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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23
    누드포럼- 고양시 정치포럼에 초대합니다.(2)
    풀소리
  2. 2005/03/23
    학교 운영위원이 되었다.(6)
    풀소리
  3. 2005/03/15
    퇴화하는 지능, 발달하는 촉수
    풀소리

누드포럼- 고양시 정치포럼에 초대합니다.

진작에 글을 올려야 하는 건데...

민주노동당 고양시위원회에서는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매달 한번씩 정치포럼을 개최합니다. 이번 달로 두 번째 하는 포럼이지만 처음 시작하는 단계인 관계로 일단 제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포럼이 시의적절한 주제를 잡아 발빠르게 진행해야 하는데, 당원들의 생각의 편차가 심하다보니 사전에 준비기간이 길어 제때 대처하지 못합니다.

 

이번 달에는 "북한의 핵보유선언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포럼을 개최합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독도문제'가 딱인데, 1달 전부터 준비한 주제라 좀 그렇네요.

 

어찌됐든 포럼에 오실 수 있는 사람들은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북한 핵보유선언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가지고 당내 모든 정파들이 모여 발제하고 토론하기 때문에 서로의 차이가 무엇이고, 공통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의 그림을 클릭하면 오시는 길 안내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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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영위원이 되었다.

'남편 어디 다니세요?'
'요즘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민주노총 있죠~ 거기 다녀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물으면 아내는 그렇게 능청스럽게 대답한다고 한다.
웃음이 나왔지만 뒤끝이 씁쓰레 슬프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라도 균형을 잡아가는 데는 민주노총이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 민주노총이 능청스런 대답으로 넘어가야 할 정도로 곤혹스런 처지에 있으니 말이다.

 

어제는 아이 학교 학부모운영위원 선출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권하기도 해 출마했다.
출마원서를 작성하면서 뭐라 쓸까 고민했다. 특히 경력란에는 뭐라 쓸까?

 

나는 두 줄을 썼다.
'민주노총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 사무차장'
'대중교통공공성강화를위한연대회의 집행위원'

 

요즈음 분위기로는 표를 잃을만한 경력사항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썼다. 달리 쓸 경력도 없지만 말이다. 떨어지더라도 스스로 떳떳해지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경력을 쓰면 최소한 학교에서 아이에게 부당한 대우는 하지 않겠지 하는 이기심도 숨어있었다.

 

원서를 접수하러 갔을 때에는 마침 학교 앞에서 아이들 등교 도우미를 하는 '녹색어머니회' 회원 세분이 오셔서 네 장의 원서를 접수시켰다. 그리고 그분들은 내가 있는 것에 아랑곳 않고 교장, 교감 선생님들과 다정히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나오라고 해서 나왔는데, 이렇게 써내면 되죠?'
'예.'

 

이미 각본은 다 짜져 있는 것 같았다. 뭐 당연하겠지.

 

어제 학부모 총회가 있었고, 유세와 선거가 있었다. 유세를 하면서 나는 민주노총의 '오기'를 할 수 있는 한 가장 부드럽게 표현했다. 일종의 어르고 뺨치는 수법. 글쎄 효과가 있으려나.
교무실에서 유세를 하고, TV를 통해 아이들 반에 있는 부모님들이 보고 듣는 것이었는데, 카메라를 작동하는 아이가 서툴러서인지 중간에 화면이 나가기도 했다. 별게 다 눈에 들어온다. 어찌됐든 나는 하고자 했던 말을 90% 이상 했다.

 

그리고 투표. 학교에서는 학교가 지명(?)하지 않은 후보에게 커피 한잔 이외에 어떤 배려도 없었다. 선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언제 개표를 하는지. 당선자는 언제 발표하는지 도무지 안내가 없다.

 

나는 갈곳 없이 거리를 헤매는 초보실업자처럼 부자연스럽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교무실에 홀로 앉아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투표가 끝났다.
'지금 여기서 개표하나요?'
'예.'
'후보인데 여기 있어도 되나요?'
'아니요. 우리끼리 개표하고 당선통지는 나중에 해요.'

 

제길.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 집에라도 가 쉬고 있었을 걸.
집에 와 함께 출마한 정경화 동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결과 나왔으면 전화 주세요.'

 

난 그때까지 당선자는 다시 학교로 가는 줄 알았다. 이 사람 저 사람 얘기가 엉켜 그런 판단을 했다. 그래서 노조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 와 기다렸다.

 

'선배님, 된 것 같아요. 전 확실히 됐고요, 선배님은 80%는 된 것 같아요.'
'축하해요.'
'선배님도 축하해요.'
'그러면 학교로 가야되요?'
'아니요. 나중에 오는 거래요.'

 

4시 20분이다. 제길. 출근하면 퇴근시간이다.
저녁에 정경화 동지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축하해요. 선배님도 됐고요, 3분 나오신 전교조 선생님도 모두 됐어요.'

 

다행이다. 그래도 눈으로 확인을 해보지 않았으니...
오늘 교육으로 늦게 퇴근해보니 아이는 컴퓨터와 씨름이다.
스스로 게임을 깔겠다고 해 해롭다는 것보다 기특하다는 생각이 앞서 '그래. 네 스스로 깔면 봐주지.' 하니 아이는 너무나 좋아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뭐 주던 것 없니?'
'응. 없어.'

 

이크 떨어졌나보다. 당선됐으면 당선 안내문을 보냈을 텐데.
그래도 하는 맘으로 아이 가방을 열어보니 당선 안내문이 보인다.

 

음~. 잘 해 봐야지. 남들이 다 민주노총인 거 알고 있으니 더 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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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화하는 지능, 발달하는 촉수

* 이 글은 뻐꾸기님의 [당과 나] 에 관련된 글이기도 하며, 공공연맹 이근원 동지의 글 '기관지 후원회원을 탈퇴하며'라는 글에 관련된 글이기도 하다.
뻐꾸기님의 '당과 나'는 나의 글
'긴 하루였다.'를 트랙백 한 글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트랙백이 어떤 것인지 시험하는 글이기도 하다.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성공하여 업그레드된 블로거가 되길 희망할 뿐이다.


퇴화하는 지능, 발달하는 촉수

 

오늘 또 다시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가 무산되었다. 파행으로 끝난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를 보면서, 민주노동당의 실질적 최고기관인 '중앙위원회' 회의를 보면서 이성적 토론과 설득이 사라지고, 서로의 편가름만이 판단의 유일한 근거가 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해하는 이는 비단 나 하나 뿐이 아닐 것이다.

 

대학시절부터 이른바 운동권이었던 나는, 그러나 운동권에 대한 좋은 추억보다 나쁜 추억이 훨씬 많다. 사상투쟁이라는 차원 높은 실천활동이 실제로는 '사상' 없이 '투쟁'만 남아 나를 비롯한 다수를 괴롭혔다.
물론 사상투쟁이 살인으로까지 간 일본 '전공투' 정도는 아니었지만, 때론 각목으로 무장(?)하고 토론에 임해야하는 사태까지는 발전하였다.
문건이나 당시 유행하던 대자보는 서로의 차이를 좁히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생각, 내 조직의 생각이 다른 이, 다른 조직보다 우월한가를 입증하는 강박의 공간이었고, 그런 만큼 독자와 대중이 배제된 '그들'만의 공간으로 전락해갔다.

 

나이가 들고, 소비에트가 붕괴되고, 현실 전망으로써 '사회주의'가 상상의 공간을 벗어났을 때, 우리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적개심에 불탔던 '과거'를 속죄(?)라도 하듯, 또는 서로의 치부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고, 인정한다는 듯이, 무조건 감싸주고, 차이를 묻어버리고, 좋은 게 좋다는 '온정주의' 속에서 '위로'를 주고받았다.

 

매번 선거에 나와도 1% 내외의 득표에 그쳤는데,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권영길 후보가 100만표 가까이 얻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기뻐했던가? 비록 4%도 안 되는 지지율이었지만 말이다.

 

2004년 4.15 총선을 앞두고 나는 의기투합한 당원들과 모여 '총선기획단' 모임을 하였다. 모두 월급쟁이들이라 겨우 1주일에 한번씩 모이는 모임이었다. 밤늦도록 토론하고, 그 와중에 뒤풀이하고, 주중에는 각자 자료를 모았다. 돌이켜 보면 힘든 일이었지만 그땐 힘든 줄 모르고 즐겁기만 했다. 모두 의욕에 차있었고, 투지에 넘쳤다. 고양시에서 1명의 후보를 내자는 게 다수 당원들의 생각이었고, 몇몇은 아예 후보를 내지 말자고 했지만, 우리는 그동안 모은 자료와 토론되고 정리된 자료를 근거로 2명의 후보(안)을 제출했고, 당원들을 설득했다.

 

전국 지구당 중 유일하게 2명의 국회의원 후보를 냈지만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은 선거를 치르고도 남을 정도였다. 후회 없는(?) 선거운동이 끝나고, 우리는 선거사무실에 대형 TV를 설치하고, 당원들이 모두 모여 함께 개표방송을 봤다.

 

방송사들은 앞다투어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민주노동당은 지역에서 2석, 비례대표 9석으로 11석을 예측했다. '와' 하는 함성이 터졌다. 꿈에도 그리던 '노동자 국회의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13.1%의 전국적인 지지를 받았다. 놀라웠다. 그리고 감격했다. 그러나 그것이 즐거워만 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불과 몇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우리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의 내용을 갖지 못한 진보정당이다. 말하자면 선언적 강령 수준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다. 그렇다보니 진보정당의 내용성에 대하여 당원들이 공유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떻게 보면 뭔가 보다 의미 있는 활동을 하자고 모인 사람들이 당원이 되고, 현 사회상황에 대한 극단적 반감이 표가 되어 민주노동당으로 쏠렸을 뿐이다.

 

그러나 13.1%는 대단한 숫자다. 난 민주노동당이 안정적 15% 지지를 받으면 기성정당들은 개헌을 시도할 것이라고 늘 얘기했었다. 일본처럼 간선제 효과가 있는 내각책임제로 말이다.
난 최소한 8년 정도 지나야 안정적 15%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니 개헌을 예상하면서도 사실은 먼 훗날의 얘기일 뿐이었다.
13.1% 지지는 총선의 일시적인 효과라고 생각했다. 또 다시 한자리수로 내려갈 것이라고...
어찌되었든 13.1%라는 숫치는 감격은 할만한 것이지 이 숫자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 우려의 숫치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13.1% 지지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것이지만, 반대로 민주노동당으로 보면 그 지지를, 그 지지에 의해 주어지는 정치적 지분을 감당할 준비와 자신이 있는가 라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주어졌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거인이 된 아이가 성인의 판단과 행동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런 상황이랄까?

 

그러나 정치와 권력에 민감한 사람들은 13.1% 지지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불행(?)하게도 정확히 간파했다. 그리고는 조직적으로 당권을 장악하였다. 당원들 중 10%밖에 당의 사정에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평당원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겸손과 순수성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고 난 생각한다.)에서 5%의 결속은 이미 과반의 영향력을 획득한 것이었다. 더욱이 불행한 것은 그들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당권을 장악할 것이라고 판단한 당원이 소수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원하던 대한민국의 권력에 있어 노동자들의 정치적 지분은 이렇게 하여 특정 정파의 정치적 지분으로 전락하는 위기에 처했다. 그러니 내부의 충돌이야 오죽하랴.

 

난 불행인지 다행인지 2004년 총선이 끝나고 바로 당 중앙위원이 되었다. 첫 번째 중앙위원회의부터 삐걱거렸다. 당시는 경기도지부 지부장 선거문제로 시끄러울 때였는데, 어쨌든 격돌이 심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많은 토론을 하였고, 설득력 있는 주장은 호응을 받기도 하였다.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성원확인하는 대의원>

 

그러나 중앙위원회 회수가 지나가면서 반대로 토론은 줄어갔다. 설득력 있는 간절한 호소조차 고정표의 높은 언덕을 넘지 못했다. 지난 2월에 있었던 마지막 중앙위원회에서는 아무리 간절한 호소를 해도 집행부의 표는 '118표' 요지부동이었다.

 

이미 이성은 마비되고, 지능은 쓸모 없는 것이 되었고, 순식간에 발달된 촉수로 내 정파의 목소리와 페르몬에 따라 손을 드는 거수기만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마치 페르몬을 쫓아 '길'을 찾고, '먹이'를 찾는 개미들처럼 일사분란했고, 어쩌다 방향을 잃은 자가 있지만 집단을 붕괴시키는데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나도 미미한 것이었다.

 

지도부에서는 토론을 회피했고, 의도를 가졌든지, 아니면 자포자기했든지 중앙위원들은 토론을 포기한 채 표결에 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회의시간이 줄어들지 않은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의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성문을 박차고 전투에 나갔다 귀환해 보니 우리 '성'에는 이미 남의 깃발이 꽂혀있는 꼴이랄까. 허전하고 허망하고 막막하다.
2005년도 중앙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아직 단 한 차례도 회의가 없었다. 이번 중앙위원회는 어떠려나?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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