. 북의 핵무장이 일본의 재군사화를 희석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혜종
문) 장석원에게
: 테제 18("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정부는 대미 종속적 태도를 버리고 즉각적인 북-미 대화를 요구해야 한다.")은 자율과연대의 "남·북 중심의 해결책"과 대립되는 것 아닌가?

 

답)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본다. 북·미 대화를 정권에 요구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북이 문제해결에서 '남'을 종속변수로 보고 있지 않은가?

 

<보충답변 : 오흥엽> 서로 절충할 여지는 많이 있지만 테제로 정리될 정도라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본다. 남·북 중심의 정치를 이끌어 가면 좋겠다.

 

김한수
문) 오흥엽에게 : 남북간의 군축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북·미간의 군축만이 가능하지 않는가?

 

답) 북의 논리가 '남'이 무슨 힘이 있느냐. 너희와 뭘 논의하겠느냐는 입장이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남·북 전체 민중을 대상으로 논리를 세우고 주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전망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남정석
문) 김진환에게 : 독도문제에 대해 묻겠다. 김혜경 대표가 독도에 간 문제에 대하여 논평을 해달라.

 

답) (당의) 초기 대응이 문제가 있었다. 분쟁지역 확대가 동북아 평화를 해치고 있다.

 

<마무리 발언>
김진환 : 어떤 기회든 서로 피하지 말고 서로 토론해 해결하는 당풍을 건설했으면 좋겠다.

 

이영수 : 통일운동 관련하여서는 북한의 식량문제가 심각하다면 지역위원회 차원에서라도 '쌀보내기 운동'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장석원 : 대중적 평화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작은 성과라도 모아서 나아간다면 크게 변화시키지 않을까 한다. 운동권의 각성이 필요하다.

 

오흥엽 : 우리 당은 당원들이 헌신적이다. 당원으로서 의무와 권리 중 지역에서 실천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만큼 당이 잘 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압력을 행사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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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來不似春 - 그래도 봄이다.

4월이 가까와 오는데도 날은 차고 바람은 세다.

오늘 출근길에 보니 행주산성 옆 오염된 또랑에조차 살얼음이 잡혔다.

 

春來不似春

봄이 왔건만 봄같지 않아...


이천년 전에 나온 말이지만 오늘날 우리네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래도 자연은 무심하다. 태양 각도가 변하면서 사람들 가슴이 구멍이 뚫리든 말든 봄은 온다.

 


<생강나무 꽃> 김유정이 말한 동백꽃이다. 봄에 제일 먼저 피는 꽃 중의 하나다.

 

중마루 공원에는 봄이 왔다.

중마루 공원은 민주노총 뒤에 있는 조그마한 공원이다.

작지만 봄에는 꽃들이 만발하고, 특히 가을 단풍이 예뻐 계절이 오고감을 가까이서 느끼게 한다.

 

오늘 보니 생강나무 꽃이 피었다.

 

늘 카메라를 가지고 다녀도 중마루 공원에서는 사진찍기가 쉽지 않다.

중마루 공원에는 노숙자들의 쉼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술병을 기울이고, 더러 이미 취해 누워있기도 하다. 그들의 고단한 삶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건 정말 엄두나지 않는 일이다.

 

오늘은 갑자기 추워져서인지 노숙자가 아무도 없다.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해당화 열매> 지난 가을 철늦게 달린 열매는 여린 채 말라버려 빨강색이 아직도 남아있다.

 

봄이 왔지만 지난 계절의 잔재는 곳곳에 남아 있다. 누런 잔디, 잎새 없는 나목, 그리고 해당화 열매까지...

 

 <창포> 겨우내 꽁꽁 얼어 동네 아이들 놀이터였던 작은 연못에는 창포싹이 돋고 있다.

 

<냉이와 냉이꽃> 잎이 나는가 싶더니 이미 꽃을 피웠다.

 

얼음이 풀리는가 싶었는데 물가에는 벌써 창포싹이 돋고있다. 풀들이 나는가 싶더니 냉이는 이미 꽃을 피웠다.

 

자연의 엄정함을 내 굳이 배울필요는 없겠지만 때론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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