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싸이버타리아트 9

@ 9장 물질세계 @

- 무게 없는 경제의 신화 -

 

 

 

@ 10장 싸이버타리아트의 형성 @

- 진짜 세상의 가상 노동 -

 

 

“이 글은, 자본주의가 상품화와 축적의 상호 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역동적인 힘이라는 점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한편으로 자본주의는 잉여가치를 빼낼 새로운 상품을 탐욕스럽게 계속 찾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왕성한 확장의 연료가 될 새로운 시장을 찾는다. 새 상품은 그전에는 교환을 위해서나 선의로 돈 받지 않고 하던 활동들을 화폐경제 속으로 끌어들이거나 기존 상품들을 정교화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인간의 활동과 필요 곧 생산과 소비는 이 과정의 양 끝에 있다. 자본주의의 피할 수 없는 동력은, 전 세계를 완전히 산업화하는 것이다. 곧 한편으로 모든 사람이 상품의 생산이나 유통 그리고 자본 축적과정에 일정하게 기여하도록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이 생존을 위해서 이런 상품의 구매에 날로 더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다.” (230쪽)

 

 

“이 자리가 계급에 관한 논쟁을 더 자세히 개관할 자리는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지적하고 넘어갈 것은, 사무직 노동자를 어디에 위치 지을지에 관한 혼란 정도는 계급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논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과연 계급을 직업에 따라 규정할지 (마셜 등이 지적했듯이 이는 생산의 기술적 관계에 따른 범주와 상응하는 것이다) 아니면 생산의 사회 관계를 따를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 또는 사회적 분업 또는 상대적 소득 또는 신분제나 문화적으로 구성된 위계질서(베버가 말하는 ‘신분 집단’)에 따를지, 그것도 아니면 대부분의 공식통계에서 분류하는 것처럼 일관된 개념적 기반이 결여된 경험적으로 형성된 계층에 따를지에 대한 논의도 혼란스럽기만 하다.” (234~235쪽)

-->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을 <자본을 전제로 하는 임노동자>로 그 테두리를 만든다면, 노동자 계급의 개념 범주는 자본에 의해 정의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게 된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의 계급의식이 항상 즉자적 수준, 곧 그때그때마다의 자본의 악행에 대한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분노 표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게 될 위험이 아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로서는 이 시대 좌파 남성 지식인들이 이후 보여 준 정치적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것이 이런 식의 설명이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된 노동계급의 특징을 낭만화하고 하나의 특정한 전형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태도, 몇몇 남성 육체 노동자(광부, 자동차 제조 노동자, 트럭 운전자, 부두 노동자)에 대한 거의 물신숭배적 집착, 자신들의 노동계급 출신 선조를 경쟁적이면서도 집착적으로 내세우는 것, 여성주의는 중산계급적이며 ‘진짜’ 노동계급 남성을 소외시킨다는 주장 등 그들의 태도를 다른 것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240쪽)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전투적인 행동을 벌이는 데 분명히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그들의 경제적 이익에 가장 부합할 것 같은 내용일 것이다. 사용자 쪽에 설 경우 저급 사무 노동은 승진의 계단을 성공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일자리라고 그들이 인식한다면, 열심히 일하고 젊잖게 굴고 아부를 하는 게 승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느낄 것이다. 반면 예컨대 경영진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거나, 남성만 또는 백인만 또는 특정 국가 시민만 또는 특정 신분만 승진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은 승진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느낀다면, 임금을 높일 최선의 방법은 동료 노동자들과 공통의 명분을 만드는 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남녀 성별과 인종이 계급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새로운 싸이버라이트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이 스스로를 그런 계층으로 인식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266~267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