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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0
    6월항쟁 22주년
    풀소리
  2. 2009/06/07
    캠핑(4)
    풀소리
  3. 2009/06/04
    흰씀바귀꽃(1)
    풀소리

6월항쟁 22주년

1.

 

6월항쟁 22주년이 되는 오늘

서울시청 광장이 봉쇄될 것인지 아닌지가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22년 전 그날

내가 다니던 학교는 당시 전교생이 7천명이 채 안되었었는데, 4천명 이상이 집회에 움집했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모였는지, 캠퍼스가 집회에 모인 학생으로 가득 덮혔었다.

 

도로변 학교 담장은 모두 무너지고, 경찰은 물러나고, 학생들은 줄을 지어 전철역으로 갔고, 전철을 전세내다시피해서 시내로 갔다. (그날 뉴스에는 학생들이 전철을 탈취했다고 나왔다.)

 

나는 아쉽게도 다수의 학생들이 줄을 지어 타고간 전철을 함께 타지 못했다.

당시 이른바 '오르그'를 통한 집결장소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결장소에 나가니 사복경찰들이 쫙 깔려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태도가 이전과 달랐다.

 

'여긴 정보가 샜으니 다른 데로 가.'

 

그들은 고압적이지도 않았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우리들보다 더 초조해보였고, 단지 우리가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해 책임을 모면해보려는 듯이 보였다.

우리도 굳이 그곳에 머물 필요가 없었다.

수시로 전해지는 소식에 의하면 서울시내가 온통 시위대로 꽉찼기 때문이다.

 

그렇게 6월항쟁은 시작됐다.

 

박종철 열사 흉상

 

 

2.

 

1987년 초 서울대 학생 박종철이 고문을 받다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젊은 학생들 뿐만 아니라 다수의 지식인들에게 매우 많은 부채의식을 남겨주었던 것 같다. 그의 죽음 이후 저항이 많은 이들에게 삶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과 전두환은 정권 막바지에 권력을 유지하기에 급급했고, 데모는 급증했다.

 

다수의 시민들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지만, 민정당은 4월 13일 호헌조치를 선언했고, 6월 10일 전당대회를 열어 차기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기로 했었다.

 

6월 10일 대규모 집회는 민정당 전당대회를 겨냥한 것이니, 날짜는 어떻게 보면 민정당이 잡아준 것이기도 했다.

 

당시 지도부(?)였던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6월 10일 국민 대회를 개최를 선언하였고, 행동요강을 발표했다. 그 행동요강에는

 

.. 2. 오후 6시 국기 하강식을 기하여 전 국민은 있는 자리에서 애국가를 제창한다. 애국가가 끝난 후 자동차는 경적을 울린다. 전국 사찰, 성당, 교회는 타종을 한다. 국민들은 형편에 따라 만세 삼창(민주헌법 쟁취 만세, 민주주의 만세, 대한민국 만세)을 하거나 제자리에서 1분간 묵념을 하며 민주주의 쟁취의 결의를 다진다....

 

등이 있었다.

 

그러나 오후 6시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시내 곳곳에서는 애국가가 아침이슬과 함께 울려퍼졌고, 차량은 일제히 경적을 울려댔고, 거리를 가득 메운 이른바 넥타이부대는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쳤다.

 

 

3.

 

6월 항쟁 기간 내내 서울시내는 해방구나 다름 없었다.

시장 상인들은 숨겨주는 것은 물론 먹을 것, 마실 것을 주었고, 젊은 아가씨들도 우리에게 음료수를 사먹으라고 돈을 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6월은 갔고,

 

7,8,9 대투쟁이 갔다.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냐, 독자후보냐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고,

그해 겨울에 있은 대통령 선거에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승리했다.

 

선거개표 때 부정선거 혐의에 분노한 시민들이 구로구청을 점거했지만, 그러나 그것 뿐이었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항쟁이 실패한 것을 알았고, 침묵으로 분노를 삼켰다.

 

대통령 선거 다음날 명동 롯데백화점 앞 도로를 점거해서 시위를 벌였지만,

시민들은 냉담하기만 했다.

그렇게 6월항쟁은 끝났다.

 

 

4.

 

6월항쟁은 실패한 항쟁인가?

난 물론 실패한 항쟁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은 시민들로부터 멀어졌고,

지금도 광장은 시민들에게 봉쇄되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항쟁이 실패했다는 증표는 충분하다.

 

그렇다고 6월항쟁이 우리에게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올리비에 롤랭의 말대로 '우리는 그 당시에 원대하면서도 막연한 희망을 공유하고 있었다. 세상을 변화시켜 보겠다는 그 이상에는 모험으로 가득 한 삶에 대한 기대감이 뒤섞여 있었다.'

 

세상에 대해 아무런 사심없는 애정을 쏟았고, 함께 공유했다는 집단기억은

반동에 저항하는 근원적 힘이 되었으며,

우리 사회를 사람 중심 사회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노력하는 이들의 신념을

지금도 마르지 않게 적셔주는 샘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겐 그러하고, 세상도 그렇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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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1.

 

지난 금요일(6월 5일) - 토요일 이틀 동안 가족캠핑을 다녀왔다.

캠핑장은 장흥에서 일영으로 가는 들머리에 있었고,

굉장히 큰 농원인데, 농원과 산 일부를 캠핑장으로 꾸며놓았다.

 

장군 막사처럼 큰 텐트에는 별실도 있다. 전문 캠핑족인 후배 재요는 전기담요도 가지고 다닌다.

 

 

캠핑. 낯선 낱말이다.

그러고 보니 가족캠핑을 한 것은 이번이 첨이다.

 

성연이 학교 다녀온 뒤에 출발했는데,

캠핑장에서는 후배 재요가 땀을 뻘뻘 흘리며 텐트를 치고 있었다.

 

우리가 캠핑준비를 하는 동안 성연이와 상유는 지들끼리 흙을 가지고 놀고 있다.

 

 

짐은 왜 그리 많은지...

그리고 할 일도 참 많다.

옆에서 조금씩 도우면서, 나같이 게으른 이들은 결코 할 수 없는 게

캠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할 줄 모르니, 심부름이나 하는 조수역할로 만족... ㅎ

그래도 장작은 제법 만들었다.

 

캠프장 위쪽 물이 쫄쫄쫄 흐르는 작은 또랑이 있다./ 가재도 살고 있다.

 

 

2.

 

주변 또랑에는 가재도 있어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캠핑장 옆이라고는 하지만, 자연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주변을 돌아다니니 나도 잘은 모르지만, 나물들이 꽤 많은 거 같았다.

잔대도 있고, 마도 있고, 당귀로 보이는 식물도 있다.

 

마 줄기

 

잔대싹/ 잔대 뿌리는 비슷해도, 싹은 참 여러종류다.

 

당귀? 아닌가???

 

 

아이들은 벌써 배고프다고 난리다.

우리는 밥을 하고, 찌게를 끓이고, 불을 피워 고기와 해물을 구웠다.

밥도, 찌게도, 고기도, 해물도 참 맛있다.

아이들도 즐거워하고, 우리들 수다도 제법 길다~

그러는 사이 짧은 땅거미가 지고, 사방은 갑자기 어두워졌다.

 

저녁부터 밤이 될 때까지, 그리고 밤에도

넓은 농원이 가득 차도록 캠핑족들이 계속 들어왔다.

흠... 일찍 와서 자리잡는 게 이런 이유구나...

우리는 일찍 와서 좋은 자리를 넓게 잡았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지금이 여름 맞나?

밤이 되니 한겨울처럼 춥다.

숯불을 걷고, 장작을 넣어 불을 지펴도

앞은 뜨겁고, 등은 춥다... ㅎ

 

싸리꽃

 

열매맺은 산딸기

 

산길에 핀 개망초꽃

 

 

3.

 

아이들이 일찍 잠자리에 든 건 좋았는데,

일찍 잠자리 든 것 만큼 또 아침엔 일찍 일어났다.

 

일찍 일어난 녀석들은 어른들을 못 살게 한다.

그렇잖아도 밤 새워 이야기를 나누던 이웃 텐트의 남자들 때문에 잠을 설친 이들은

아이들 성화에 하나들 나왔고,

하나같이 얼굴이 부어있었다.

 

캠프장에서 개울 가는길

 

 

나는 성연이를 데리고 주변 산책을 갔다.

캠프에서 조금 걸어가니 커다란 개울이 나왔다.

장흥계곡에서 내려온 개울인데, 보기에는 물이 맑다.

 

개울과 징검다리

 

징검다리/ 징검다리 위쪽 물속에 보이는 수초가 '말'이다.

 

개울 상류쪽 풍경

 

 

징검다리가 있고,

징검다리 옆 물속에 수초가 있어서 자세히 보니 '말'이다.

말은 깨끗한 물에서 자라는 수초로

말려서 튀겨먹으면 참 맛있는 반찬이 되기도 한다.

 

'말'/ 말려서 볶으면 아삭아삭한 게 과자같기도 하다.

 

 

어렸을 때 보고 이제서 보니 너무나 반가워 조금 뜯어서 맛이라도 보고싶건만,

수질 상태를 알 수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epilogue

 

나는 약속이 있어서 아침만 먹고 나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성연이가 엄마랑 같이 개울에 가서

위에 있는 '말'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설명'을 해줬다고 한다.

 

같이 한다는 것은, 그렇게 '추억' 이상의 뭔가를 남기는 것 같다.

특히 엄마, 아빠랑 함께 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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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씀바귀꽃

오늘 엄마 외래진찰 받으러 일산병원 간 김에 흰씀바귀꽃을 다시 찾아보았다.

택시를 타고 병원에 들어서며 잔디밭을 바라보니

아/직/도/ /있/었/다.

 

흰씀바귀꽃/ 꼬들빼기랑 꽃이 너무 비슷해 나도 자주 혼동하겠더라. 여린 꽃봉우리가 산들바람에도 가볍게 날린다.

 

 

지난 주 엄마가 일산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원앞 잔디밭에 듬성듬성 난 노랑씀바귀꽃 사이로

흰꽃을 단 씀바귀가 몇 뿌리 있었다.

노랑씀바귀꽃만 봐온 내겐 너무나 신기해지만,

퇴원수속과 잘 걷지 못하는 엄마를 부축하느라

사진도 찍지 못 하고, 또 씨앗채취도 못 했었다.

 


노랑씀바귀꽃

 

 

다시 일산병원에 가면 사진도 찍고 씨앗도 채취해야지 했었는데,

다행이 꽃도 더 많이 피어있었고, 씨앗도 많았다.

글구 엄마도 많이 나았고...


작년에 찍은 꼬들빼기꽃/ 줄기도 꽃도 정말 조금 다르다. 꽃잎이 씀바귀는 한겹인데 꼬들빼기는 겹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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